위대한 뮤지션 신해철의 자취와 그가 남긴 명작들 원고의 나열

지난 10월 말 신해철이 갑작스럽게 유명을 달리했다. SNS와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애도의 글이 줄을 이뤘고, 슬픔의 표현들은 아직도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다. 이는 유명 스타의 죽음에 모름지기 몰려드는 형식적인 일회성의 근조가 아니다. 신해철의 음악은 1980년대와 90년대에 학창 시절을 보낸 이들에게 때로는 순정만화 같은 낭만이었으며, 때로는 숙지하고 이행할 젊은 날의 강령이었고, 사회와 소통하는 창구, 세상을 심안하는 돋보기였다. 그의 작품이 수많은 이의 성장 과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기에 상실감은 클 수밖에 없다. 게다가 신해철은 매번 적극적으로 음악에 새로움을 도모함으로써 음악팬들에게는 즐거움을, 음악 시장에는 고무적 긴장감을 제공했다. 2014년 우리는 대중음악의 위대한 영도자를 잃었다.



무한궤도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
1988년 "MBC 대학가요제"의 대상 수상자로서 음악팬들의 눈에 든 무한궤도는 약 반년 만에 정규 음반을 출시하며 가요계에 정식 데뷔했다. 신해철은 겨우 약관을 넘긴 어린 나이임에도 그룹의 메인 작사가, 작곡가, 프로듀서로서 훌륭한 재능을 드러냈다. 하지만 이제 걸음마를 뗀 신인이고 밴드로서 명확하고 장기적인 지향이 제대로 서지 않은 상태에서 만든 음반인지라 난잡한 것이 사실이다. 신해철 음악의 주요 양분인 프로그레시브 록('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 조형곤의 성장 배경에서 기인한 CCM, 동화적 작법('소망은 어디에'), 뒤늦게 멤버로 합류한 정석원 특유의 소녀 감성('어둠이 찾아오면') 등 음악적으로는 록과 팝, 정신적으로는 아마추어의 순수함과 대중 지향, 프로페셔널리즘에 대한 희구가 뒤엉킨 앨범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 한국 대중음악의 튼튼한 기둥이 되는 신해철과 015B를 소개한 무대로서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

세월이 흘러가고 우리 앞에 생이 끝나갈 때 누군가 그대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어보면 대답할 수 있나 지나간 세월에 후횐 없노라고 -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 中


신해철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

무한궤도로 젊은 청취자들에게 이름을 알리는 데 성공한 신해철은 명문대 재학생이라는 이력과 곱상한 외모, 서정적인 가사를 발판 삼아 소녀들이 열광하는 아이돌 스타로 도약한다. 외적으로는 그렇게 보였을지라도 그는 솔로 데뷔 음반에서도 거의 모든 수록곡을 작사, 작곡하고 프로듀싱까지 책임짐으로써 음악계의 유력한 유망주임을 또 한 번 시사했다. 소프트 록('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부터 오페라풍의 장중한 발라드('떠나 보내며'), 재즈('P.M. 7:20'), 록이 결합된 댄스 팝('연극속에서') 등 여러 장르를 시도하면서 장르에 구애되지 않는 표현력을 과시했으며 향후 펼칠 다양성을 귀띔했다. 특히 랩이 들어간 '안녕'은 젊은 세대가 좋아하는 문법을 발 빠르게 포착했을 뿐만 아니라 청춘들의 애정관까지 확보함으로써 이 젊은 아티스트가 사회현상을 간과하지 않는다는 것도 주장했다. 또한 당시 영어로 된 랩이 우리 대중음악에 종종 등장하고 있었지만 억양과 악센트에만 중점을 두는, "따라 하기" 수준에 불과했다. 그러나 '안녕'에서의 래핑은 라임까지 맞추고 있었다.

