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오 소울 3대 뻥쟁이 원고의 나열

드디어 나왔다. 네오 소울 가수 D'Angelo의 새 앨범 [Black Messiah]가 14년의 긴 정적을 깨고 마침내 공개됐다. 수년 동안 "막바지 작업 중이다", "곧 선보일 예정이다" 등의 비슷한 말만 되풀이해 과연 실제로 만들긴 하는 것인지 의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주문한 음식이 오지 않아 답답한 마음에 전화를 걸면 꼭 "방금 출발했다"고 말하는 중국집 주인의 고정 코멘트와 다름없었다. 그래도 결국 나왔으니 기쁘고 놀랍다.

이로써 "네오 소울 3대 뻥쟁이"의 강고했던 평행선 하나가 꺼지게 됐다. D'Angelo와 더불어 Lauryn Hill, Maxwell이 그 라인업으로, 나머지 둘 역시 매체와 인터뷰를 할 때마다 신보를 준비 중이라고 귀띔했으나 늘 감감무소식이었다. 아무리 무소식이 희소식이라지만 이들은 정말 순수하게 무소식이었다. 이번 "한동윤의 다중음격"에서는 D'Angelo의 신보 발매 기념, Lauryn Hill과 Maxwell도 어서 새 음반을 제작해 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네오 소울을 대표하는 세 뮤지션의 궤적을 짧게나마 훑어보도록 한다.

대범한 휴지기의 대명사 D'Angelo

1974년 미국 버지니아주에서 태어난 D'Angelo는 1991년 자신의 본명을 가져다 쓴 밴드 Michael Archer And Precise를 결성하며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아마추어 음악 경연 대회 등을 통해 주목받은 그는 R&B 프로듀서 겸 음반 제작자 Kedar Massenburg에게 발탁돼 주류에 진출하게 된다. 흑인사회를 배경으로 한 1994년 영화 "제이슨가의 초상(Jason's Lyric)"의 주제곡 'U Will Know'를 작곡함으로써 음악계에 확실한 존재감을 나타냈다. 같은 해 The Boys Choir Of Harlem의 'Overjoyed'를 작곡, 프로듀스하며 커리어를 쌓아 나갔다.

D'Angelo는 1995년에 발표한 데뷔 앨범 [Brown Sugar]로 순식간에 스타의 대열에 들었다. 고풍스러운 소울과 감미로운 콰이어트 스톰이 결합된 안락한 반주, 격하지 않은 보컬은 흑인음악의 새로운 상을 제시했고, 일련의 신선한 매력을 통해 그는 매체와 음악팬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2000년에 출시한 2집 [Voodoo]도 "그래미 어워드"에서 "최우수 남성 R&B 보컬 퍼포먼스" 부문을 수상한 'Untitled (How Does It Feel)'을 필두로 큰 사랑을 얻었다. 이후 게스트와 공연 활동은 어느 정도 지속적으로 펼쳤지만 정작 본인의 앨범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다.

기나긴 휴식은 2014년을 얼마 남기지 않고 드디어 막을 내렸다. 2011년 Questlove는 웹진 "피치포크"와의 인터뷰에서 함께 작업 중인 D'Angelo의 새 앨범이 97퍼센트 완료됐다고 했거늘. 나머지 3퍼센트를 채우는 데 3년이 걸렸다. 그래도 97퍼센트까지 도달하는 데 97년이 걸리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다.



14년의 긴 공백을 깬 신작 [Black Messiah]
약간은 투박한 듯하면서도 온화한 사운드는 변함이 없다. 다만 고르지 않은 화음을 나타내는 보컬과 약간은 산만하게 흐르는 코러스가 Prince나 Parliament, Funkadelic을 연상시키며 예전 작품들과의 차이를 나타낸다. 또한 'Sugah Daddy'에서는 재즈 펑크(Funk)를, '1000 Deaths'에서는 사이키델릭 록을, 'Really Love'에서는 스페인 음악을 결합한 스타일을 선보여 한층 다채로워진 모습도 드러낸다. 앨범은 전반적으로 노래의 멜로디보다는 악기와 보컬의 고른 하모니를 중점에 둔 탓에 심심하게 느껴지는 면도 없잖아 있다. 하지만 밴드와 가수의 평평한 협연, 공간감을 부각한 믹싱 덕분에 1960, 70년대의 작품을 다시 마주하는 기분도 든다. 사실상 네오 소울이 쇠락한 시대에 그것의 근사한 리바이벌이라 할 만하다.

