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같았던 음악 활동: 서태지, 정태춘, 피타입 원고의 나열

스포트라이트는 이방인에게 향한다. 올해 초 종영한 MBC의 [헬로! 이방인]을 비롯해 JTBC의 [비정상회담], KBS의 [이웃집 찰스], EBS의 [글로벌 가족 정착기 - 한국에 산다] 등 타국에서 온 사람들을 주인공 또는 패널로 한 프로그램이 계속해서 생겨나고 있다. 방송가를 종횡무진으로 활보하며 연예인 못지않은 인지도를 자랑하는 외국인도 여럿 된다. 좀처럼 섞이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했던 사람들이 지금은 대중문화의 중심에 자리 잡았다. 고정관념을 깨는 현상 때문에 이방인들의 활약이 더 돋보인다.

대중음악계에도 그와 같은 이방인들이 존재한다. 단순히 피부색이나 생김새의 다름, 타향살이로 규정되는 경우는 아니다. 이들은 최근 대중의 이목을 사로잡은 외국인들처럼 차이와 공통점이라는 상반되는 특성을 겸비함으로써 커다란 존재감을 나타냈다. 시류나 대규모적 동향에 맞추지 않고 본인만의 정체성을 굳건히 표현하면서도 대중의 보편적 경험과 기호를 포섭하는 작품을 선보인 특별한 움직임에 기인한 것이다. 서태지, 정태춘, 피타입이 이에 해당하는 뮤지션이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서태지는 1990년대 최고의 스타, 당대 문화계의 중요 화두였다. 수많은 젊은이로부터 열광적인 지지를 받음으로써 '문화 대통령'이라는 영예로운 칭호까지 붙었다. 앨범을 낼 때마다 막대한 관심을 끌었으며 매 음반에서 다수의 히트곡을 배출했다. 그의 인기와 영향력이 대단했음을 부정할 사람은 얼마 없을 듯하다.

주류 시장의 한복판에 있었지만 서태지는 남들이 만들어 놓은 유행이나 자신의 성공 공식을 답습하지 않았다. 데뷔곡 '난 알아요'는 서태지와 아이들을 결성하기 전 록 밴드 시나위로 활동한 경력을 뒤집는 댄스음악이었으며 2집 타이틀곡 '하여가'는 랩과 헤비메탈, 국악의 퓨전이었다. 3집에서는 얼터너티브 록을, 그룹의 마지막 앨범이 된 4집에서는 얼터너티브 힙합, 펑크 등을 들려줬다. 음악의 지속적인 변화와 쇄신이 주류와 거리를 두는 그만의 어법이자 기조였다.

무대에서는 영락없는 댄스 가수였지만 숙고와 날카로운 시선이 담긴 노랫말은 또 한 번 그를 보통의 댄스 가수들과 차별되는 훌륭한 작가로 보이게끔 했다. 제도교육에 대해 시원하게 비판하는 3집의 '교실 이데아'가 대표적이다. 노래는 "전국 9백만의 아이들의 머릿속에 모두 똑같은 것만 집어넣고 있어", "겉보기 좋은 널 만들기 위해 우릴 대학이란 포장지로 멋지게 싸 버리지" 등 교육의 획일화와 학벌주의를 꼬집는 가사로 수험생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더불어 후렴 "됐어 됐어 됐어 됐어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는 당시 제도교육에 지친 학생들의 응어리를 풀어 주는 격문이 됐다. 이는 제도권의 정중앙에 위치한 가수가 쉽게 할 수 있는 행동은 아니었다.

서태지는 또한 약물중독 문제('죽음의 늪'), 통일('발해를 꿈꾸며'), 가출 청소년('Come Back Home'), 배금사상의 만연('1996, 그들이 지구를 지배했을 때') 등 그때까지만 해도 대중음악에서 흔하지 않던 제재를 다양하게 풀어냈다. 많은 사람에게 익숙한 사랑 얘기가 아님에도 대중이 인식하고 고민하는 내용을 꺼낸 덕에 호응이 뒤따라왔다. 기존 규율과는 다른 음악을 했지만 공감을 구하는 독자성을 통해 대중음악의 중핵으로 부상할 수 있었다.


포크 싱어송라이터 정태춘도 이방인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인물이다. 1978년 1집 [시인의 마을]로 데뷔한 그는 솔로 아티스트와 부인 박은옥과의 듀엣으로 다수의 음반을 발표했다. 1979년 MBC 10대 가요제에서 '신인 가수상'을, 1집의 '촛불'로 TBC 방송가요대상에서 '작사 대상'을 수상할 정도로 시작은 좋았다. 하지만 불교의 정서를 미량 주입한 2집과 우리 전통음악을 적극적으로 흡수한 3집이 상업적으로 실패하면서 짧은 영광의 시간을 뒤로한 채 주류에서 물러나게 된다.

