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년의 스타 래퍼들 원고의 나열

얼마 전 네 번째 시즌을 시작한 "쇼 미 더 머니"는 이전 시즌에 이어 어김없이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프로그램이 방송될 때면 인지도를 높이거나 실력이 충만함을 검증하기 위해 출사표를 던진 아이돌들, 재능과 센스가 뛰어난 언더그라운드 래퍼들이 포털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를 꿰찬다. 이처럼 대중의 이목은 대체로 (잘생긴 아이돌과) 신인들에게 쏠리지만 중견이 모처럼 얼굴을 비쳐 카메라 앵글을 가져가기도 한다. 1998년 엑스틴으로 데뷔한 허인창과 1999년 '빙(永)'이라는 대표곡을 남긴 거리의 시인들 멤버 노현태가 그렇다. 이들을 보니 왕년에 잘나가던 래퍼들이 절로 떠오른다. 이들이 나왔으면 과연 몇 라운드까지 진출했을지도 궁금하다.


디기리 | 그래도 대단한 리듬의 마법사
병역 회피 사건 때문에 "괄약근의 마법사"라는 안쓰럽게 왜곡된 별명을 갖게 됐지만 "리듬의 마법사"라는 본래의 별칭이 조금도 아깝지 않을 만큼 디기리는 독보적인 플로를 뽐낸다. 진정 리듬을 갖고 노는 것처럼 뻔하지 않게 박자를 재치 있게 탄다. 또한 친근하고 스트레이트한 어법으로 써 내려간 가사는 일반적인 이야기를 듣는 듯한 느낌을 들게 한다. 이 때문에 그의 래핑은 특이하게 뚝뚝 끊기면서도 자연스러움을 획득한다. 프로듀싱까지 스스로 해내기에 본선에 진출한다면 본인에게 잘 어울리는 반주를 선별, 또는 제작해서 괜찮은 노래를 선보였을지도. 몇 달 전 프로 복서에 도전한다는 근황이 공개됐는데, 언젠가는 새 앨범도 내길 희망한다.


서정환 | 언타이틀의 명 MC
만능 싱어송라이터 유건형에 가려 미디어의 주목을 덜 받았으나 서정환은 탄력적인 플로와 분명한 가사 전달력으로 힙합 마니아들의 지지를 얻었다. 래핑이 반듯하면서도 음색에 어느 정도 개성이 있어서 지루하지 않았다. 당시에는 힙합, 랩에 대한 탐구가 활발하게 이뤄지지 않았던 때라 라임이 무척 단순하긴 하지만 힙합 트랙에서는 작사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전문 래퍼의 이미지를 성공적으로 각인했다. 유건형이 제작에 참여했던 이은민의 1집 외에 새천년 들어서도 브라운 아이즈의 'Love Is Over', 제이의 '모르면서' 등에 참여한 것은 그의 래핑에 매력이 있음을 일러 준다.


바비 킴 | 낭중지추의 독보적인 레게 래퍼
솔로 앨범과 각종 드라마 OST로 활발히 활동하고는 있지만 거의 싱잉에 집중해 힙합 팬들의 아쉬움이 큰 바비 킴. 현재는 어덜트 컨템퍼러리풍의 노래로 어른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그는 '고래의 꿈'으로 뜨기 전에도 독특한 플로로 이미 가요계 여기저기를 휩쓸었다. 터보의 'Twist King', To-Ya의 '봐', 젝스키스의 'Walking In The Rain', 비비의 '하늘땅 별땅' 등에 참여해 콧소리 섞인 레게 스타일 래핑을 선보인 것. 일련의 노래에서 바비 킴의 활약을 확인하면 그가 어린 나이에 닥터 레게의 멤버로 뽑힌 것이 충분히 수긍된다. 레게 스타일 래퍼가 흔치 않은지라 무명임을 가정하고 "쇼 미 더 머니"에 나갔더라도 시청자와 프로듀서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이끌어 냈을 듯하다.


박명호 | 한때 대가족을 이끌던 가장(家長) 님
1995년 허니 패밀리로 데뷔해 활동 20년이 넘는 박명호도 독특한 스타일을 보유한 래퍼 중 하나다. 다소 높은 톤에 악센트를 뚜렷하게 가해 명료한 래핑을 완성하는 것이 그의 특징. 그러나 이것이 한편으로는 깜찍하게 들려 젊은 청취자들에게는 감흥이 덜할 것 같다. 또한 지금은 한국어와 영어의 혼용이 현대적이며 멋있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으니 한국어만 하는 박명호의 래핑은 시시하게 느껴질 공산이 크다. 또 하나 라임이 거의 없는 것도 약점. 과거에는 "한국적"인 래핑이라며 호응을 얻던 래핑은 오늘날 대중에게는 흘러간 방식이 됐다. 2012년까지 허니 패밀리로 꾸준히 음반을 내고는 있지만 "랩 교주" 파워는 확실히 예전만 못하다.


