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슬픈 솔로들을 위한 영화 해석법 원고의 나열

가을이다. 가을이라 가을바람 솔솔 불어오니…는 개뿔! 외로움에 몸부림치는 솔로들에게는 선선한 가을바람도 가슴속을 쑤시고 헤집는 날카로운 삭풍처럼 느껴진다. 산을 아름답게 물들이는 단풍을 봐도 외롭고, 떨어지는 낙엽을 보면 더 외롭고, 처참한 몰골로 보도블록을 뒹구는 은행을 보면 구리면서 외롭다. 낭만을 불러일으킨다는 가을은 솔로들에게는 고난의 계절일 뿐이다.

로맨스 영화는 솔로들을 더욱 옥죈다. 일상에서 쉽게 마주하는 스크린 속 주인공들의 연애와 사랑은 솔로들에게 상대적 박탈감만을 안긴다. 이럴 때에는 다른 시각, 다른 마음가짐으로 이야기나 특정 장면을 새롭게 해석해 보자. 일종의 합리화다. 하지만 비굴하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이것도 쓸쓸함을 극복하기 위한 현명한 방법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 행위는 영화와 화면 속 음악을 색다르게 느끼도록 해 줄 것이다.

(마음의 소리: 아니야, 절대 그렇지 않아. 엄청 궁상맞아….)


러브 스토리 | 눈(雪)은 불길하다
불치병에 걸린 여자 친구를 떠나보내려는 남자, 이 둘의 사랑을 담은 "러브 스토리"는 겨울철이면 어김없이 회자되는 로맨스 영화의 클래식이다. 특히 주인공들이 눈밭에서 장난치는 모습은 패러디도 많이 되고 방송을 통해 수없이 노출된 탓에 영화를 보지 않은 이도 익히 아는 장면이 됐다. 이때 흘러나오는 Francis Lai의 'Snow Frolic'은 겨울철 연인들의 찬가로 등극했다.

두 주인공의 사정은 슬프지만 눈밭을 즐겁게 뛰어다니는 걸 보니 속이 뒤틀린다. 게다가 솔로들은 할 수 없는 "나 잡아 봐라" 놀음까지 하니 배알이 더 꼴린다. 이들이 다이빙하는 눈밭에 뾰족한 짱돌 하나 박혀 있기를, 이들이 던지는 눈덩이에 큼지막한 연탄 조각이 들어 있기를, 이들이 먹는 눈송이에 유해물질 가득 들어 있기를 염원한다면 못된 심보일까? 처절한 싱글 라이프가 내 속에 잠들어 있던 악마를 끄집어낸다.


Mr. 히치 | 불법 브로커를 추방하자
짝사랑을 쌍방향사랑으로 만들어 주는 연애의 고수지만 정작 자신은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실수를 연발하는 허당의 연애담을 다룬 "Mr. 히치: 당신을 위한 데이트 코치". 1990년대 인기 힙합 그룹 Heavy D & The Boyz의 'Now That We Found Love'는 알레그라와 앨버트가 우여곡절 끝에 결혼식을 올리고 피로연을 벌이는 엔딩 장면에 사용됐다. 주인공들이 우스꽝스럽게 춤을 추는 모습을 통해 영화는 마지막까지 재미를 제공한다.

흥겨운 피로연 시퀀스를 보면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샘솟는다. 하지만 솔로들에게 결혼은 언감생심. 만나는 사람이라도 있어야 데이트를 하고 결혼을 욕심내기라도 하지. 영화에서처럼 맨투맨으로 상담 및 지도를 받으려면 수강료가 들어가는데 다포세대에게는 이마저도 쉽지 않다.

더구나 "Mr. 히치: 당신을 위한 데이트 코치"는 사교육을 조장하고 있지 않은가. 그것도 불법으로. 히치는 사업자 등록도 안 돼 있다. 사교육 열풍이 가뜩이나 심한 우리나라에서는 경각심을 일깨우는 영화다.


