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한 언니오빠들 원고의 나열

덥다. 가만히 있어도 덥고 움직이면 당연히 덥다. 햇빛만 신 나게 내리쬐는 나날이 지독하게 계속되다 보니 공기마저 후끈하다. 그래서인지 크고 작은 피해를 입혀 평소 같았으면 꺼렸을 태풍 예보마저 그리운 요즘이다. 극심한 가뭄 때문에 생산 활동이나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위해서라도 비가 대지를 흥건히 적셔 줬으면 좋겠다.

이렇게 더울 때에는 짧은 머리가 부럽다. 땀과 협심해 치근덕거리듯 살에 붙을 일도 없고 아무 데서나 간편하게 머리를 감을 수 있으니 여름날 만큼은 여성이든 남성이든 많은 이가 짧은 머리를 선망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너그럽지 못한 사회의 인식, 주변인의 눈치, 예쁘지 않은 두상 등등의 이유로 머리를 짧게 자르지 못하는 사람이 태반이다. 나는 못하지만 짧은 머리를 고수하는 뮤지션들을 보면서 대리 시원함을 느껴 보자.


Moby | 방탕한 생활이 만든 시원함
시원하게 열린 이마처럼 음악도 시원한 일렉트로니카 뮤지션 모비(Moby). 데뷔 초부터 평단의 호평을 받았지만 상업적인 성공과는 조금 거리를 뒀던 그는 새천년을 전후해 불어닥친 테크노, 브레이크비트 열풍을 타고 세계적인 전자음악 아티스트로 거듭났다. 2002년에 발표했던 'Extreme Ways'가 인기 영화 "본 시리즈"에 삽입되면서 젊은 대중도 익히 아는 인물이 됐다. 2005년 앨범 [Hotel]에서는 얼터너티브 록을 모색하는 등 진취적인 변신으로도 음악팬들의 지지를 얻고 있다.

짧은 머리 뮤지션을 열거하면서 처음부터 자의적인 결심으로 만든 헤어스타일이 아닌 대머리를 소개하게 돼서 유감이다. 1993년 앨범 [Ambient] 때만 해도 그럭저럭 평균의 숱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90년대 중반 이후 빠르게 모낭이 폐업했다. Moby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대머리가 된 것에 대해 유전보다는 술과 마약 복용을 탓해야 할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래, 마약은 하지 말자.


2Pac | 머리처럼 환한 존재감
짧은 머리를 고수하는 뮤지션은 유독 래퍼군에 많다. 그중 많은 이가 가장 먼저 떠올릴 인물이 투팍(2Pac)일 것이다. 민머리에 반다나를 착용한 모습이 일종의 캐릭터처럼 굳혔기 때문이다. 데뷔 초기에는 보통 헤어스타일을 했지만 그는 사람들 앞에서 언제나 빛나 보이고 싶다는 이유로 삭발을 결심했다. 그의 뜻대로 2Pac은 어디에서나 빛났으며 생을 마감한 뒤에도 빛을 잃지 않고 있다. 이는 격렬함과 서정성을 아우르는 노랫말과 호쾌한 래핑 덕분이니 머리를 밀지 않았더라도 그의 존재는 분명히 두드러졌을 것이다.


유채영 | 원조 쿨한 언니
1994년 유채영이 그룹 쿨로 데뷔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아니, 여자가 삭발을?!" 이때만 해도 여자가 머리를 짧게 자르는 일은 파격이었다. 흔치 않은 그녀의 헤어스타일 덕분에 그룹은 이름처럼 쿨한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 방송사들은 시청자들에게 혐오감을 주고 청소년들에게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어 삭발, 장발 가수들의 출연을 규제했다. 방송국의 제재로 인해 유채영은 모자나 두건을 쓰고 텔레비전에 출연했다.

쿨이 대중의 눈길을 끈 데에는 유채영의 존재가 컸지만 정작 그녀는 그룹에서 이렇다 할 역할이 없었다. 노래를 더 많이 부르고 싶던 그녀는 1995년 쿨을 나와 혼성 듀오 US로 활동했다. 이후 세 편의 솔로 앨범을 냈지만 이정현의 강력한 카리스마에 밀려, 혹은 타이밍이 안 좋아 히트하지 못했다. 가수로서는 비록 미약했지만 대중은 언제나 활기 넘치고 재미있던 유채영을 기억한다.


나얼 | 아쉽지만 이제는 기릅니다
독실한 크리스천이지만 나얼은 오랫동안 지켜 온 삭발 머리 때문에 불자라는 우스꽝스러운 오해를 받아 왔다. 정말 그게 불편해서인지는 알 수 없으나 몇 년 전 머리를 어느 정도 기른 사진이 공개되면서 삭발 시대의 마감을 예고했다. 머리 모양이 뭐가 중요하겠는가, 팬들은 그의 목소리와 노래를 좋아하는 걸. 보컬이 시원하니 상관없다.

텔레비전 출연은 거의 하지 않았고 그동안 앨범도 제법 긴 간격을 두고 내서 팬들의 원망 아닌 원망을 들었지만 2012년 첫 번째 솔로 앨범 이후 브라운 아이드 소울로서 부지런히 음반을 내서 과거의 악행(?)을 만회하고 있다. 또한 빈티지 사운드에 대한 탐구와 시도로 부대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중이다.


