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명, 뮤지션들의 새 출발 원고의 나열

국내 개명 신청이 매년 증가하고 있다. 개명 절차가 예전보다 훨씬 간소해진 탓도 있겠지만 이는 기본적으로 이름에 불만을 느끼는 사람이 여전히 많음을 의미한다. 음악계도 이름을 바꾸는 아티스트가 제법 많다. 저마다 심사숙고해서 예명을 지었겠지만 단순 변심, 자기만의 의미 부여, 혹은 기존에 나온 상호와의 충돌 등 이런저런 이유로 개명을 감행하곤 한다. 때로 개명은 아티스트에게 좋은 전환점이 되기도 하며, 더러는 그렇지 못한 결과를 야기하기도 한다. 뮤지션들의 개명은 각자 지닌 사연과 뜻으로 잔재미를 제공해 준다.


Diddy | 처음이 가장 좋았어
개명 하면 Diddy, Diddy 하면 개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학교를 중퇴하고 비트메이커, 프로듀서로 음악계에 발을 들인 Sean Combs는 1997년 Puff Daddy라는 예명을 달고 래퍼로 데뷔했다. 빌보드 싱글 차트 넘버원을 기록한 'Can't Nobody Hold Me Down', 'I'll Be Missing You'를 포함해 데뷔 앨범에서 다섯 편의 히트곡을 배출함으로써 그의 이름은 대중의 기억에 빠르게 각인됐다.

하지만 2001년 세 번째 앨범 [The Saga Continues...]를 발표하면서 P. Diddy라는 새로운 이름을 사용했다. "Daddy"를 구어식으로 표기함으로써 힙합의 느낌을 강하게 내려는 의도에서였다. 그러나 이것도 한때, 2006년 [Press Play]를 낼 때에는 "P"를 뺀 Diddy로 다시 이름을 바꿨다. 표기는 간략해졌지만 왠지 모르게 첫 이름만큼 입에 잘 붙지는 않았다. 게다가 두 명의 여성 보컬리스트와 함께한 프로젝트 그룹 Diddy – Dirty Money가 좋은 성적을 달성하지 못해 현재의 이름을 음악팬들에게 인식시키는 데에도 실패했다.

두어 차례 개명을 했지만 한국에서 Sean Combs는 무조건 Puff Daddy로 통한다. 그 시절 낸 'I'll Be Missing You'의 인기가 대단했고 국내에서 아직도 애청되고 있으니….


뎁인뎁쇼 | 이름을 적절히 잘 바꿨는뎁쇼?!
이토록 간결하면서 임팩트 있는 개명이 또 어디 있을까 싶다. 2004년 페퍼톤스의 객원 보컬로 데뷔해 어느덧 활동 10년을 넘긴 여성 싱어송라이터 뎁은 최근 밴드를 결성하면서 뎁인뎁쇼(Deb In Deb Show)로 이름을 변경했다. 그 옛날 하층민들이 쓰던 "-ㄴ뎁쇼"의 친근함, 장난기 넘치는 어감을 내보이면서 "뎁이 뎁의 쇼에 있다"는 달라진 상태를 명확히 밝히는 센스 만점 개명이다. 그동안 해 왔던 음악처럼 깜찍하고도 충분히 도발적이다.


Snoop Dogg | 그때그때 달라요
올해 "쇼 미 더 머니"에 심사하러 와서 재미있는 구경 제대로 한 Snoop Dogg는 개명계의 꿈나무로 성장 중이다. 두 번째 앨범까지 Snoop Doggy Dogg라는 이름을 쓰고 1997년 데스 로 레코드를 떠나면서 지금의 이름을 계속 사용한 그는 요즘 들어 닉네임을 자주 바꾸고 있다.

