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봐도 찬란했던 1988년 음악계 원고의 나열

향수 어린 연대기는 이제 1988년으로 향한다. 시청자들을 97년과 94년으로 안내한 추억 복구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가 1988년 버전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건국 이래 가장 성대한 잔치였던 올림픽이 가장 먼저 생각하는 해, 생방송 뉴스 중에 한 청년이 난입해 "내 귀에 도청장치가 있다"며 황당한 사건을 벌이기도 했고, 탈주범 지강헌이 한 가정집에서 인질극을 벌이며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씁쓸한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문화, 경제의 빠른 성장 속에서 여느 해와 다름없이 웃기고 슬픈 일화들이 우리 주변에 자리했다.

음악계 또한 언제나처럼 많은 일이 있었다. 주류에서는 조용필, 이문세 등이 뜨거운 사랑을 받는 가운데 언더그라운드에서는 동아기획 출신의 아티스트들이 특색 있는 음악을 선보여 다채로운 물결을 만들었다. 강변가요제의 이상은, 대학가요제의 신해철(무한궤도)은 1988년 아마추어 가요제 최고의 수확이었다. 팝 음악계는 어덜트 컨템퍼러리가 위세를 유지하면서 힙합, 헤비메탈, 댄스음악 시장이 고루 발전했다. 1988년 대중음악계는 돌이켜봐도 찬란하다.


코리아나, 서울 올림픽이 낳은 최고의 밴드
1988년에 가장 선명한 자취를 남긴 가수는 단연 코리아나(Koreana)일 것이다. 1960년대 초반 미8군 전속 밴드로 출범해 동남아와 유럽 시장에 진출하며 일찍이 국제 가수 타이틀을 거머쥔 코리아나는 "1988년 하계 올림픽", 이른바 서울 올림픽의 주제가 가수로 선정돼 더욱 유명해졌다.

디스코의 거장으로 여겨지는 Giorgio Moroder가 작곡해 음악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된 주제가 '손에 손잡고 (Hand In Hand)'는 올림픽 열기를 타고 온 국민의 사랑을 받았다. 올림픽이 지구촌의 축제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Hand In Hand'가 수록된 앨범은 전 세계적으로 1천만 장 넘게 판매됐다. 올림픽 시즌마다 외국 매체에서 "최고의 올림픽 주제가" 리스트를 발표하면 꼭 거론될 만큼 'Hand In Hand'는 식지 않는 인기를 과시한다. 같은 음반에 수록된 'Victory'도 신스 브라스 루프와 시원한 멜로디, 긍정적인 노랫말이 활력을 빚어내며 많은 이에게 애청됐다.


또다시 클래식을 내놓은 발라드의 제왕 이문세
발라드의 아이콘으로 등극한 이문세의 위세는 변함없이 이어졌다. 1987년 '깊은 밤을 날아서', '그녀의 웃음소리뿐'으로 성공을 지속한 그는 이해 발표한 다섯 번째 앨범에서도 '광화문 연가',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붉은 노을' 등 다수의 히트곡을 배출했다. 이 세 노래 모두 많은 가수가 리메이크해 한국 대중음악의 클래식으로 자리매김한 작품들. 당시 이문세의 음반을 제작한 킹레코드가 예고 없이 음반 가격을 인상해 음반 소매업자들이 불매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5집이 250만 장 넘게 팔린 것을 보면 이문세의 엄청난 인기를 새삼 실감하게 된다.


멀티 히트로 발라드의 신흥 강자가 된 변진섭
이문세가 발라드의 제왕이었다면 변진섭은 발라드의 떠오르는 스타였다. 1987년 "MBC 신인가요제"에 자작곡 '우리의 사랑 이야기'로 출전해 은상을 수상한 그는 이듬해 작곡가 지근식, 하광훈 등의 지원을 받아 데뷔 앨범을 발표한다. '홀로 된다는 것'을 비롯해 '네게 줄 수 있는 건 오직 사랑뿐', '새들처럼', '너무 늦었잖아요' 등 다수의 노래가 라디오 전파를 고르게 탈 만큼 앨범은 전반적으로 높은 완성도를 자랑했다. 변진섭의 맑은 음성과 시원한 가창력은 노래들이 지닌 맛을 극대화했다. 쉴 새 없는 히트 행렬 덕에 변진섭은 물론 앨범에 참여한 작곡가, 작사가들도 업계에서 지명도를 올릴 수 있었다.


