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에 단비를 뿌린 최고의 밴드 015B(공일오비) 원고의 나열

대중음악은 대중과의 교감을 기본 덕목으로 갖는다. 기쁨, 슬픔, 외로움, 누군가를 향한 설렘 등 보통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여러 감정을 노래함으로써 대중과 친분을 맺는다. 대중과의 교감은 보편적인 감정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많은 이가 공통되게 목격하는 세상의 이모저모를 언급하고 내보이는 일도 공감대 형성의 중대한 면을 차지한다. 정서를 함께 나눌 면적이 너른 노래일수록 많은 이에게 오랫동안 애청된다. 이 조건을 만족하며 노래들의 지속적인 인기를 검증하는 뮤지션 중 하나가 015B(공일오비)다. 올해로 데뷔 25주년을 맞은 015B는 뛰어난 교감 능력으로 여전히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애틋함을 증대하는 신선한 서정미
015B 노래의 으뜸 매력은 참신한 서정성이다. 여느 가수들과 마찬가지로 사랑 얘기를 주로 풀어냈지만 평범하거나 고리타분하지 않았다. 1990년 데뷔 앨범의 타이틀곡 '텅 빈 거리에서'는 사랑하는 이를 잊지 못한 나머지 몇 번이나 전화를 하려고 하지만 주저하는 모습을 "야윈 두 손에 외로운 동전 두 개뿐"이라는 가사로 에둘러 표현한다. (이때 공중전화 통화 요금은 20원이었다) 용기를 내지 못하는 상태를 없어지지 않는 동전에 빗대 더욱 심한 처연함을 연출한다.

1991년에 낸 2집 [Second Episode]의 '변해 간 세월 속에서'는 다른 사랑으로 옛 연인을 잊으려 했지만 "결국 너의 틀에서 비교할 뿐이잖니"라며 지나간 사랑을 갈구하고 있음을 전한다. 5집 [Big 5]의 '그녀의 딸은 세 살이에요'는 이제는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된 옛 사랑의 아이를 매개로 이별 후 흘러간 시간과 변화를 수긍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기억에 붙잡아 두는 한 남자의 연모를 묘사한다. 언뜻 지질해 보이긴 하지만 아이를 가사에 들인 탓에 털어놓는 소회가 담담하게 다가온다.

TV 속 광고, 친구의 전화 등 변함없는 일상을 거론하며 이별 후 확 달라진 처지와 심정을 극대화하는 '모든 건 어제 그대로인데', 헤어진 연인이 불행하길, 고통받길 바란다는 말로 여전히 그를 잊지 못함을 역설적으로 말하는 'I Hate You' 등도 015B의 사랑에 대한 뻔하지 않은 수사(修辭)를 설명해 준다. 그럼에도 이들 가사는 사랑과 이별 때문에 생겨나는 갖가지 감정을 폭넓게 포섭해 많은 이의 공감을 샀다.


사회의 문제점을 녹여낸 유의미한 메시지
사회와 밀착한 내용도 015B 노래들의 특징이었다. 이 역사는 2집의 첫 곡 '4210301'로 시작된다. 노래는 소음, 매연, 등 굽은 생선 등을 언급하면서 날로 심해지는 환경오염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키우던 개가 산성비를 먹고 죽었다는 간주의 영어 내레이션은 가상 치고는 지나치게 앞서 나간 것이긴 하지만 노래 덕분에 음악팬들은 환경 문제를 한 번쯤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제목은 당시 환경부 전화번호로, 노래의 인기 때문에 업무가 마비될 정도로 많은 전화가 걸려 와 번호를 바꾸는 일도 있었다)

그룹은 3집의 '적(敵) 녹색인생'에서 다시 한 번 환경 문제를 다뤘다. 하지만 딱딱하지 않았다. 무스와 일회용 용기 같은 화학제품의 만연, 없는 사람으로 보이기 싫어 식당에서 음식을 어느 정도 꼭 남기는 행위 등 누구나 일상에서 접하는 일들을 기록해 친근하게 느껴졌다. '적(敵) 녹색인생'은 90년대 젊은이들에게 부담 없는 환경보호 캠페인송으로 남았다.


