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아파트 공경비] 인내심을 요하는 설정과 진행 가끔은 만화

모든 게 답답하다. 등장인물들은 아둔함에 사로잡혀 있고 그들을 둘러싼 사건들은 정리되지 않은 채 산포, 은둔해 있으며 이야기는 쳇바퀴를 돌듯 이렇다 할 진전이 없다. 권정희(글), 박병규(그림) 작가가 네이버에서 연재하는 웹툰 [장미아파트 공경비]의 요소들은 유쾌한 긴장감 없이 무미함과 나태함을 내보인다. 손을 따고 싶은 체증의 연속이다.


웹툰의 이야기는 건물 외벽 청소, 대리운전 등 여러 아르바이트를 하며 사법시험까지 준비하는 청년 공병문의 일상 변화로 시작한다. 대리운전을 하던 어느 날 할아버지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은 그는 며칠 뒤 할아버지를 대신해 장미아파트의 경비로 일을 하게 된다. 공병문은 판사를 꿈꾸는 사람답게 성실하고 강직하게 근무하면서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다섯 번 낙방해 이번에는 꼭 붙겠다며 짬짬이 책을 들여다보는 그에게 작가는 합격이라는 결과를 예비해 놓았을 것이다. 초반부에 보여 준 공병문의 강한 생활력은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류의 잠언을 함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목이 '장미아파트 공경비'인지라 이야기는 장미아파트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경비로 일하며 겪는 사건에 중점을 둔다.

문제는 이것들이 단순 나열식이라는 점이다. 엄마의 따뜻한 관심을 받고 싶은 꼬마, 학원폭력에 시달리다 어느 순간 약자를 괴롭히게 된 여자 고등학생, 공병문과 묘한 밀당을 하는 입주민 조현경의 아버지가 맞닥뜨리는 사업 난항 등이 현재까지 나온 굵직한 에피소드들이다. 각 일화의 중심인물들은 사건이 마무리되면 마치 아파트를 떠난 것처럼 자취를 감춘다. 한정된 공간에서 지내는 사람들이라 몇 번은 만나는 게 정상인데 꼬마와 여고생은 그들의 스토리가 끝나고 나서 모습을 내비치지 않고 있다. 공경비와 연인 사이로 발전할 것 같은 냄새를 풍긴 여경은 장미아파트로 이사까지 왔음에도 어느 순간부터 그림자도 안 보인다. 마땅히 보여야 할 사람들이 나타나지 않으니 사실감과 입체감도 느껴지지 않는다.


게다가 사건들의 호흡이 무척 길어 지루하다. 하나의 일화가 기본 넉 달은 간다. 현경의 아버지가 퇴직 후 집에서 쉬다가 막창집을 개업한 것이 64화(2014년 7월 15일 분)였고 영업장을 양도한 이가 근처에서 동일한 메뉴를 파는 가게를 다시 여는 문제가 발생한 것이 94화(2015년 2월 10일 분)다. 중간에 시즌 2로 이어 가기 전 석 달의 휴재가 있었다고 해도 그 에피소드를 별다른 진전 없이 4개월을 끌었다. 그리고 주변에 새로운 가게를 차린 사장과의 갈등은 반년이 지난 현재 조금도 해결되지 않았다. 매회 하나의 사건에 집중하는 옴니버스식 구성이 아닌데 이 사람 저 사람의 상황을 엮고 얹다 보니 진행이 더딜 수밖에 없다.

더불어 아파트에 든 도둑, 입주민의 무리한 요구, 주차 문제, 젊은 공경비와 잠자리를 가지려다 실패한 독신 입주민의 모략 등 아파트에서 발생하는 이런저런 사건들의 추가는 가뜩이나 나아가지 않는 이야기를 더욱 둔하게 만든다. 드라마로는 소화 가능할지 몰라도 웹툰의 구성으로는 처리하기가 버겁다.