선물가게의 포장지처럼 예쁘게 꾸민 미소만으로 모두 반할 거라 생각해도 그건 단지 착각일 뿐이야 - '안녕' 中




신해철 [Myself]
신해철은 두 번째 솔로 앨범을 통해 뛰어난 음악성과 기술에 대한 천착, 성장을 향한 의지를 모두 전달해 보였다. 멜로디와 가사의 감수성은 더 풍성해졌고 신시사이저와 컴퓨터 기반의 작법 역시 더욱 발전했다. 이로써 신해철은 뮤지션 스스로가 제반의 모든 작업을 담당한 원 맨 밴드로서의 걸작을 완성했다. 신해철은 2집에서 래핑의 비중을 늘리고, 1990년대 초반 대중문화의 화두로 부상하던 재즈를 소재로 삼으며, 하우스 음악을 선보이는 등 젊은 음악팬들과의 감각적 접점을 넓혀 갔다. 더불어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 때문에 불안함을 느끼는 청춘에게 진정한 소중함은 주변에 있다고 위안을 건네기도 하며('나에게 쓰는 편지'), 고령화사회에 만연하는 고독함과 노령 인구 재취업의 어려움('50년 후의 내 모습') 등을 거론하면서 현대사회를 향한 고민의 끈도 팽팽하게 잡아당기고 있다. 무엇보다도 통속성은 견지하나 무척 유려한 노랫말은 신해철을 대중적 감수성의 수호자로 만들었다.

만남의 기쁨도 헤어짐의 슬픔도 긴 시간을 스쳐가는 순간인 것을 영원히 함께할 내일을 생각하며 안타까운 기다림도 기쁨이 되어 - '내 마음 깊은 곳의 너' 中


넥스트 [Home]

밴드 음악과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절충, 다양성과 최신 경향의 포괄에 대한 열의는 "새롭고 실험적인 팀"이라는 의미를 부여한 넥스트의 결성으로 나타났다. 신해철의 지휘와 역량이 압도적이어서 멤버였던 이동규와 정기송의 존재감은 크게 느껴지지 않아 록 밴드로의 환골탈태가 애매한 결과를 맞았지만 록 오페라('인형의 기사 Part I'), 힙 하우스('도시인'), 랩 록과 댄스음악의 혼합 ('Turn Off The T.V.'), 아레나 록('영원히') 등 다양하고도 흔치 않은 형식들을 순회해 신선한 복합성만큼은 확실히 표시했다. 이와 더불어 앨범은 한 가정의 일원으로서 안팎으로 겪는 일화들을 망라해 콘셉트 앨범의 재미를 잘 전달했다. '인형의 기사 Part II', '도시인'의 히트는 신해철을 대중음악계의 중앙에 위치하게끔 도왔다. 그러면서도 산업사회의 황폐함, 죽음, 이상, 외로움 등 사람과 삶에 대한 본질적 질문을 들이미는 노랫말은 그가 의식 있는 뮤지션임을 말하고 있었다.

모두가 똑같은 얼굴을 하고 손을 내밀어 악수하지만 가슴속에는 모두 다른 마음 각자 걸어가고 있는 거야 - '도시인' 中




넥스트 [The Return Of N.EX.T Part 1: The Being]
한 차례의 멤버 재편을 거친 넥스트의 새 앨범은 신해철의 음악적 뿌리는 단연 록이며 최종 도착지 또한 록임을 천명하는 작품이었다. 한층 날카롭고 거칠어진 사운드와 관습을 탈피하려는 태도가 그 사실을 뒷받침했다. '날아라 병아리'의 히트는 신해철을 여전히 스타 가수로 여겨지도록 했으나 신해철은 철학적 사유와 미디어의 기호에 부합하지 않는 음악적 쇄신을 응집한 이 앨범을 통해 한없이 가벼운 우리 대중음악에 무게감을 더하는 위대한 작가로 거듭났다. 한국 록의 명곡이라 할 'The Destruction Of The Shell: 껍질의 파괴'는 10분에 달하는 러닝타임으로 주류 문법과의 단절을 선포하고 있으며, 흔한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를 담지 않았다는 점도 이 아티스트가 진지한 목적의식으로 무장했음을 일러 준다. 수록곡들은 자아를 찾기 위한 끊임없는 자문, 주변 사람 사이에서 모순된 행동을 하는 자신에 대한 발견, 이상 실현으로 스스로를 확인하려는 모습 등을 스케치하며 "존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계속해서 던진다.

