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신하지 않은 리메이크 원고의 나열

한국에서 리메이크는 불면불휴의 아이템이다. 예전부터 내리 있어 왔지만 2005년과 2006년 난립, 범람 수준의 융성기를 찍은 후 다시 부르기의 줄기는 한층 광대하게 쉼 없이 이어지는 추세다. 더욱이 [나는 가수다], [불후의 명곡] 같은 노래 경연 프로그램이 많아지면서 브라운관을 통해서도 리메이크가 빈번히 나타나고 있다. 이쯤 되면 상시적 경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지난해 말 [무한도전]의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가 큰 인기를 얻으면서 1990년대를 더듬어 가는 노래들이 부쩍 늘어났다. 플라스틱의 '유 앤드 아이'(원곡 가수: URI), 빅스의 '이별공식'(R.ef), 서린동 아이들의 '시작되는 연인들을 위해'(이원진), 트랜디의 '정'(영턱스 클럽) 등이 이 양상을 대표한다. 임형주의 [사랑], 거미의 [폴 인 메모리], LPG 출신 한영의 [기억 속에서…] 앨범도 같은 시기를 회상하는 데 동참한다. 90년대를 향한 향수는 여전히 활발하다.


도처에 과거의 히트곡들이 깔려 있지만 그다지 반갑지는 않다. 다수 작품이 원곡보다 나은 구석이 없기 때문이다. 빅스가 부른 '이별공식'은 랩 파트의 비중이 커지고 브리지가 새롭게 생겼다는 것 말고는 예술적으로 향상된 점을 찾아보기 어렵다. 트랜디의 '정'은 악기 프로그래밍이 조금 불어난 것이 전부고, 서린동 아이들의 '시작되는 연인들을 위해'는 보컬에 소량의 가성 처리가 추가됐을 뿐 발라드 편곡의 전형을 벗어나지 못한다. 원본이 차라리 낫다.

1980년대 중반에서 90년대 중반 사이를 주되게 파고드는 한영의 앨범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하다. 박영미의 '나는 외로움 그대는 그리움', 이재영의 '유혹', 피노키오의 '사랑과 우정 사이' 등 무려 서른두 편의 리메이크를 담고 있지만 어느 것 하나 참신하거나 멋스럽지 못하다. 반주는 오리지널과 거의 다를 바 없으며 녹음 상태도 조악하다. 보통 사람들이 노래방에서 부르는 것과 별반 차이 나지 않는다. 행사 레퍼토리를 확충하기 위한 얕은 술책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음반을 제작하는 데 들인 시간과 노동이 아깝고 이를 듣는 시간은 더 아깝다.

리메이크가 기본적으로 지녀야 할 덕목은 색다른 해석이다. 작품성은 당연한 전제다. 튼실하면서도 창의적인 연출이 수반될 때 청취자들이 새로운 감흥을 느낄 수 있다. 오래 애청되는 리메이크 노래들 대부분은 이 조건을 충족한다. 빅스의 '이별공식'이 지상파 3사 가요 프로그램에서 1위에 올랐지만 이는 팬클럽의 집단적 지지 덕으로 평가해야 한다. 시간이 지나 매체에서 언급되고 방송을 타는 빈도를 보면 노래 자체의 매력 때문이 결코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90년대를 되새기는 노래들은 앞으로도 계속 나올 것이 분명하다. 70년대든, 80년대든 리메이크는 영원히 거듭될 수밖에 없다. 역사가 예정된 상황에서 저마다의 재해석 작업이 빛나고 길이 회자되기 위해서는 예술적 가치의 탑재가 필수다. 대중의 추억에 구걸하기 급급한 노래는 얼마 힘을 내지 못한다. 가요계의 리메이크 동향을 유의미하게 만드는 것은 양이 아닌 노래의 품질이다.

2015.05.05ㅣ주간경향 112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