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로 웃음을 주는 코미디 랩 원고의 나열

음악은 우리를 웃음 짓게 한다. 행복하고 아름다운 내용뿐만 아니라 슬프고 절절한 노랫말도 경험과 감정의 공통분모가 돼 듣는 이의 입꼬리를 올라가게 만든다. 이따금 우스꽝스러운 이야기와 남다른 표현을 통해 그야말로 대소를 터뜨리게 되는 노래들도 나온다. 특히 최근에는 소위 "개가수"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할 정도로 개그맨들의 가요계 진출이 활발해진 덕에 재미를 추구한 노래들을 그리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게 됐다.

이렇게 데뷔하는 개그맨들은 대체로 랩의 문법을 채택한다. 때문에 힙합의 하위 장르로서 1980년대 후반에 등장한 코미디 랩은 국내에서 자연스레 저변을 확장하고 있다. 이 현상도 약간은 기이하게 재미있는 부분이다.


UV | 찰떡궁합 개그 듀오
많은 사람이 음악이 구리지 않음에 놀랐을 것이다. 유세윤은 재능 있는 싱어송라이터 겸 프로듀서 뮤지를 동반자로 얻음으로써 가수 변신에 성공했다. 유세윤의 뛰어난 개그 감각은 (생각보다는) 허술하지 않은 음악을 만나 더욱 빛을 발했다. 뮤지 역시 유세윤의 인지도를 구름판 삼아 무명 뮤지션에서 유명인으로 도약했다. UV는 서로 윈윈한 관계의 정확한 예시 중 하나다.

이들의 으뜸 매력은 팝과 R&B, 힙합, 신스팝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전방위적인 스타일, 허를 찌르는 피처링 캐스팅, 사랑에의 구질구질한 집착 등 정상적인 면과 싼티를 동시에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이면서도 때로는 상식을 벗어난 포맷으로 웃음을 주고 그 와중에 어느 정도의 구색은 갖춘 것이 대중을 사로잡는다.


The Lonely Island | 명실공히 최고의 코미디 힙합 그룹
학창 시절부터 친구였던 The Lonely Island의 세 멤버는 패러디 뮤직비디오와 코미디 단편영화를 제작하며 희극인의 꿈을 키웠다. 그러던 중 코미디언 Jimmy Fallon에게 발탁돼 버라이어티쇼 "SNL"의 연기자, 작가로 합류하게 된다. 베테랑이 알아보는 끼와 재능으로 좋은 기회를 얻었고, 프로그램의 엄청난 인기 덕분에 전 세계인이 알아주는 코미디 힙합 그룹으로 빠르게 성장했다.

2009년 첫 정규 앨범 [Incredibad]를 발표하며 가수 활동에 착수한 그룹은 자기 비하와 야한 경험담, 엉뚱한 상상에 근거해 익살스러운 노래들을 들려줬다. 여기에 화려한 인맥을 바탕으로 Justin Timberlake, Michael Bolton, Pharrell Williams 같은 슈퍼스타들을 섭외해 질 높은 음악을 선사했다. 어마어마한 존재감을 내는 참여진을 보면 갑작스럽게 진지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용감한 녀석들 | 한때 용감했던 녀석들
개그맨들이 그룹을 결성하면 그들의 노래는 대부분 웃긴 버스(Verse)와 조금은 진지한 훅의 구성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대체로 전자는 남자가, 후자는 여자가 담당하는 공식을 보인다. KBS "개그 콘서트"의 한 코너가 고스란히 가수 활동이 된 용감한 녀석들 역시 그 전형을 준수한다.

평범한 형태, 아마추어급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 낮은 래핑이 단점이지만 대중적인 멜로디, 코너의 인기 등을 칼과 방패 삼아 좋은 성적을 거뒀다. 무엇보다도 신보라가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그녀가 없었다면 가수 데뷔는 만용이었을 텐데 빼어난 보컬리스트를 둔 덕분에 가수의 이미지를 환하게 낼 수 있었다.