D'Angelo의 기록 따위는 우스운 Lauryn Hill

1975년 미국 뉴저지주에서 태어난 Lauryn Hill은 음악을 좋아한 부모님 덕분에 어려서부터 노래 부르는 것을 일상의 하나로 간직해 왔다. 1988년 텔레비전 쇼 "It's Showtime At The Apollo"의 경연 대회에 출전해 실력을 뽐냈고, 청중의 열화와 같은 반응을 이끌어 내면서 자신감을 획득했다. 고등학교 재학 시절, 친구 Pras와 그의 소개로 만난 Wyclef Jean과 힙합 그룹 Tranzlator Crew를 결성해 래퍼로서도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이후 The Fugees로 개명한 팀은 1994년 데뷔 앨범 [Blunted On Reality]를 냈지만 별다른 관심을 얻지는 못했다.

그래도 셋은 포기하지 않았다. 다시 1년 동안의 준비를 거쳐 발표한 2집 [The Score]는 실로 노력의 결실이자 실력에 대한 인정이었다. 'Fu-Gee-La', 'Killing Me Softly', 'No Woman, No Cry' 등의 히트곡을 배출한 앨범은 "그래미 어워드"에서 "최우수 랩 앨범" 부문을 수상했다. 큰 성공을 발판으로 멤버들은 솔로 활동에 착수했다. Lauryn Hill은 1998년에 낸 솔로 1집 [The Miseducation Of Lauryn Hill]로 인기를 이어 감으로써 최고의 싱어 겸 래퍼, 최고의 네오 소울 여가수 칭호를 접수했다.

그래도 둘보다는 음반 활동을 많이 한 Maxwell

1973년 미국 뉴욕주에서 태어나 교회 성가대에서 노래를 부른 Maxwell은 열일곱 살에 작곡을 시작해 1990년대 초반 클럽과 거리에서 공연을 하며 가수의 꿈을 키웠다. 공연을 본 사람들의 소문이 관계자들에게까지 전해진 덕에 비교적 쉽게 음반 계약을 따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무기는 열정적인 퍼포먼스만은 아니었다. 아마추어로 공연하면서 수백 편의 노래를 작곡하고 녹음해 놓은 상태였다. 탄탄한 준비가 있었기에 음반사에서도 그를 믿고 데려온 것이다.

1996년에 발표한 데뷔 앨범 [Maxwell's Urban Hang Suite]부터 탄탄대로가 열렸다. 스무드 재즈와 1980년대 R&B를 포근하게 합친 음악은 달콤한 목소리를 타고 아련한 멋을 발산했다. 평단은 Marvin Gaye, Prince, Luther Vandross와 비교하며 Maxwell을 극찬했다. 2집 [Embrya]는 전작보다 조금 까다로워진 스타일을 내보이긴 했지만 괜찮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2001년에 발표한 세 번째 앨범 [Now]는 1집의 포근함을 다시금 선사하며 매체로부터 긍정적인 평을 이끌어 냈다.

전문은 멜론-뮤직스토리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http://www.melon.com/musicstory/inform.htm?mstorySeq=2078&musicToday=Y&startIndex=11 (PC 전용)

덧글

  • 지구밖 2015/01/07 00:58 #

    ㅋㅋ디엔젤로 신보는 너무 좋아서 자다가 꿈에서도 나왔네요.
  • 한동윤 2015/01/07 11:09 #

    그 정도로 애정이 깊으실 줄이야~!!
  • 역사관심 2015/01/07 05:42 #

    아니 이분들 음반을 마지막으로 들었던 시점에서 한장도 후속앨범이 없다는게 말이...-_-;; 휴지기가 아니라 반 은퇴같군요;;
  • 한동윤 2015/01/07 11:10 #

    로린 힐은 한 장으로 버티니 저작권료의 능력을 실감할 수 있네요.
  • 돈쿄 2015/01/08 00:08 #

    아... 꼬소해... Maxwell .. 뻥쟁이 됬네요~~ 좀.. 기약이 없긴 하죠...
  • 한동윤 2015/01/08 11:43 #

    오랜만이에요~ :) 신용등급 최저예요... 친구라면 뭐 빌려 주고 싶지 않을 사람들
  • 김악당 2015/01/10 08:21 #

    레미쉔드가 섭섭해 할것 같은데요 ㅎㅎ
  • 한동윤 2015/01/10 11:58 #

    그러게요 레미 섄드도 앨범 하나 내고 소식이 없죠. 그런데 거의 잠적에 가까워서... 앨범 내겠다고 떠벌리지 않았으니 뻥쟁이 리스트에는 안 넣었습니다. ㅎㅎ
    그런데 재작년에 십수 년 만에 싱글을 냈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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