1993년에 출시한 4집 [The Fourth Movement] 중 '제사부(第四府)'는 진실에 무책임한 옐로저널리즘을 비판하고, '교통 코리아'는 운전자들의 폭력적인 운전 습관을 꼬집는다. 5집 중 'Netizen'은 정보화 사회에서 컴퓨터만 바라보는 탓에 사람들과는 단절되는 상황을, '결혼'은 좋은 스펙을 가진 사람을 배우자로 두려고 하며 화려한 예식을 추구하는 천박한 결혼 문화를 지적한다. 015B가 던진 화두가 20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사회의 문제로 남아 있다는 사실은 퍽 씁쓸하다.

사회 현상의 고찰이 매번 무겁지는 않았다. 2집의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요즘 식으로 "어장관리"를 하듯이 거리를 두며 대하는 젊은 여성을 소재로 다룬다. 2011년에 낸 EP [20th Century Boy]의 '고귀한씨의 달콤한 인생'은 허세와 포장된 자랑에 집착하는 SNS 삶을 들춰낸다. 4집의 '요즘 애들 버릇없어'는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 사이의 간극을 논하며 서로 이해가 필요함을 주장한다. 우리들의 이야기, 생활이기에 015B의 메시지는 친숙하면서도 진지하게 들린다.


신선함과 다양성을 겸비한 음악
음악은 항상 다채로워 감상을 즐겁게 했다. 전신이었던 무한궤도 때와 마찬가지로 1집은 아마추어 느낌이 나는 풋풋한 팝 록, 발라드가 다수였다. 그러나 2집의 '4210301',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에서는 국내에 흔하지 않던 랩을 선보이며 트렌드를 이끌었다. 또한 같은 앨범에 수록된 연주곡 '동부 이촌동 새벽 1:40'에서는 재즈, 이지 리스닝풍의 팝을 표현함으로써 고급스러움을 뽐냈다.

이후 변화와 새로운 스타일의 모색은 더욱 활발해졌다. 1분 20초에 달하는 긴 길이의 전주로 파격을 행한 '아주 오래된 연인들'로는 하우스를, '적(敵) 녹색인생'에서는 아카펠라를 선보였다. 5집은 인더스트리얼('바보들의 세상'), 디스코('단발머리'), 뉴 잭 스윙('마지막 사랑'), 펑크(Funk)('결혼'), 인텔리전트 댄스음악과 록의 퓨전('Netizen') 등으로 변화에 전보다 더 적극적이었다.


1막의 마지막이 된 1996년의 6집 [The Sixth Sense Farewell To The World]도 어마어마했다. 테크노('인간은 인간이다', '구멍가게 소녀'), 인더스트리얼('마르스의 후예들', 'Nuclear Energy'), 얼터너티브 록('콩깍지'), 뉴에이지('Femme Fatales') 등 다양한 장르로 꾸며졌다.

2006년 7집 [Lucky 7]으로 10년 만에 컴백했을 때에도 유행을 빠르게 포착하는 민첩성은 여전했다. '처음만 힘들지'로는 칩튠(Chip-tune)을, '그녀에게 전화 오게 하는 방법'에서는 당시 한창 인기를 끌던 피치를 올린 샘플링 기반의 힙합을 들려줬다. '잠시 길을 잃다'로는 R&B를, '성냥팔이 소녀'로는 라티음악을 접목한 하우스를 시도하는 등 새로운 양식을 향한 탐구심은 변함없이 강했다.

객원 가수를 통한 개성 강화
015B를 언급할 때 빠질 수 없는 것이 객원 가수 시스템이다. 이들이 객원 가수를 둔 국내 최초 뮤지션은 아니었지만 1집부터 게스트 보컬리스트들을 기용해 작품에 개성을 부여해 왔다. 지금의 피처링이 이들로부터 정착된 셈이다. 물론 정석원, 장호일, 조형곤 세 멤버가 몇몇 곡에서 리드 보컬을 담당하기도 했다.

