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가수가 부르는 명곡! "007 주제가" 원고의 나열

드디어 베일을 벗었다. 음악팬들의 궁금증을 유발했던 제임스 본드 테마곡의 주인공은 Sam Smith로 밝혀졌다. 그간 Lady Gaga, Lana Del Rey, Ellie Goulding 등 쟁쟁한 후보들이 거론돼 왔지만 스물네 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 "007 스펙터"의 주제가는 스물세 살의 젊은 청년이 부르게 됐다. 007 주제가를 부르는 영광은 항상 당시 가장 잘나가는 가수에게 주어졌다. 데뷔한 지 3년밖에 안 됐지만 올해 열린 "그래미 어워드"에서 무려 네 개 부문을 석권하며 핫함을 증명했으니 007 제작진은 Sam Smith를 선택하는 데 동의했을 것이다. 올해 외에도 지금까지의 주제가들을 보면 그때마다 많은 사랑을 받은 뮤지션들을 확인할 수 있다. 007 주제가는 대중음악의 빅 스타를 알아보는 바로미터이기도 하다.


Sam Smith | Spectre (2015)
Sam Smith와 영국의 신인 프로듀서 Jimmy Napes가 30분 만에 곡을 썼다는 "007 스펙터"의 주제가 'Writing's On The Wall'은 오케스트라를 활용한 트래디셔널 팝을 지향해 007 테마곡들의 전통적인 외형을 따른다. 젊은 나이를 무색케 하는 중후한 보컬은 노래에 깊은 맛을 만들어 영화의 여운을 증대할 듯하다. Sam Smith야 원래 스타일이 애늙은이였다고 쳐도, 이런 엄숙하고 어른스러운 곡을 댄스음악 전문인 Jimmy Napes와 Disclosure가 프로듀스했다는 사실이 놀라움을 안긴다. 단조 진행도 한몫하지만 이번 영화가 6대 제임스 본드 대니얼 크레이그의 마지막 007 작품으로 알려져서 그런지 주제가가 더욱 구슬프게 들린다. 침울한 느낌에도 불구하고 노래는 영국 싱글 차트 1위에 올랐다. 007 주제가가 영국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제임스 본드는 여자를 꾀는 달인, 남성적인 모습의 전형인데 그의 주제곡을 공공연한 게이가 불렀다는 사실이 무척 아이러니하다.


Adele | Skyfall (2012)
그렇다. Sam Smith 이전에 Adele이 있었다. Adele 역시 영국 뮤지션이지만 2012년 "그래미 어워드"에서 "올해의 앨범" 등 네 개 부문을 휩쓴 적이 있다. 그녀와 Sam Smith 사이에 어떤 평행이론이 존재하는 것일까, 'Writing's On The Wall'은 Adele이 부른 "007 스카이폴" 주제가 'Skyfall'과 분위기가 유사하다는 의견이 많다. 두 노래 모두 관현악기로 마감한 스탠더드 팝 양식이니 당연히 그럴 수 있다. 그러나 'Skyfall' 또한 Shirley Bassey가 불렀던 007 초기 OST를 복원하려는 의도를 품고 있기에 'Writing's On The Wall'이 'Skyfall'을 따라 했다는 주장은 그리 합당하지 않다. 어쨌든 Adele은 이 노래로 다시금 절창임을 천명했다. 'Skyfall'은 영국 가수가 부른 007 주제가로는 27년 만에 빌보드 싱글 차트 10위 안에 진입한 곡이 됐다.


Jack White & Alicia Keys | Quantum Of Solace (2008)
조금은 엉뚱한 타이밍이었다. 두 뮤지션 모두 새천년을 전후한 시기에 가장 잘나가던 사람들인데 Jack White는 The White Stripes 활동을 마감한 뒤에, Alicia Keys는 상업적으로 하락세를 타기 시작할 때에 제임스 본드 주제가 보컬로 섭외됐다. 왠지 가수들을 물색하다가 잘 안 돼서 어쩔 수 없이 고른 듯한 캐스팅이었다. 애초의 의도인지, 고육지책인지는 내막을 알 수 없으나 둘의 만남 덕분에 'Another Way To Die'는 007 주제가 중 최초의 듀엣곡이라는 역사를 쓰게 됐다. 다만 작곡과 프로듀싱을 Jack White가 홀로 행하다 보니 Alicia Keys의 특징은 잘 드러나지 않는 얼터너티브 록이 나온 게 그녀의 팬들에게는 아쉬움으로 남았다.

* 007 시리즈는 대체로 작품과 테마곡 제목이 일치하는 관례가 있다. 때문에 "007 퀀텀 오브 솔러스"의 주제가 'Another Way To Die'는 "007 어나더 데이"를 연상시키는 본의 아닌 교란을 행한다.


