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윤 선정 2014 올해의 팝 앨범 원고의 나열

일렉트로팝이 인기 장르로 굳건한 위치를 지키는 가운데 복고와 퓨전이 주요 코드로서 존재감을 과시한 2014년이었다. Pharrell Williams의 앨범은 디스코, 소울 회귀 열풍의 한 축을 담당했고, Paolo Nutini는 1970년대 블루 아이드 소울을 세심하게 표현하며 복고의 다른 일면을 채웠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원숙함으로 충격을 준 영국 싱어송라이터 George Ezra도 시대를 거꾸로 올라가는 팝 음악 경향을 확인시켜 줬다. R&B, 트립 합 등 여러 장르를 섞은 음악을 들려준 여성 싱어송라이터 Banks와 인디 팝과 아트 록 등을 교배한 스타일로 특이함을 나타내는 St. Vincent 등은 활발하게 이뤄지는 퓨전의 유행을 짐작하게 했다. 2014년을 결산하는 의미에서 이번 한동윤의 다중음격에서는 "올해의 팝 앨범"을 선정했다.



St. Vincent [St. Vincent]
인위적으로 뭉갠 로파이 사운드, 좌우와 앞뒤를 횡행하는 잡음들, 경중을 조절하며 달그락거리는 리듬, 다소 기이해 보이는 자유분방한 보컬 등 St. Vincent 특유의 풀이는 네 번째 앨범 [St. Vincent]에서도 계속된다. 독자적인 성분 때문에 조금은 까다롭게 느껴지긴 하지만 꾸준히 지녀 온 일련의 요소는 앨범을 아기자기함과 기묘함, 음험한 공기가 뒤섞인 신비의 세계로 만든다. 이에 더불어 전자음을 적극적으로 부착함으로써 트렌디한 면도 강화했다. 특별한 기교를 뽐냄 없이도 오로지 카리스마로 곡을 휘어잡고 주도하는 보컬은 노래들의 야릇함을 곱절로 늘린다. [St. Vincent]는 다크 판타지 영화에서 마녀가 연회를 벌이는 장면을 상상하게 만든다. 어수선하고 음산하지만 충분히 즐겁다.



George Ezra [Wanted On Voyage]
만약 "올해의 애늙은이" 부문이 있다면 2014년에는 아일랜드 출신의 Hozier와 영국 싱어송라이터 George Ezra 간의 격돌로 나타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런데 더 어린 나이를 감안해서 트로피는 Geeorge Ezra에게 줘야 할 것 같다. 1993년생인 그는 이제 20대 초반인 어린 나이가 무색할 만큼 올드한 음악을 한다. 포크, 컨트리, 블루스 반주와 묵직하고 탁한 목소리는 20세기 초반, 1950, 60년대로 청취자들을 순간 이동시킨다.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서부영화와 흑인들이 기타를 치며 구슬프게 멜로디를 읊는 장면이 떠오른다. 성숙한 목소리, 블루지한 톤은 곡과 밀착해 Geeorge Ezra를 그 시절의 사람, 혹은 나이 지긋한 중견 뮤지션으로 여겨지도록 한다. [Wanted On Voyage]는 지향이 뚜렷하고, 이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아는 소신 있고 능력 있는 초보 가수의 대단한 첫걸음이다.



Banks [Goddess]
활발하지 않지만 이상하게 매력적이다. 곳곳에 스민 전자음은 옅고 희미해 처음부터 끝까지 음악의 차가움을 부각한다. 고의로 왜곡하거나('Brain') 음성이 떨리는 것처럼 층을 낸('This Is What It Feels Like') 보컬 또한 음험함을 증대한다. 이로 말미암아 수록곡들은 더욱 위태롭게 들린다. 종종 보이는 위악적인 가창도 앨범에 불길함을 더한다. 드림 팝, 트립 합, R&B의 요소를 골고루 지닌 종잡을 수 없는 음의 얼개도 예사롭지 않은 복합성을 키우는 데 한몫한다. 사랑에 실패해 옛 기억을 미워하고 지난 인연을 증오하는 가사는 한차례 더 앨범에 한기를 가한다. 간단하게 기술하자면 The Weeknd와 Lana Del Rey를 섞어 놓은 듯한 음악을 한다. 이 앨범을 통해 퓨전과 우울함, 패자의 정서가 오늘날 대중음악의 핵심 키워드임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Chromeo [White Women]
역시 명쾌하다. 캐나다 듀오 Chromeo의 신작은 그들이 1980년대의 문법 일렉트로 펑크(Electro Funk)를 가장 훌륭하게 재현하는 그룹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한다. 신시사이저와 일렉트릭 기타를 앞세운 쫄깃한 멜로디, 탄력과 그윽한 흥을 보존하는 정교한 리듬 프로그래밍은 듣는 즉시 자동으로 발장단을 치게 만든다. 간간이 들어가는 토크박스 연주는 펑크(Funk) 밴드 Zapp을 연상시키며 과거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자칫 촌스럽게 느껴질 수 있는 양식이지만 귀에 잘 인식되는 말끔한 멜로디 덕에 노래들을 즐겁게 받아들이게 된다. 이 외에 'Come Alive', 'Hard To Say No'처럼 약간은 잠잠한 톤의 곡도 갖춰 댄서블한 가운데 서정성도 발산한다. 신스팝('Old 45's'), 뉴 디스코('Fall Back 2U') 등 이들이 그간 행해 왔던 부전공의 장르가 계속되는 것도 [White Women]의 장점 중 하나다.



