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暗) 덩어리들만 남긴 [슈가맨을 찾아서] 원고의 나열

재미있지 않았다. 그다지 유익하지도 못했다. 지난 8월 19일과 26일 파일럿으로 편성된 JTBC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을 찾아서]는 괜찮은 프로그램으로 여겨지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유재석과 유희열 진행에 일가견이 있는 톱스타를 MC이자 각 팀 대표로 세우고 인기 연예인, 잘나가는 작곡가들을 패널로 섭외했지만 알차거나 썩 즐겁지는 않았다. 산만하고 군더더기가 많은 전형적인 왁자지껄 예능에 불과했다.

프로그램은 2012년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서칭 포 슈가맨(Searching For Sugar Man)]에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다. 영화가 1970년대 초 단 두 장의 앨범으로 내고 홀연히 사라졌지만 대중에게 진한 여운을 남긴 뮤지션 식스토 로드리게스(Sixto Rodriguez)의 궤적과 존재를 더듬어 가듯 [슈가맨을 찾아서]도 한때 많은 사랑을 받았다가 현재는 브라운관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 가수를 찾아 나선다. 한마디로 왕년의 인기 가수를 소환하는 포맷이다.

한 회에 1시간 30분가량 되는 방송은 여러 단계로 구성된다. 처음은 유재석 팀과 유희열 팀이 '슈가맨'으로 모시는 인물과 그의 히트곡을 가사로만 맞추는 퀴즈로 시작된다. [가족 오락관]을 연상시키는 답답한 놀이의 향연이다. 이어 슈가맨을 추적하는 과정이나 동료 뮤지션들, 혹은 연예계 지인들이 슈가맨에 대한 평과 기억을 이야기하는 영상이 재생된다. 1회 김준선에 대한 정보를 구하는 부분에서 김건모는 허튼소리를 늘어놓았다. 현진영, 배우 김재원의 인터뷰도 그렇게 실속 있지는 않았다. 제작진도 이 부족함을 깨달았는지 2회에서는 나름대로 정보 제공에 신경을 썼다.

각 팀의 슈가맨이 히트곡을 부르며 스튜디오에 들어선 뒤에는 그들의 활동과 배경을 압축한 키워드들을 중심으로 담소를 나눈다. 당시 이들의 인기가 대단했음을 증명하는 얘기가 압도적으로 많다. 여기에 더 붙는 것은 시시껄렁한 신변잡기와 몰라도 되는 개인의 기호 정도다. 왜 활동이 뜸하게 됐는지 얘기를 듣는 부분에서만 약간 진지해진다.

가수와 노래가 주 제재임에도 음악 얘기가 너무 적어서 허망하다. 1회에는 김준선과 박준희가 출연했다. 데뷔곡 'Arabian Night'로 큰 인기를 얻은 김준선은 2집 타이틀곡 '마마보이'로도 활발히 활동했다. 이후 컬트, 뷰투로 음악적 변화와 성장을 나타냈고 서영은의 '그대를 위한 나', 이주노의 '무제(舞帝)의 귀환(歸還)', KCM의 '그대 곁으로' 등을 작곡하면서 대중성과 실험성을 두루 나타냈다. 박준희는 탁이준이의 '예감했던 이별', 드렁큰 타이거의 '난 널 원해' 등 다른 가수들의 백업 싱어로도 활약했으며 혼성 트리오 콜라로 '모기야', '우울한 우연' 등의 히트곡을 남겼다. 음악만으로도 다룰 소재가 많은데 히트곡을 알아맞히는 퀴즈로 15분 이상을 보내고 음악과 상관없는 추억을 30분 이상 풀어놓으니 부실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허무한 와중에 사실 전달마저 방치해 실망감을 안긴다. 1회에서 박준희의 프로필을 언급하며 1992년에 발표한 '눈 감아 봐도 II'에서 국내 여가수 최초로 랩을 했다고 소개했다. 이를 읊은 유희열은 확실하냐는 유재석의 질문을 듣고는 확신이 서지 않는 듯 주춤거렸다. 이에 박준희는 DJ 신철의 말을 인용하며 아마 맞을 거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정보다. 1988년 김완선이 이장희의 원곡을 리메이크한 '그건 너'에서 랩을 한 것이 국내 최초 여가수의 랩으로 여겨진다. 박준희 이전에 인순이도 랩을 했으니 최초라는 소개는 완전히 틀리다. 출연자를 그럴싸하게 포장하는 데 급급해 엉터리 내용까지 취하는 모습에서 프로그램의 빈약함이 한 번 더 상승한다.

