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혼성 그룹을 찾아서 원고의 나열

혼성 그룹 기근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수많은 아이돌, 댄스 그룹이 나오고 있지만 칸막이라도 친 듯 걸 그룹, 보이 밴드로 명확히 나뉜다. 2010년 10인조 혼성 그룹 남녀공학이 데뷔했지만 일부 멤버의 행적이 논란을 일으키며 얼마 지나지 않아 해체했다. 2011년 김창렬이 야심 차게 4인조 혼성 그룹 WE를 제작했으나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고 빠르게 수명을 마감했다. 가뭄에 콩 나듯 출현한 팀마저도 쉽게 사라지고 마니 혼성 그룹이라는 단어는 이제 "사어(死語)"처럼 여겨진다.

혼성 댄스 그룹의 시작



요즘과 달리 1990년대 주류 가요계는 혼성 그룹이 풍성했다. 아니, 풍성을 넘어 범람하다시피 했다. 그 물꼬를 튼 이들이 조진수, 신성빈, 황현민, 김현중, 윤현숙으로 이뤄진 잼(Zam)이었다. 1992년 데뷔한 잼은 '난 멈추지 않는다', '우리 모두 사랑하자', '요즘 친구들', '18번 가의 비밀' 등이 연이어 인기를 얻으며 최고의 가수로 부상했다. 정해진 안무를 일사불란하게 추는 혼성 그룹은 잼이 거의 시초였기에 신속하게 대중의 눈에 들 수 있었다.

이들의 장점은 안타깝게도 균열을 예비했다. 흔치 않던 혼성 댄스 그룹이다 보니 사람들의 관심은 홍일점이었던 윤현숙에게 쏠렸다. 이에 따라 멤버들 간에 불화가 생겼고 잼은 93년 조진수와 김현중의 듀오 체제로 활동을 이어 가게 됐다. 2집 타이틀곡 '어색한 느낌', 청춘 드라마 "공룡선생" OST 등으로 여전히 바쁘게 움직였으나 1집 때에 비해서 성과는 미약했다. 95년 윤현숙을 제외한 원년 멤버들이 뭉쳐서 3집을 냈을 때도 팬들의 반응은 미지근했다. 윤현숙이 성공의 일등공신은 아니었을지 몰라도 윤현숙이 빠짐으로써 잼의 인기는 확실히 떨어졌다.


93년에 데뷔한 1730도 잼과 비슷한 운명을 맞았다. 1730은 무아, 아휘, 로미(이혜영)의 트리오로 데뷔했으나 94년 이혜영이 윤현숙과 코코를 결성해 2인조가 됐다. 1집 때 말랑말랑한 랩 댄스음악을 선보였던 1730은 듀오로 개편한 2집에서 실제 악기 위주의 팝, 록, 재즈 퓨전을 지향했다. 하지만 이혜영의 부재는 음악팬들의 관심 저하를 야기했고 그룹은 거창한 음악적 변신을 제대로 어필해 보지도 못한 채 활동을 접어야 했다.

남자 셋-여자 하나 시대의 개막


94년은 약속이라도 한 듯 남자 셋, 여자 하나로 구성된 팀이 여럿 나와 이 포맷의 트렌드를 연출했다. 나름대로 밴드였지만 황혜영과 김지훈의 퍼포먼스 때문에 댄스 그룹이 돼 버린 투투를 비롯해 이들과 함께 국내 레게 열풍을 주도한 룰라, 지금은 방송인과 요식업 CEO로 잘나가는 홍진경이 결성한 에다호가 비슷한 시기에 데뷔함으로써 혼성 4인조 체제를 대세로 만들었다. 2집부터 트리오가 된 쿨 역시 같은 해 최준명, 김성수, 이재훈, 유채영의 라인업으로 데뷔해 4인조 경향에 힘을 실었다.

94년 데뷔한 뮤는 남자 넷과 여자 둘로, 앞서 나온 잼의 구성을 어느 정도 따라 하면서 숫자로는 그들을 압도하고자 했다. 그러나 94년 4인조 포맷이 유행처럼 번지자 이듬해 2집을 출시할 때는 남자 셋, 김준희의 4인조로 체제를 변경했다. 타이틀곡 '이유 없는 반항'으로 방송 활동을 몇 차례 한 펌프, 소찬휘의 급작스러운 솔로 데뷔로 의도치 않게 멤버가 줄어든 큐브도 95년 4인조 포맷의 흐름을 잇는 데에 동참했다.