Taylor Swift [1989]
급격한 노선 변경에 호불호는 갈렸지만 우려할 필요는 없었다. 음악성은 애당초에 증명했으며, 아이돌 음악의 미다스 손 Max Martin과 많은 히트곡을 생산 중인 스타 프로듀서 Shellback이 뒤를 봐주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컨트리를 벗어나 팝으로 가겠다는 선언이 화제가 된 덕에 대중의 이목을 더 방대하게 끌 수 있었다. 두 메인 프로듀서와 여러 뮤지션의 도움을 받은 노래들은 안정적인 골격을 나타내면서 다양성을 아우른다. Taylor Swift는 더 젊고 발랄해졌으며('Shake It Off'), 요즘 동향에 맞는 말투도 자연스럽게 내보이고('Blank Space'), 한편으로는 Madonna를 흉내 낸 음악을 펼치기도 한다('I Wish You Would'). 어른스러웠던 컨트리 공주님이 지금 자신의 나이에 어울리는 옷을 입어 한결 홀가분해 보인다. 어린 나이에 벌써 인생 이모작에 성공했다.



Paolo Nutini [Caustic Love]
영국 뮤지션들의 소울에 대한 애정은 한순간도 식지 않는다. 올해에는 Paolo Nutini가 3집 [Caustic Love]에서 1970년대 복고 사운드에 진취적으로 매진해 한편에서 그 계보를 이어 갔다. 그 시절 음악의 투박한 질감을 잘 구현한 것은 프로듀서로서의 성과며, 과장이나 어색한 연출 없이 노래의 맛을 획득한 것은 보컬리스트로서의 특별한 결실이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음악적 근간인 록을 부드럽게 녹여내 매무새를 더욱 튼튼하게 만들었다. 남부 소울의 체취를 멋스럽게 복원한 리드 싱글 'Scream (Funk My Life Up)'에서 성공적인 변신을 가늠할 수 있고, 각박한 사회에서 신에게 구원을 요청하는 'Iron Sky'를 통해 소울을 단지 변화의 수단으로 쓰지 않았다는 진중함을 느낄 수 있다. 앨범은 전시용 일탈이 아닌 진짜배기 소울 탐구를 말한다. 또한 Paolo Nutini가 노래 잘하는 가수임을 확인시켜 준다.



Pharrell Williams [GIRL]
기본 이상은 늘 하는 "웰메이드"는 맞지만 엄격한 잣대를 들이민다면 정체기에 있다고 할 Pharrell Williams의 음악 세계는 복고 트렌드와 직접적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한 페미니즘 콘셉트, 큰 인기를 얻은 뮤지션들과의 컬래버레이션, 다양한 버전의 뮤직비디오 공세로 활기를 되찾았으며 음악팬들의 관심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냈다. 때문에 [GIRL]에서 내보인 네오 소울과 펑크(Funk) 록은 솔로 앨범과 N.E.R.D.를 통해 드러내 온 스타일에 다름없었음에도 어느 때보다 막강한 파급을 전하게 됐다. 그렇다고 이를 기획의 승리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영화음악의 거장 Hans Zimmer를 초대해 클래식을 모색한 것은 참신함을 추가한 근사한 노고라 할 만하고, 모든 노래는 알찬 바운스와 그루브를 뽐낸다. 웰메이드 앨범으로 여전히 그가 주류 음악계 최고의 프로듀서임을 증명했다.



