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최고의 가수 겸 배우 진혁신의 새로운 도약 [Getting Ready] 원고의 나열


늘 탄탄대로를 달려온 진혁신(Eason Chan)에게도 데뷔 20주년이 갖는 의미는 각별할 수밖에 없다. 그는 이번 음반을 또 다른 시작으로 여기며 '준비 중(Getting Ready)'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신보를 통해 대중에게 자신의 이름을 새롭게 각인하겠다고 마음먹은 데서 연유한 것이다. 그런데 의아하게도 그동안 여러 차례 호흡을 맞췄던 작사가(원양반 袁兩半), 프로듀서(이진권 李振權)와 다시 짝을 이뤘다. 오랫동안 함께 작업해 온 동료들이야말로 경험과 이해를 바탕으로 진혁신을 새롭게 정의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생뚱맞고 어울리지 않는 과도한 파격이 아닌 편안한 변신을 의도한 것이다. 긴 경력에서 오는 지혜로운 판단이 엿보인다. 또한 앨범 제작을 위해 선배와 동료들을 찾아다니며 조언을 구했다는 후문에서 착실함도 읽을 수 있다.

앨범을 플레이하면 어떤 변화가 감지되는 듯하다. 상사에게 그토록 하고 싶은 말을 사용해 직장인들의 공감을 살 'Boss, I'm Leaving Early(老細我撇先)'는 과거와 현대의 어느 한군데에 있는 홀가분한 로큰롤 반주로 청취자를 맞이한다. 2006년 발표한 [What's Going On…?]에서는 거친 얼터너티브 록을 내세우기도 했기에 힘을 뺀 모습이 조금은 색다르다. 최근 여럿 선보인 평행우주론 영화들에 영감을 받아 시공간적 간격이 사람들의 사랑과 잠재능력을 이끌어 낸다고 이야기하는 'Black Hole(黑洞)'은 차분한 모던 록 반주에 은은한 코러스를 입혀 듣기 좋은 소리를 완성했다. 꿈과 가능성, 자유로운 상상에 대해 노래하는 'Dreams and Possibilities(夢的可能)'는 팝 록과 하드록의 골격을 조합해 밝고 강건한 느낌을 동시에 표한다.

세기를 약간 낮춘 곡들과 함께 진혁신의 장기인 발라드가 역시 돋보인다. 지난 4월 먼저 공개돼 큰 인기를 얻고 있는 타이틀곡 'Unconditional(無條件)'은 제목 그대로 조건 없이 한결같을 때 위대하게 느껴지는 사랑에 대해 말한다. 진혁신의 온화한 보이스와 스트레이트한 창법, 현악기의 감미로운 연주가 잘 어우러져 감흥을 준다. 어쿠스틱 기타와 현악기, 담백한 가창이 알차게 조화된 'Heart on Fire(心燒)'는 듣는 즉시 로맨틱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킬 정도로 고운 분위기를 낸다. 두 연인이 꽃밭을 거니는 모습이 상상되는 사랑 노래 'To Like Someone(喜歡一個人)'도 중간 템포의 어쿠스틱 록 사운드로 푸근함과 달콤함을 드러낸다. 후반부에는 기타 솔로와 허밍의 유니슨을 통해 사랑에 빠진 사람의 흐뭇한 기분까지 내보인다.

후반부의 몇몇 곡은 침침한 분위기로 전과 다른 느낌을 자아낸다. 순수해 보이는 사람이라도 반드시 어두운 면은 있기 마련이라는 생각에서 지은 'The Holloween Nightmare(萬聖節的一個傳說)'는 많은 사람이 지녔을 기이한 잠재의식을 핼러윈의 전설에 빗대 표현한다. 앙칼스럽게 가공한 전기기타와 통제하며 지르는 보컬이 핼러윈 특유의 음침함을 떠올리게 만든다. 사정봉이 도움을 준 'Origin ․ Destination(起點 ․ 終站)'은 시작과 끝에 관한 관념을 고딕 메탈풍의 그로테스크하고 장중한 반주에 실어 전달한다. 이 두 노래에서는 진혁신이 명백한 로커임을 실감하게 된다.

진혁신은 신보를 제작하면서 현재 자신의 상황을 스타트라인에 선 레이싱카에 비유했다. 힘찬 달음박질을 앞두고 출발 신호가 울리기만을 기다린다는 뜻이다. 그의 말에서 신인 못지않은 패기가 느껴진다. 많은 매체가 진혁신을 두고 장학우를 이을 가수라고 했으며, 연예문화 잡지 타임아웃의 홍콩판은 진혁신에게 '아시아 대중음악의 제왕(King of Asian Pop)'이라는 호칭을 부여하기도 했다. 이미 정상의 위치에 섰음에도 부지런히 음반을 만들고 동시에 변화를 나타내 왔기에 열띤 찬사가 자연스레 잇고 있다. 20년에 이르는 진혁신의 음악 역사는 세심함과 열의가 깃든 [Getting Ready]를 통해 다시 한 번 도약하고 발전할 것이다.

2015/07
음반 해설지 일부

덧글

  • 정성룡 2015/08/12 14:45 #

    중화권 가요계는 중견, 원로급 가수들도 곡이 좋고 실력이 좋으면 여전히 대중적으로도 최고인 경우가 많아 부럽습니다. 장학우, 임억련, 장진악이 제작년과 작년에 차례로 신보를 내며 다시한번 정상급 사랑을 받기도 했었고, 진혁신의 무조건도 4월에 공개된 뮤비의 유튜브 조회수가 벌써 300만을 넘어가니, 우리나라보다 외모지상주의가 훨씬 덜하다는 느낌이 드네요
  • 한동윤 2015/08/13 10:46 #

    말씀처럼 중견 가수들이 얼마든지 인기를 유지하는 상황이 바람직한 모습이라고 봐요.
    우리나라는 아이돌이 시장을 장악해서 자연스레 젊은 가수만 좋아하는 취향을 만들어 놓은지라...
  • spodery 2015/08/12 23:22 #

    mama에서 처음봤는데 부과라는 노래가 참 좋더라구요
  • 한동윤 2015/08/13 10:47 #

    마마에서 보셨군요. 마마가 멋지지 않은 행사이긴 하지만 외국 가수들을 접하는 무대라는 점에서는 좋은 기능을 하네요 :)
  • 정은지 2016/10/15 21:22 # 삭제

    저는 홍콩영화 십이야에서 처음 접했던 배우인데 라이브를 찾아들어보니 그냥 겸업수준의 가수가 아니더라구요. 생각보다 너무 노래를 잘해서 깜짝 놀랐어요. 연기도 좋은데 노래는 더 좋네요!
  • 한동윤 2016/10/16 11:10 #

    팬이시군요~ 우리나라에도 음원 서비스가 돼서 좋으시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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