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는 되지만 노래는 안 된다? 원고의 나열

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이동출 씨(氏)네는 오늘도 어김없이 온 가족이 모여 오손도손하게 저녁을 먹는다. 오늘의 스페셜 메뉴는 오리구이. 보양에 좋긴 한데 구울 때 여기저기에 기름이 튀고 냄새도 배는 탓에 집에서 해 먹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괜찮다. 냄새, 연기 걱정 없는 최신식 적외선 조리기가 있으니까. 이동출 씨 가족의 저녁 식탁에는 웃음꽃이 만발한다.

웰빙 조리기구 '자이*'만 있으면 집에서도 언제나 쾌적하게 고기를 즐길 수 있습니다.


이동출 씨의 첫째 아들 형규는 요즘 어떤 사내아이와 자주 보고 있다. 차가운 성격의 형규는 이 아이가 자신에게 친한 척 다가오는 게 귀찮다. 하지만 조그만 녀석이 어찌나 곰살궂게 구는지 냉정한 형규도 금세 마음을 연다. 오늘은 그 아이가 형규에게 빵을 사 먹으라며 기프티콘을 선물했다. 선물 받은 기프티콘으로 근처 편의점에서 빵을 산 형규는 아이에게 보답이라면서 다른 기프티콘을 전송한다. 아이와 형규 사이의 정은 이렇게 더 돈독해진다.

소중한 사람과 편의점 기프티콘으로 사랑을 나누세요.


약간 살을 보태거나 중간 과정을 뺀 일련의 상황은 최근 방영 중인 KBS 2TV 주말 드라마 [부탁해요 엄마] 24회(2015년 11월 1일 방송)에 나온 내용이다. 언뜻 보면 기술의 발전으로 한결 편해진 생활을 담은 장면으로 보인다. 하지만 언급한 각 신(scene)은 업그레이드된 삶의 편의를 보여 주는 것 이전에 '간접광고(PPL, Product Placement)'라는 요지를 갖는다. 유무형의 상품 선전이 드라마 곳곳에 배치된 예다.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부탁해요 엄마]의 제작을 지원하는 한 의류회사는 여주인공이 근무하는 곳으로 설정돼 브랜드가 수시로 노출된다. 남자 주인공이 다니는 회사 사무실에서는 일이 바쁘다며 도시락을 시켜 먹는다. 배달원은 비닐봉지에 인쇄된 상표가 카메라에 잘 잡히도록 도시락을 '정해진' 위치에 올바르게 내려놓는다. 또 다른 주요인물들이 퇴근하고 집에 가는 장면에서는 어머니가 하는 치킨집이라며 상호를 뚜렷하게 전달해 보인다. 한 회당 대여섯 개의 간접광고가 나타나는 것이 다반사다.

인구주택총조사 요원들의 방문 예시까지 담았다. 공영방송답다.


드라마 속 간접광고의 나열은 KBS [부탁해요 엄마]에만 해당하는 얘기가 아니다. 사극이나 오래된 시절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을 제외한 거의 모든 드라마에서 PPL은 늘 눈에 띈다. 심지어 어떤 드라마에서는 협찬 제품을 사용하는 방법까지 녹여내기도 한다.

상표 노출, 노래에서는 얄짤없다.

드라마에서는 여러 상표를 접할 수 있지만 노래는 다르다. KBS는 지난해 11월 중순 다이나믹 듀오의 [Grand Carnival] 수록곡 중 '주민신고'에 방송 부적격 판정을 내렸다. "인스타그램"이라는 가사로 특정 상품을 언급했다는 것이 그 이유다. 다른 수록곡 '도돌이표' 또한 자동차 모델 "카니발"을 거론한 사항을 들어 방송 불가 결정을 지었다. (이 노래들의 방송 불가 사유에는 저속한 표현, 욕설, 일본어 사용도 추가된다.) 브라운관에서는 상품 이름과 로고가 버젓이 나가는데 노래는 바로 차단당하니 의아하지 않을 수 없다.

비슷한 시기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의 EP [화양현화 Pt. 2]에 실린 'Ma City'도 KBS로부터 방송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라페스타", "웨스턴돔" 등 경기도 일산 종합쇼핑몰의 브랜드를 언급했다는 이유에서였다.

당신의 추억이 깃든 장소도 사업장이라면 방송을 타기 곤란합니다.


속내 뻔하고 쓸데없이 모진 방송사의 이중 잣대

이들이 상품 이름을 그대로 가사에 표출한 것은 현실성을 부각하기 위함일 테다.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물품이나 건물, 대중에게 익숙한 상호를 여과 없이 드러내면 듣는 이는 가사를 통해 사실감을 느끼게 된다. 이때 노래는 허구가 아닌 충분히 공감 가능한 보통의 이야기로 다가온다. 청취자들과 일상적인 부분으로 공감을 구하려는 의도일 뿐 특정 브랜드를 홍보하려고 한 작사는 결코 아닐 것이다. 방송국의 판단은 너무나 편협하다.

결국 돈이다. 드라마에서는 간접광고가 물결을 이루는 반면 노래에는 빈번히 제약이 가해지는 판이한 양상은 물질적 원조에 의해 좌우된다. 이 회사는 드라마 제작을 지원했으니 상품을 방송에 내보내지만 이 노래 속 브랜드는 자기 방송국에 그 어떤 도움도 주지 않았기 때문에 노래 송출을 차단하는 것이다. 홍보가 목적이라도 방송에 실질적 도움이 됐다면 목적을 달성하게 해 주지만 홍보가 목적이 아니더라도 방송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면 매몰차게 까는 모습. 정말 황당하다.

특히 노래에 대한 방송심의는 공정성을 찾기가 어렵다.


상표를 다룬 노래들이 거듭해서 방송된다면 자칫 브랜드 공해를 이룰 수도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제재는 필요하다. 그러나 자사 드라마에서의 광고는 되고 노래 가사에서의 사용은 안 된다는 이중 잣대는 여간해서는 이해되지 않는다.

노래는 보통 사람의 일상생활에 밀착하기도 한다. 따라서 몇몇 작품이 이런저런 상호, 상품명을 나타내는 것은 기이하거나 특별한 일이 아니다. 가사의 전체 맥락을 무시하고 오로지 그 단어만 갖고 홍보 의도로 못 박고 방송을 금지하는 행태는 웃음만 자아낸다. 방송사들의 심의가 한편으로는 표현에 지나치게 인색한 것이 아닌가 싶다.

NC소프트 웹진 버프에 게재된 글입니다. http://buff.plaync.com/?id=944


덧글

  • 슈3花 2016/01/12 13:43 #

    유독 음악에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이유가 참 불편합니다. 오롯이 귀로만 감상되는 분야라서 그런가요? 그게 이유라면 더 구차합니다. TV방송, 특히 드라마를 보면 비속어 듣는 건 일상입죠. 심의 기준이 가식적인 것 같아요.
  • 르혼 2016/01/13 09:52 #

    많이 공감하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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