Chris Cornell | Casino Royale (2006)
Soundgarden의 프론트맨 Chris Cornell이 부른 'You Know My Name'은 007 주제가 중 가장 센 음악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밴드를 통해 들려줬던 얼터너티브 록의 강건한 사운드가 이전 노래들과는 다른 박력을 과시했다. 대니얼 크레이그가 새로운 제임스 본드를 맡으면서 영화는 격투 신을 전보다 더 많이 넣었고 그의 남성적인 매력을 효과적으로 어필하기 위해 Chris Cornell을 찾은 것. 젊은 록 마니아들이 좋아할 스타일이긴 하지만 은은하게 스며든 오케스트라 반주는 007 OST 특유의 색채를 충분히 낸다.


Madonna | Die Another Day (2002)
인지도로 따지면 테마곡을 이미 두 번은 불렀을 Madonna에게 기회는 의외로 늦게 찾아왔다. 58년 개띠, 주제가를 취입할 당시 마흔넷의 적지 않은 나이였음에도 그녀는 "007 어나더 데이"에서 그 시절 언더그라운드에서 막 피어난 일렉트로클래시(Electroclash) 스타일의 곡을 선보여 본인의 음악 연령은 늙지 않음을 힘차게 주장했다. 'Die Another Day'는 그녀가 새천년을 전후해 행한 일렉트로니카로의 노선 변경을 더욱 유의미하게 만들었으며, 더불어 007의 전통적인 사운드와 또 한 번 구분을 짓는 현대적인 선언이기도 했다.

1985년 Duran Duran이 부른 'A View To A Kill' 이후 빌보드 싱글 차트 100위 안에 드는 007 주제가가 없었으나 'Die Another Day'가 빌보드 차트 8위에 올라 17년 만에 새 기록을 썼다. 하지만 이 비주류 장르를 다른 가수가 불렀다면 이 정도 성적을 낼 수 있었을지 의문이 든다.

* 영화도 성공하고 노래도 성공했지만 영화 속 피어스 브로스넌이 입었던 "창천1동대" 예비군복은 007 시리즈 중 최악의 옥에 티로 남았다.


Garbage | The World Is Not Enough (1999)
1990년대 활동했던 수많은 얼터너티브 록 밴드 중 여성 리드 싱어를 둔 몇 안 되는 밴드 Garbage도 조금은 늦게 007 열차를 탔다. 98년 2집 [Version 2.0]를 출시했을 때도 인기는 컸지만 95년에 데뷔 앨범을 냈을 때가 사실상 이들의 정점이었기 때문이다. 프론트우먼 Shirley Manson이 영국 출신이라는 이유였는지 나머지 멤버들은 미국인이었음에도, 같은 시기 더 큰 사랑을 받은 록 밴드들이 존재했음에도 Garbage는 "007 언리미티드"의 주제가 'The World Is Not Enough'를 부르는 영광을 누린다.

이들은 록 음악이 근간이었지만 트립 합, 전자음악과의 퓨전, 팝 등 다채로운 형식을 함께 표현했다. 덕분에 클래식과 트립 합, 트래디셔널 팝이 혼합된 주제가를 멋스럽게 해석할 수 있었다. Shirley Manson의 목소리는 오묘함과 고혹적인 분위기를 곱절로 만든다. 007 시리즈 가운데 가장 조명을 못 받은 명곡이다.


Tina Turner | GoldenEye (1995)
한국 사람들에게는 사자 갈기 같은 방사상의 파마머리와 걸쭉한 목소리로 기억되는 미국 R&B 가수 Tina Turner. 그녀는 자국에서는 80년대까지가 전성기였으나 영국에서는 90년대 들어서도 히트를 이어 갔다. 덕분에 "007 골든아이"의 주제곡을 부르긴 했지만 이것이 미국에서의 인기 회복으로 나타나지는 못했다. U2의 Bono와 The Edge가 작곡하고 The Smashing Pumpkins, No Doubt 등과 작업한 Nellee Hooper가 프로듀스를 맡아 트립 합풍의 음울한 곡을 탄생시켰으나 역시 트립 합은 미국 진출이 쉽지 않았음을 증명한 사례이기도 하다.


Gladys Knight | Licence To Kill (1989)
1960년대와 70년대 Gladys Knight & The Pips로 많은 히트곡을 남겼던 Gladys Knight의 솔로 활동은 그룹 시절에 비해 확실히 초라했다. 물론 85년에 'That's What Friends Are For'로 빌보드 정상에 등극하긴 했으나 Dionne Warwick의 노래였고, 히트에 따른 기쁨은 Dionne Warwick을 비롯해 같은 부른 Elton John, Stevie Wonder와 나눠야 했다. 그로부터 11년 뒤 영화 "셋 잇 오프"의 사운드트랙 'Missing You'로 빌보드 싱글 차트 25위에 올랐지만 이때의 감격도 함께 부른 Brandy, Tamia, Chaka Khan과 공유해야 했다. Gladys Knight는 단체곡으로만 성공을 맛본 흔치 않은 가수다.

