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곡을 새롭게 만난다. 리믹스 앨범! 원고의 나열

최근 미국 록 밴드 Fall Out Boy가 리믹스 앨범을 발표했다. 호쾌한 사운드로 전 세계 록 키드들의 아드레날린 대방출을 이끈 이들이 이번 음반에서는 힙합으로 방향을 전환해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또한 근래에는 앨범 단위의 리믹스 작품이 뜸해서 음악팬들과 매체의 이목이 더 쏠렸다.

한국에서는 나미가 '인디언 인형처럼' 리믹스 버전으로 새로운 스타트를 끊은 뒤 1990년대에 리믹스 음반 출시가 활발하게 일어났다. 이현우의 '꿈', 박준희의 '눈 감아 봐도' 같은 리믹스 EP를 위시해 많은 리믹스 음반이 나왔다. 하지만 새천년을 지나면서는 제작되는 일이 별로 없다. 디지털 음원이 일반화되고 리믹스도 싱글로 쉽게 선보일 수 있기에 양상이 바뀐 것. 리믹스 음반이 기근인 시대라서 과거의 그런 작품들이 생각나곤 한다.


Fall Out Boy [Make America Psycho Again]
펑크 록 밴드 Fall Out Boy는 5년 만의 컴백이 된 2013년 앨범 [Save Rock And Roll]부터 조금씩 변화를 보이고 있다. 그들의 중심 어법이 팝 펑크이긴 하지만 이때부터 팝과 팝 록 쪽에 비중을 높이는 대신 펑크 기운은 조금 줄였다. 그런 움직임의 연장이라고 해야 할까, 이들은 지난 10월 올해 초 발표한 6집 [American Beauty/American Psycho]의 리믹스 앨범 [Make America Psycho Again]으로 쉬지 않고 변신을 꾀한다.

이들이 선택한 새로운 분장은 특이하게도 힙합이다. 3집에서 Jay-Z를 시작으로 Lil Wayne, Big Sean 등의 래퍼를 초빙해서 힙합과 친분을 다져 오긴 했지만 이번에는 힙합과의 연계를 전면적으로 나타냈다. 수록곡들은 트랩 위주의 비트를 구비하고, Wiz Khalifa, OG Maco, Big K.R.I.T. 같은 요즘 핫한 래퍼들을 모셔 트렌디함을 어필한다. Fall Out Boy의 팬들 사이에서 앨범에 대한 호불호는 갈리는 편이지만 거듭 색다른 면모를 보이는 행보는 분명 대견하다.


클래지콰이 [Clazziquai Project Remix 'ZBAM']
리믹스 음반이 흔치 않은 시대에 클래지콰이는 매 정규 앨범 다음에 리믹스 앨범을 발표해 독자적인 행보를 연출했다. 이를 통해 클래지콰이는 남다른 창작열을 알렸으며 일렉트로니카 마니아들의 지지를 얻는 동시에 이 비주류 장르를 선전하는 선두로 자리매김했다.

인터넷에서 소문을 타다가 2004년 데뷔 앨범을 출시한 뒤 오프라인에서도 화제가 된 클래지콰이는 같은 해 발표한 첫 리믹스 작품으로 전자음악에 전문성이 강하다는 것을 재차 주장했다. 마니아들 취향의 곡이었지만 1집의 크나큰 인기, 원곡이 지닌 부드러운 멜로디와 세련된 편곡을 내세워 리믹스 앨범도 좋은 반응을 이끌어 냈다. 그때 유행의 맨 앞에 섰던 음악은 10년이 더 지난 지금 들어도 조금도 촌스럽지 않다.


Maroon 5 [Call And Response: The Remix Album]
데뷔 때부터 팝 록을 중심에 두면서 얼터너티브 록, 펑크(Funk) 록, 소울 등 여러 장르에 관심을 드러냈던 Maroon 5는 1집과 2집의 수록곡들을 갈무리한 리믹스 음반을 통해 영역 확장에 한차례 더 욕심을 냈다. 여기에서는 Questlove, DJ Premier, Pharrell Williams, Just Blaze, Mark Ronson 등 톱클래스 프로듀서들의 지원을 받아 힙합으로 촉수를 뻗었다. 또한 그보다 비중은 적지만 'Little Of Your Time (Bloodshy And Avant Remix)', 'Not Falling Apart (Tiesto Remix)' 등으로는 일렉트로니카를 탐험한다.