이는 하나의 이름을 오래 쓴 데서 오는 권태감 때문은 아니다. 하는 음악 스타일에 따라서 캐릭터 바꾸듯이 이름을 바꾸는 식이다. 2013년 첫 레게 앨범 [Reincarnated]를 낼 때에는 Snoop Lion으로, 같은 해 펑크 뮤지션 Dam Funk와 프로젝트 그룹 7 Days Of Funk를 결성해 래퍼가 아닌 싱어로서 활동할 때에는 Snoopzilla로 출현했다. 또한 일렉트로닉 뮤직을 하는 자리에서는 DJ Snoopadelic이라는 예명을 선택했다. 그가 선보이지 않은 장르가 무수하니 새로운 음악, 새로운 이름으로 나오는 것을 보는 일도 재미있을 듯하다.


Prince | 왕자님은 이름을 바꿔도 폼이 나십니다
펑크(Funk), 소울의 마에스트로, 작은 거인 Prince의 개명은 심오하고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1978년 데뷔한 그는 Prince라는 이름을 죽 써 오다가 1993년 남성을 뜻하는 기호(♂)와 여성을 뜻하는 기호(♀)를 조합한 전에 없던 새로운 기호로 개명했다. 이는 92년에 발표한 14집 [Love Symbol Album]에서 선보인 "러브 심벌" 로고였다. 이 기호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 난감해하던 매체들은 Prince를 언급할 때 "The Artist Formerly Known As Prince" 또는 그냥 "The Artist"라고 일컬었다. 그의 배급을 담당한 워너브라더스는 신문사 등에 인쇄 시 편의를 위해 14집의 로고를 보내 주기도 했다.

Prince가 특별한 로고로 이름을 대신한 것은 일종의 투쟁이었다. 90년대 들어 그는 워너브라더스와 계약을 마무리하고 자유롭게 창작 활동을 벌이고자 단시간에 새 앨범들을 제작했다. 하지만 회사에서는 음악 시장이 Prince의 노래들로 이미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며 신보 출시를 보류했다. 이에 Prince는 워너브라더스가 자신을 잡아 두려고 한다면서 93년 대중 앞에 설 때 볼에 "노예(Slave)"라는 글자를 쓰고 나타났다. 90년대 중반 워너브라더스와 계약을 만료했을 때 Prince는 비로소 원래의 이름을 당당하게 사용했다.


안다 (Anda) | 잘 바꾼 것 같은데 왜 불안하지?
2012년 '말고'로 데뷔한 여가수 안다미로는 올해 안다로 이름을 바꿨다. "담은 것이 그릇에 넘치도록 많이"라는 뜻의 예쁜 순우리말 이름이었으나 입에 잘 붙지 않는다는 이유로 내린 결정이었다. 더구나 요즘은 성을 떼고 이름 두 음절만 쓰는 가수가 많으니 트렌드를 받아들인 변화이기도 했다.

이름을 바꾸면서 음악 성향도 바꿨다. 안다미로로 활동할 때 그녀는 포스트 디스코, 일렉트로닉 댄스음악 같은 화려하고 강한 스타일을 타이틀곡으로 들려줬다. 하지만 안다로서 낸 'S대는 갔을 텐데', 'Touch' 등은 이제 R&B를 지향함을 분명히 전했다. 안다미로였을 때에는 의상이나 화장도 강렬했던 데 반해 개명하고 나서는 외양도 발랄하게 변했다.

포털사이트에서 안다미로를 검색하면 같은 이름의 음식점만 상위에 나오는 것도 개명 이유 중 하나였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 안다로 검색하면 "돈 모으는 법도 배워야 안다", "안다는 사람만 안다는 맛집" 이런 것들이 우선 나온다. 개명은 과연 좋은 선택이었을까?


라마 (RAMA) | 6년 만에 다시 찾은 이름
래퍼 라마는 재치 있는 표현, 일상에 밀착한 내용, 진지한 사회성 등을 고루 아우르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어법을 구축했다. 또한 국내에서는 생소했던 믹스테이프 포맷의 대중화를 선도한 인물이기도 하다.

