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윤 선정 2015 올해의 가요 앨범 원고의 나열

주류 시장은 예년과 다름없이 아이돌 그룹이 헤게모니를 잡았다. 기존 그룹, 연일 나오는 신인으로 아이돌 포화를 이루는 상황에서도 남달라 보이는 인물들이 있었다. 밴드라는 외형을 갖추고 복고 양식을 선보인 원더걸스, 세련되고 잘 들리는 일렉트로니카로 유행의 선두에 선 f(x)가 그에 속한다.

언더그라운드에서는 특별한 설정과 진솔한 표현으로 흥미로움을 안긴 딥플로우, 자연과 도시에 대한 심상을 강건하고 지능적인 하드록에 담아낸 라이프 앤 타임, 한국의 풍경과 기운을 앰비언트로 풀이한 국악 그룹 공명 등의 작품이 돋보였다. 2015년을 결산하는 의미에서 이번 "다중음격"에서는 "올해의 가요 앨범"을 선정했다.


원더걸스 [Reboot]
밴드라는 새로운 포맷은 3년 동안 국내 활동이 뜸했던 중견 아이돌 그룹을 돋보이게 만들었다. 원더걸스는 또한 가요계에서 거의 볼 수 없었던 라틴 프리스타일(Latin Freestyle) 장르를 시도해 음악적 신선함도 갖췄다. 라틴 프리스타일이 1980년대에 유행했던 스타일이기에 이들은 큰 지지를 얻는 복고 트렌드에도 자연스럽게 승차할 수 있었다. 콘셉트와 시기가 딱 맞아떨어진 컴백이었다.

[Reboot]의 수록곡들은 라틴 프리스타일의 특징을 잘 구현하면서도 미끈한 멜로디로 대중성까지 확보했다. 가사와 가창이 모두 고혹의 열기를 품은 'I Feel You', 베이스라인의 강렬함과 R&B의 부드러움이 근사한 시너지를 내는 'Rewind', 서정미가 가득 밴 신시사이저 루프가 인상적인 '사랑이 떠나려 할 때' 등은 프리스타일 장르, [Reboot]의 일미를 만끽하게 해 준다. Salt-N-Pepa가 연상되는 뉴 스쿨 힙합 트랙 'Back'은 같은 시절 음악이라는 점으로 앨범의 통일성을 보강하면서 랩이 중심이라는 특징으로 양념 같은 역할을 한다.

밴드로 나왔음에도 멤버들이 레코딩에서 직접 연주하지 않은 것은 아쉽다. 하지만 각자 싱어송라이터로서 역량을 드러낸 점은 괄목할 성과다. 연주와 퍼포먼스를 안정적으로 겸하는 다음을 기대해 본다.


딥플로우 [양화]
홍대(작업실)와 영등포(집)를 잇는 양화대교를 오가며, 어느덧 데뷔 10년을 넘긴 굵직한 경력의 래퍼와 30대에 접어든 대한민국 청년 류상구를 오가며 딥플로우는 각각의 배경을 담아 두 가지 이야기(兩話(양화))를 풀어낸다. 하루가 다르게 빠르게 변해 가는 국내 힙합 신에 대한 공격적인 태도, 지난한 가정사와 개인적인 이야기가 흥미롭게 흐른다. 이 특별한 설정을 염두에 둔 확고한 태도, 유기적 내러티브 덕분에 노래들은 서로 긴밀해졌다.

체구처럼 묵직한 래핑은 변함없어서 그가 내뱉는 문장 하나하나에 힘이 느껴지는 것도 매력. 트랩, 1990년대 미국 동부의 하드코어 힙합, R&B 정서가 가미된 곡 등 다채로운 비트도 즐거움을 더한다. DJ Soulscape, Sean2slow, 허클베리피, Don Mills 등 화려한 참여진도 앨범을 한층 풍성하게 만들었다. 콘셉트, 통일성, 뮤지션들의 퍼포먼스와 프로듀싱이 멋지게 조화됐다.


가을방학 [세 번째 계절]
가을방학은 그들 이름이 특징이며, 곧 장르다. 일상의 경험과 문학적 터치가 보기 좋게 엮인 정바비의 노랫말, 또한 그가 지은 나긋나긋한 선율, 싱겁게 상냥한 계피의 오묘한 음색이 서로 어깨를 나란히 맞추며 그룹만의 독자성이 생겨났다.

2년 만에 발표하는 3집 [세 번째 계절]도 그 매력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때문에 노래들이 포크, 팝, 모던 록 등으로 옷을 갈아입고 있어도 결코 산만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오케스트라가 전면에 나선 다소 거센 록 '사람의 홍수 속에서'가 전에는 접할 수 없었던 스타일이라 이채롭긴 하지만 이 또한 그냥 가을방학표 음악이다. 계이름으로 가사를 작성한 '새', 영어 선생에게 빠진 여학생의 상황을 당위성 있게 풀어낸 'David'는 가을방학의 기발한 재치를 부연한다. 미소를 짓게 하는 편안한 이야기가 아름답게 흐른다.