Sinead O'Connor | 오해받기 싫어서 밀어요
빌보드 차트 기준으로 따지면 1990년에 발표한 'Nothing Compares 2 U' 외에는 히트곡이 없는 원 히트 원더지만 시네드 오코너(Sinead O'Connor)는 데뷔 때부터 변함없는 삭발 머리로 수많은 음악팬의 기억에 자리한다. 그녀가 그런 헤어스타일을 택한 것은 여자는 머리가 길어야 한다는 고정관념, 전통적 견해에 맞서는 주장의 일환이었다.

옳다고 믿는 것에는 입장이 확고한 Sinead O'Connor는 2013년 마일리 사이러스(Miley Cyrus)에게 보낸 편지로 대중과 매체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Miley Cyrus가 자신의 노래 'Wrecking Ball' 뮤직비디오를 제작하면서 'Nothing Compares 2 U' 뮤직비디오를 참고했다고 밝혔고, 이를 접한 Sinead O'Connor는 성을 상품화하지 말라는 내용으로 자신의 웹사이트에 편지를 게재했다. 하지만 어덜트 가수가 되기를 작정한 Miley Cyrus는 선배님의 충언을 꼰대의 잔소리쯤으로 여기고 넘겼다.

Sinead O'Connor의 태도가 강직하긴 해도 그녀 역시 나이가 들면서 머리를 기를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머리를 어느 정도 길렀을 때 어떤 사람이 "혹시 엔야(Enya) 아니세요?"라고 물어 오자 충격을 먹고 바로 머리를 밀었다고. (왜 Enya가 어때서?)


Pitbull | 대머리는 섹시하단다
한국 남자에게 대머리가 되는 것은 여간 난처한 일이 아니다. 아무래도 외모를 중시하는 풍조가 만연해 있기 때문일 터. 머리가 빠지면 일단 나이 들어 보이기 때문에 특히 취업이나 결혼을 앞둔 사람들은 쓰든, 뿌리든, 심든 어떻게 해서든 없어지는 면적을 보강하고자 한다.

하지만 외국에서는 대머리를 섹시하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매체에서 섹시한 남자 리스트를 선정하면 대머리가 대체로 한 명은 포함돼 있다. (무슨 대머리쿼터제도 아니고)

라틴계 래퍼 핏불(Pitbull)도 2013년 피플지가 선정한 "현존하는 가장 섹시한 남성" 리스트에 들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후보에 그쳤고 1위는 애덤 리바인(Adam Levine)에게 돌아갔다. 어쨌든 축하한다.


Seal | 섹시하지 않은 예외적 볼드헤드
대머리라고 다 섹시한 것은 아니다. 영국의 소울 가수 실(Seal)은 얼굴에 난 원판상홍반성낭창(경찰청창살쇠철창살만큼이나 발음하기 어렵다) 흉터가 먼저 눈에 들어와서 그런지 섹시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는 흉터를 가리는 법이 없다. 특히 2000년대 들어 낸 앨범은 커버에 얼굴을 클로즈업해서 찍었다. 이런 당당함으로 모델 하이디 클룸과 결혼할 수 있었는지도.

우리에게는 1995년 영화 "배트맨3: 포에버"에 삽입된 'Kiss From A Rose'로 유명한 Seal은 데뷔 초반에는 팝과 일렉트로니카를 혼합한 영국 특유의 R&B 스타일을 선보였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는 고전 소울 리메이크 음반을 출시하면서 복고 트렌드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구준엽 | 몸통이 후끈하면서 시원해요
구준엽은 머리보다 근육질의 몸, 구릿빛 피부 때문에 더 시원해 보인다. 그는 이 머리에서부터 상반신까지 집중된 유선형의 탄탄한 피지컬로 90년대 후반 클론이 대만, 홍콩 등에 진출했을 때 현지 여성들로부터 어마어마한 사랑을 받았다. (머리가 없으면 내세울 다른 아이템이 있어야 한다)

90년대 초반 현진영과 와와, 탁이준이로 활동할 때 구준엽은 핀컬 파마 헤어스타일이었다. 그러나 이탁의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탁이준이 활동을 접을 무렵 탈모가 찾아왔다. 머리 빠지는 것을 걱정하느니 떳떳하게 내놓고 다니자는 마음으로 이때부터 삭발을 고수했다. 구준엽은 머리를 밀고 난 이후로 하는 일이 잘 풀린다며 삭발한 것을 다행스럽게 여기곤 했다.

2003년에 낸 솔로 앨범은 상업적으로 실패했지만 2008년 DJ KOO로 개명한 뒤 디제이로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으니 삭발의 영험한 힘은 은근히 있나 보다. 불현듯 그당시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던 프로그레시브 매시업 '빠삐놈'이 생각난다.

멜론 뮤직스토리-다중음격 http://www.melon.com/musicstory/inform.htm?mstorySeq=2616&expose=true


덧글

  • 식신강림 2015/07/15 11:43 # 삭제

    기승전 빠삐놈인가요ㅋㅋ
  • 한동윤 2015/07/15 15:47 #

    여름에는 빠삐코가 인기 짱이었죠 ^^
  • 지나가다 2015/07/17 02:21 # 삭제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외국에서 민두를 일반적으로 섹시하다고 여긴다는건 과잉일빈화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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