2005년부터 솔로와 개화산, 7인ST-Ego 크루 등을 오가면서 활발히 활동한 그는 2012년 새로운 그룹 롸마와 제4금융 (The RAMA)을 결성했다. 이때 미국 래퍼 Kendrick Lamar와의 혼동을 피하고자 롸마로 개명했다. 하지만 앨범이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면서 개명도 특별한 효과를 내지 못했다.

2013년 자신의 본명 희재를 영어로 표기한 HEE Z로 다시 한 번 개명해 'Lucky Zzang', '희재노믹스' 등의 싱글을 발표한 그는 올해 초 원래 이름 라마로 '퇴계, 율곡, 사임당 & 세종'을 출시했다. 래핑이 요즘 스타일이 아니라서 큰 인기를 얻지 못하는 상태지만 익살과 의식을 겸비한 가사는 그를 독보적인 MC로 만든다.


Ameriie | 쁘띠 성형처럼 안 바꾼 듯 바꿨네
한국계라는 사항으로 친근하게 다가온 R&B 여가수 Ameriie는 극세사 개명을 행했다. 2010년 원래 이름 Amerie에 "i"만 하나 더 추가한 것.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다. 그녀는 발음은 같지만 두 개의 "i"가 발산하는 바이브레이션이 자신에게 맞는 것 같다는 말로 개명 이유를 밝혔다.

어떤 이는 이름을 바꾸며 음악적 노선을 변경하기도 하지만 Ameriie는 미세하게 바꾼 이름처럼 변동 사항이 거의 없다. 새로운 이름으로 작년에 낸 신곡 'What I Want'는 평소 들려줬던 노래들과 마찬가지로 소울, 펑크 샘플을 바탕으로 한 질박하면서도 역동적인 소울이었다.


Smif-N-Wessun | CD를 사려고 했는데 총을 주셨어요
미국 동부 힙합 융성기의 한 편을 장식했던 듀오 Smif-N-Wessun의 이름 역사는 짧으면서 길었다. 1993년 동료 힙합 그룹 Black Moon의 데뷔 앨범에 참여해 존재를 알린 이들 듀오는 95년 발표한 1집 [Dah Shinin']이 매체와 음악팬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어 빠르게 인지도를 높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듬해 미국 대표 총기 회사 "스미스 앤드 웨슨(Smith & Wesson)"으로부터 사용 정지 명령을 받았다. 신출내기 언더그라운드 힙합 그룹과 대기업 간의 법적 분쟁의 결과는 누가 봐도 뻔했다.

몇 년 뒤 Cocoa Brovaz라는 새 간판을 달고 나온 이들은 비디오게임 "슈퍼마리오" 테마곡을 차용한 'Super Brooklyn'으로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무단 샘플링 때문에 노래는 정식으로 출시되지 못했다. 이들이 조금만 현명하고 옆에 실력 좋은 변호사만 있었어도 나름대로 성공했을 텐데, 아쉽게도 그게 안됐다.

꽤 긴 휴지기를 거친 그룹은 2005년 3집을 발표했다. 이때는 어떤 연유에서인지 원래 이름인 Smif-N-Wessun을 사용했다. 이후 몇 장의 앨범을 더 내면서도 기존 이름으로 나왔다. 스미스 앤드 웨슨이 이들을 소송한 배경은 고객이 CD를 사는지, 총을 사는지 헷갈리게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것이 다소 황당한 까닭이라는 것을 회사도 암묵적으로 인정했는지도 모르겠다.

멜론-뮤직스토리-다중음격 http://www.melon.com/musicstory/inform.htm?mstorySeq=2856&startIndex=0


덧글

  • 동사서독 2015/09/30 22:40 #

    이상은/리채, 왕정문/왕페이 생각도 나네요.
  • 한동윤 2015/10/01 09:46 #

    그러고 보니 이상은 씨가 왜 리체라는 닉네임을 짓게 됐는지 관심이 없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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