4인조가 유행이라고 해서 모든 그룹이 성공한 것은 아니다. 투투, 룰라, 쿨에는 각각 황혜영, 김지현, 유채영이라는 아이콘이 있었다. 이들은 귀여움, 도발적인 느낌, 보이시함 등 저마다 특별한 매력을 선보임으로써 대중의 시선을 잡았으며, 이를 통해 그룹을 돋보이게 만들었다. 같은 시기에 나왔지만 히트하지 못한 혼성팀은 홍일점이 차별화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힙합도 혼성 그룹 시대


남자가 대다수를 차지하던 국내 힙합은 9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여성 아티스트를 조금씩 배출하기 시작했다. 앨범에서는 싱잉 비중이 훨씬 컸지만 미애는 96년 허니의 'X라는 아이'를 통해 래퍼 직함을 성공적으로 취했다. 비슷한 시기 윤미래는 업타운에서 박력 넘치는 래핑과 호쾌한 싱잉을 두루 펼침으로써 "1인자" 타이틀을 일찍부터 거머쥐었다. 후에 걸 그룹 디바로 활동하는 이민경이 홍일점으로 있던 유니티도 98년 '돌아와 줘'를 발표하며 혼성 힙합 그룹의 번성에 동참했다. 하지만 그룹 내에서 이민경의 포지션은 80% 이상 싱어였다.

귀에 쏙쏙 들어오는 멜로디의 발랄하고 경쾌한 댄스곡으로 익숙한 샵도 쿨과 마찬가지로 원래는 흑인음악 그룹으로 시작했다. 98년 펑크(Funk)와 힙합을 접목한 'Yes', 'Lying' 등으로 활동할 때 보컬 이지혜와 서지영 외에 오희종이 여성 래퍼로서 존재감을 발휘했다. 리더 존과 또 다른 남자 래퍼 장석현에 비해 파트가 적었음에도 날렵하고 힘 있는 래핑을 펼친 덕에 충분히 돋보였다. 하지만 개인 사정으로 이듬해 팀을 떠나게 된다.

혼성 댄스 그룹의 대폭발


90년대 중반 가요계에 댄스음악의 붐이 일면서 혼성 댄스 그룹도 어마어마하게 많이 등장했다. 루키(St.Rookie), 자자. 스페이스 에이, Key, 유피, 윌, 척, URI, Kola, 영턱스 클럽, Yab, 오룡비무방 등이 대표적이다. 어스(US), 펄스, 소호대, 레비스(Rebis), 루머스 등의 혼성 듀오들도 남녀 합작 무대의 확산에 불을 지폈다.


이 현란한 각축장에서 가장 높이 이름을 드날린 인물은 코요태였다. 98년 12월에 데뷔한 이들은 London Boys의 'I'm Gonna Give My Heart'를 차용한 타이틀곡 '순정'으로 무도회장과 방송을 휩쓸었다. 유로팝풍의 반주, 제목처럼 순정을 표하는 가사, "말춤"이라 불린 안무 모두 과거의 아이템으로서, 코요태는 복고 문법을 통해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왔다. 이후 '실연', '파란', 'Passion', '비몽', '비상' 등을 연이어 히트시키며 주류 댄스음악의 대표 주자로 인정받았다. 더불어 두 음절로 된 제목이 성공한다는 그들만의 공식도 만들었다.

2000년대를 전후해서는 코요태의 성공에 영향을 받아 남자 둘, 여자 하나로 구성된 트리오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뉴 밀레니엄 특유의 사이버 문화를 표면적 특징으로 내세운 티지(TG), Max Martin 스타일의 댄스 팝으로 세련미를 어필한 맥스플라이(Maxfli), '사계', '향기로운 추억' 등 큰 사랑을 받은 노래들을 샘플로 사용해 친숙함을 확보한 거북이가 혼성 트리오 계보를 이었다.

혼성 그룹 시대의 급격한 마감


팽만을 거듭하던 혼성 그룹 시장은 새천년을 지나면서 급격히 축소됐다. 많은 팀이 원 히트 원더에 그치면서 자연스럽게 해체 절차를 밟았고 대중성 강한 작품으로 신망을 얻은 쿨, 코요태 정도만 활동을 유지했다. 타이푼은 "제2의 코요태"를 표방했지만 오리지널의 위상에는 한참 모자랐다. 댄스음악을 하는 혼성 그룹은 이제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예전에는 가창 부분을 보강하거나 여성 특유의 부드러움으로 안정적인 구도를 만들기 위해 혼성 그룹을 기획했지만 최근에는 피처링, 컬래버레이션 작업의 활성화로 그런 면을 충족할 수 있게 됐다. 더욱이 다른 가수와의 협업이 더 큰 관심과 소문으로 이어지니 성별이 다른 멤버를 구태여 들일 필요가 없다.

또한 단일한 성별로 이뤄진 그룹은 그룹 내 스캔들에서 자유로워진다. 스캔들이 나오기 시작하면 팬들의 마음이 흔들리고, 이것이 실제가 되면 그룹이 갈라지기도 한다. 여성 멤버가 하나일 경우에는 나머지 멤버들이 그녀를 꽃처럼 떠받들지만 둘 이상이 되면 서로 질투하고 시기할 가능성이 커진다. 남녀 멤버의 애정, 여자 멤버들 간의 다툼으로 부득이하게 간판을 내린 팀도 여럿이다.

뮤지션들의 활발한 교류 덕에 남녀 조합 노래를 쉽게 들을 수 있는 요즘이지만 혼성 그룹이 아예 없으니 무척 많던 시절이 조금은 그립다. 유행은 돌고 돌기에 또 언젠가 혼성 그룹이 속속 나올 때가 있을 것이다.

