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이(Rhye)는 2013년 첫 정규 음반 [Woman]으로 자신들이 소피스티 팝의 독자적 존재임을 분명히 주장했다. 질박하지만 잘 정제된 사운드, 귓가를 간질이는 것 같은 은근한 멜로디를 앞세워 장르 특유의 세련된 대중성을 훌륭히 나타내 보였다. 또한 화자인지, 객체인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타이틀처럼 여자를 주인공으로 해서 사랑을 표현하는 일관된 콘셉트는 서정미에 힘을 실어 이들의 음악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마이클 밀로시의 중성적이며 농염한 음성은 노랫말을 아름답게 느껴지도록 한다. 코러스를 겹치거나 얇게 층을 내는 공정을 거친 보컬은 아련함을 증대하기도 한다. 고급스러움을 높이는 클래식 방식의 접근은 왕년의 소피스티 팝 그룹들과 자신들을 차별화한다.
앨범의 큰 흐름 가운데 하나는 사랑에의 갈구를 요란스럽지 않게 표하는 것이다. 자기는 당신의 허벅지 흔들림에 홀리고 한숨 소리에도 홀리는 바보라는 말로 시작하는 'Open'은 차분한 보컬과 셈여림을 반복하는 현악기를 통해 사랑을 이어 가고 싶은 간절함을 다소곳하게 드러낸다. 낭비할 시간이 없다면서 어서 사랑을 나누자고 재촉하는 내용의 'Verse'는 메트로놈 소리 같은 느린 리듬과 끈진 현악기 연주가 가사를 역설적으로 전달한다. 여름날의 애틋한 기억을 포근한 색소폰 연주에 이입한 'One Of Those Summer Days', 오직 'woman'이라는 한 단어를 되풀이하지만 침착하면서도 끈기 있는 가창으로 온전한 유기성을 형성하는 'Woman'도 절실한 심경을 이야기한다. 이들 노래에서는 라이가 다운템포 성향도 추구함을 확인할 수 있다.
라이는 정적인 분위기만 고집하지는 않는다. 떠나지 말고 곁에 머물러 달라고 청하는 'The Fall'은 소프트 록과 애시드 재즈를 오가는 듯한 절제된 그루브를 표출하며, 이별을 직감하지만 사실로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을 넌지시 말하는 'Last Dance'는 신스팝과 펑크(funk)의 성분을 조금씩 조합해 탄력을 내보인다. 일렉트릭 기타와 베이스가 오밀조밀하게 어울린 'Shed Some Blood', 도입부의 하프 소리로 동화 같은 분위기를 풍긴 뒤 신시사이저 루프와 관현악기의 짧게 끊는 연주로 통통 튀는 느낌을 내는 '3 Days'도 경쾌하다. 고갯장단을 치게 하는 노래들이지만 난잡스럽지 않다. 라이는 댄스곡에서도 품위를 유지한다.
라이의 데뷔 앨범은 고른 찬사를 누렸다. 십여 개의 매체가 10점 만점 기준 8점 이상을 매겼고 연말 결산 리스트에서도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이는 [Woman]의 완성도와 예술성이 모두 뛰어나다는 것을 적확하게 이르는 지표다.
2015/02
음반 해설지 일부
(2013년에 출시된 음반이지만 피지컬은 올해 라이선스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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