슈가맨들과의 한담을 마무리하면 중요한 이벤트가 거행된다. 패널로 출연한 스타 작곡가와 (아이돌) 가수가 슈가맨들의 히트곡을 재해석해 선보이는 일이다. 여기가 [슈가맨을 찾아서]의 핵심이다. 좋은 뜻에서가 아니다. 한국 주류 대중음악의 참혹한 현황을 엿볼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1회에서 유재석 팀에 속한 EXID의 하니가 'Arabian Night'를, 유희열 팀의 걸스데이 소진이 '눈 감아 봐도'를 불렀다. 둘의 퍼포먼스는 모두 섹시 콘셉트였다. 2회에서 인피니트 성규가 김부용의 '풍요 속의 빈곤'을 부를 때 나인뮤지스의 경리가 찬조 출연해 고혹을 기조로 한 몸짓을 선보였다. 총 네 번의 공연 중 섹시미를 강조한 것이 셋이라는 사실은 지금 가요계가 얼마나 과하게 성적인 퍼포먼스에 집착하고 있는지 일러 주는 단적인 예다.

여기서 문제가 하나 더 발견된다. 'Arabian Night'가 어린 시절의 꿈과 기억, 열정의 회복을 주제로 하기에 야한 춤은 어울리지 않는다. 하니의 안무가는 작곡가 신혁이 재해석한 곡의 느낌에 맞추다 보니 그런 동작들을 짰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눈을 사로잡는 데에만 몰두하는 현재 가요계의 고질적인 습관, 프로듀서도 안무가도 가수도 원곡의 정서를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는 미숙한 현실 일부를 전시한다.


몇몇 리메이크를 통해서는 창작자라고 하는 이의 파렴치하고 되바라진 모습도 목격할 수 있었다. 작곡가 신사동호랭이는 새롭게 만든 '눈 감아 봐도'를 선보이기 전 1992년의 '눈 감아 봐도'가 당시 팝 트렌드를 반영했듯이 리메이크 작품도 현재 서구 팝에서 인기를 끄는 장르로 나타냈다고 소개했다. 그가 제작한 리메이크 버전은 신시사이저 루프가 특징이었다. 하지만 신시사이저의 톤과 구성, 뒤에 벨소리 비슷하게 깔리는 진행은 미국 그룹 뉴 슈즈(Nu Shooz)의 1986년 히트곡 'I Can't Wait'를 빼다 박았다. 작정하고 모델 삼아 따라 했으니 사실상 표절인 셈이다. 죄를 저지르면서 설명은 참 거창하게도 했다.

신사동호랭이의 얕은 수는 2회에서도 이어졌다. 그가 만든 '풍요 속의 빈곤' 2015 버전은 후렴구에 브라스 프로그래밍을 넣어 경쾌함과 원기를 보충한다. 노래는 이 파트에서 곱절로 흥을 낸다. 그러나 이 브라스 연주 역시 무척 익숙하다.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의 'Jam'을 벤치마킹했던 마크 론슨(Mark Ronson)의 'Uptown Funk'를 또 따라 하는, 연장선 같은 비슷한 구성을 보이는 까닭이다. 출시되는 노래는 많지만 모조품이 태반이어서 허한 가요계의 풍요 속 빈곤을 자진해서 일깨우는 리메이크였다.