여가수들 발라드, 트로트, 댄스음악에서 고른 활약을 보이다
1988년 여가수들의 활약도 돋보였다. 'J에게', '아! 옛날이여' 등으로 데뷔하자마자 인기 가수가 된 이선희는 연초 '나 항상 그대를'으로 돌풍을 이어 갔으며, 주현미는 '신사동 그 사람'으로 연말 방송사의 시상식에서 가수왕 타이틀을 획득했다. 1988년 여름 "MBC 강변가요제"에 출전해 보이시한 매력을 어필하며 '담다디' 유행을 일으켰던 이상은, 포스트 디스코풍의 댄스곡 '환희'로 히트를 지속한 정수라, 일본에서 돌아온 뒤 '그대는 인형처럼 웃고 있지만'을 통해 전보다 성숙한 스타일을 선보인 민해경 등이 우먼파워를 과시했다.


80년대 댄스음악 견인차 김완선, 소방차, 박남정
댄스음악 시장도 나날이 번성했다. 뇌쇄적인 눈빛, 화려한 춤사위를 앞세워 남성들의 애간장을 녹인 김완선은 '나 홀로 춤을 추긴 너무 외로워'로 댄싱퀸 타이틀을 유지했다. 지금 보면 유치하기 짝이 없지만 당시에는 현란하게 느껴졌던 안무, 마이크 던지기 등으로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은 남성 트리오 소방차는 '일급비밀', '통화중', '하얀 바람'의 연속 히트에 힘입어 인기 가수 대열에 들었다. KBS 예술단에서 활동했던 박남정은 '아! 바람이여'를 발표하며 가수로 본격 데뷔한다. 그는 Michael Jackson을 연상시키는 화려한 풋워크, 파핑을 기초로 한 세련된 춤을 펼쳐 보여 젊은이들의 호응을 얻었다.


다양성을 충족한 언더그라운드의 요람 동아기획
80년대 초반 출범해 1985년 들국화의 1집이 대박이 나며 음악계의 이목을 끈 동아기획은 준수한 음반을 꾸준히 발표함으로써 언더그라운드의 요람으로 확실히 자리를 잡게 된다. 유영석이 이끈 푸른하늘은 가녀리고 풋풋한 감성의 노랫말, 고운 멜로디로 채운 데뷔 앨범을 선보여 발라드의 새로운 문법을 제시했고, 김현식의 백 밴드에서 독립한 봄여름가을겨울은 당시 국내에 희소했던 재즈 퓨전을 구사함으로써 이 장르의 선구자가 됐다. '비처럼 음악처럼' 등을 통해 인지도가 급상승한 김현식은 4집으로 특유의 구수하고도 구슬픈 음악 세계를 단단히 가공해 보였다.

주류의 음악과 다른 스타일로 다양성을 만족한 동아기획의 빛나는 움직임은 더 있다. 손대면 금방이라도 깨질 것 같은 여린 정서를 내보이며 포크 음악의 남다른 상(像)을 구축한 시인과 촌장, 신촌 블루스로 활동하며 블루스 록을 전파한 보컬리스트 한영애 등이 이에 해당한다. 동아기획은 마니아 성향을 아우르는 넓은 스펙트럼으로 80년대 젊은 음악팬들의 새로움에 대한 갈급을 해소했다.


틴 팝 시장을 확대한 티파니, 데비 깁슨, 뉴 키즈
팝 음악계의 한 축은 아이돌이 담당하고 있었다. 1987년 데뷔 앨범을 발표해 두 편의 싱글을 빌보드 차트 정상에 올린 Tiffany는 1988년 같은 앨범에 수록된 The Beatles 커버곡 'I Saw Him Standing There'와 2집의 'All This Time'으로 성공 가도를 달렸다. 하지만 이듬해 빌보드 싱글 차트 35위를 기록한 'Radio Romance'를 끝으로 주류에서의 질주는 안타깝게 마감되고 만다.

데뷔 앨범부터 작사, 작곡, 편곡을 스스로 해결한 싱어송라이터이자 프로듀서였지만 10대 후반의 소녀, 비슷한 데뷔 시기 등의 공통점 때문에 Tiffany와 자주 비교된 Debbie Gibson도 성공을 거두고 있었다. 1987년 빌보드 싱글 차트 5위 안에 든 두 싱글로 판을 달군 그녀는 1988년 'Out Of The Blue'로 3위를 기록한 뒤 'Foolish Beat'로 드디어 1위를 달성했다. 공교롭게도 Tiffany와 쇠락 시기도 비슷했지만 Debbie Gibson의 2집은 그녀보다 더 큰 성공을 이뤘다.