더티 댄싱 | 커플 댄스는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예술
1987년 개봉한 "더티 댄싱"은 제작비의 30배가 훨씬 넘는 막대한 수익을 올림으로써 로맨틱 댄스 영화의 명작으로 자리매김했다. 2004년에는 "더티 댄싱: 하바나 나이트"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되기도 했다. 하지만 새로 나온 영화는 완전히 망했다.

남녀 주인공이 눈빛을 교환하며 사뿐사뿐 스텝을 밟을 때, 행복에 겨워 해맑은 미소를 지어 보일 때 흐르는 Bill Medley와 Jennifer Warnes의 '(I've Had) The Time Of My Life'는 그들의 사랑을 더욱 아름답게 꾸민다.

남자 주인공 조니가 파트너 베이비를 번쩍 들어 올리는 신은 영화의 명장면.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은 함성을 지른다. 멋있게 느껴지고 한 번쯤 해 보고도 싶을 테다. 하지만 조금만 잘못하면 허리 나간다. 실수는 파트너의 안면골절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폼 좀 잡아 보려다가 건강도 잃고 사랑도 잃는 수가 있다. 커플로 춤을 추면 이렇게 위험하지만 솔로는 안전하다.


건축학개론 | 솔로는 조건을 극복할 필요가 없다
서연이 같은 미인과 썸을 타기 위해서는 서연이 같은 미인이 다니는 대학교에 다녀야 하고, 서연이 같은 미인이 수업을 수강하는 건축과에 입학해야 하며, 서연이 같은 미인이 때마침 우리 동네에 살아야 한다. 은채 같은 미인과 결혼하려면 은채 같은 미인이 다니는 건축회사에 입사해야 한다. 커서도 아름다운 서연이 같은 미인이 나를 다시 찾기 위해서는 능력 있는 건축가가 돼야 한다. 연애와 결혼, 썸이 요구하는 조건은 너무나 많다. 그러나 솔로는 모든 조건을 초월한다. 이 어려운 조건을 극복할 필요가 없으니 얼마나 행복한가! "건축학개론"은 솔로들에게 무소유의 기쁨을 가르쳐 준다.


첫 키스만 50번째 | 자신 있으면 하고
교통사고 후유증 때문에 하루만 지나면 기억을 잃어버리는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린 여자를 사랑하게 된 남자의 고군분투 러브 스토리. 그녀와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남자 주인공 헨리는 홀로 배를 타고 여행을 떠난다. The Beach Boys의 'Wouldn't It Be Nice'는 헨리가 배 위에서 울먹이며 따라 부르는 노래.

이게 당신에게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면 어떨까? 키스를 매일 할 수 있어서 좋다고? 천만의 말씀, 다시 한 번 냉정하게 생각해 보자. 레트로액티브스러운 행동을 반복하는 사람에게 우리가 어떻게 만나게 되었으며, 어떻게 사랑을 했고, 결혼은 어떻게 했고, 또 애는 언제 가졌으며 등등의 자초지종을 평생 말해야 하는데? 사는 동안 하. 루. 도. 빠. 짐. 없. 이. 이런데도 "좋지 않은가요?"라는 가사가 귀에 들어올지 의문이다.


라붐 | 사실은 음향기기 덕후를 위한 영화야
1980년대 청춘 로맨스 영화의 대표작. 파리로 전학 온 빅이 파티에 참석해 잘생긴 남학생 마티유를 만나게 된다. 그곳에서 마티유는 워크맨의 헤드폰을 빅에게 씌워 주며 호감을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이 순간 둘은 Richard Sanderson의 'Reality'에 맞춰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춤을 춘다. 국내 연예 관련 프로그램에서 소피 마르소 소식을 내보낼 때면 응당 사용하는 장면이다.

솔로들은 둘의 행동에 주의를 기울여서는 안 된다. 그 시끄러운 파티장에서 쓰자마자 밖의 소리가 완전히 차단되는 헤드폰을 탐스러워해야 한다. 허름하고 빈약해 보이는 헤드셋이 스튜디오 전문가용을 압도하는 성능을 자랑한다. 사고 싶다! 갖고 싶다!


