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음악이 만나 감흥 두 배, 음악영화 원고의 나열

지난주에 이어 영화음악으로 돌아왔다. 지난 원고는 블록버스터 OST였건만 "러덜리스", "보이후드" 등을 찾으며 허접한 글이라고 막말을 한 분이 계셔서 참 안타까웠다. (이탈리아 레스토랑 가서 된장찌개 왜 없냐고 성질내면 그게 이상한 거예요, 고객님) 아무튼 블록버스터만 모아 아쉬웠을 분들을 위해 이번에는 음악영화, 음악이 많이 나오거나 음악이 중심 소재가 되는 영화를 준비했다. 여기서 당부하고 싶은 것 또 하나. 세상 어떤 리스트든 만인이 모두 만족하는 리스트는 결코 없다. 또 뭐는 없네, 뭐가 당연히 있어야지 그러면서 핀잔을 주면 상처 입고 앞으로 영화음악만 고집할지도 모른다. 그런 일은 없길 바라며 눈과 귀가 모두 즐거워지는 음악영화를 만나 보도록 하자.


비긴 어게인 | 감미로운 팝 록 패키지
국내에서 'Lost Stars'의 인기는 실로 대단했다.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 라디오, 텔레비전 등 공간을 가리지 않고 여기저기서 울려 퍼진 까닭이다. 때문에 영화를 보지 못한 이도 노래가 "비긴 어게인"의 주제곡이라는 사실은 익히 안다. 연말 결산 "올해의 가요" 리스트에 넣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Lost Stars'는 2014년 대한민국을 휩쓸었다.

사운드트랙에는 'Lost Stars' 말고도 괜찮은 노래가 많다. 댄(마크 러팔로 분)과 그레타(키이라 나이틀리 분)의 첫 만남을 판타지처럼 만들어 준 'A Step You Can't Take Back', 댄의 딸을 객원 기타리스트로 섭외했을 때 녹음한 'Tell Me If You Wanna Go Home', 길거리 꼬마들과 협상을 하면서 어렵고도 재미있게 부른 'Coming Up Roses' 등 시쳇말로 얼굴마담을 할 만한 멋진 노래들이 즐비하다.

감미로움과 경쾌함을 겸비한 주인공들의 노래가 영화의 전부는 아니다. "비긴 어게인"은 뮤지션의 외모를 중시하는 제작자, 음원 시장 플랫폼 다변화 등 현재 대중음악계의 트렌드를 이야기하고 현황에 대한 고민을 던진다는 점으로도 깊은 맛을 낸다. 음악을 진지하게 듣는 이라면 세 번은 봐야 할 영화다.


아메리칸 셰프 | 음식만큼 맛깔스러운 리듬의 향연
만드는 음식은 쿠바 샌드위치인데 제목은 "아메리칸 셰프"라서 의아함을 안기는 영화. 각종 방송 프로그램에 요리사가 꼬박꼬박 출연하는 지금 같은 시기에 나왔으면 인기를 끌었을 텐데 안타깝게도 타이밍을 못 맞춰서 흥행에 참패한 영화. 존 패브로 감독이 [아이언맨] 때 타지 못한 스칼렛 요한슨과의 "썸"을 어떻게든 다시 이뤄 보려고 제작한 (것 같은) 사심 충만 영화. SNS가 흥망성쇠와 부귀빈천을 좌우한다는 교훈을 전하는 영화. "아메리칸 셰프"는 이 같은 관전 포인트를 갖는다.

음악영화는 아니지만 주인공들의 푸드트럭이 라틴음악, 재즈의 요지를 경유하는 덕분에 내내 그 음악이 흐른다. 부걸루의 클래식으로 꼽히는 'I Like It Like That'을 비롯해 Roger Troutman의 노래들을 바탕으로 만든 경쾌한 펑크(Funk) 넘버 'West Coast Poplock', 풍성한 관악기 연주가 흥겨움을 배가하는 'Freedom Express' 등 고갯장단을 치게 하는 노래들이 가득하다. 때문에 영화를 본 사람에게 라틴음악이나 재즈를 들려주면 자동으로 샌드위치가 먹고 싶어지는 조건반사 현상이 발생할지도. 영화가 날 파블로프의 개로 만들어 버리는 구나, 꺼이꺼이.


