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 장인 닥터 드레(Dr. Dre)의 역작 [Compton] 원고의 나열

평단과 대중이 호응한 최고의 프로듀서


최고라는 수식이 숨결처럼 따라붙는다. 미국의 래퍼 겸 프로듀서 닥터 드레(Dr. Dre)는 평단으로부터 너르고 지속적인 찬사를 받음으로써 힙합 장인의 대열에 들었다. 10대에 클럽 디제이로 음악계에 발을 내디딘 그는 1980년대 중반 일렉트로 밴드 월드 클래스 레킹 크루(World Class Wreckin' Cru)를 결성해 프로듀서로서 감각과 기량을 배양했다. 이후 이지 이(Eazy-E), 아이스 큐브(Ice Cube) 등과 조직한 힙합 그룹 N.W.A로 갱스터 랩 시대의 중심에 서게 된다.

솔로 아티스트와 제작자로도 거침없이 성장했다. 닥터 드레는 1992년에 낸 솔로 데뷔 앨범 [The Chronic]을 통해서 몽환적이면서도 둔중한 사운드의 지 펑크(g-funk)를 선사하며 미국 서부를 대표하는 프로듀서로 자리매김했다. 새천년을 전후해서는 에미넴(Eminem)을 비롯해 피프티 센트(50 Cent), 게임(The Game),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 같은 빼어난 역량과 스타성을 겸비한 래퍼들을 발굴해 미다스의 손임을 재차 증명했다. R&B, 팝 장르에서도 다수의 히트곡을 출품했고 현재까지 여섯 차례나 그래미 어워드를 수상했다. 평단과 대중이 모두 호응하는 아티스트, 그를 언급할 때 엄지손가락이 자연스레 올라갈 수밖에 없다.

N.W.A와 고향 컴턴을 추억하는 처음이자 마지막 무대
한동안 프로듀서 업무에 매진했던 닥터 드레는 16년 만에 세 번째 솔로 앨범 [Compton]을 발표하며 래퍼로 돌아왔다. 오랜 공백 끝에 내는 작품이라는 사실도 화제가 되지만 N.W.A의 역사를 다룬 영화 [스트레이트 아웃 오브 컴턴(Straight Outta Compton)]에 영감을 받아 제작했다는 사항이 설렘과 기대를 증폭한다. 자신이 살아온 도시와 몸담았던 그룹에 대한 헌정의 의미인 셈이다.

닥터 드레의 빛나는 역사는 N.W.A와 함께 호흡한다. N.W.A는 미국 흑인사회의 현실, 흑인이라는 이유로 받는 차별에 대해 속 시원하게 이야기하는 단상이나 다름없었다. 이는 그가 솔로 활동에서도 갱스터 랩을 이어 가는 계기가 됐다. 또한 닥터 드레는 N.W.A를 통해서 감각적인 프로듀싱 능력을 뽐냈다. 소울, 펑크(funk) 음원을 원료로 한 질박하면서도 강한 비트, 메인 루프와 다른 패턴의 리듬을 배치하는 변주 기법은 그를 프로듀서로서 돋보이게 만들었다. 이러니 스스로도 N.W.A 시절을 기념할 수밖에 없다.

앨범은 초호화 캐스팅으로도 빛난다. 아이스 큐브, 스눕 도그(Snoop Dogg) 같은 오랜 동료를 비롯해 에미넴, 게임, 켄드릭 라마, 저스터스(Justus) 등 닥터 드레의 품을 거치거나 새로 발굴한 래퍼들이 두루 참여하고 있다. [Compton]은 삶과 경력이 녹아든 제작 배경, 화려한 라인업과 더불어 닥터 드레의 마지막 솔로 앨범이 될 것이라는 사실로도 각별하다. 힙합 마니아들과 매체의 관심이 뜨거운 이유가 여기에 또 있다.


[Compton]의 눈여겨볼 트랙들

Genocide
도입부의 자동차 엔진 소리가 전달하는 거친 공기와 달리 음산한 분위기로 묘한 중압감을 표한다. 컴턴의 길거리에서 벌어지는 무시무시한 일들을 이야기하는 가사는 네오 소울 가수 마샤 앰브로시어스(Marsha Ambrosius)의 음울한 보컬 덕분에 더 묵직하게 느껴진다. 내용에 따라 카멜레온처럼 톤과 플로를 바꾸는 켄드릭 라마 특유의 메서드 래핑이 역시 훌륭하며, 예전과는 달리 날카롭고 역동적인 래핑을 내뱉는 닥터 드레의 변신도 압권이다.