1집이 처음이자 마지막 앨범이 된 까닭에 코미디 힙합 그룹의 활동은 끝났지만 신보라는 솔로로 싱글을 발표하며 가수의 꿈을 이어 나가는 중이다. 그러나 올봄 신곡 '미스매치'를 들고 무대에 섰을 때 객원 래퍼로 참여한 바스코가 가사를 까먹는 웃긴 실수를 범함으로써 신보라는 본의 아니게 코미디 힙합의 카테고리로 복귀하고 말았다.


Biz Markie | 코미디 힙합의 시초
커다란 체구와 그에 어울리지 않는 측은해 보이는 표정에서 벌써 웃음이 나오는 Biz Markie는 힙합의 황금기에 활동한 유명 래퍼 겸 비트박서다. 하지만 워낙 오래된 시절이라 젊은 음악팬들에게는 그가 생소할 수 있을 듯. 대중에게는 "맨 인 블랙 2" 중 제이(윌 스미스 분)가 케이(토미 리 존스 분)를 찾으러 우체국에 갔을 때 제이와 비트박스로 대화하던 외계인 역할이라고 설명하면 기억하지 않을까 싶다.

그의 1989년 노래 'Just A Friend'는 코미디 힙합의 최초 히트곡으로 여겨진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짝사랑하는 여자와 매일 통화를 하며 서서히 거리를 좁혀 가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다른 남자가 먼저 전화를 받는다. 주인공은 불안한 마음에 여자에게 그 남자가 누구냐고 묻지만 여자는 그저 친구라고 말한다. 주인공은 그 말에 안심하지만 급작스럽게 여자를 찾아간 날, 그녀가 한 남자와 진하게 키스를 나누는 모습을 보고 충격에 빠지고 만다. 주인공의 노래 마지막에 친구만 있다는 여자를 조심하라고 말한다. "웃프다"는 요즘 말이 나오는 상황이다.

재미있지만 한편으로는 비참한 노랫말이 대중의 마음을 흔들었고 노래는 빌보드 싱글 차트 9위까지 올랐다. 하지만 이후로 변변한 히트곡이 없어 Biz Markie는 원 히트 원더로 남았다.


Ylvis | 노르웨이 괴짜 형제
많은 이가 'The Fox (What Does The Fox Say?)'의 히트에 당황스러워했을 듯하다. 노래방 반주 같은 허접한 반주에 노래 같지도 않는 노래를 부르는 게 전 세계 음악 차트 상위권을 휩쓸다니 눈으로 보고 있어도 믿기지 않는 상황이다. 더 놀라운 것은 한국에서 리메이크까지 됐다는 점. 김준호의 운이 안 좋았는지 'The Fox'의 커버 버전 '좀비 (The Zombie)'는 성공하지 못했다.

터무니없는 작품 때문에 Ylvis를 얕보는 시선이 존재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그들의 정규 앨범 [Ylvis Volume 1]은 예상 이상의 작품성으로 놀라움을 안긴다. 수록곡들은 트랩과 일렉트로팝의 혼합('Intolerant'), 재지(Jazzy)한 네오 소울('The Cabin'), 인도음악과 일렉트로 펑크(Funk)의 퓨전('Mr. Toot'), 멜로딕 하드코어('Shabby Chic') 등 다양한 장르를 뽐내며 그 면면도 탄탄하다. 음악을 우습게 볼 수 없다.

그러나 가사만큼은 역시 괴짜다. 'The Cabin'은 여자 친구와 은밀한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좋다고 말하며, 'Trucker's Hitch'로는 교양 채널이라도 된 듯 매듭 묶는 방법을 설명하고, 'Da Vet Du At Det Er Jul'에서는 크리스마스캐럴 분위기에 위키리크스 내용을 읊는다. 음악과 코믹함 둘을 모두 보유한 이들이다.


