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슈가맨을 찾았다 원고의 나열

얼마 전 JTBC의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을 찾아서"가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시청자들과 만났다. 이 프로그램의 콘셉트는 2012년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서칭 포 슈가맨"에 기반을 둔다. 영화가 1970년대 초 단 두 장의 앨범을 내고 홀연히 사라진 뮤지션 Sixto Rodriguez의 행적을 좇은 것처럼 "슈가맨을 찾아서" 또한 가요계에서 한때 인기를 끌었다가 지금은 활동이 뜸한 가수를 찾는 일을 골자로 한다. 프로그램은 김준선, 박준희 등을 오랜만에 모셨다.

호기심에 "다중음격"도 슈가맨을 찾아본다. 슈가맨의 선정 기준은 이렇다. Sixto Rodriguez처럼 두 장의 정규 음반을 낸 사람, 노래에 대해 대중의 호응이 어느 정도 있었던 사람, 활동은 하지 않지만 생존해 있는 사람이다. 리스트를 통해 여러분이 좋아하던 슈가맨도 만날 수 있기를 희망한다.


현승민 (H) | 댄스곡과 R&B를 오간 근육질 호남
데뷔하는 순간 "제2의 유승준"이라는 수식이 붙었다. 효과적인 홍보를 위해 소속사가 민 코멘트였는지, 매체의 설레발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느 정도 수긍됐다. 말쑥한 외모에 근육질의 탄탄한 몸은 분명 유승준과 견줄 만했다. 하나 논란의 여지를 남기는 점은 현승민이 유승준보다 장신이라는 사실이었다.

1999년 뉴 잭 스윙풍의 경쾌한 댄스곡 'Dream'으로 데뷔한 현승민은 긴 팔과 다리를 부각한 시원스러운 퍼포먼스로 많은 이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서구적인 마스크 또한 뭇 여성의 마음을 흔드는 무기였다. 또렷하게 눈도장을 찍은 그는 1집의 또 다른 수록곡 'Candy Girl'로 방송 활동을 이어 갔다. 나름대로 성공적인 데뷔전을 치른 그였지만 무슨 일인지 이후로 활동을 중단했다.

한동안 은둔했던 현승민은 2003년 이효리의 '10 Minutes' 뮤직비디오를 통해 오랜만에 얼굴을 내비쳤다. 같은 해 그는 본래 이름 대신 에이치(H)라는 새로운 예명으로 두 번째 정규 앨범을 발표했다. 중간 템포의 발라드 '잊었니'를 타이틀곡으로 내세워 변신에 성공했지만 또다시 잠적했다.

그에 대한 대중의 기억이 말소될 무렵, 2013년에 새 싱글 'Lose Control'을 선보이며 10년 만에 가요계에 복귀했다. 안타깝게도 이렇다 할 반응은 이끌어 내지 못했다. 그리고 또 소식이 없다.


김태우 | 015B가 배출한 명불허전 보컬리스트
아마도 "슈가맨을 찾아서"에 출연한 김준선을 보면서 김태우를 떠올린 이도 있을 듯하다. 김준선은 'Arabian Night'를, 김태우는 비슷한 제목의 '알려지지 않은 아라비안 나이트'를 불렀기 때문이다.

1992년 015B의 '아주 오래된 연인들' 객원 보컬로 데뷔한 김태우는 노래의 히트에 힘입어 이듬해 솔로 데뷔 음반 [Mutant] 출시한다. 타이틀곡 '알려지지 않은 아라비안 나이트'는 015B의 심장이자 히트곡 제조기로 통하던 정석원이 작곡했음에도 인기를 얻지 못했다. 싸늘한 도시의 느낌을 판타지로 녹여낸 가사, 시원한 가창력도 빛이 바랬다.

김태우는 4인조 록 밴드 뮤턴트의 프론트맨으로 1994년 새롭게 대중을 찾았다. '난 항상 혼자다', '잔인한 너' 같은 노래가 소소하게 인기를 끌긴 했지만 얼터너티브 록이 시장을 활보하기는 쉽지 않았다. 뮤턴트도 짧은 호흡 끝에 조용히 사라졌다. 같은 해 최민수(Flyger)의 [두 남자 이야기(Two Men Story)] 앨범에 참여하기도 했으나 곡 수 채워 주는 활동일 뿐이었다.

2000년 두 번째 솔로 앨범 [시월애]를 발표하며 가요계에 복귀했다. '시월애 (時越愛)', '한숨'이 관심을 받긴 했지만 반응은 1집만큼 썩 좋지 못했다. 그 뒤로 음악인으로서 소식은 없다. 풍문에 의하면 목회자로 전향했다고 한다.


지영선 | R&B 공주에서 드라마 OST 퀸으로
드라마 "인어 아가씨"에 삽입된 이래 인기는 대폭발이었다. 커피숍, 술집, 길거리 구석구석을 채웠고, 노래방에 1등 애창곡으로 등극했다. 혼성 포크 듀오 한마음의 1983년 원곡을 리메이크한 지영선의 '가슴앓이'는 2003년(출시는 2002년 말) 최고 인기곡이 됐다.