프로듀서 Maurice Starr가 제작한 보스턴의 미소년 그룹 New Kids On The Block은 'Please Don't Go Girl', 'You Got It (The Right Stuff)' 등을 여러 나라에서 히트시키며 세계적인 보이 밴드로 등극했다. 이들은 팝, R&B, 랩 음악을 아우르는 스타일, 다이내믹하고 정교한 군무를 펼침으로써 현대 아이돌 그룹의 롤모델이 됐다.


힙합 황금기를 열다
1988년은 힙합의 황금기가 개막한 때이기도 하다. 갱스터 랩의 융성을 몰고 온 N.W.A의 [Straight Outta Compton], N.W.A와 다른 톤으로 흑인들의 정치사회적 의식 환기를 독려한 Public Enemy의 [It Takes A Nation Of Millions To Hold Us Back]이 출시돼 힙합의 내용적 변환에 새바람을 일으켰다. EPMD의 [Strictly Business]는 기존 음반들보다 더욱 호화로운 샘플링 작법을 제시했고, Slick Rick의 [The Great Adventures Of Slick Rick]은 입체적인 이야기 전개로 스토리텔링 방식 래핑에 새 국면을 열었다. Salt-N-Pepa와 MC Lyte는 탄탄한 완성도의 음반으로 여성 래퍼 세력 확장의 기반을 다졌으며, DJ Jazzy Jeff & The Fresh Prince는 [He's The DJ, I'm The Rapper]를 통해 근사한 비트와 재미있는 표현으로 가득한 팝 랩의 묘미를 전달했다.


신스팝, 하우스의 동반 성장
영국에서는 역시 신스팝, 댄스음악이 강세를 나타냈다. Pet Shop Boys는 Elvis Presley, Willie Nelson 등 많은 가수가 리메이크했던 팝의 명곡 'You Are Always On My Mind'를 커버해 성공을 거뒀다. 2008년 마스터우와 디지털 마스터가 결성한 듀오 YMGA가 샘플로 쓰기도 했던 Taylor Dayne의 'Tell It To My Heart'는 유럽 차트를 휩쓸며 그해 대표 댄스음악이 됐다.

1988년은 영국에서 수많은 음원을 조합해 만든 댄스음악이 발화한 해였다. 영국의 디제이, 프로듀서들은 이를 통해 독특한 힙 하우스, 일렉트로니카를 선보였다. Bomb The Bass의 'Beat Dis', S'Express의 'Theme From S-Express', Coldcut의 'Doctorin' The House' 등이 이 트렌드를 이끌었다. Coldcut이 프로듀스한 Yazz의 'The Only Way Is Up'은 장르상 구체적인 성격은 다르지만 앞의 노래들과 마찬가지로 하우스 인기를 확장하는 역할을 했다.


헤비메탈 88년을 더욱 뜨겁게 장식하다
록 신도 여전히 활발했다. 비록 얼마 지나지 않아 급격한 쇠퇴를 예비하긴 했어도 많은 밴드의 활약으로 하드록, 헤비메탈의 풍년을 맛본 때였다. Bon Jovi는 1986년 [Slippery When Wet]에 이어 [New Jersey]로 대성공을 거두며 톱클래스 대열에 들었고, 스웨덴 하드록 밴드 Europe 역시 4집 [Out Of This World]가 전작 [The Final Countdown]에 이어 빌보드 앨범 차트 상위권에 들어 인지도를 높였다. 또한 Ozzy Osbourne, Judas Priest, Iron Maiden, Metallica는 전 세계 메탈헤드들로부터 변함없는 지지를 받았다. 이 해 막 음반을 내기 시작한 Cinderella, L.A. Guns 같은 밴드들은 글램 메탈의 후발주자로서 이 장르의 막바지 열기를 지피는 데 공헌했다.

멜론-뮤직스토리-다중음격 http://www.melon.com/musicstory/inform.htm?mstorySeq=2993&startIndex=0


덧글

  • sws 2015/11/18 13:03 # 삭제

    김완선이 어마어마 했죠~~인기 대박 많고
  • 나인테일 2015/11/18 14:23 #

    그리고 서태지와 너바나가 나오며 종지부를 찍었죠
  • 한동윤 2015/11/19 10:29 #

    종지부이면서 종지부는 아닌? 아무튼 그러네요 :)
  • 플로렌스 2015/11/18 17:31 #

    1988년의 국내와 세계 음악씬을 이렇게 정리해서 보니 정말 좋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한동윤 2015/11/19 10:29 #

    네,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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