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윤 선정 2015 올해의 팝 앨범 원고의 나열

2015년 역시 신스팝, 소울 등 과거에 인기를 끌었던 장르들이 다시금 막강한 세를 떨친 해였다. Sam Cooke을 닮은 스타일로 소울 팬을 흥분케 한 Leon Bridges, 두 번째 앨범을 발표하며 신스팝 전도사로 지위를 굳힌 Chvrches, 신스팝에 영향을 받은 청량한 사운드로 히트를 기록한 Carly Rae Jepsen 등이 그쪽 군에 속한다. 한편에서는 캐나다 가수 The Weeknd가 상업적 성공과 평단의 찬사를 동시에 누리면서 얼터너티브 R&B의 핵심으로 성장했고, 미국 신인 뮤지션 Shamir는 전자음악과 흑인음악을 접목하며 댄서블한 R&B의 새로운 형태를 제시했다. Electric Light Orchestra의 수장 Jeff Lynne은 14년 만에 ELO로 귀환해 젊은 아티스트들 사이에서 건재함을 과시했다. 작년과 다름없이 풍성했던 한 해, 이번 "다중음격"은 2015년을 결산하는 의미에서 "올해의 팝 앨범"을 선정했다.


The Weeknd [Beauty Behind The Madness]
특유의 어두운 톤은 이번에도 변함없다. 'Real Life'는 사이렌처럼 들리는 전자음과 이를 비집고 나오는 엄숙한 첼로, 넓은 간격을 두고 퍼지는 드럼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며, 'Often'은 음성을 왜곡한 샘플과 보컬을 부각한 믹싱으로 황량함을 조성한다. 'As You Are'는 3분 5초를 지나면서 악기를 줄이고 스캣을 부각해 침침한 광경을 만든다. 활발하지 않은 드럼, 명료한 윤곽이 없는 전자음을 활용해서 완성하는 냉기는 거처를 옮기지 않았다.

종래의 지향을 고수하는 가운데 간간이 색다른 모습도 드러낸다. 트래디셔널 팝의 골격에 목소리를 싣는 'Earned It'이 대표적이다. 전자음 대신 현악기를 앞세운 왈츠풍의 반주는 위켄드가 향후 스펙트럼을 더 넓힐 것을 내다보게 한다. Kanye West가 프로듀스한 'Tell Your Friends'는 영락없는 사이키델릭 소울이고, 미국 인디 여성 뮤지션 Maty Noyes가 아름다운 목소리를 곁들이는 'Angel'은 록과 드림 팝의 혼합이다. Michael Jackson을 쏙 빼닮은 보컬이 인상적인 'Can't Feel My Face'는 신스팝을 모태로 경쾌함을 선사한다.

밝지 않지만 재미있다. The Weeknd는 [Beauty Behind The Madness]에서 전과 다름없이 본인만의 침울한 얼터너티브 R&B를 적극 선보인다. 그러면서도 타 장르에 발을 걸치거나 다른 양식들을 대입함으로써 색다른 형질도 만들어 낸다. 중심을 유지하나 동시에 변화를 모색하기에 감상이 즐거워진다.


Carly Rae Jepsen [Emotion]
비록 전작의 성적에 미치지는 못했지만 Carly Rae Jepsen은 [Emotion]을 통해 'Call Me Maybe'와 'Good Time'으로만 기억될 가수가 아님을 알리는 데 성공했다. 그녀는 다수가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곡을 썼고, 여기에 Shellback, Greg Kurstin, Ariel Rechtshaid 등 실력 좋은 프로듀서들의 원조로 노래들은 말끔한 매무새를 획득했다.

더불어 옛 문법의 복원이 트렌드가 된 시대에 신스팝('I Really Like You'), 1980년대 감성의 팝 발라드('All That'), 펑크-디스코('Boy Problems') 등 과거의 인기 장르를 골고루 표현해 대중적 기호를 만족했다. 또한 앨범의 후반부에서는 하우스 트랙 'I Didn't Just Come Here To Dance'를 위시해 일렉트로니카도 적극적으로 시도해서 약간의 색다른 면모도 갖췄다. 잘 들리고, 부드러우며, 달콤한 웰메이드 팝 앨범이다.


Leon Bridges [Coming Home]
흑인음악 시장의 복고 열풍은 당분간 쉬이 사그라들지 않을 것이다. Adele이 선봉에 선 브리티시 소울 인베이전은 올해도 성공적이었으며, Pharrell Williams가 지핀 디스코, 펑크 열풍은 표절 소송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강한 위력을 내고 있다. 이에 더해 DJ Cassidy, Gavin Turek 등 젊은 뮤지션들도 디스코 리바이벌에 동참 중이니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여정은 오래 지속될 전망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텍사스주 출신의 싱어송라이터 Leon Bridges의 등장은 남들에 비해 더욱 돋보인다. 현재 유행하는 복고보다 앞선 시기의 음악을 들려주기 때문이다. 그는 Otis Redding, Sam Cooke 같은 인물이 연상되는 1960년대의 소울을 한다. 기타, 오르간, 관악기 등으로 이뤄진 반주는 그 시절 소울 특유의 질감을 제대로 복구하며, 멜로디 역시 그때의 단출함과 수수함을 온전히 반영한다. Leon Bridges의 탁하면서도 따스한 음색도 과거의 운치를 배달하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히트곡은 배출하지 못했지만 [Coming Home]은 중년 소울 팬들의 향수를 달래 주기에는 충분했다.