2000년 드라마 "줄리엣의 남자"('차라리'), "여자만세"('소원') OST로 대중과 만난 지영선은 2001년 솔로 데뷔 앨범을 발표한다. 정연준, 김신일 등 한국 흑인음악의 명 작곡가들이 참여한 앨범에서 지영선은 R&B를 잘 이해한 멋스러운 가창을 선보였다. 멜로디, 그루브, 보컬이 모두 괜찮았지만 히트로 이어지지 못해 한국에서 본토의 향이 강하면 성공하기 어렵다는 걸 증명하게 됐다.

지영선은 그래도 자기가 하고 싶은 스타일을 버리지 않았다. 2집에서도 R&B를 지향했고 김신일을 메인 프로듀서로 섭외했다. '가슴앓이‘는 원곡의 인지도와 흑인음악의 감성이 시너지를 낸 정확한 예다.

노래의 빅히트 덕분에 대중의 머릿속에 자신의 이름을 각인했지만 몇 편의 드라마 OST 말고는 개인 작품을 내지 않았다. 드라마 사운드트랙도 2007년 "소금인형"이 마지막. 그리운 마음에 괜히 불러 본다. "아~ 어쩌란 말이냐 트위스트 추면서"


김성욱 | 형의 이름 때문에 더 그리운
1995년 듀스의 김성재는 멋진 솔로 데뷔 무대를 선보였지만 다음날 사망한 채 발견돼 팬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그로부터 꼭 1년 뒤 김성재가 컴백 무대에 입었던 의상을 그의 동생 김성욱이 입고 가수로 데뷔했다. 노래는 힘이 있었지만 허망하게 간 김성재를 생각하면 아쉽고 슬픈 무대였다.

김성재의 영원한 동반자 이현도와 주영훈 등이 데뷔 앨범을 프로듀스했지만 눈에 띄는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프로페셔널 가수라기 하기에는 노래와 춤 등 전반적으로 기량이 부족한 탓이 컸다. 가수 활동이 녹록지 않음을 절감했던 걸까, 김성욱은 1집 이후 연예계를 떠났다.

완전히 떠난 줄만 알았던 그는 2002년 두 번째 앨범 [W re:]로 가요계에 발을 다시 디뎠다. 이번에는 이현도 대신 다른 음악가들을 초대했으며 펑크(Funk)를 선보였다. 또한 모든 수록곡을 작사하며 자랑스럽게 작사가 직함도 달았다. 특히 타이틀곡 'To My Mother'는 형의 죽음으로 힘들게 지냈을 어머니에 대한 각별한 사랑을 표현해 애틋함을 느끼게 했다.

김성욱은 이후 뮤지컬, 영화 "그때 그 사람들" 등에 출연하며 배우로 활동하기도 했다. 하지만 연기에 매진하지는 않았다. 가수로도, 배우로도 모습을 안 보인 지 꽤 됐으니 근황이 궁금하다.


앤 (Ann) | 미국에서 가수 인생 2막 시작하셨네
네 살 때 피아노를 배운 뒤로 음악에 깊이 빠진 보컬리스트 Ann(정안훈)은 2002년 1집 [Infinite Wave Of Love]로 소울풀한 가창력을 뽐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 무명의 가수에게 큰 관심은 모이지 않았다. 2집 타이틀곡 '혼자 하는 사랑'이 음악팬들 사이에서 소문이 나면서부터 존재감을 냈지만 소문의 힘이 약해 차트에 들지는 못했다. 최근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참가자들이 '혼자 하는 사랑'을 부름으로써 회자되고 있다.

2005년 정연준과 R&B 프로젝트 슬로우잼을 결성해 멋진 슬로 잼 음악을 선전했지만 단발로 마무리됐다. 윤미래의 'What's Up! Mr. Good Stuff', '잊었니...', 드렁큰 타이거의 'Magic' 등을 작곡하기도 한 Ann은 한국에서의 활동을 마감하고 현재 미국에서 Ann One이라는 예명으로 활동 중이다.


정연준 | 솔로로 남긴 것은 파일럿뿐
힙합, R&B 그룹 업타운을 시작으로 Ann과의 듀오 슬로우잼, 교포 퓨전으로 주목받았던 소울타운까지 꽤 많은 히트곡을 남겼는데 정연준을 슈가맨으로 소개하니 의아할 이가 있을 것이다. 의문이 들긴 해도 솔로에 한정한다면 수긍이 갈 것이다.

음악계에서 노래 잘하기로 소문이 자자한 정연준은 다른 가수들의 백 보컬로 활동하다가 1992년 첫 앨범을 발표했다. 하지만 그 앨범을 본 사람조차 찾기 어려울 정도로 앨범은 완전히 묻혔다. 당시 팝과 록을 지향했던 그는 드라마 "파일럿"의 주제곡 가수로 발탁됐고,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많은 이에게 이름을 알렸다.