멜론-뮤직스토리-다중음격 http://www.melon.com/musicstory/inform.htm?mstorySeq=2868&startIndex=0


덧글

  • 로꼬 2015/10/07 13:48 #

    잘읽었습니다.

    그런데 제 기억에 잼은 무엇보다 표절논란으로 와해된 팀인듯 한데... 아닌가요?
  • 한동윤 2015/10/07 15:08 #

    아녜요. 표절 판정 받은 뒤로도 계속 활동했고 표절 판정이 취소되기도 했어요.
    윤현숙 씨의 인기, 리더 조진수 씨가 주도하는 분위기 때문에 생긴 불화가 해체의 원인으로 알고 있어요.
  • 지나가는이 2015/10/07 14:18 # 삭제

    아 맥스플라이... 옛날에 꽤 즐겨들었었는데 잊고 있었네요.
    비쥬도 Sentiment 였나? 그 곡을 참 좋아했는데.
    덕분에 잊고 있었던 곡들 찾으러 갑니다~ 글 잘 보구 가요^^
  • 한동윤 2015/10/07 15:08 #

    넹~ :)
  • 비타 2015/10/07 14:29 #

    룰라는 레전드 인정. 노래도 그렇지만 화려한(?) 팀 멤버들이..
  • 한동윤 2015/10/07 15:09 #

    사건, 사고가 워낙 커서 이제는 히트곡보다 더 거대하게 느껴지네요;
  • 작두도령 2015/10/07 16:22 #

    가장 최근에 봤던 혼성그룹은 써니힐이었던 것 같군요. (남자1 + 여자4 = 5인조)
    홍일점도 아니고 청일점 그룹은 좀 신선했던지라 관심있게 봤던 그룹이었는데
    그룹 인지도는 둘째치더라도 혼성그룹(거의 객원래퍼 취급ㅠㅠ)인줄 모르는 분들이 더 많았고,
    남자 멤버의 군입대와 함께 4인조 걸그룹으로 바뀌어서 특이한 케이스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전역하고 다시 5인조 가나 했더니 마지막으로서 한 곡만 활동하고 프로듀서로 전향하더군요.)
  • 한동윤 2015/10/07 16:55 #

    아, 써니힐도 원래 혼성 그룹이었죠~?
    남자 멤버가 딱히 두드러지지 않아서 온전히 걸 그룹이 됐을 때에도 그냥 멤버가 하나 빠졌나? 그렇게만 생각하고 말았는데;
    그러고 보면 청일점 혼성 그룹은 정말 별로 없는 것 같아요.
  • 지구밖 2015/10/07 18:58 #

    얼마 전에 지난달인가 유튜브하다가 우연히 비쥬 누구보다 널 사랑해 뮤비를 봤었는데 기분 묘하더라고요. 당시에 라디오에서 나오던걸 녹음해서 듣고 그랬었는데ㅎㅎ
  • 한동윤 2015/10/08 09:57 #

    그때 테이프를 자주 이용하셨나 봐요~
    그렇게 라디오에 집중하며 듣다가 노래 나올 때마다 녹음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은 하기도 어려운 기억이 됐네요 ^^
  • 멧가비 2015/10/07 21:20 #

    대중 음악으로서 소비되는 생명력도 아직 있고 팀 자체도 기억되는 그나마 최근의 혼성 팀이라면 쿨, 샵, 코요태 정도겠군요.
    혼성 팀만의 그 맛이라는 게 있는데 단성 아이돌 홍수에 밀려서 혼성은 커녕 이젠 '댄스그룹'이라는 말 자체가 주류 음악 시장에서 거의 사어처럼 돼버린 게 아쉽네요.
  • 한동윤 2015/10/08 10:00 #

    쿨, 샵은 1집도 훌륭했는데 이후에 대중성 강한 노래로 많은 히트곡을 내서 더 신기해 보이네요.
    맞아요, 옛날에는 댄스 그룹과 밴드 발라드 가수가 비교적 명료하게 구분이 됐는데 이제는 죄다 아이돌. 아이돌 아니면 발라드도 록도 뜨기 어려운 시대가 됐으니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 역사관심 2015/11/24 00:42 #

    뒤늦데 좋은 글 따라잡기하고 있습니다.:-)
    샵도 대단했죠. 다만 글말미의 여성멤버간의 불화의 대표격이기도 했지만...곡들은 최고였던.
  • 한동윤 2015/11/25 11:19 #

    샵은 댄스곡이 깜찍하면서도 세련돼서 인상적이었어요.
    멤버들 사이만 좋았어도 최고의 혼성 그룹이 될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워요 ㅠㅠ
  • 현승민 2016/01/06 12:40 # 삭제

    거북이도 추억의 혼성그룹이죠~~
    거북이의 비행기를 들을때마다 추억에 잠기네요
  • 아르마니코리아 2016/06/15 02:04 # 삭제

    알찬 내용 흐뭇하게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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