1집의 성과에 못 미치는 부진이 정태춘을 이방인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1집 때부터 현재는 영상물등급위원회로 이름을 바꾼 공연윤리위원회와 마찰을 겪어 왔다. 1집 수록곡 '시인의 마을' 가사를 정태춘 본인이 쓴 게 아니라 기존에 나온 누군가의 시를 베낀 것 같다고 의심해 발표가 보류된 것을 시작으로 해학의 수위가 지나침, 시의에 적절하지 않음 등등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많은 노래를 수정해 발표해야 했다. 데뷔 때부터 기성세대가 요구하는 질서에 맞닿아 있지 않았던 셈이다.

정태춘은 공연윤리위원회의 사전심의제에 반대하며 1990년 [아, 대한민국...]을 비합법으로 발표했다. 수록곡들은 한국 사회의 이런저런 모순, 약자들의 지난한 삶, 안타까운 분단의 현실 등을 기술했다. 세상의 어두운 구석을 보는 묵직한 고찰은 정태춘의 자연스럽고도 힘 있는 가창에 실려 사실감 있게 다가왔고 앨범은 대학가, 언더그라운드에서 큰 사랑을 받았다. 1993년 정태춘은 박은옥과 듀엣으로 작업한 앨범 [92년 장마, 종로에서]도 비합법으로 출시하며 자신의 뜻을 밝혀 나갔다.

정태춘 덕분에 1996년 대중문화계는 역사적 전환기를 맞이할 수 있었다. 사전심의 폐지 운동을 꾸준히 벌여 온 그의 노력으로 아티스트의 창작을 훼방하던 사전심의제가 폐지된 것이다. 그해 비합법으로 냈던 [아, 대한민국...], [92년 장마, 종로에서]가 합법적으로 출시됐다. 1995년 심의에 통과하지 못해 연주곡으로 공개했던 서태지와 아이들의 '시대유감(詩代遺憾)'도 1996년 가사를 실은 오리지널 버전으로 다시 나왔다. 주류와 타협하지 않은 위대한 이방인 정태춘이 달성한 쾌거였다.


최근 엠넷 [쇼 미 더 머니]에 참가해 화제가 된 래퍼 피타입 또한 차별화된 활동으로 남다른 업적을 기록했다. 일반적으로 래핑에서는 문장의 끝 음절의 운(각운)을 맞추는 작업을 중시한다. 피타입은 대체로 각운에 한정됐던 압운 연출을 문장의 중간(요운)에도 확장해 보였다. 이와 같은 성과로 그의 2004년 데뷔 앨범 [Heavy Bass]는 한국 힙합의 명반으로 평가받는다.

피타입을 칭송하는 비범한 소산을 그가 맨 처음 이룩한 것은 아니다. 1980년대 중반 데뷔한 미국 래퍼 라킴(Rakim)이 요운 연출의 선구자로 여겨진다. 하지만 영어와 한국어가 문장 성분의 순서가 다른 점을 고려한다면 피타입의 결실은 결코 쉽게 얻어진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여기에 더해 파열음과 마찰음에서 나는 발음의 유사성을 치밀하게 계산한 작사로 래핑의 듣는 재미를 한 단계 상승시켰다.

근사한 국면을 작성했음에도 피타입은 요즘 힙합 마니아들에게는 래핑이 낡았다는 이유로 냉대를 받는다. 영어를 넣는 것이 보편화되고 쏘아붙이듯 날카롭게 내뱉는 래핑이 트렌드가 된 탓이다. 피타입이 전과 다르게 홀대당하는 상황은 랩의 콘텐츠 자체보다 허세 부리기, 다이내믹한 발화를 더 중시하는 답답한 풍조의 반영에 지나지 않는다.

애호가들의 관심은 다소 식었지만 최근 발표한 [Rap], [Street Poetry] 등의 앨범을 통해 본인의 노선과 스타일을 씩씩하게 고수함을 밝힌다. 가사는 여전히 철학적이며 압운 구성도 한결같이 섬세하다. 흐름에 동조하지 않고 강직하게 발전을 도모하는 발걸음에서 아티스트가 지향해야 할 바를 새삼 엿볼 수 있다.

이방인은 특정 무리에 속하면서도 결국 남과 다름을 확인하는 존재다. 주변 사람들의 생활양식, 사회의 체제에 적응해야 하지만 한편으로 자신의 특성을 상실하지 않으려고 부단히 자각한다. 시장에서 유난히 두드러지는 뮤지션들은 이 두 모습을 매끄럽게 조화하는 동시에 후자의 활동에 특히 무게를 둔다. 관습에 젖지 않고 남들과 구분되는 특별한 면모를 나타낼 때 대중의 이목은 반드시 그에게 멈춘다. 대중음악계의 준수한 이방인들은 그렇게 스포트라이트를 가져간다.

덧글

  • 2015/10/08 14:20 # 삭제 비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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