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넘버원의 1세대 K-Pop / 보아 'No. 1' 원고의 나열


2002년 3월 보아의 일본 첫 정규 음반 [Listen To My Heart]가 오리콘 앨범 차트 정상에 올랐다. 한국 가수로는 처음 이뤄진 기록이었다. 앞서 출시돼 싱글 차트 5위에 오른 'Listen To My Heart는 일본 핸드폰 광고의 배경음악으로 쓰이면서 보아의 이름을 더욱 널리 알렸다. 뒤이어 선보인 'Every Heart'도 싱글 차트 상위권에 들며 인기를 얻었다. '아시아의 별'이 밝게 빛난 순간이었다.

음악팬들의 환호는 모국에서도 다름없었다. 국내 활동을 병행하던 보아는 같은 해 5월 한국에서의 두 번째 앨범 타이틀곡 'No. 1'으로 여러 음악 프로그램에서 정상을 석권했다. 연말에는 '일본 유선대상', '일본 레코드대상', 'SBS 가요대전', 'MBC 10대가수가요제' 등에서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겨우 열일곱의 어린 소녀가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 단숨에 스타로 급부상했다.

2000년 'ID; Peace B'로 데뷔했을 때 보아는 열다섯이라는 어린 나이가 무색할 만큼 능숙한 보컬과 격한 안무를 선보이며 세간의 관심을 샀다. 하지만 괄목할 만한 큰 히트는 달성하지 못했다. 앨범 판매량은 18만 장에 달해 신인치고는 무척 괜찮은 실적이었으나 데뷔를 위한 투자액이 무려 30억 원에 이르는 점을 고려하면 결코 만족스러운 수치는 아니었다. H.O.T., S.E.S. 등 제작하는 가수마다 성공했던 SM엔터테인먼트로서는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결과였다.

일련의 정황 탓에 'No. 1'에 부여되는 의미는 각별하다. 보아는 데뷔 전 3년가량의 준비 기간 동안 일본어와 영어를 습득했으며 보컬, 춤을 전문적으로 배웠다. 외국 시장 진출을 염두에 둔 실력파 가수가 되는 과정이었다. 2001년 본격적으로 일본에 진출한 뒤 약 8개월 만에 한국과 일본 대중음악사에 길이 남을 신기록을 세웠지만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활약이 미흡했던 보아가 'No. 1'으로 비로소 국내에서도 으뜸가는 위치에 선 것이다. 철저한 기획과 이를 기반으로 한 체계적인 트레이닝이 맺은 귀한 결실이었다. 아시아를 누비는 꿈은 현실로 나타났고 노래의 히트로 탄력받은 보아는 한국과 일본에서 크나큰 성공을 이어 가게 됐다.

보아의 대단한 활약을 계기로 우리 음악 산업에 변화가 일어났다. 이후 데뷔하는 가수들의 연령이 부쩍 어려진 것이 그중 하나다. 비슷한 또래로 동질감을 형성해 음반 시장의 주요 소비층인 10대를 수월하게 공략할 수 있으며 그 이상의 연령대에는 귀여움과 풋풋함을 앞세워 두루 호감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어린 나이에 데뷔할수록 활동 기간도 상대적으로 많이 확보되니 가수와 제작자 모두 이득인 셈이다.

무엇보다 가장 중대한 변화는 '케이팝(K-Pop)'이라 명명된 우리 대중음악이 나라 바깥에서도 힘을 드러낸 것이다. 2000년을 전후로 클론, 베이비복스 등이 타이완, 중국에서 공연을 열며 외국 시장 진출을 확산해 갔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한시적인 활동만 보일 뿐이었다. 반면에 보아는 음반 출시와 공연 활동을 모두 꾸준히 지속했으며 히트마저 연이었다. 그 나라 말을 자연스럽게 구사해 언어의 벽을 허물었고 철저한 시장 조사를 토대로 그곳 대중이 선호하는 콘텐츠를 선보인 덕분이다. 이후 다수의 아이돌 가수가 이러한 시스템으로 외국 진출을 준비했으며 이로써 훌륭한 성과를 내고 있다.

'No. 1'은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을 일본에 독점 중계하는 TBS 방송국의 아시안게임 테마곡으로 사용돼 더 많은 이에게 보아를 알렸다. 노래는 이 같은 히트 외에도 가수 제작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기폭제로서, 케이팝이 외국 시장 진출에 적극성을 띠는 분기점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아시아의 별로 등극한 보아에게 매우 의미 있는 노래가 됐다.

2014/02 한동윤
엠넷 레전드 송 100

덧글

  • 키리노 2014/11/10 21:42 #

    아 예전에 보아 진짜 좋아했었는데
  • 한동윤 2014/11/11 09:33 #

    지금은 그때만큼은 아니신가 보군요 :)
  • 京靑 2014/11/10 23:29 #

    이때 보아를 접했을 때가 여전히 충격으로 기억에 남아 있네요. 지금 이렇게 그 당시 보아가 아이돌 산업에 남긴 의의를 보니 새롭네요. 잘 읽었습니다.
  • 한동윤 2014/11/11 09:36 #

    저렇게 어린 아이가 과연 잘될까 하는 의문이 있었는데 큰일을 했어요.
    그 덕에 SM은 아이돌 사업에 더 탄력받고 우리나라는 아이돌 판으로 전락했지만요.
  • 식신강림 2014/11/12 22:33 # 삭제

    ID : Peace B 부터 보아짱을 외쳐온 저에게 꽤 기념비적인 음반이기도 합니다ㅋㅋㅋㅋㅋ 그 뜨거운 2002 월드컵의 열기속에서 '우리 보아'가 살아남았으니까요. (.....이렇게 보아팬 인증을 하고 후다닥;;)
  • 한동윤 2014/11/13 14:35 #

    식신강림 님께는 '우리 보아'군요~ 이제는 '우리 이사님'? ㅎㅎ
    12살 꼬마가 이제는 글로벌 기업의 이사라니...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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