노래들은 힙합, 댄스음악의 골격으로 새롭게 탄생해 그 장르 특유의 그루브와 바운스를 유감없이 전달한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기존 록의 분위기를 잃지 않아서 무척 자연스럽게 들린다. 서로 다른 인자들의 화합 때문에 이채롭기도 하다. 본인의 스타일을 충분히 나타냄에도 원판의 감성을 보존하는 결과물을 통해 참여한 프로듀서, 뮤지션들의 빼어난 자질이 확인된다. 또한 어떤 곡에 들여놓아도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 Adam Levine 보컬의 마력도 인정하게 된다.


서태지와 아이들 [Taiji Boys Techno Mix & Live]
혜성처럼 나타나 가요계에 지각변동을 일으킨 비범한 음악감독 서태지는 첫 콘서트 일부와 리믹스를 고루 담은 이 비정규 음반으로 또 한 번 재기발랄한 감각을 과시했다.

공연에서 새로운 편곡으로 선보인 '환상 속의 그대 Part II'가 언질을 줬던 것처럼 '환상 속의 그대 Part III'는 당시 유로댄스 신에서 유행하던 톤의 신시사이저 루프를 설치해 한층 강한 소리를 낸다. 이에 더해 사이렌, 보컬 등 여러 샘플을 입혀 곡의 밀도감을 높였다. 원본의 기조인 전자음악-랩-하드록-국악의 퓨전이 강고하게 이어진 것은 두말할 나위 없는 근사한 업적이다. 보컬이 겹쳐지는 부분만 녹음해 인스트루멘틀의 성격을 강화한 '환상 속의 그대 Part IV'는 볼륨감이 큰 신시사이저로 세찬 기운을 내는 중에 동요 '비행기'의 멜로디를 넣어 가벼움도 도모했다.

리믹스 버전에서 도입부 통화 중 신호음과 한숨 소리로 특정 장면을 시각화한 '이 밤이 깊어 가지만'도 멋스럽다. 퍼커션과 빠른 영어 래핑 샘플은 노래에 원시적 느낌을 주입하며 오리지널보다 분량이 많아진 색소폰 연주는 반주를 더욱 재지(Jazzy)하게 만들었다. 댄스 팝에서 뉴 잭 스윙풍으로 바뀐 전체 골격도 무척 신선했다.

서태지는 이듬해 '하여가' 힙합 버전으로 다시금 탁월한 비트 메이킹 능력을 보여 줬다. 물론 재단된 샘플 음원이 이미 돌았겠지만 Sly & The Family Stone의 'Underdog', The J.B.'s의 'The Grunt', Lafayette Afro Rock Band의 'Darkest Light', James Brown의 'Get Up Offa That Thing', Public Enemy의 "Somebody In The House Say Yeah" 음성 등 많은 소스를 엮어 깔끔하게 조직한 것은 뛰어난 센스를 증명하는 일이었다.


015B [Final Fantasy]
원곡을 몰라도 괜찮다. 015B를 몰라도 상관없다. 이 리믹스 앨범은 오리지널을 넘는 독창성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본래 갖고 있던 멜로디는 그대로지만 캐스커, 아스트로 비츠, 제펫 등 일렉트로니카 뮤지션들의 참여로 저마다 스타일리시함을 뽐낸다. 과거에도 유행의 선두에 섰던 노래들은 새천년 이후 광범위하게 일어난 일렉트로니카 열기에 맞춘 새로운 외투를 걸치고 트렌드를 주도했다.

수록곡들은 015B의 1막이었던 6집까지의 활동에서 추려 담았는데, 그 양이 너무 적어 감질나는 게 단점이다. 하지만 1990년 데뷔해 7년 동안 활동하면서 여성 객원 보컬을 단 한 번만 고용했던 015B가 한 앨범에서 여러 명의 여성 보컬을 초청한 최초의 자리라서 의미 있다. 또한 주류에서 히트했던 이들이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과 교류했다는 사항도 이 리믹스 앨범을 특별하게 만든다.