주인공들의 행동은 갑갑하기 그지없다. 취업 준비생인 현경은 가계에 부담이 되지 않기 위해 편의점 종업원, 결혼식 하객 대행, 맞선 대행, 한때는 아이스크림 가게 종업원 등 여러 아르바이트를 전전한다. 일견 부지런하고 대견해 보이지만 그녀의 행동은 취업이라는 이상이 그리 절실하지 않은 듯한 인상을 풍긴다. 취업 면접이 잡힌 전날 과음하고 2년 넘게 연재되는 중에 공부하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 그렇게 정신머리 없고 나태한 인물이 116화(2015년 7월 21일 분)에서는 "이 악물고 죽자고 하는 데도 갈수록 어렵다"는 푸념을 늘어놓는다. [장미아파트 공경비]에서 가장 웃겼던 부분이다.

작가는 공경비와 현경을 통해서 이 시대 청춘들의 고단한 삶과 그들이 취업, 연애, 결혼 때문에 느끼는 부담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현경은 취업 준비에 그리 열정적이지도 않았고 여차하면 능력 되는 사람을 잡아 편하게 사는 것이 목표인 졸렬한 족속이다. 어려울 때 공병문을 찾고 위로는 그에게 받으면서 섹스는 청담동 술집 사장 민수랑 하는 천한 인물이다. 물론 이런 사람을 현실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지만 116화에서처럼 그녀를 매개로 요즘 젊은이들의 어려운 형편을 나타낸 것은 에러가 아닐 수 없다.

현경의 아버지는 보는 이로 하여금 분노를 유발한다. 친구의 사탕발림 제안에 넘어가 성급히 장사를 시작하고, 사채를 쓴 친구를 위해 연대보증을 선다. 본인도 자식들 결혼을 위해 모아 둔 돈을 쓴 것인데 대책이 없다. 이성적으로 판단하지 않고 계속 문제를 만드는 게 영 불안하다.

큰 흐름 안에 작은 사건을 넣는 것이나 모두가 화목한 관계의 예정 등 대략적인 면면이 드라마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일은 일대로 키우다가 공병문의 사시패스 한 방으로 이야기를 정리하면 삼류 드라마가 된다. 매듭을 짓기는커녕 감춰 놓기만 한 인물들과 이야기부터 해결하는 것이 시급하다. 그리고 반드시 지방을 빼야 한다. 굳이 안 들어가도 될 내용 때문에 지루함을 가증하기 때문이다. 체증을 해소하려면 이 문제들을 말끔히 정리해야 한다.

(한동윤)

덧글

  • 하로 2015/08/10 12:18 #

    웹툰쪽에서 흔히 보이는 자기 생각에 매몰되었거나, 드라마화같은 김칫국을 들이키고 있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 니시오잇신 2015/08/10 13:30 #

    쓸데없이 깊이 생각해서 보자면
    '어려울 때 공병문을 찾고 위로는 그에게 받으면서 섹스는 청담동 술집 사장 민수랑 하는 천한 인물이다. 물론 이런 사람을 현실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지만 116화에서처럼 그녀를 매개로 요즘 젊은이들의 어려운 형편을 나타낸 것은 에러가 아닐 수 없다'는
    한바퀴 돌아서,
    요즘 사회에는 이런 젊은이들이 어렵다고 푸념을 늘어놓는다는, 젊은층에 대한 비평을 던지고 싶은 걸수도 있죠
  • SDPotter 2015/08/10 14:02 #

    작가의 이전 작품인 바다이야기를 다룬 작품도 중반부에 템포가 느려지더니 흐지부지 끝나서 아쉬웠습니다.
    이번 작품은 더 심해져서 안타깝네요.
    작품 세계관이 어색한 문제가 초반부의 인물들이 더이상 등장하지 않는다는 지적에 크게 공감합니다.
  • 먹통XKim 2015/09/23 00:06 #

    그래서인지 결국 9월말로 끝나네요..욕 처먹고 인기가 팍삭 내려가더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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