블랙 가스펠 | 기쁨과 슬픔을 함께 간직한 가스펠
얼마 전 KBS "불후의 명곡"에서 양동근과 정준이 펼친 공연이 화제가 됐다. 둘은 가스펠 그룹 헤리티지, 메스콰이어 합창단, 래퍼들과 함께 'Oh Happy Day'를 다이내믹하고 신명 나게 각색해 선보였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흥겹고 기독교인들이라면 은혜를 받았다고 생각했을 무대였다. 더불어 그들의 모습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블랙 가스펠"의 한 장면을 떠올린 이도 있을 것이다.

"블랙 가스펠"은 독실한 크리스천인 양동근, 정준, 김유미 등이 가스펠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미국 뉴욕의 할렘가를 방문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곳에서 가스펠 뮤지션, 찬양 사역자들을 만나면서 그들에게 가스펠의 역사와 노래에 대해 배우고, 미국에서 노예로 지낸 흑인들의 피폐한 삶을 알아 간다. 마지막은 활기찬 가스펠 콘서트로 마무리되지만 왠지 모를 무거운 공기가 남는다. 가스펠에 관심이 있다면 볼만한 영화다. (하지만 재미는 정말 없으니 각오하고 봐야 한다)


위플래쉬 | 아프냐? 나도 아프다
많은 화제를 낳았고 여러 시상식에서 상을 휩쓸다시피 했지만 사운드트랙은 그렇게 대중적이지 못하다. 영화의 성격상 재즈로만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청취율이 높은 걸 보면 "위플래쉬"가 얼마나 큰 인기를 얻었는지 실감할 수 있다. 150만 명이 넘는 관객수는 음악영화치고는 대단한 성적이다.

영화를 아직 못 본 사람이 OST를 듣는다면 그냥 일반적인 재즈, 재미없는 드럼 연주로 받아들일 것이다. 하지만 영화를 본 사람이 OST를 들으면 앤드루(마일스 텔러 분)의 노고가 느껴져서 본인도 힘들어진다. (듣는 내가 손에서 피가 나는 기분, 특히 'Snare Liftoff'나 'Practicing' 같은 트랙) 그래서인지 'Fletcher's Song In Club'을 들으면 괜히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한다. 주인공의 상황과 감정에 밀착하는 사운드트랙이 아닐 수 없다.


스파클 | 부모님 말씀 듣게 되는 소울
가수의 꿈을 꾸지만 가수는 곧 방탕으로 빠지는 길이라며 가혹하게 만류하는 어머니 때문에 꿈으로만 간직하는 스파클(조딘 스파크스 분)을 중심으로 희비가 밴 이야기가 펼쳐진다. 주인공들의 사랑과 갈등 같은 뻔한 내용이 기본이지만 약물과 가정 폭력 등 성공의 이면에 자리 잡은 흑인사회, 연예계의 고질적 문제가 한쪽에서 가슴을 울린다. "스파클"이 Whitney Houston의 마지막 영화라는 점, 영화에서 나타난 안 좋은 상황이 그녀의 실생활과 오버래핑되는 사항 때문에 더 애잔하다.

영화의 주인공이자 오디션 프로그램의 원조 "아메리칸 아이돌"의 우승자 Jordin Sparks를 비롯해 영원히 기억될 팝의 디바 Whitney Houston, 목소리만으로 대단한 존재감을 내는 Cee Lo Green 등이 맡은 OST는 근사한 소울, R&B의 종합 세트다. 트립 합 뮤지션 Tricky와 한때 부부였던 여배우 Carmen Ejogo도 범상치 않은 가창력을 뽐낸다. 시대적 배경과 음악 스타일, 주인공 자매들의 그룹 포맷 때문에 "드림걸즈"가 떠오르기도 한다.


락 오브 에이지 | 과거를 그리워하는 록 키드를 위해
1980년대 풍미한 하드록, 헤비메탈 명곡들이 비엔나소시지처럼 줄줄이 나와 흥분을 안긴다. "락 오브 에이지"는 그 시대를 경험하거나 그때의 강성 록 음악을 사모하는 이들을 위한 영화다. 성격 좋고 다재다능한 톰 아저씨는 그리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오로지 음악, 오로지 로큰롤이 주인공이다.