듀스 [Rhythm Light Beat Black]
음악과 퍼포먼스 두 분야가 모두 탁월했던 동갑내기 듀오는 1집과 2집에 이어 2.5집 격인 이 리믹스 앨범으로 재차 그들의 특기를 검증했다. 프로듀서 이현도는 다채롭고도 탄탄한 구성의 곡들을 제작해 듀스가 그저 그런 댄스 그룹이 아님을 천명했다. 김성재는 패션, 안무 등 외적인 부분을 말쑥하게 단장하며 자신들이 그 누구보다 힙하고 역동적인 팀임을 알렸다. 이때 방송에서 선보인 '우리는'과 '약한 남자' 리믹스 버전, 신곡 '떠나 버려'는 수많은 음악팬의 눈과 귀를 홀렸다.

타이틀로 표한 "리듬은 밝게 비트는 진하게"의 기치에 걸맞게 노래들은 경쾌하고도 야무지다. 와와 이펙트를 쓴 전기기타 연주로 단출함을 꾀한 '약한 남자 (Wow Wow Ver.)', 간주에 강한 신시사이저 연주를 넣어 원기를 보강한 '우리는 (Power Up Ver.)', 록의 성격을 강화한 'Go! Go! Go! (2 Heavy Ver.)' 등은 앨범의 지향을 만족스럽게 서술한다. 흥겹지만 경솔하지 않고, 농후하지만 탁하지 않다.

이 리믹스 앨범에서 많은 노래가 사랑을 받았지만 사실상의 주인공은 '여름 안에서'였다. 노래는 여름의 찬가로 등극함으로써 듀스를 영생하는 가수로 만들었다.


Jennifer Lopez [J To Tha L–O! The Remixes]
1999년 데뷔 앨범과 2001년 2집이 멀티 플래티넘을 기록해 일찍이 라틴계 슈퍼스타 반열에 든 Jennifer Lopez는 이 리믹스 앨범으로 라틴계 팝의 여왕이라는 칭호를 더욱 꽉 쥐게 됐다. 빌보드 정상을 밟은 데뷔 싱글 'If You Had My Love', 3위를 기록한 'Love Don't Cost A Thing'이 다시금 많은 인기를 얻었고, 'Ain't It Funny'는 처음 싱글로 나왔을 때에는 빌보드 차트에 진입하지 못했지만 리믹스 버전으로 1위를 차지했다.

원곡들이 Darkchild, Sean Combs 등 업계에서 알아주는 미다스의 손들을 통해 나왔기에 리믹스 역시 준수할 수 있었다. 이 덕분에 Jennifer Lopez는 앨범에서 R&B, 힙합 소울, 댄스음악 등 다양한 영역을 안정감 있게 누볐다. 또한 Nas, Fat Joe, Ja Rule 등 인기 래퍼들의 참여는 힙합 애호가들의 관심을 유도했다. 일련의 배경으로 [J To Tha L–O! The Remixes]는 Michael Jackson, Madonna 등에 이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판매된 리믹스 앨범" 4위에 올랐다.


Madlib [Shades Of Blue: Madlib Invades Blue Note]
많은 힙합 프로듀서가 재즈와 힙합을 섞는 작업을 벌여 왔으나 그들의 작품은 대체로 재지(Jazzy)한 기운을 풍기는 수준에 한정됐다. 재즈와 힙합이 각자의 특질을 지키면서 절묘하게 융화되는 무대는 Guru의 1993년 앨범 [Jazzmatazz]가 거의 유일했다. 이 유례없는 자취도 두 번째부터는 네오 소울, 라운지 등으로 스타일이 확장되면서 변질 아닌 변질이 발생했다.

좀처럼 제대로 맛볼 수 없던 재즈와 힙합의 알맞은 혼합은 Madlib의 [Shades Of Blue: Madlib Invades Blue Note]가 훌륭히 수행했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이 앨범에서 그는 재즈 명가 블루 노트 레코드(Blue Note Records)의 곡을 힙합풍으로 편곡해서 들려준다.

힙합이 주된 어법이긴 하나 오리지널을 훼손하지 않고 샘플링과 실제 연주를 통해 요란스럽지 않게 새로운 버전을 만들어 낸 것이 앨범의 장점. 맑은 오르간 소리가 특징인 Ronnie Foster의 'Mystic Brew'를 거리의 비트로 리믹스한 'Mystic Bounce', Reuben Wilson의 원곡 루프를 바탕에 두고 여러 악기가 호흡을 맞추는 'Stormy' 등으로 재즈와 힙합의 온화한 만남을 경험할 수 있다.

멜론-뮤직스토리-다중음격 http://www.melon.com/musicstory/inform.htm?mstorySeq=3018&startIndex=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