각 팀이 출품한 리메이크 버전의 우열을 가리는 투표는 삽질의 피니시블로다. 투표인은 슈가맨들의 히트곡이 출시된 해에 태어난 20대의 일반인 열한 명으로 구성됐다. 원곡을 전혀 모르는 이들이 새로 만들어진 노래의 무대를 보고 승패를 판정하는 방식이다.

아무리 쇼를 위해서라고 해도 원곡에 대한 경험이 없는 사람들을 모아 놓고 방금 만든 노래의 선호도를 따지는 것은 앞서 슈가맨과 나눈 이야기, 그들의 히트곡이 갖는 정서와 성과 등을 부정하는 꼴이나 다름없다. 그냥 일반적인 신곡 품평회에 지나지 않는다. 슈가맨들의 노래가 지금 젊은 세대에게도 충분히 어필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더더욱 설득력이 떨어지는 기획이다. 새로운 가사의 추가, 눈요깃거리의 강화, 멜로디의 변경 등 방송에서 나온 새 버전은 오리지널과 제법 많이 다른 탓이다. 여간해서는 수긍되지 않는 설정이었다.

기획 의도는 좋다. 기성세대에게는 추억을 복원해 주는 자리이며 젊은 사람들에게는 몰랐던 가수와 노래, 옛날 대중문화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는 계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긍정적인 면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슈가맨을 찾아서]는 어두움으로 점철되기만 했다. 잘한 것이라곤 가요계의 못마땅한 현실을 압축하는 편람 역할을 했다는 점뿐이다. 정규 편성이 되느냐 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개선하고 보수해야 할 부분이 너무나 많다.

(한동윤)


덧글

  • 동사서독 2015/09/10 20:10 #

    기본적으로 이 프로그램은 '서칭 포 슈가맨'이란 영화가 한국의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지 못한 영화이며 지금의 시청자들에게 슈가맨은 설탕을 많이 사용하는' 백종원'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생각하지 않은 포맷인 것 같습니다.
  • 한동윤 2015/09/11 10:31 #

    아, 백종원 씨 별명이 슈가맨이었죠.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 안 나오니까 잊게 됐어요 ^^;
    말씀처럼 영화가 흥행에 성공한 것도 아니라서 좀 오버한 면도 있어 보여요.
  • 동사서독 2015/09/11 11:00 #

    휴 그랜트와 드류 배리모어가 출연했던 영화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 개봉 이후에 그 제목을 본 딴, 음악+예능 프로그램이 생겼던 적이 있었는데 그 영화 제목은 직관적으로 뜻이 와닿는데다가 영화가 나름 인기가 있었기에 시청자들이 프로그램 포맷을 이해하기 쉬웠는데 '서칭 포 슈가맨'은 너무 매니악한 영화가 아니었나 싶어요.
  • 한동윤 2015/09/11 17:42 #

    그 프로그램 몇 번 봤어요. 영화 덕분에 제목 인지는 쉽게 됐는데 곡 작업과 로맨스 비슷한 포맷을 접목하는 게 쉽지 않았던 것 같아요.
  • anchor 2015/09/14 10:23 #

    안녕하세요, 이글루스입니다.

    회원님께서 소중하게 작성해주신 이 게시글이 9월 14일 줌(zum.com) 메인의 [이글루스] 영역에 게재 되었습니다.

    줌 메인 게재를 축하드리며, 9월 14일 줌에 게재된 회원님의 게시글을 확인해 보세요.

    그럼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한동윤 2015/09/14 14:04 #

    네,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
  • 소나리 2015/10/09 20:19 # 삭제

    정말 잘 읽고 갑니다. 윤PD가 얼른 이 프로그램을 다른 PD에게 넘기고...
    크라임씬 시즌3를 만들기 시작하면 좋겠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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