임달균 [Friends N' Swing]
국내 재즈 앨범은 옛날 재즈 명곡이나 가요 히트곡들을 리메이크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임달균의 [Friends N' Swing]에는 이미 나온 노래, 평범한 재해석이 없다. 모두 창작곡이다. 게다가 남성 보컬리스트가 얼마 없는 형편이기에 가수로 분한 임달균의 모습은 더욱 참신하게 다가온다. 잘 정제되고 원숙한 보컬은 아닐지 몰라도 그의 목소리는 구수함과 안락한 맛을 충분히 제공한다. 그의 원래 포지션은 색소폰이지만 트럼펫을 연주하며 스스로 또 한 번의 변신을 꾀했다. 획기적인 무대라 할 만하다.

재즈 애호가가 아닌 이도 어렵지 않게 감상할 수 있다. 경쾌한 리듬으로 흥을 돋우는 빅 밴드 스윙('설레임', '숲의 노래')이 포진해 있는 데다가 노래들이 대체로 팝의 느낌을 내기 때문이다. 결코 심각하거나 무겁지 않은, 마치 일상의 대화 같은 보컬 또한 편안함을 증대한다. 평범한 삶, 주변 사람에 대한 애정을 다룬 무던한 가사도 살가운 온기를 형성한다. '친구'는 그야말로 가까운 친구의 격려, 다독거림 같다. 재즈를 즐겁게 맛볼 수 있다.


라이프 앤 타임 [Land]
호쾌한 사운드가 단숨에 귀를 잡아끈다. 각 악기의 연주와 이것들의 합도 무척 탄탄하다. 앨범을 재생하는 순간부터 불꽃이 튀는 것만 같다.

구성은 또 얼마나 근사한가. 멍한 상태와 격렬한 직진을 번갈아 가며 흥분을 안기는 '꽃 (Flower)', 험한 기타 리프로 달리다가 베이스를 앞세워 잠시 숨을 고른 뒤 엇박자 연주로 특이함을 띠는 'My Loving City', 후렴에서 템포를 올리고 코러스를 들여 변화를 주고 간주에서 다시 연주의 톤을 바꾸는 '땅 (Land)' 같은 노래들을 통해서 하드록, 프로그레시브 록, 펑크, 사이키델릭을 한꺼번에 접할 수 있다.

중반부에서는 소리의 기운이 다소 줄어드는데 확 부드러워진 보컬과 촉촉한 기타 리프가 매력적인 '빛 (Light)'는 그쪽 노래들 중 압권이다. 여기에 자연과 도시에 대한 생각을 담은 가사는 이런저런 풍경을 제시하며 노래를 깊이 음미해 보도록 만든다. 칵스의 박선빈, 로로스의 진실, 재즈 드러머로 활동한 임상욱이 결성한 라이프 앤 타임은 지난해 낸 데뷔 EP부터 범상치 않았다. 슈퍼그룹에 걸맞은 포스를 드러냈다.


피타입 [Street Poetry]
그야말로 거리의 시. 피타입은 [Street Poetry]에서 지역, 동네, 거리에 계속해서 시선을 돌리며 감상과 소회를 진중하게 풀어낸다. '폭력적인 잡종문화', 'Do The Right Rap', '반환점' 등에서는 힙합 신의 불편한 모습들을 일갈하며, '돈키호테 2'에서는 한국 힙합의 명작으로 기록되는 [Heavy Bass] 시절을 언급하면서 내일을 향한 의지를 다진다. '광화문'은 개인의 기억을 불러내다가 사회적 쟁점으로도 소재를 확장해 보인다. 자신의 음악 활동에 영향을 준 힙합 아티스트들에게 헌정하는 'Timberland 6'''로도 거리 래퍼의 심상을 이어 간다.

킵루츠, Deepfry, Fascinating(MC 성천) 등이 제공한 1990년대 동부 힙합 스타일의 둔중한 비트도 날것의 느낌으로 앨범의 풍미를 더한다. 각자의 개성을 유지하면서도 노래에 잘 어우러진 넋업샨, 태완, 바버렛츠, 선우정아 등의 도움도 앨범을 더욱 윤택하게 만든다. "라임 명인"이라는 호칭이 당연히 붙어야 할 훌륭한 라이밍도 어김없이 펼쳐진다. 안과 밖이 모두 든든한 수작이다.


토다(TODA) [The Moment]
클래식인가 하면 록이 등장하고, 록인가 하면 우리 전통음악의 인자가 들어선다. 동의대학교 음악학과 교수 이기녕이 이끄는 TODA는 심포닉 록, 퓨전국악을 아우르는 크로스오버 스타일을 들려준다. 2011년에 발표한 데뷔 앨범 [TODA (T.O. To Dream Age)]에 이어 그룹은 또 한 번 독특한 음악 세계를 제시한다.