도입부를 차지하는 Guns N' Roses의 'Paradise City'를 시작으로, 가사에 충실한 장면의 배경음악이 된 'Hit Me With Your Best Shot', 주인공들의 러브 테마로 쓰인 'I Want To Know What Love Is', 영화 속 등장인물들이 대립하는 설정에 맞춰 흥미롭게 편곡된 'We Built This City/We're Not Gonna Take It' 등 아드레날린을 증폭시키는 록 클래식들이 관객을 힘 있게 맞이한다.

젊은 음악팬들에게는 별다른 감흥이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80년대를 지낸 이들에게는 향수 이상을 전한다. 그들에게 "락 오브 에이지"의 사운드트랙은 원곡을 찾게 되는 마법을 부린다.


33리 | 이 시대 청춘과 나누는 고민
최석용, 힙합 마니아들은 응당 아는 TBNY의 톱밥이 주연한 "33리"는 음악영화는 아니다. 단편영화라서 사운드트랙도 없다. 한국 힙합의 융성을 도모한 주요 뮤지션이 주인공이지만 특별한 공연을 보여 주는 것도 아니다. 음악적으로는 딱히 언급할 내용이 없다.

석용(최석용 분)의 나이는 서른세 살. 래퍼로 성공하고 싶지만 음악에만 매진하기는 여의치 않아 생계를 위해 택배기사로 일한다. 나이는 들고, 주변 사람들의 눈치는 나날이 더 날카롭게 느껴진다. 절실한 목표를 갖고 있지만 이것이 정말 이뤄질 수 있을지 낙관할 수 없는 현실에서 석용은 고뇌한다. 영화는 꿈을 간직해야 하는지, 포기해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을 던지며 이 시대 청춘들이 하는 생활, 고민을 공유한다.

힙합이라는 소재, 젊은 날의 이상이라는 부분에서는 정대건 감독의 "투 올드 힙합 키드"와 비슷하지만 그것에 비해 영화적인 재미는 훨씬 알차다. 주인공 석용의 나이를 나타낸 33리를 마일로 환산하면 8마일이 된다. "33리"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몸부림치는 청춘의 삶이라는 제재는 물론 제목까지 Eminem 주연의 "8마일"을 모티프로 했다.


스타로부터 스무 발자국 | 실력자들의 애타는 목소리
음악계에서 내로라하는 가수들의 이야기. 훌륭한 가창력을 보유했지만 이들은 백업 싱어라는 이유로 언제나 무대의 구석에 위치한다. 관객의 환호와 화려한 조명이 이들을 둘러싸고 있지만 본인들을 향한 것은 아니다. 다큐멘터리 영화 "스타로부터 스무 발자국"은 동료들은 추앙하지만 빛은 보지 못하는 백업 가수들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이들의 활동 이력을 추적하다 보니 백업 보컬로 참여한 팝 명곡들이 연이어 나온다. 베이스 연주가 탄력적인 그루브를 뿜어내는 Talking Heads 'Slippery People', Joe Cocker의 흑인음악에 대한 애정이 배어나는 'Space Captain', Lynyrd Skynyrd의 서던 록 클래식 'Sweet Home Alabama' 등이 그렇다. 게다가 노래들이 언급되면서 뮤지션들의 에피소드도 들을 수 있어 재미있다.

백업 가수들이 메인 보컬이 돼 부른 노래들도 당연히 멋스럽다.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Lean On Me'가 백미. 영화를 통해 이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접하면 더 뭉클하게 느껴진다. 노래를 업으로 삼고자 하는 이는 한번 꼭 보길.

멜론-뮤직스토리-다중음격 http://www.melon.com/musicstory/inform.htm?mstorySeq=2703&expose=true


덧글

  • 몽고메리 2015/08/13 12:25 #

    락 오브 에이지는 정말 재밌게 봤던 기억이 있네요 ㅎㅎ
  • 한동윤 2015/08/14 11:36 #

    저는 정말 지루했어요. "어휴 음악 때문에 본다" 이랬다는 ^^;
  • 몽고메리 2015/08/14 15:11 #

    저도 오로지 음악만 들었기에... ㅎㅎ

    음악이 반가웠던거죠~
  • 한동윤 2015/08/14 17:35 #

    같은 이유였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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