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반 백스핀 1994년 (1) 원고의 나열

1994년은 우리 대중음악이 양적, 질적 성장을 모두 이룬 대표적인 순간 중 하나다.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의 거침없는 약진으로 댄스음악과 힙합 문화가 더욱 발전, 확산됐고, 김건모, 룰라 같은 이들에 의해 레게가 인기 장르로 자리매김했다. 여러 가수가 밀리언셀러를 기록함으로써 음반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많은 인기를 얻은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 삽입된 노래들로 알 수 있듯 서정적인 발라드가 풍성했으며, 블랙홀을 비롯해 신성우, 와일드 로즈, 뮤턴트 등의 활동으로 록 음악도 다채로운 국면을 보였다. 조관우의 '늪', 김현철의 '끝난 건가요', 박진영의 '너의 뒤에서' 같은 노래들은 젊은 청취자와 장년 음악팬들에게 고루 사랑을 받았다. 1994년은 20년이 지난 지금 들어도 훌륭한 작품을 많이 만들어 낸 해였다.



서태지와 아이들 [3집 - 발해를 꿈꾸며]
전작들에 비해 록, 헤비메탈의 성향을 더욱 강화하면서 한차례 더 변화된 모습을 선보였다. 강한 사운드를 낸 것은 단순히 맹목적인 외양 꾸미기가 아니었다. 남북의 통일('발해를 꿈꾸며'), 대한민국 제도 교육에 대한 비판('교실 이데아'), 자유에의 갈망('내 맘이야'),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서 기인한 고통('지킬박사와 하이드') 등 유의미한 메시지를 힘 있게 전달하기 위한 효율적인 장치였다. 거친 기타 리프에 실은 "됐어 됐어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라는 가사는 그 시절 청소년들에게 가장 가깝고도 현실적인 격언이 됐다. [3집 - 발해를 꿈꾸며]는 예술성과 대중성을 완비한 혁명가가 기성사회에 날리는 통쾌한 펀치였다. 그럼에도 세 멤버는 무대에서 여전히 활력 넘치는 안무를 행해 록의 애티튜드와 최고의 댄스 그룹으로서의 면모를 동시에 전달했다.



듀스 [Rhythm Light Beat Black]
두 장의 앨범으로 한국 힙합 음악의 선구자가 된 듀스는 [Rhythm Light Beat Black]에서 자신들이 흑인음악의 작가임을 재차 입증했다. 방송을 통해 선보인 '우리는 (Power Up Ver.)'과 '약한 남자 (Mo'Rhythm Ver.)'은 원곡보다 더 강하고 화려하게 편곡해 리믹스의 묘미를 알리며, Redman의 'Time 4 Sum Aksion'을 모델로 삼은 'Time 2 Wreck'은 영리한 샘플링이란 무엇인지 힘주어 말한다. 'Go! Go! Go!'의 리믹스 버전과 '떠나버려!'로는 록과 일렉트로닉 댄스음악에 대한 관심과 시도가 지속되고 있음을 이야기했다. 작사, 작곡, 편곡은 기본에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근사하게 느껴지는 스타일링까지 스스로 해결한 듀스는 당시 힙합 유행에 편승하기 급급했던 보통의 댄스 가수들과는 완전히 다른 급을 나타냈다. 청명한 매력으로 여름날의 찬가가 된 '여름 안에서'는 그들의 업적을 기리는 훈장일 것이다.



장혜진 [Before The Party]
뮤지션에게 성공은 노력의 축적과 타이밍이 결합해 얻어지는 산물인지도 모른다. 장혜진의 3집 [Before The Party]를 둘러싼 정황이 그랬다. 1집과 2집에서 손무현, 신해철, 유영석, 윤상 같은 훌륭한 작곡가, 프로듀서들과 만나 보컬리스트로서의 빼어난 능력을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장혜진은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전작들에 참여했던 이들이 이름을 올린 3집에서 그간의 노고와 준수한 결과물에 대한 반응이 선명하게 나타났다. 중간 템포의 댄서블한 R&B '사랑이라는 그 이름 하나만으로', 세련된 라틴 리듬이 청량감을 선사하는 'Complex'와 'Before The Party', 발라드의 스테디셀러가 된 '내게로'와 '1994년 어느 늦은 밤' 등 수록곡들은 다채로움과 견고함을 내보였고, 이에 청취자들은 자연스럽게 화답했다.



넥스트 [The Return Of N.EX.T Part 1: The Being]
무한궤도와 솔로 앨범으로 유능한 싱어송라이터이자 음악감독임을 인정받은 신해철은 넥스트를 결성해 실험에 더욱 몰두했다. "가정"에 관한 다양한 소재를 여러 장르에 풀어낸 1집 [Home]에 이어 [The Return Of N.EX.T Part 1 The Being] 또한 콘셉트 앨범으로 구성했으며, 대규모 악곡의 프로그레시브 록과 하드록을 중심 문법으로 택해 적극적, 주체적인 음악 개혁을 꾀했다. 그가 던지는 "존재"라는 질문은 정밀하고도 웅장한 구성의 'The Destruction Of The Shell : 껍질의 파괴', 동화 같은 순수함으로 불특정 다수의 공감을 획득한 '날아라 병아리', 엑스세대의 정서를 대변한 '나는 남들과 다르다', 꿈이 실존의 원동력임을 넌지시 말하는 'The Ocean : 불멸에 관하여' 등을 통해 때로는 묵직하게, 때로는 심원하게 다가온다. 진지한 주제, 음악적 내실, 다양성을 모두 지닌 명작이다.



015B [Big 5]
신해철과의 짧은 동맹 후에 분파한 015B 역시 매번 다채로운 모습으로 변신을 도모해 대중에게 신선미를 안겼다. 인더스트리얼 음악을 표방한 '바보들의 세상', 현악기를 내세운 소울 넘버 '시간'은 각각 Nine Inch Nails와 Lenny Kravitz를 의도적으로 모사해 흥미로움을 제공했다. 또한 컴퓨터에 내장된 소리와 모뎀 연결음을 활용한 'Netizen'은 PC통신이 보편화되던 시절에 문제점으로 대두된 대인관계의 단절을 논하고, 애시드 재즈와 펑크(Funk)를 합친 '결혼'은 사랑보다 조건을 중시하는 세태를 언급하는 등 015B 특유의 유쾌한 사회 비판도 이어졌다. 나미의 원곡을 다시 부른 '슬픈 인연', 조용필의 원곡을 디스코와 힙합으로 재해석한 '단발머리'로는 편곡 센스를 자랑한다. 견실함과 재치가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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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 O U L O U N G E : 명반 백스핀 1994년 (2) 2014-11-18 16:00: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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