OST의 성공에 탄력을 받은 그는 두 번째 솔로 앨범을 제작한다. (이 앨범을 1집으로 아는 사람들이 많은 사실은 진짜 1집의 실패 정도가 실로 대단했음을 일깨운다) 여기에서 R&B, 소울의 감성을 내보이며 박미경, 듀스 등을 섭외했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이후 앨범에 수록됐던 '하루하루 지나가면'을 타샤니가 '하루하루'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한 것이 히트함으로써 1집이 알려지게 된다.

어쨌든 솔로로서는 1993년이 마지막이니 흑인음악으로 완전히 방향을 바꾸기 전의 스타일을 다시 경험하고픈 팬들도 있을 듯하다.


최진경 | 미국으로 가셨나요?
턱수염, 그윽한 음색, 서툰 한국어 발음이 인상적이었던 가수. 1995년 하우스풍의 댄스곡 'Sha La La La'로 데뷔해 서양 냄새 물씬 풍겼지만 다수의 시선을 끌지는 못했다. 멜로디와 편곡이 세련됐으나 중간에 들어간 폭풍 저음의 내레이션이 다소 부담감을 안기긴 했다. 그래도 '기억해 줘 (Remember Me)', '기대하지 않았어' 같은 발라드는 지금도 편안하게 들을 만하다.

최진경은 이듬해 두 번째 앨범 [Out From The Deep]을 발표했다. 'Sha La La La' 리믹스 버전을 비롯해 전작에 수록된 몇몇 노래가 또다시 실리는 등 급조된 느낌이 났다. 팝과 성악을 혼합한 타이틀곡 '슬픈 전쟁'이 당시 인기를 끌었던 MBC 예능 프로그램 "테마게임"에 삽입돼 인지도를 높이게 된다. 아쉽게도 이것이 도약과 활동의 끝이었다.


신은성 | 하필이면 그걸 밀어서...
유리, 미나, 유니, 이효리 등 2000년대 초반은 업비트의 컨템퍼러리 R&B와 팝을 접목한 스타일이 유행하던 시기였다. 신은성 역시 그 흐름의 부피를 키운 가수. 그러나 그런 류의 타이틀곡 'Go Away' 대신 동명의 팝 명곡을 차용한 중간 템포의 발라드 'Autumn Leaves'가 많은 사랑을 받았다.

2004년 두 번째 앨범을 발표, 타이틀곡 'Bye Bye'로 전보다 더 센 음악을 들려줬으나 데뷔 때와 마찬가지로 대중에게 어필하는 데 실패했다. 오히려 경쾌하지만 순한 'Touch'나 발라드 'My Love'가 반응이 좋았다.

음반의 전반적인 퀄리티 부족과 비슷한 콘셉트의 가수가 집중된 시장의 상황 등 여러 이유가 실패의 원인이겠지만 신은성은 타이틀곡 선정 미스라는 부끄러운 자취를 남기고 사라졌다. 그리고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멜론-뮤직스토리-다중음격 http://www.melon.com/musicstory/inform.htm?mstorySeq=2787&startIndex=0


덧글

  • 코코 2015/09/08 14:52 #

    와, 추억 돋네요~
    그나저나 파일럿 정연준이 그 정연준.... 덕분에 오늘 또 신기한 거 알아가네요.
  • 한동윤 2015/09/08 15:24 #

    앗, 모르셨군요. 새로운 정보가 됐다니 뿌듯합니다 :)
  • 작두도령 2015/09/08 22:12 #

    그러고보니 정연준님 노래는 은근히 알게 모르게 리메이크가 많이 되었네요.
    '가르쳐줘요'가 수록되었던 슬로우잼 1집 앨범 수록곡 몇 곡은 아직도 찾아 듣곤 합니다.

    현승민님은 99년과 03년도에 선보였던 곡들이 흥행에 실패했던 곡들도 아닌데
    이상하게 활동이 지지부진 해서 아쉽더군요. 불과 몇 년 전에만 해도
    건대에서 치킨집도 하셨었는데 지금도 하시는지 모르겠군요...;;
  • 한동윤 2015/09/09 11:34 #

    슬로우잼은 살짝 아쉽긴 하지만 '다가와'만으로도 충분히 기억에 남을 그룹이라고 생각해요.
    오~ 현승민 씨 치킨 집을 하셨군요. 역시 연예계를 떠나면 개인사업을...
    지금도 한다면 (구경 차) 가 보고 싶네요
  • 역사관심 2015/11/24 00:58 #

    헉 파일럿의 그 가수가 (정연준) 업타운멤버였다니 정말 상상도 못했습니다. 지금도 파일럿을 질투보다 훨씬 뛰어난 곡이라 생각하는데...이런걸보면 90년대에는 정말 얼굴없는 활동이 가능했던 시대였어요.

    그리고 현승민씨 첫 슈가맨 등극! ^^
  • 한동윤 2015/11/25 11:21 #

    솔로 시절 음악 스타일이랑 업타운 때랑 많이 달라서 상상이 더 안 되실 거예요.
    하지만 한때는 포크 음악도 하셨다는~ :)
  • ㅁㄴㅇㄹ 2016/04/05 22:56 # 삭제

    김성욱은 형 김성재의 존재가 너무나 컸을꺼에요
    재밌는건 키 몸무게 신체사이즈 전부 김성재랑 거의 똑같았다고 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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