It's All On Me
앨범에서 가장 대중적인 트랙 중 하나일 것이다. 구수함이 묻어나는 비트, 저스터스와 BJ 더 시카고 키드(BJ the Chicago Kid)가 주고받는 소울풀한 후렴이 그윽한 그루브를 생성한다. 궁핍하게 살던 때, N.W.A의 성공, 180도 달라진 상황, 즐거움도 찾지만 여전히 이런저런 문제들이 남아 있는 현실에 대해 순차적으로 언급하는 가사가 생생하게 다가온다. 닥터 드레는 이를 여유로운 플로로 풀어내 편안함을 더한다.

Darkside/Gone
4분이 안 되는 보통의 러닝타임이지만 각각 다른 반주를 연결해 꽤 장대하게 느껴진다. 또한 상이한 비트를 붙이는 방식에서 N.W.A와 이지 이의 솔로 노래들을 프로듀스했던 한때, 닥터 드레의 과거 작법을 추억하게 된다. 닥터 드레 특유의 묵직한 톤, 켄드릭 라마의 민첩하고도 유연한 플로, 몇 편의 믹스테이프를 통해 매체의 조명을 받고 있는 신인 래퍼 킹 메즈(King Mez)의 재치 있는 래핑이 다채로움을 완성한다.

Animals
1990년대 초, 중반으로 시간을 돌린 듯한 비트를 바탕에 두면서도 상당히 팝적인 풍미를 발산하는 곡이다. 전자의 성격은 동부 힙합의 명 프로듀서 디제이 프리미어(DJ Premier)의 연출에 의해 완성되며, 후자의 특징은 앤더슨 팍(Anderson .Paak)의 래핑과 싱잉의 경계를 교묘히 허무는 천연덕스러운 보컬이 형성한다. 또한 신시사이저와 은은하고 풍성한 코러스로 마감된 훅은 트렌디한 R&B 느낌을 배가한다. 후반부를 장식하는 프리미어 고유의 턴테이블 스크래칭 연주는 한 번 더 추억과 여운을 전달한다.

Talking To My Diary
솔로 아티스트로서 종착을 선언하는 앨범의 대단원을 장식하는 트랙답게 장엄함을 표출한다. 마지막이지만 여전히 강한 기력을 내는 것 같은 근사한 샘플링, 명확한 루프가 신속하게 인식되며 후렴에 깔리는 여성 보컬, 2분 35초 즈음 등장하는 색소폰 연주는 아련한 기운을 증대한다. 제목처럼 일기를 써 내려가는 듯한 진솔한 기록-꿈과 야망, 친구들과 함께 했던 행복한 기억, 뒤틀린 관계를 향한 아쉬움 등-은 영화 [스트레이트 아웃 오브 컴턴]의 압축이라 할 만하다. 영화를 보고 나서 'Talking To My Diary'를 다시 들으면 여러 감정이 교차할 것이다. 앨범에서 유일하게 닥터 드레 홀로 랩을 소화한 노래로, 래퍼로서 탄탄한 기량을 새삼 인지하게 된다.

영화 [스트레이트 아웃 오브 컴턴(Straight Outta Compton)]은?

갱스터 랩의 유행을 선도한 역사적인 그룹 N.W.A를 다룬다는 점에서 힙합 애호가들은 반드시 봐야 할 영화다. 그룹의 결성부터 그들이 어떤 이유로 거친 언어를 내뱉게 됐는지, 어떻게 해서 흑인사회의 아이콘 같은 존재로 급성장할 수 있었는지 영화가 친절하고 상세하게 설명해 준다. 그룹의 일대기뿐만 아니라 음악 비즈니스의 명과 암, 당시 사회 이슈, 진정한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도 나눈다. 처음부터 끝까지 빼곡하게 자리한 음악이 이야기를 생동감 있게 치장해 준다.

영화는 완벽에 가까운 캐스팅으로도 보는 재미를 키운다. 닥터 드레, 이지 이, 음반 제작자 슈그 나이트(Suge Knight)는 실제 인물과 거의 판박이다. 아이스 큐브보다 더 아이스 큐브 같은 아이스 큐브 친아들의 출연은 실로 신의 한수다. 이 외에도 당시 힙합 신에서 활약하던 래퍼들의 외모와 특징을 잘 헤아린 배역 덕분에 눈이 즐겁다.

2015/08 한동윤


덧글

  • 슈3花 2015/10/08 14:23 #

    요즘 돈이 없어서 이 음반 살까 말까 고민하다가.. 한동윤님의 리뷰를 보고 바로 구매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한동윤 2015/10/09 09:36 #

    마지막 앨범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스트레이트 아웃 오브 컴턴] 때문에 감흥이 커요. 사실 음반만 들어서는 쏘쏘였는데 영화 보고 나니까 다시 듣고 싶어지는 음반이었어요. 음반-영화-음반 순으로 감상하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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