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운 아이즈 '벌써 일 년' / 한국형 R&B의 시작 원고의 나열


2001년 여름, 가요계는 '얼굴 없는 가수'의 맹위로 또 한 번 뜨거웠다. 남성 듀오 브라운 아이즈는 방송 활동 한 번 없이 데뷔 한 달 만에 지상파 음악 프로그램 1위 후보에 올랐다. 이들의 데뷔곡 '벌써 일 년'은 출시된 지 얼마 안 돼 빠르게 소문을 타고 거리 곳곳의 스피커를 장악했으며 라디오 전파까지 휩쓸었다. 조성모, 김범수에 이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성공을 거둔 경우이기에 대중과 매체의 관심은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음악 프로그램 출연은 물론 짧은 인터뷰조차 하지 않았음에도 '벌써 일 년'이 히트할 수 있었던 것은 음악이 지닌 매력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곡을 이끄는 청명한 통기타 연주, 지난 사랑을 잊지 못하는 애잔한 가사, 화자의 심경을 대변하는 촉촉하면서도 절절함이 묻어나는 가창은 국내 음악팬들이 익숙하게 느낄 발라드의 전형적인 구성 요건이다. 하지만 노래는 정적인 반주가 아니라 바운스가 있는 중간 템포의 리듬을 취함으로써 발라드의 보편적인 틀에서 벗어난다. 어느 정도 친숙성을 갖췄지만 전에 흔히 접할 수 없던 스타일의 편곡으로 신선함도 같이 어필했다.

명확하게 대비되는 두 멤버의 공정은 노래가 더욱 각별한 의미를 갖게 한다. 작곡과 편곡을 담당한 윤건은 어쿠스틱 기타, 피아노, 신스 스트링을 앞세워 곡이 보통 가요의 정서를 내도록 했다. 반면에 나얼은 리듬 앤 블루스에 기초를 둔 보컬을 선보인다. 애드리브에 과도하게 집착하지는 않지만 후렴 끝 부분의 섬세한 바이브레이션과 전반에 나타나는 리듬감으로 R&B를 지향함을 확실하게 밝힌다. 이들의 조합은 미국식 컨템퍼러리 R&B와는 꽤 다른 독특한 느낌을 창출해 냈다. 이러한 연유로 '벌써 일 년'을 두고 한국형 R&B의 탄생이라는 말이 오갔다.

세련미와 신선미를 갖춘 것 외에 뮤직비디오도 노래의 인기에 풀무질을 했다. 김현주, 이범수, 홍콩 배우 장첸이 출연한 뮤직비디오는 당시 유행하던 드라마 형식으로 대중의 시선을 끌었다. 그러나 이 같은 방식의 뮤직비디오가 대체로 대규모 물량 공세와 자극적인 연출에 의존했던 것과 달리 브라운 아이즈의 작품은 차분한 편집으로 주인공들의 관계와 감정을 나타내는 데에 주력했다. 영상은 노래가 지닌 부드러운 분위기, 애틋한 정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매개로서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했다. 노래와 뮤직비디오가 서로 보완하며 성공적인 흥행을 도모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노래의 히트 덕분에 데뷔 앨범은 그해 60만 장 이상 판매됐으며 브라운 아이즈는 [2001 엠넷 뮤직비디오 페스티벌]에서 '신인 그룹' 부문을 수상하는 등 큰 인기를 누렸다. 각각 4인조 그룹 '앤섬'과 '팀'으로 활동했지만 소수 마니아의 이목을 끄는 데에 그쳤던 나얼과 윤건은 일약 스타 가수로 거듭났다. 혹자는 이를 두고 '신비주의 마케팅'이 또 효력을 발휘했다고 했다. 하지만 기획과 홍보가 작품의 품질을 대신하지는 못한다. 윤건이 지은 흡인력 강한 선율, 나얼의 호소성 짙은 싱잉, 이것들이 색다른 멋을 낸 음악이 일차적으로 많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윤건과 나얼이 이룬 시너지는 그룹의 성공을 넘어 가요계 전반으로 영향을 넓혔다. 이후 리치의 '사랑해, 이 말밖엔...', 플라이 투 더 스카이의 'Sea Of Love', 오션의 'More Than Words', SG 워너비의 'Timeless' 등 한국 대중음악의 정감을 띤 중간 템포의 반주, 리듬 앤 블루스풍 보컬을 혼합한 노래들이 대거 등장하며 트렌드를 형성했다. 일련의 노래들은 흑인음악 애호가와 일반 음악팬의 고른 호응을 얻으며 스타일을 확산했다. '벌써 일 년'에 '한국형 R&B의 시작'이라는 수식이 붙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한동윤)
2014/03 엠넷 레전드 송 100

덧글

  • 작두도령 2015/01/16 11:23 #

    '초고속 인터넷' 보급과 함께 인터넷에서도 많은 화제가 되었던 곡으로 기억됩니다ㅎㅎ
  • 한동윤 2015/01/19 10:36 #

    초고속 인터넷 시대는 열렸지만 아직 컴퓨터는 비쌌던 시절이기도 했죠? ㅎㅎ
  • 우물쭈물하지않으리 2015/01/18 15:19 #

    저의 짧지만 긴 인생의 베스트 넘버원이죠 아직도 좋아요 언제나 아이튠즈 많이 재생된 노래 목록 ♥
  • 한동윤 2015/01/19 10:37 #

    많이 재생된 목록 1위라면 정말 인생의 노래네요. 들을 때마다 두근두근하시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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