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원제의 한글 표기처럼 '허, 헐' 스크린 상봉


외로우면 충분히 저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인공지능 컴퓨터를 친구 혹은 편한 카운슬러로 여기고 마음속에 있는 얘기를 꺼내는 것은 기초적인 양상. 나아가 사랑에 빠지는 일도 발생 가능한 상황이라고 이해했다. 계속 대화를 나누다 보면 얼굴 한 번 본 적 없음에도 깊은 감정을 느끼게 되기도 하는 인터넷 채팅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달리 인공지능이 아님을 인지하는 순간부터 두려움이 몰려온다. 전원만 켜면 곧바로 응답해서 늘 곁에 있는 듯한 기분을 안기던 인공지능 컴퓨터 아가씨가 갑자기 연락이 안 되니 불안감이 든다. (개인적으로 여기서부터 감정이입이 더 강하게 이뤄졌다)

곧 연결이 됐지만 다시 만났다는 기쁨은 잠깐이다. 그동안 나하고만 이야기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자신 외에 동시에 대화하는 사람은 무려 8316명. 어이가 없어서 "허"라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사랑에 빠졌다는 사람은 자그마치 641명. 이 경이로운 숫자에 놀라 "헐"이라는 말을 내뱉게 되더라. 그리고 "뭐 저런 미친 컴퓨터 갈보년이!!"라는 말도... 몰입해서 하마터면 눈물까지 나올 뻔했네. 컴퓨터라 지식이 방대한데 인공지능까지 갖췄으니 변명도 엄청 잘해. 더 얄미워.

결론은 채팅으로 외로움 극복하지 말고 사람 만나라는 얘기지. 채팅녀와 사귀는 걸로 믿고 사기까지 당하는 경우도 있으니 더더욱. 하지만 영화는 마지막 장면에서 주변에 싱글인 여자가 있어야 조금의 가망이라도 있음을 돌려 말한다.

* 한국 개봉 시 카피가 '서툰 당신을 안아 줄 이름'인데 사실은 '외로운 당신을 농락할 이름'이 아닌가.
* 운영체제 서맨사를 연기한 스칼렛 조핸슨(요한슨)이 1년 뒤 [루시]에서는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는 고성능 무형물로 바뀌는 역할을 맡아서 굉장히 기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