Sia [1000 Forms Of Fear]
자국 오스트레일리아에서도 그다지 큰 히트를 못해 본 가수, Sia의 비약적 인지도 상승은 어린 댄서의 광기 어린 춤사위를 담은 'Chandelier'의 뮤직비디오 덕이 컸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뒤늦게 성공을 누리게 된 이 무명 아닌 무명의 뮤지션은 이전에 낸 다섯 장의 앨범을 통해 끌리는 목소리를 보유한 싱어, 재능 있는 작곡가로서 부족함 없는 모습을 뽐냈다. 6집 [1000 Forms Of Fear]는 이 활동의 묵묵하고 끈덕진 반복일 뿐이다. 메인 프로듀서 Greg Kurstin과의 협력 작업을 통해서 전작과 마찬가지로 일렉트로팝('Big Girls City', 'Free The Animal'), 로큰롤('Hostage') 등 경쾌한 스타일을 많이 펼치고 있으나 장르를 규정할 수 없는 특이한 곡들도 같이 마련해 인디 뮤지션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있다. 곡들이 지닌 모호한 분위기를 강렬하게 치장하는 것은 음성과 가창. 특별한 싱어송라이터 Sia를 다시 마주할 수 있다.



The War On Drugs [Lost In The Dream]
첫 트랙부터 과하다. 이들이 긴 길이의 곡을 몇몇 써 오긴 했으나 앨범의 도입부를 장식하는 노래로 9분에 달하는 러닝타임은 확실히 심하다. 더구나 프로그레시브 록처럼 흥미로운 변주로 긴장감을 주는 것도 아니고 동일하게 코드를 반복하다가 공허한 노이즈로 몇 분을 늘이니 위험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것만이 아니라 6분, 7분을 넘는 비슷한 형식의 곡이 더 있다. 하지만 [Lost In The Dream]은 거의 모든 노래에서 느긋하고 편안한 멜로디와 연주를 펼침으로써 그 장황한 길이마저 안락함을 조성하는 계획된 장치로 받아들이도록 한다. 마치 록으로 해석한 라운지 음악을 듣는 듯하다. 몽롱한 그루브의 끈질긴 고집으로 이룬 특장이다. Rod Stewart의 'Young Turks'에서 영향을 받았음을 부정할 수 없는 'Burning'을 비롯해 수록곡들이 전반적으로 미국적인 록을 지향해 어느 정도 친근함도 준다.



RAC [Strangers]
리믹스 아티스트에서 싱어송라이터로 직무 이동을 분명하게 선언한 Andre Allen Anjos의 원 맨 밴드 RAC의 데뷔 앨범 [Strangers]는 즐거움의 연속이다. 상큼한 멜로디와 통통 튀는 비트가 전반에 골고루 자리하고, Tegan And Sara, Tokyo Police Club, MNDR 등 유명한 인디 뮤지션들이 곳곳에 대기해 반가움을 더한다. 앨범 커버에 쓰인 색깔처럼 내용물들이 화사해서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다. 더구나 리믹스를 전문으로 했던 뮤지션이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곡을 잘 썼다. 젊은 세대의 취향을 만족할 팝, 록 음반으로 올해에는 [Strangers]만 한 것이 없다. 폼 나는 캐주얼웨어를 보는 듯하다.

원문은 멜론-뮤직스토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www.melon.com/musicstory/inform.htm?mstorySeq=2051

모바일은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하셔야 볼 수 있습니다.

덧글

  • 2014/12/19 18:03 # 삭제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한동윤 2014/12/20 15:40 #

    감사합니다. 제가 뭔가에 씌였나 봐요; 이래서 복붙을 해야 하나 봅니다. :)
  • 2014/12/19 19:09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4/12/20 15:40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토린 2014/12/23 20:47 # 삭제

    최신곡에 대한 정보는 네이버 뮤직란의 '이주의 발견'에서 얻곤 하는데,
    추천하신 목록중에서 즐겨듣는 앨범이 50%나 있네요^^!

    그 중에서 특히 RAC와 Paolo Nutini 좋아합니다.

    나머지 음반들은 한 두 곡만 듣고선 스쳐지나간 정도인데, 이참에 다시 한번 들어봐야 겠습니다.

    추천 감사합니다.
  • 한동윤 2014/12/24 12:02 #

    네, 감사합니다. 반가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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