난 아직 내게 던져진 질문들을 일상의 피곤 속에 묻어버릴 수는 없어 언젠가 지쳐 쓰러질 것을 알아도 꿈은 또 날아가네 절망의 껍질을 깨고 - 'The Dreamer' 中


Monocrom [Monocrom]

데뷔 때부터 꾸준히 이어 왔으며 1회로 마감된 윤상과의 프로젝트 노 댄스를 통해서도 드러낸 바 있었던 전자음악에 대한 진지한 호기심은 [Crom's Techno Works]에서 크게 발현된 뒤 그리스 출신의 프로듀서 Chris Tsangarides와 팀을 이룬 Monocrom으로 다시 한 번 적극성을 띠게 됐다. 이를 테면 [Monocrom]은 음악에의 부지런한 탐구를 엿볼 수 있는 정착지였다. 전자음악 본연의 색에 몰두했던 [Crom's Techno Works]와 달리 여기에서는 한국적인 정서와 우리 전통음악, 록을 적당하게 버무림으로써 더욱 폭넓은 스펙트럼과 혼합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신해철 특유의 민감한 메시지보다는 장르적 특질 구현과 음향학적 연출에 비중이 쏠린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그럼에도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에서의 젊은 사람들에게 꿈을 돌이켜 보게 하는 직설 화법은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생생하며 감각적인 격언으로 남아 있다.

이거 아니면 죽음 정말 이거 아니면 끝장 진짜 내 전부를 걸어 보고 싶은 그런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中




신해철 [REBOOT MYSELF Part.1]
오로지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재즈로 자신 있게 외도한 지 7년 만에 신해철은 특유의 재치와 사회를 향한 반골 정신, 새로움에 대한 성실한 탐구열을 다시 탑재해서 돌아왔다. [The Return Of N.EX.T Part 2: The World]의 '아가에게'에서 선보인 바 있던 아카펠라는 'A.D.D.A'에서 더욱 전문적으로 발전한 모양으로 나타났다. 리드 보컬과 화음, 리듬 파트를 모두 홀로 소화하며 녹음에 녹음을 거듭했으니 그야말로 이 노래는 노고의 값진 산물이라 할 만하다. 여기에 무력한 인간을 양산하는 사회의 단면을 반어적으로 그린 가사는 또랑또랑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이 아티스트의 장기를 설명한다. 정치인들을 익살스럽게 지탄하는 펑크(Funk) 록 'Catch Me If You Can (바퀴벌레)', 평평함으로 균형 있는 사운드를 연출한 포스트 디스코 'Princess Maker'는 디지털 환경에서의 아날로그 지향을 내보이며 솔로 가수로서의 새로운 2막을 기대하게 했다. 하지만 [REBOOT MYSELF Part.1]은 기약 없는 본편의 안타까운 예고로 남았다.

다신 제발 아프지 말아요 내 소중한 사람아 그것만은 대신 해 줄 수도 없어 아프지 말아요 그거면 돼 난 너만 있으면 돼 - '단 하나의 약속' 中

원문 및 이 외의 앨범과 노래에 대한 글은 멜론-뮤직스토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www.melon.com/musicstory/inform.htm?mstorySeq=1919
모바일에서는 멜론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해야 보실 수 있습니다.


덧글

  • 2014/11/07 16:50 # 삭제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한동윤 2014/11/09 21:54 #

    네 :-)
  • 2014/11/21 10:58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4/11/21 11:07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중간에딴감 2017/06/24 20:23 # 삭제

    무한궤도2집 노땐스2집 모노크롬2집 넥스트7집 신해철 reboot my self part2 듣고 싶네요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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