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춰도 씁쓸한 아이들의 춤 원고의 나열

지난 12월 15일 방송된 SBS [놀라운 대회 스타킹]에 초등학생 댄싱 팀이 출연했다. '서산 칼공주'라고 소개된 일곱 명의 여자아이들은 'Conga', 'Bang Bang' 같은 인기 팝송에 맞춰 성인 가수들의 안무, 스트리트 댄스의 하나인 로킹(locking) 등을 선보였다. 꼬마들의 격렬한 춤을 본 프로그램의 패널들은 하나같이 입을 크게 벌리며 환호했다.


사실 아이들의 공연은 그렇게까지 경탄할 수준은 아니었다. 방송의 재미를 위해 게스트들은 으레 과장된 반응을 나타낼 수밖에 없지만 가공된 표정이 애석하게 느껴질 만큼 퍼포먼스는 특출하지 않았다. 게다가 선과 각도가 제각각으로 나오는 순간이 많았다. 여러 명의 동작이 날카롭게 딱딱 맞아떨어질 때 흔히 쓰는 '칼군무'라는 말을 듣기에는 모자란 실력이었다.


물론 저학년 아이가 복잡한 안무를 실수 없이 잘 소화하고 동작들을 리듬감 있게 구사하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완성도를 기하기 위해 연습은 또 얼마나 많이 했겠는가. 연령과 그동안 들인 수고를 헤아린다면 박수갈채가 뒤따르는 것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온전히 흐뭇하지만은 않다.


우선 아이들의 표정이 걸린다. [스타킹]에서 서산 칼공주가 선보인 로킹은 손목을 돌렸다가 정지 동작을 취하고 손가락으로 특정 방향을 가리키는 동작이 주를 이루는 춤이다. 더불어 코믹한 표정을 짓는 것도 특징 중 하나다. 하지만 이날 아이들은 여느 걸 그룹이 일상적으로 나타내는 앙증맞은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본인들이 추는 춤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가 이뤄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로킹은 커다란 애플햇, 줄무늬 티셔츠와 양말 등 광대 같은 복장을 하고 웃긴 표정을 짓는 것이
특징이다.


우리나라의 예술계를 둘러보면 기능적인 면은 출중한데 양식이나 분야의 역사, 내재된 정서에 대한 이해는 부족한 경우가 허다하다. 아이들에게 춤을 가르친 선생도 동작만 알려 주는 데 그쳤을 것이 뻔하다.

아쉽긴 하지만 유순하게 생각할 필요도 분명히 있다. 코믹함은 로킹의 전통적 특징일 뿐 로킹을 완성하는 필수 요소는 아닌 까닭이다. 이는 춤을 추는 이의 해석에 따라 얼마든 바뀔 수 있는 부분이다. 또한 아이들의 귀여운 표정은 보는 이들에게 큰 즐거움을 선사한다. 그 매력은 연출된 우스꽝스러움을 능가한다.


그럼에도 껄끄러움은 크게 남는다.

본격적으로 로킹 안무를 추기 전 아이들은 보통 걸 그룹, 여가수들의 무대에서 볼 수 있는 춤을 췄다. 이때 아이들은 성인 가수들의 퍼포먼스에서 흔히 목격되는 요염한 눈빛을 짓곤 했다. 당신을 홀리고 말겠다는 그 눈빛. 참 경악스러웠다.


패널 중 김새롬이 아이들의 표정을 재연했다.


안무 역시 같은 기조를 띠었다. 팔을 돌려 자신의 엉덩이를 치고 가슴을 내밀어 웨이브를 하는가 하면 골반을 흔들기도 했다. 일련의 행동은 모두 성행위에 관한 영락없는 메타포다. 초등학생들이 격정적으로 섹스를 갈구하는 동작을 거듭 행하니 당혹스러움과 끔찍함, 비참함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신 나게 춤을 추는 이 아이들에게 흔쾌히 박수를 쳐 줄 수 없는 이유가 이것이다.

가치관이 정립되지 않은 아이들에게 텔레비전에 나오는 아이돌 가수는 그저 새로운 세계, 선망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브라운관의 예쁘고 잘생긴 언니오빠들처럼 되고 싶은 마음에서 그들의 춤, 그들이 노래를 부를 때 하는 제스처를 아무 생각 없이 쉽게 모방하곤 한다. 어린아이들은 골반을 앞뒤, 좌우로 흔들거나 몸을 쓸어내리는 동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한다. 오직 멋있어 보인다는 이유로 흉내 낸다.

어머님이 누구니? 도대체 어떻게 너를 이렇게 키우셨니?!

부모라면 모름지기 이런 행동을 단속하고 말려야 한다. 왜? 아이는 아이다워야 하기 때문에, 아이가 표현할 수위의 몸짓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스타킹>에 서산 칼공주와 동반 출연한 어머님들은 아이들이 걸 그룹이 되기를 희망한다며 지금의 활동을 적극 장려한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아이들이 춤을 접하고 배움으로써 전과 다르게 성격이 활발해졌다고 긍정적인 면을 밝혔지만 이는 몇몇 동작이 갖는 은유를 파악하지 못한 피상적인 판단이다.

2014년 나하은이라는 꼬마가 화제가 됐다. 아이는 엠넷 [댄싱9], SBS [K팝스타]에 출연해 성인 가수들이 추는 춤을 능숙하게 춰 '댄스 신동'이라는 호칭을 얻었다. 2013년에는 [스타킹]에 '베이비 현아'라는 별명으로 출연했다. 2009년생이니 이때가 다섯 살에 불과했다.

나하은 어린이

그 어린이는 [스타킹]에 나왔을 때에도, [댄싱9]과 [K팝스타]에 모습을 내비쳤을 때에도 소위 말하는 '섹시 댄스'를 아무렇지 않게 췄다. 프로그램의 패널, 심사위원들은 당연하다는 듯 환호했다. 미취학 아동이 그런 춤을 추는데 좋다고 하는 게 바람직한 행동인가 싶다. 딸이 그렇게 춤을 추는 것이 자랑이라고 여기저기 출연시키는 부모의 열성도 정상적인 모습은 아닌 듯하다.

대한민국의 부모는 자식 교육에 극성스럽다. 이 드센 태도는 대체로 학업에 집중된다. 하지만 자녀가 예체능 분야에 특기를 발휘하면 여기에도 지원을 아끼지 않는 편이다. 이래저래 일반적으로 적극적이다.

적성과 재능을 일찍 발견하고 자녀가 꿈을 잘 펼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은 부모로서 지당한 행동이다. 그러나 아이들의 순수함을 지켜 주는 보살핌도 중요하다. 몸을 야하게 흔들고 게슴츠레한 눈빛을 쏘아 대는 활동은 어린 나이에 배워야 할 것이 아니다. 아이답지 못한 아이들의 춤은 잘해도 안타까워 보인다.

20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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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ㅇㅇ 2016/01/05 13:17 # 삭제

    K팝스타 나왔던 나하은 어린이는 지금은 어린이 교육 프로그램인 트니트니에서 제 나이에 맞는 율동을 선보이면서 나름 자기 재능을 잘 펼치고 있는 중입니다^^
  • J H Lee 2016/01/05 13:34 #

    어린아이는 어린아이 다워야 한다는 관념은 어른이 아이에게 요구하는 환상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어린아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든 그 자체로 순수한 것이고 그 자체가 동심이라고 봅니다.


    섹시댄스를 추던 잔혹동시를 쓰던 엄마를 찾건 간에 말이죠.
  • 2016/01/05 17:35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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