Courtney Barnett [Sometimes I Sit And Think, And Sometimes I Just Sit]
호주의 여성 로커 Courtney Barnett에게서도 복고 인기를 읽을 수 있다. 그녀의 데뷔 앨범 [Sometimes I Sit And Think, And Sometimes I Just Sit]는 개러지와 얼터너티브를 바탕에 둔 음악으로 예스러운 풍경을 펼쳐 보인다. 정제되지 않은 사운드, 멍하고 텁텁한 느낌, 멋을 부리는 것과는 거리가 먼 가창 등의 특징은 1980년대 후반, 90년대 초의 얼터너티브 록 신에 맞닿아 있다.

소리는 대체로 거칠지만 멜로디가 대체로 캐치해 흡인력을 발휘한다. 기타의 괄괄한 톤과 연설하는 듯한 싱잉이 활력을 발산하는 'Pedestrian At Best', 가벼운 기타 리프가 발랄하게 다가오는 'Dead Fox', 투박한 질감과 호쾌한 연주, 깔끔한 멜로디가 잘 조화된 'Nobody Really Cares If You Don't Go To The Party' 등은 과거 유행했던 양식을 현대적으로 풀이하는 Courtney Barnett의 특징과 장점을 분명하게 말해 준다.


Enya [Dark Sky Island]
1980년대 후반, 90년대 초에 뉴에이지 돌풍을 일으킨 주역 Enya의 음악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다. 이번에도 데뷔 때부터 함께한 작사가 Roma Ryan, 프로듀서 Nicky Ryan 부부와 짝을 이뤄 나른하고 몽환적인 노래를 들려준다. 여러 겹으로 층을 낸 보컬, 리드 보컬의 긴 호흡, 은은하게 일렁이는 신시사이저 등 그녀만의 특징이 새 앨범 [Dark Sky Island]에도 어김없이 자리한다.

동일한 작법이 30년 가까이 계속되니 따분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럼에도 질리기는커녕 안락함이 드는 이유는 곡들이 듣는 이를 포근하게 감싸 안는 듯한 대기를 띠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Roma Ryan이 개발한 "록시안(Loxian)"어(語)가 신비감을 더해 준다. Enya는 자신의 음악 노선을 확고하게 지키면서도 또 한 번 매력의 유통기한을 능준하게 연장해 보였다.


Shamir [Ratchet]
1994년생, 이제 만 스무 살을 넘긴 젊은 싱어송라이터 Shamir의 데뷔 앨범 [Ratchet]은 오늘날 힙합, R&B가 어떤 식으로 다변화되고 있는지, 전자음악이 어떤 경향을 나타내는지를 알려 주는 작품이다. 본인을 남성과 여성의 이분법적인 성별 구분에서 벗어나 새로운 성 정체성을 갖는 "젠더퀴어(Genderqueer)"로 여기는 인물답게 음악도 하나의 장르로는 규정할 수 없는 복합성을 띤다.

기본적으로 힙 하우스, 일렉트로니카가 중심이 되는 가운데 가끔 R&B 성분이 들어가지만 전통적인 R&B 문법은 아니다. 댄스음악 골격이 주되지만 여기에는 꼭 흑인음악적인 접근이 나타난다. ('KC'에서는 뜬금없이 포크를 한다.) 게다가 가성으로 노래하는 탓에 여성이 부르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If It Wasn't True', 'On The Regular', 'Call It Off' 등 노래들의 뮤직비디오는 또 얼마나 괴상한가. 정말 골 때리게 야릇하다.


Grimes [Art Angels]
자신의 스타일을 "주의력결핍 과다행동장애 음악"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결코 장난스러운 표현이 아니다. 2010년 데뷔해 올해 네 번째 음반을 발표한 캐나다의 여성 싱어송라이터 Grimes는 신스팝, 드림 팝, 록 등 여러 양식을 순회하며 실로 어수선한 음악 세계를 구축한다. 그녀가 영향을 받았다고 언급한 아티스트만도 열 팀은 훌쩍 넘으니 이런저런 스타일이 섞여 있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한 매체가 그녀를 "Aphex Twin과 ABBA의 외계 사생아"라고 묘사했듯 Grimes의 음악은 까다로운 전자음악의 성분과 잘 들리는 팝의 멜로디가 공존한다. 이번 앨범 [Art Angels] 역시 마찬가지다. 정신 사납게 무차별적으로 전자음을 쏘아대지만 선율은 아기자기한 'Kill V. Maim', 바로크 팝과 일렉트로팝을 결합한 'Easily', 둔중한 베이스라인과 서정적인 바이올린 연주가 대조되며 상승효과를 나타내는 'Venus Fly' 등 도처가 요란하다. 그럼에도 슬기로운 악기 운용과 저돌적인 사운드 연출을 통해 앨범은 견고함을 뽐낸다. Grimes는 이 앨범으로 세계가 주목하는 뮤지션으로 확실히 발돋움했다.