형돈이와 대준이 | 남자다운 한국식 갱스터 랩
극강의 조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로는 스트레이트하고 때로는 귀여운 노랫말로 본인의 스타일을 구축해 온 데프콘과 예상치 못한 애드리브로 큰 웃음을 안긴 정형돈이 만났으니 아니 즐거울 수 없다. 복장, 앨범 커버, 뮤직비디오 등 촌스러움으로 일관하는 시각적 요소도 유쾌함을 팍팍 안긴다.

가혹한 직설에 현실을 직시하게 되는 '안 좋을 때 들으면 더 안 좋은 노래', 서울 변두리에 사는 사람이라면 그 불편함과 위태로움을 공감하게 되는 '올림픽대로', 연인들의 각종 "데이"를 앞두고 전략적인 연애를 제안하는 '나 좀 만나 줘' 등 다수가 일상생활에서 겪는 상황이나 감정을 다뤄 무척 친근하다. 할 말은 다 한다는 그들만의 갱스터 태도가 통쾌함도 안긴다.


Goldie Lookin Chain | 웃음과 쓴웃음 사이
영국의 8인조 그룹 Goldie Lookin Chain은 랩 음악-힙합 본연의 스타일을 지키면서 거의 모든 노래에 코믹함을 녹여내는 본격 코미디 힙합 뮤지션이다. 멤버들은 1990년대 후반부터 영국 로컬 신에서 활동해 온 인물들로, 각자 네댓 개쯤 되는 예명을 쓰며 사소한 것에서부터 별난 모습을 내비친다. 이들은 허구의 스토리를 짓기보다 비유나 조소를 통해 듣는 이들을 유쾌하게 한다.

2000년대부터 활동을 시작한 이후 몇 년 동안의 작업을 모은 정규 앨범 겸 컴필레이션 [Greatest Hits]가 이들의 대표작이다. 노래들의 표현에는 정해진 수위가 없다. 사망 이후 많은 사람에게 기억되는 인물들을 예로 들면서 유명해지려면 자살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Self Suicide',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고환에 문신을 새기겠다는 'You Knows I Loves You'(Love에 붙은 s는 오타가 아닌 그룹의 의도) 등 센 내용이 줄을 잇는다. (글로 언급하기 어려운 내용도 많다)

아무 생각 없이 시시덕거리기에는 좋겠지만 정말 아무 생각 없이 토해내는 일부 가사는 불편함을 제공한다. 랩을 내뱉는다고 전부 다 수월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다.


허세 | 딱히 드릴 말씀은 없습니다만
개그맨 허경환과 하우스 룰즈의 보컬리스트로 활동했던 세이는 프로젝트 그룹 허세로 코미디 힙합의 계보에 동참한다. 결성을 했고 싱글을 냈다는 사실 말고는 주목하고 싶은 무언가가 없다. 허를 찌르는 재기도 없고 웃기지도 않고 당연히 래핑도 별로다. 코믹한 노래를 한다면 일단 가사와 구성에서 터져 줘야 한다. 그것이 선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뮤직비디오를 웃기게 연출해 봤자 유치한 포장밖에 되지 않는다. 세이로서 이들의 미래는 이미 어둡다. 다음에는 더 괜찮은 노래 낼 수 있을 거란 생각은 접고 그냥 여기서 마무리하는 게 서로 좋은 추억이 될 듯하다.

멜론-뮤직스토리-다중음격 http://www.melon.com/musicstory/inform.htm?mstorySeq=2724&expose=true


덧글

  • Json퐉 2015/08/18 18:23 #

    요즘 쇼미더머니 라는 프로그램에서 코미디랩 좀 하던데요?ㅎ
  • 한동윤 2015/08/19 11:09 #

    폼 잡고 욕하는 코미디 랩. 웃겨야 하는데 화가 나는 건 엄청난 부작용이죠 :)
  • 작두도령 2015/08/19 10:22 #

    UV나 형돈이와 대준이는 음악성 면에서도 깨알같은 디테일(생활밀착형 가사라던지)이 참으로 마음에 듭니다.
  • 한동윤 2015/08/19 11:10 #

    코미디 랩은 그런 일상 소재를 어떻게 풀어내느냐가 관건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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