그녀 | 그녀를 믿지 마세요
외로움에 허덕이다 인터넷 채팅으로 눈을 돌리는 사람이 많다. 대화 상대가 생기고, 이 사람과 몇 번 얘기를 나누다 보니 말이 잘 통하는 것 같고, 그러다 사랑의 감정까지 싹튼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 (남자의 경우 특히) 채팅으로 대화하던 상대가 사실은 남자였고, 채팅으로 홀려서 사기를 칠 목적이었다는 뉴스가 왕왕 나온다. 비운의 피해자가 되지 않으려면 채팅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

영화 "그녀"는 외로움 타는 남자가 인공지능 컴퓨터 운영체제와 이야기를 나누다 사랑하게 되는 내용. 하지만 결말은 씁쓸하다. 나만 사랑하는 줄 알았던 그녀가 8316명과 동시에 썸을 타고 있었으며, 나 몰래 641명과 사랑을 나눴다니 충격적인 충격이다. 원제목 "Her"처럼 그야말로 "헐!"이다. 채팅하다 뒤통수 맞느니 상처 안 받는 솔로가 낫다.

미국 얼터너티브 록 밴드 The Breeders 'Off You'는 영화의 도입부 주인공이 퇴근할 때 흐른다.


보디가드 | 사랑은 생명을 위협하지
대스타 레이철의 경호 임무를 마친 프랭크는 활주로에서 떠나는 레이철의 모습을 지켜보기만 한다. 마지막 인사지만 왠지 어색하게 느껴지는 포옹. 사랑하는 감정을 억누를 수 없는 레이철은 비행기를 돌려 프랭크에게 달려가 진한 키스를 나눈다. 컨트리 가수 Dolly Parton의 원곡을 커버한 Whitney Houston의 'I Will Always Love You'가 둘의 사랑을 축복하듯 울려 퍼진다.

프랭크는 얼마간 레이철을 경호하면서 몇 차례 살해 위협을 받았고 결국 총 한 발을 맞았다. 경호 기간이 한 달이었다고 치자. 이 인기 가수와 사랑에 빠져 함께 산다면 매해 열두 발의 총알을 가슴에 아로새겨야 할지도 모른다. 마흔에 결혼한다고 해도 100세 시대니까 살면서 무려 720번의 총상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그 숫자 채우기 전에 이미 세상 하직하고도 남는다. 배우자가 미모에 돈이 많으면 뭐해, 배우자 때문에 오늘 당장 죽게 생겼는데. 솔로는 오랜 수명을 보장해 준다.


내 여자 친구를 소개합니다 | 이런 게 사랑이라 생각하면 숨 막혀요
어느 날 순경 경진은 탈옥수와 추격전을 벌이게 된다. 그때 남자 친구 명우의 전화를 받은 경진은 범인을 쫓는 중이라며 다급하게 전화를 끊는다. 걱정이 된 명우는 경진의 위치를 어림짐작해 그녀가 있는 곳으로 향한다. 추격전이 벌어지는 장소에 도착한 순간, 명우는 총기 오발로 사망하고 만다. 물론 이는 영화를 위한 비현실적인 설정이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적극적인 보호와 관심이 때로는 이처럼 심각한 화를 부르기도 한다. 순경 여자 친구가 없다는 것은 오밤중에 뜬금없는 추격전을 벌이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며, 험한 싸움에 휘말릴 일도 없다는 뜻이다. 솔로는 진정 행복하다.

전지현을 위한 두 시간짜리 CF나 다름없었던 "내 여자 친구를 소개합니다"는 'BK Love'의 인기만 높이는 역할을 했다.


존윅 | 나는 자발적 개저씨입니다
사람 만나기를 포기하고 동물을 들이는 것은 최후의 선택. 물심양면 사랑하면서 진정한 반려자 삼자꾸나. 하지만 자꾸 눈물이 나는 건 왜일까…?

멜론-뮤직스토리-다중음격 http://www.melon.com/musicstory/inform.htm?mstorySeq=2929&startIndex=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