큰 틀은 변함없으나 연주곡으로만 구성했던 전작과 달리 이번에는 보컬이 들어간 노래를 여럿 들려준다. 클래식-록의 퓨전 작법에 한국적인 발라드 느낌을 녹여낸 '그대를 본 순간 (The Moment)', 정가(正歌)풍의 가사로 고풍스러움을 내보이는 심포닉 록 '하모니움 (Harmonium)', 하드록과 프로그레시브 록이 거듭되는 중에 태평소가 우리 전통음악의 형질을 만드는 '꿈속이라도 (Even In My Dream)'는 보컬 덕분에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는 노래들이다.

흔하지 않은 형식이기에 까다롭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치밀한 구성과 탄탄한 연주는 청취자에게 몰입감을 안길 것이다. 무엇보다도 우리 전통음악을 덧대 프로그레시브 록을 표현하는 독자성은 토다를 빛나 보이도록 한다.


f(x) [4 Walls]
매체들은 설리의 탈퇴가 그룹의 활동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관계를 연결 지으려 했으나 그건 쓸데없는 기우였다. 그룹에 대한 팬층이 두터우며, 나머지 네 멤버가 팀 안에서 균등하게 존재감을 내는 탓이다. 무엇보다도 (현재 SM엔터테인먼트 소속 아이돌 그룹이 대체로 그렇지만) f(x)의 음악적 매력은 외국 작곡가들에게서 얼마나 좋은 곡을 받아 오는지가 좌우하기 때문이다.

4집 [4 Walls] 역시 마찬가지다. LDN Noise, Carly Rae Jepsen 등 외국 작곡가, 프로듀서가 대거 곡을 썼다. 이들의 참여는 단지 앨범 크레디트에 알파벳을 늘리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이들은 선율과 곡의 외형을 말쑥하게 다져 표현하는 임무를 충실히 했다.

감각적이면서도 단정한 하우스 넘버 '4 Walls', 테크노 형식과 글리치가 혼합된 'Deja Vu', 약하게 딥 하우스의 성격을 드러내는 'Rude Love', 팝과 EDM을 오가는 'Cash Me Out' 등 앨범은 일렉트로니카를 주메뉴로 세련미와 유쾌함을 함께 전달한다. 마니아적인 접근, 팝 감성이 차지게 어우러진 앨범이다. 좀처럼 갈피를 잡을 수 없는 f(x) 특유의 괴상한 노랫말이 전작들에 비해 덜한 것도 작품성을 높인다.


메쏘드(Method) [Abstract]
이런 앨범에 대한 반응은 대부분 극단적으로 갈린다. 하나는 열렬히 환호하는 쪽이고, 다른 하나는 "시끄럽다", "듣기 어렵다" 같은 말을 하며 이내 청취를 포기하는 쪽이다. 안타깝게도 실정은 후자가 압도적으로 많다. 하지만 이런 스래시, 익스트림 메탈을 지지하는 마니아도 다수를 이룬다. 향유하는 숫자가 압도적으로 크지 않을 뿐이다. 친숙하게 다가오는 곡들은 아니더라도 이런 밴드, 이런 음악이 있어야 음악계가 풍요롭게 성장할 수 있다.

4인조로 체제를 바꾼 헤비메탈 밴드 메쏘드의 4집 [Abstract]는 시장에 다양성을 더해 주며, 메탈헤드들의 열띤 응원을 받을 작품이 틀림없다. 멤버들의 연주는 고르고 단단한 호흡을 과시하며, 내내 정신없이 질주하는 중에도 두드러지는 연주 지점을 둠으로써 감상에 즐거움을 제공한다. 노래 멜로디도 은근히 유려해서 집중도가 올라간다. 더 멋지게 돌아와서 기쁘다.


공명 [공명_고원]
전통음악의 애처로운 불모지에 다시 희망의 발을 내딛는 공명의 복귀 음반 [고원]은 가히 가장 한국적인 앰비언트라 할 만하다. 수록곡들은 결코 다급하지 않은 연주, 편안한 호흡의 연결로 앨범의 모티프가 된 강원도 평창 일대의 풍광을 듣는 이에게 조곤조곤 설명해 보인다. 황소걸음처럼 지긋이 나아가는 북소리, 새벽녘을 연상시키는 차갑지만 상쾌한 대기, 때로는 힘차게 음을 그리는 가락은 청취자를 공명의 걸음에 동참하게 한다. 이미 산자락 여기저기를 누벼 가슴이 벅차오르는 절경을 경험한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 서양악기를 최소화한 채 서양의 대중음악 문법을 구현한 것도 퓨전 국악으로서 대단한 성과다. 자연친화적인 안락감, 우리의 정기를 담아낸 훌륭한 음반이다.

멜론-뮤직스토리-다중음격 http://www.melon.com/musicstory/inform.htm?mstorySeq=3116&expose=tr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