현재 싱어송라이터이자 엔터테이너로서 큰 인기를 누리는 윤종신이 터줏대감이었고, '아주 오래된 연인들'의 김태우, '5월 12일'의 이장우, '신(新) 인류의 사랑'을 부른 김돈규 등 걸출한 가수들을 배출했다. 김태우, 이장우, 김돈규는 솔로로서 각각 '날 떠나보내려는 너에게', '훈련소로 가는 길', '나만의 슬픔' 같은 노래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공일오비 객원 보컬 이장우(왼쪽)와 김돈규


015B의 객원 보컬은 3집 중 윤종신과 박선주가 듀엣으로 부른 '우리 이렇게 스쳐 보내면'을 제외하고 여가수가 맡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당시 음악계에서 유명했던 장필순, 신윤미 등도 보컬로 참여했으나 백업 보컬만 맡았다.

남성 보컬만 찾던 전통 아닌 전통은 컴백을 알린 2006년의 리믹스 앨범 [Final Fantasy]에서 깨졌다. 이곳에서 여성 멤버가 리드 싱어인 블루 샤벳('수필과 자동차'), 캐스커('21C 모노리스')를 초대해 여성의 목소리를 들였다. 같은 해 출시한 정규 7집에서도 요조('처음만 힘들지'), 호란('성냥팔이 소녀'), 신보경('잠시 길을 잃다') 등을 섭외해 소녀, 숙녀의 감성을 표출했다.

015B는 게스트들을 왕창 모은 "단체곡" 포맷으로도 돋보였다. 90년대에 학창 시절을 보낸 이라면 응당 아는 노래, 친구들과 노래방을 갔을 때 우정을 다지며 꼭 부르던 2집의 '이젠 안녕'이 대표적이다. 이 노래가 많은 사랑을 받자 유영석과 송경호의 듀오 푸른하늘도 1993년 015B의 방식을 흉내 낸 '마지막 그 아쉬움은 기나긴 시간 속에 묻어 둔 채'를 발표했다. 그룹의 단체곡 형식은 3집의 '수필과 자동차', 4집의 '우리들의 이야기'에서도 만날 수 있다.


후에 관계가 소원해지긴 했지만 무한궤도로 짧게나마 한솥밥을 먹었던 신해철도 1집과 2집에 보컬로 참여했다. 2집의 '이젠 안녕'에서는 파트의 고른 배분 때문에 4마디만 솔로로 불렀으나 1집에서는 발라드 '슬픈 이별', 가스펠의 요소가 가미된 로큰롤 '난 그대만을' 등 두 곡을 불렀다. '난 그대만을'은 작사, 작곡까지 해 015B와의 친분을 드러냈다.


데뷔 25주년, 지금도 정겨운 015B(공일오비)
015B는 사랑, 청춘의 삶,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노래함으로써 젊의 세대와 교감했다. 여기에 멜로디까지 매끈하고 살가워 많은 이가 즐겨 들었다. 강한 대중성을 간직하면서도 높은 완성도와 부단한 실험으로 예술성도 함께 나타냈다. 1993년 정규 앨범에 더해 가스펠 음반을 출품하고 정석원, 장호일, 조형곤이 각자 다른 스타일의 솔로 앨범을 낸 사실은 015B의 대단함을 부연한다. 결정적으로 이렇게 히트곡이 많으면서 허술하지 않은 작품 세계를 보여 준 아티스트는 흔치 않다. 2012년 '짝', '80' 등의 싱글을 낸 뒤 별다른 활동을 보이지 않는 상태지만 이들의 음악은 지금도 라디오 방송 등에 흐르며 뚜렷한 존재감을 낸다. 그래도 가까운 시일 안에 공감의 끈을 맞잡을 신곡을 들고 나오기를 희망한다. 데뷔 25주년을 축하한다.

멜론-뮤직스토리-다중음격 http://www.melon.com/musicstory/inform.htm?mstorySeq=2832&startIndex=0


덧글

  •  sG  2015/09/22 12:05 #

    저로서는 7집을 015B의 중요한 초기 앨범들과 한 문장에 언급하기가 민망하네요. 카녜님이 보고 계시는데...
  • 한동윤 2015/09/24 10:34 #

    공일오비가 유행을 잘 잡는다는 걸 알려 준 예죠. 저땐 그 기법이 워낙 유행이기도 했지만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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