솔로 히트곡이 없던 그녀에게 "007 살인면허"의 주제가가 도약의 발판이 되나 싶었지만 결과는 기대와 달랐다. 영국 싱글 차트 6위에 오른 것이 다였다. 그래도 솔로로서 영국에서 최초이자 현재까지 마지막 히트곡. 'Licence To Kill'은 신시사이저와 브라스로 이룬 웅장한 루프와 그에 눌리지 않는 풍성한 성량, 부드러운 멜로디가 멋스러웠지만 많은 사랑을 받지 못한 비운의 곡이 되고 말았다.


Duran Duran | A View To A Kill (1985)
영국 록 밴드 Duran Duran이 부른 "007 뷰투어킬"의 주제곡은 시리즈 중 가장 신선한 인상을 남긴 노래가 아닐까 하다. Madonna나 Chris Cornell도 나름대로 혁신이고 파격이었지만 Duran Duran은 당시 대중음악의 큰 줄기를 형성했던 뉴웨이브, 신스팝 사운드로 007 테마곡의 암묵적 규칙을 시원하게 깨트렸다. 트렌드에 맞춘 노래는 많은 사랑을 받아 제임스 본드 주제가로서는 최초로 빌보드 싱글 차트 넘버원을 기록했다.

짜릿함을 안기는 신시사이저와 전기기타, 찍어 누르는 것 같은 드럼 연주가 압도적으로 다가오는 'A View To A Kill'은 악당 메이데이 역을 맡았던 싱어송라이터 겸 배우 Grace Jones를 위한 노래처럼 느껴진다. 그녀는 007 로저 무어보다 훨씬 더 강렬한 존재감을 뽐냈다.


John Barry Orchestra | James Bond Theme
제임스 본드 하면 이 음악 아니겠는가. 진지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익살스럽게 느껴지는 서프 음악풍의 오프닝 타이틀 'James Bond Theme'은 007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도 익히 아는 유명 연주곡이 됐다. 워낙 패러디도 많이 된 터라 이 기타 연주만 나왔다 하면 움직이는 총구, 과장된 자세로 총을 쏘는 모습, 핏빛으로 물드는 오프닝 시퀀스가 절로 생각난다. 1962년 "007 살인번호"에서 Monty Norman의 곡으로 첫선을 보였으며 이후 The Ventures, Glen Campbell, Moby 등 많은 뮤지션에 의해 리메이크됐다. 영국 전자음악 그룹 The Art Of Noise의 버전은 2003년 "개그 콘서트"의 코너 "타이즈와 쫄쫄이" 배경음악으로 국내에서 가장 많이 전파를 탔다.

나머지 노래들
Sheryl Crow - Tomorrow Never Dies
A-ha - The Living Daylights
Rita Coolidge - All Time High
Sheena Easton - For Your Eyes Only
Paul McCartney & Wings - Live And Let Die
Lulu - The Man with the Golden Gun
Shirley Bassey - Goldfinger
Tom Jones - Thunderball
Nancy Sinatra - You Only Live Twice
Louis Armstrong - We Have All the Time in the World




글을 게재한 멜론 페이지에 달린 댓글 일부

게이면 007 주제가를 불러선 안 된다고 말한 적 없는데 왜들 이렇게 곡해한데? 007 주제가는 우악스럽고 거친 가수가 불러야 한다는 당위성을 주장한 것도 아니고. 007은 오프닝 시퀀스부터 군데군데에 남성성을 강조하는 표현들이 깔려 있는 게 전통이라 게이인 샘 스미스에게 주제가가 맡겨진 것이 의아하다는 뜻일 뿐. 이상한 논리로 날 동성애혐오자로 만드네. 무슨 피해의식이라도 있나? 애들이 집안에 삼촌도 없는지 막말하고 지랄이야...

멜론에 게재된 글은 담당자가 게이 내용을 삭제했다.

그리고 어떤 댓글은 [스펙터]가 대니얼 크레이그의 007 마지막 작품이 아니라면서 사실을 잘 파악하고 쓰라고 하는데 제발 글 좀 제대로 읽자. 매체 90퍼센트 이상이 마지막 작품이라고 보도하고 있고 소수는 또 한 작품이 더 있다고 하니 나도 팩트에 조심스럽지. 그래서 "대니얼 크레이그의 마지막 007 작품으로 알려져서 그런지"라고 썼잖아. 진짜 네티즌들 답답하다.

덧글

  • 피그말리온 2015/10/15 17:58 #

    확실히 인터넷 댓글을 보면 넘겨짚어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죠. 그 사람들이 여럿이면 삼인성호가 되어버리고...그러고보니 Q 역의 벤 위쇼가 실제로는 기계치라는 것도 생각나네요.
  • 한동윤 2015/10/16 11:06 #

    그러게요, 쉽게 선동하고 선동당하는 걸 보면 무섭게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그런 트리비아도 있군요~ 영화가 장비를 만드는 과정 대신 완성된 장비의 시연만 보여 줘서 다행이었겠네요.
  • 펜타토닉 2015/10/15 19:07 #

    고생많으십니다 허허
  • 한동윤 2015/10/16 11:07 #

    정신이 미숙해서 달관을 못하나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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