Jeff Lynne's ELO [Alone In The Universe]
2001년 [Zoom] 이후 14년 만에 출시하는 앨범이지만 어색함은 느껴지지 않는다. Electric Light Orchestra에서 Jeff Lynne's ELO로 간판이 바뀌었지만 음악의 맛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룹을 진두지휘하던 Jeff Lynne이 그대로이며, 그의 감각과 역량이 조금도 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Jeff Lynne호(號)는 굳건한 구심으로 청취자를 1970, 80년대로 안내한다. ELO가 큰 인기를 얻었던 시기, 그들이 했던 프로그레시브 록, 서정적인 아트 록, 로큰롤 등이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가성 코러스를 더해 온화함을 띠는 소프트 록 'Dirty To The Bone', 그야말로 전성기로 돌아간 듯한 디스코 록 넘버 'One Step At A Time', 푸근함과 수수함을 녹인 프로그레시브 록 'When I Was A Boy' 등 처음부터 끝까지 과거를 추억하게 하는 노래들이 그득하다. [Alone In The Universe]는 그 시절 위대했던 거장이 직접 기획, 연출한 복고의 결정판 같은 작품이다.


Natalie Prass [Natalie Prass]
몇 편의 EP를 출시하며 찬찬히 자신을 홍보해 온 미국 싱어송라이터 Natalie Prass는 오늘날 대중음악 트렌드의 틈새를 놓치지 않음으로써 데뷔를 성공적으로 만들었다. 거센 사운드의 범람으로 많은 이가 피로감을 느낄 시점에 그녀는 트래디셔널 팝과 R&B의 중간쯤에 위치하는 따스한 음악으로 대중의 갈증을 해소했다.

보호 본능을 자극하는 유약한 보컬, 풍성하지만 과하지 않게 체구를 조율한 오케스트레이션의 미묘한 동거는 울림을 극대화하며 고풍스러운 질감을 연출한다. 'Reprise'의 내레이션 보컬은 요즘 노래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방식이라 고전적 성향을 배가하며, 'It Is You'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노래 같은 전통의 멜로디를 나타내기에 더욱 정겹다. [Natalie Prass]는 우아한 소리로 청취자를 슬며시 끌어당긴다. 처음에는 심심할지 몰라도 들을수록 뭔가가 우러나온다.


Kendrick Lamar [To Pimp A Butterfly]
일단은 새로움이 앨범을 눈여겨보게 만들었다. 지난 두 앨범에서는 오늘날 주류 힙합의 트렌드라 할 미니멀한 비트를 주로 실었던 반면에 이번에는 재즈, 펑크(Funk), 네오 소울 등으로 스타일을 확 바꿔 등장했다. 2000년대 초반에 언더그라운드에서 유행하던 네오 소울 골격을 살린 'These Walls', 프리 재즈를 표방한 'For Free? (Interlude)', 피 펑크(P-Funk) 특유의 육중함과 멍한 신시사이저 연주를 들려주는 'King Kunta' 등 [To Pimp A Butterfly]는 흑인음악의 여러 갈래를 다루며 신선한 변화를 나타냈다.

사회와 삶을 조명하는 노랫말, 곡의 분위기에 따라 모습을 바꾸는 래핑도 Kendrick Lamar와 이 앨범을 특별하게 느껴지도록 한다. 마약, 거리 폭력배들과의 싸움으로 점철된 환경에서도 자애(自愛)의 의지를 내비치는 'i'에서는 생기 충만한 래핑으로 긍정적인 암시에 힘을 보탠다. 오랜 세월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인종차별에 분노하면서 한편으로는 흑인임을 자긍하는 'The Blacker The Berry'는 탁한 톤과 거친 플로를 통해 날 선 상태를 나타낸다. 노숙인, 빈민의 비참한 삶을 이야기하는 'How Much A Dollar Cost'에서는 근엄하게 연기하고, 최고의 위치에 오른 본인을 쿤타킨테에 비유하며 거들먹거리는 'King Kunta'에서는 음과 볼륨을 고조해 그럴듯하게 폼을 낸다. 일련의 노래들은 켄드릭 라마의 노랫말에 대한 고민, 뛰어난 래핑 실력을 확실하게 보여 줬다.

재즈, 펑크, 네오 소울, 스포큰 워드를 적극적으로 결합해 복잡성과 실험성을 도모하는 동시에 외형상으로는 순하고 매끄러운 면까지 성공적으로 갖췄다. 시시각각 변하는 래핑은 출중한 역량과 동물적 감각을 재차 느끼게 한다. 무엇보다도 의식적인 내용, 민족성, 정치를 아우르는 가사는 한동안 주류 힙합에서 간과돼 온 랩의 사회성과 그 가치를 복구해 줄 만했다.

멜론-뮤직스토리-다중음격 http://www.melon.com/musicstory/inform.htm?mstorySeq=3092&startIndex=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