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는 닭이지: 닭식 일기 소시민 밥상

지난 금요일 오랜만에 신촌에 갔다. (오랜만에 간 게 맞나?) 뭘 먹을까 하며 골목을 둘러보던 중 닭한마리 간판을 보고 주저 없이 가게로 들어갔다. 날이 더워서 뜨거운 음식을 먹고 싶지는 않았지만 닭한마리 요리를 먹은 지 꽤 돼서 흥분된 마음에 바로 메뉴 선정.

닭한마리 파는 데가 많아졌다고 해도 종로 그 음식점의 맛에 필적하는 곳이 없긴 하다. 그래서 들어갈 때부터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닭이 잘 안 나와서 뒤적거렸더니 이제는 떡만 나오네. 역시 설정도, 구도도, 샷도 엉망이다. 정작 그릇에 담고 나서는 먹는 데 집중하느라 사진을 안 찍었다. 여기 칼국수는 공장에서 뽑은 아주 허접한 면이었다. 하지만 애초에 어마어마한 걸 바라지 않아서 낙심할 일이 없음.


세팅하면서 닭한마리 맛있게 먹는 방법이라는 종이 쪽지를 주셨다. 모든 음식에는 그 음식의 맛을 높여 주는 특유의 방식이 있다는 주장에는 동의한다. 그런데 자기의 노하우를 강요하거나 그걸 따라 하지 않을 경우 잔소리하는 사람은 싫다. 닭한마리든 뭐든 어떤 흔하지 않은 요리를 하는 음식점에 가면 누구는 이게 정석이라고 하고, 누구는 이렇게 먹어야 맛있다고 하고 소리 높여 주장을 펼치는 일도 은근히 많다. '그래 알려 줘서 고마워, 그런데 난 이렇게도 먹어 볼래' 이렇게 받아들이면 서로 편하지 않나?


그리고 다음날 집에서 삼계탕을 먹었다. 삼계탕도 팩으로 나오고, 세상 참 편리해졌다. 닭 크기는 작지만 찹쌀이랑 인삼도 들어 있다.


그리고 며칠 뒤 닭식의 기본이 돼 버린 치킨을.

요즘 인터넷에서 수능 몇 등급까지는 닭을 시키고, 몇 등급은 닭을 튀기고, 몇 등급은 닭을 배달한다는 우스갯소리를 어렵지 않게 보게 된다. (주로) 수험생들 스스로 경각심을 가지려는 의도일 텐데, 한편으로는 직업군을 계급화해서 멸시하는 행위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치킨 얘기만 나왔다 하면 '치느님 치느님' 한다. 닭이 알아서 털 뽑고 끓는 기름에 들어갔다가 독생자 예수님처럼 부활하시어 손수 우리집으로 찾아오는 게 아니다. 사람이 키우고 사람이 요리하고 사람이 배달하니까 먹을 수 있는 것인데, 그런 사람에 대해서는 하찮게 인식하면서 치킨을 숭배하듯이 일컫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순리에 어긋나는 행동이다.

치킨을 먹을 때면 꼭 그 생각이 든다. 소소한 식사 일기가 갑자기 무겁게 마무리;;

덧글

  • 식신강림 2015/07/31 16:27 # 삭제

    가볍게 읽어내려가다가, 마무리에 저도 같이 끄덕끄덕하며 무거운 마음으로 댓글 슥삭;
  • 한동윤 2015/07/31 20:15 #

    이렇게 끝내려던 건 아니었는데요 본의 아니게 ㅠㅠ
  • 4년차 2015/07/31 17:32 #

    신촌쪽 닭한마리집은 '공릉닭한마리'만 강추입니다. 공릉 본점은 번호포 뽑고 줄 서서 먹는데, 신촌점은 중국인 일본인 관광객이 엄청 많아요. 근데, 맛있어요. 나중에 신촌에서 닭한마리 먹을일이 생기시면 이쪽으로..

    마지막 부분글에는 저도 깊이 공감합니다.. 세상이 정말 이상해지고 있는 것 같아요.
  • 한동윤 2015/07/31 20:17 #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다음에 신촌 가면 그곳으로 가 볼게요~ 벌써 기대가 ^^
    한국사회에 일고 있는 복합적인 문제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ㅠㅠ
  • 개근 2015/08/01 01:10 # 삭제

    마지막 말 공감이요. 사람이 살아가면서 작은거 하나하나 타인의 노력에 의해 생성되는건데.. 농담이겠지만 저런식의 말들 굉장히 싫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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