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프리티 랩스타] 어글리 힙합 쇼 원고의 나열

난장판이었다. 지난 3월 5일에 방송된 쇼 프로그램 "언프리티 랩스타" 5회는 출연자들 간에 욕설이 난무하고 인신공격이 수차례 이어지는 아수라장을 연출했다. 2013년의 디스전으로 앙금이 쌓인 타이미(Tymee)와 졸리 브이(Jolly V)의 마찰에서 기인한 문제였다. 특별 프로듀서로 참여한 엠시 메타(MC Meta)는 타이미와 졸리 브이의 배틀을 제안했으나 타이미는 졸리 브이와 같이 엮이는 게 싫다면서 한사코 거절했다. 분을 억누르지 못한 타이미는 스튜디오 밖에서 졸리 브이를 향해 "미친년", "죽여 버리겠다" 등의 거친 말을 퍼부었다. 그녀의 격양된 행동 때문에 예정된 촬영은 원활히 이뤄지지 못하고 급하게 마무리됐다. 타이미는 이날 본의 아니게 꼬장의 여왕이 됐다.

과격한 언사와 상대방을 향한 조롱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다음에 이어진 녹화에서 타이미는 졸리 브이에게 "네 소원 들어 줄게 잘 들어라"면서 배틀 랩을 시작했다. 이 부분에서 "벌써 한 500대 정도는 맞은 얼굴", "여자 축에도 못 끼는 네 몸뚱이 코끼리" 등의 말로 외모를 비하했다. 더불어 여성을 낮잡아 이르는 말과 남성의 성기를 일컫는 단어를 여러 번 뱉었다. 프로그램 제목을 "언프리티 욕스타"라고 하는 것이 더 어울릴 내용이었다.

내내 여유로운 표정을 짓던 졸리 브이도 타이미의 래핑이 끝나자 마이크를 잡고 바로 응수했다. 그녀는 "메가폰 잡고 가슴 흔들며 말하겠지 Shake It", "그리고 물어봐야지 오빠 나 해도 돼?" 등의 말로 타이미가 이비아라는 예명으로 활동했던 예전 모습을 거론하며 공격했다. 또한 중지를 올리는 행동을 취하면서 영어로 욕을 하기도 했다. 둘의 공방 때문에 방송은 욕과 비하의 한가위를 이뤘다.

실력 있는 여성 래퍼들을 선전하고 활동 인원이 적은 여성 힙합 신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려는 프로그램의 의도는 상쾌하게 증발했다. 대신 욕 잘하고, 분탕질에 능하며, 인격 모독에 도가 튼 여인상을 신 나게 내보였다. 미디어는 누군가에게 본보기가 되고 선생이 된다. 이날 방송은 래퍼를 꿈꾸는 여자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내실을 갖추지 못했다.

욕설이 나오는 부분에서 삐 소리를 입히고 입이나 문제가 될 제스처를 모자이크로 처리했지만 그 작업은 철저하지 않았다. 편집을 하면서 아예 삭제하거나 깔끔하게 음소거를 할 수 있었을 텐데도 오히려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살렸다. 시청자의 호기심을 유발하고 피드백을 확장하기 위한 노이즈 마케팅, 자극적 연출이다. 음악을 골자로 함에도 사건과 분쟁에 더 몰두하는 리얼리티 쇼의 관행을 여실히 드러낸 셈이다.

사실 프로그램의 룰대로라면 굳이 둘이 대결을 벌일 이유가 없었다. 이날 방송 내용은 팀을 두 개로 나눠 공연을 펼친 뒤 각 팀에서 퍼포먼스가 우수했던 참가자를 두 명씩 뽑아 거기에서 다시 최종 1인을 선발하는 것이었다. 타이미와 졸리 브이는 서로 다른 팀에 속해 있었기에 둘이 맞닥뜨릴 상황은 애초에 없었다. 하지만 타이미와 졸리 브이가 이날 미션에서 탈락하자 엠시 메타는 지난 라운드에서 둘이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 줬다고 칭찬하며 갑작스러운 배틀을 제안한 것이다.

이 행동도 영 달갑지 않았다. 엠시 메타는 순전한 한국어 래핑, 예술성과 작품성을 담보하는 꾸준한 노력을 통해 높은 덕망을 쌓은 뮤지션이다. (그의 단독 결정이 아니라 제작진이 사전에 계획한 일이었다고 해도) 존경받던 대선배가 잔인한 본성을 드러내 후배들한테 싸움을 부추기는 꼴처럼 느껴졌다. 또한 이 둘의 대립에 초점을 맞춘 나머지 다른 탈락자들인 제이스와 육지담에게는 그 어떤 기회조차 얘기하지 않은 것은 형평성의 상실을 꼬집게 만든다.

사회자인 산이(San E)의 태도 역시 바람직하지 못했다. 타이미가 졸리 브이를 상대할 생각이 없다고 하자 그는 왜 피하려고만 하느냐며 타이미의 결정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게다가 이 말을 하는 중에 "해결"이라는 단어를 씀으로써 싸움을 정당화하고 종용했다. 사회자가 기본으로 지켜야 할 중립성을 잃은 것도 실망스러웠으며 당사자는 원하지 않는 대결을 강요하는 것 같아 다소 불편했다.

배틀의 기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힙합이 발아하던 시기 디제이의 옆에서 추임새를 넣으며 흥을 돋우던 엠시(MC)의 비중이 점차 높아지자 이들의 인기를 예감한 클럽 관계자와 파티 프로모터들이 엠시들 간의 대전을 기획한 것이 배틀의 시작이다. 장삿속이 밝은 업자들이 주도한 싸움판이었다. 여기에 참가한 래퍼들은 자신을 강한 존재로 나타내기 위해 상대방을 깔아뭉개거나 모욕하는 말을 빈번하게 하기 시작했다. 가볍게 유희를 찾던 초기의 광경은 배틀에서는 좀처럼 찾을 수 없게 됐다.

진행 방식과 규칙은 다르지만 "언프리티 랩스타"도 여느 오디션 프로그램과 다름없이 경쟁을 주된 포맷으로 한다. 경쟁에서의 승리를 갈망하는 출연자들은 본인의 능력이 뛰어남과 특별한 존재임을 어필하기 위해 다른 참가자를 깎아내리고 비난한다. 지난 3월 5일 방송이 특히 더 그랬다. 하지만 그런 모습이 성공을 위해서 프로그램의 소모재를 자처하는 것 같아 안타까움을 쉬이 감출 수 없다. 방송도, 출연자들도 그날 심히 흉했다.

원문은 멜론-뮤직스토리-한동윤의 다중음격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www.melon.com/musicstory/inform.htm?mstorySeq=2259 (PC 전용)

덧글

  • anchor 2015/03/16 18:40 #

    안녕하세요, 이글루스입니다.

    회원님께서 소중하게 작성해주신 이 게시글이 3월 16일 줌(zum.com) 메인의 [이글루스] 영역에 게재 되었습니다.

    줌 메인 게재를 축하드리며, 3월 16일 줌에 게재된 회원님의 게시글을 확인해 보세요.

    그럼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한동윤 2015/03/18 10:48 #

    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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