각나그네 | 요즘은 이름 안 바꾸나요?
슈퍼맨 아이비, JAZ, Jazzy Ivy 등 계속되는 닉네임 변경으로 혼동을 주는 각나그네는 자극적이지 않은 노랫말로 힙합에도 이런 온화한 면이 있음을 선전했다. 하지만 그것도 한때, 2010년에 낸 [Illvibrative Motif] 앨범에서는 다소 센 표현을 취하기도 했다. 다양한 제재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이 장점이긴 하나 래핑이 정형화된 면이 없잖아 있어서 만약 대회에 참가한다면 일부 프로듀서들로부터 "래핑이 올드하다"는 평을 들을 것이 안타깝게도 명약관화하다.


t 윤미래 | 그냥 궁금해지는 한 사람
아이돌 그룹 멤버, 아마추어 등 많은 여성 래퍼가 "쇼 미 더 머니"에 참가하고 있지만 대부분 1차 오디션에서 미역국을 먹는다. 2차 오디션에 올라가더라도 그 이상 단계에 진출하는 여성 래퍼는 소수에 불과하다. 때문에 한국 최고의 여성 래퍼로 일컬어지는 윤미래가 도전한다면 과연 어느 단계까지 갈지 자못 궁금하다. 남자들에 꿀리지 않는 원기 가득한 래핑을 들려주긴 해도 랩 가사를 온전히 홀로 쓰지 못한다는 점, "쇼 미 더 머니"가 결국 쇼라는 점 등 이런저런 요인과 변수 때문에 우승은 여간해서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럼에도 한국 힙합의 여제가 이런 경연 대회에 나선다면 어떤 모습을 보여 줄지 한번 확인하고 싶기는 하다.


Sean2slow | 나와 줘요, 미스터리 은둔 래퍼
션이슬로 Sean2slow는 체구와는 달리 스피디하면서도 유연한 래핑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지만 데뷔 15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제대로 된 개인 작품이 없었다. 불한당 크루의 멤버로서 2013년 [절충(折衝) 3] 음반에 모습을 내비치긴 했으나 이 정도로는 아쉬움이 해소되지 않는다. 때문에 "쇼 미 더 머니" 같은 프로그램에 그가 나와 주길 바라는 힙합 애호가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긴 기간을 지나오며 비정규 음반 한 장 발표하지 않은 뚝심(?) 있는 인물이 그런 쇼에 참가자로 나올 가능성은 사실상 매우 희박해 보인다. 전업 뮤지션답게 활동을 안 한 덕분에 신비감은 얻었지만, 동시에 과대평가된 래퍼라는 의혹도 Sean2slow에게 따라다닌다.


이상민 | 유니크한 스타일을 보유한 사나이
룰라는 3, 40대에게는 희대의 표절로, 젊은 대중에게는 멤버들의 크고 작은 사건으로 기억될 그룹이다. 부정적인 인식을 달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래도 리더 이상민의 래핑은 좋은 인상을 남겼다. 물론 활동 초기에는 레게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수박 겉핥기 식으로 레게 뮤지션들의 보컬을 흉내 내는 데 그쳤으나 4집 이후 직접 작곡, 제작에 참여하면서 래핑도 자기만의 주체성을 띠기 시작했다. 전보다 더 거칠어지고 다이내믹해졌으며, 말장난을 통해 듣는 재미와 리듬감을 보강했다. 워낙 힘이 많이 들어가는 래핑인지라 라이브 때 얼굴이 일그러지고 목에 핏대가 서는 걸 보는 게 단점 아닌 단점이지만 독창미는 그래도 선명하다. 특히 6집 중 'Moving'에서의 래핑은 그의 디스코그래피 중 최고다.

원문은 멜론-뮤직스토리-다중음격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www.melon.com/musicstory/inform.htm?mstorySeq=2637&startIndex=0


덧글

  • 슈3花 2015/07/22 19:52 #

    으앙~ 추억이 방울방울ㅠㅠ 디기리의 플로우는 정말 독특합니다. 1집 발매 당시 음반 사서 따라 부르려다가 정박에 익숙했던 저는 결국에는 실패를 했다는 후문이 ㅠㅠ

    과한 듯한 이상민의 래핑도 저는 좋아합니다. 랩 음반 꼭 내줬으면 좋겠어요. 듣는 저까지 목이 아플 것 같아서 끝까지 다 들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요.ㅎ
  • 한동윤 2015/07/23 15:11 #

    ㅎㅎ 디기리 랩 따라 하기가 정말 쉽지 않을 듯해요.
    저도 이상민 씨가 랩 음반을 내줬으면 하는데 두 곡 들으면 물릴 것 같아요;;
  • ElMa 2016/05/30 18:33 # 삭제

    김진표씨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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