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는 그렇게 훌쩍 지나갔네 원고의 나열


세월은 유수와 같다는 말을 실감하는 순간이 왔다. 매년 이맘때면 늘 겪는 현상이다. 짧지 않아 보였던 5일 동안의 설 연휴는 장마철에 불어난 개울처럼 급한 속도로 지나가 어느덧 대체휴일로 기록된 마지막 날에 당도했다. 하지만 시간이라는 놈은 야속할 만큼 부지런해서 여기서 정차하지 않고 계속해서 걸음을 재촉한다. 달력의 붉게 표시된 날짜는 그러데이션을 거쳐 점점 평일의 검은빛으로 변해 간다. 아, RGB 컬러 000000으로 물든 공포의 그날이 온다.


연휴 첫날만 해도 마음이 들떴을 것이다. 오랜만에 고향에 내려가는 사람은 한동안 못 본 가족, 친척들을 본다는 생각에 즐거웠을 듯하다. 많은 이가 글로벌 귀향 송(Song)이나 다름없는 John Denver의 'Take Me Home, Country Roads'를 흥얼거렸을 테다. 남쪽 지방 출신의 팝송 애호가 몇몇은 Lynyrd Skynyrd의 'Sweet Home Alabama'를 BGM으로 택해 고향 가는 기분을 냈을 것이 분명하다. 중년의 음악팬들은 우리나라에서 '고향의 푸른 잔디'로 번안된 Tom Jones의 'Green Green Grass Of Home'을 찾아 들으며 젊은 시절의 추억을 끄집어냈을 지도 모르겠다.

연휴 초반은 대체로 즐겁다. 귀성객뿐만 아니라 자기 집이 큰집이라서, 혹은 실제로 집이 커서 친지들이 모이는 사람이나 홀로 지내는 사람이나 그냥 기쁘다. 일상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텔레비전에서는 그래도 특별한 날이라고 "내 심장을 쏴라", "악의 연대기", "오늘의 연애" 같은 나름대로 신작을 틀어 준다. 그다지 재미는 없지만 설 고정 레퍼토리인 "취권"에서 벗어났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지덕지다. 10년 넘게 설만 되면 고주망태로 한국 브라운관에 초대됐던 성룡 아저씨랑도 이제는 바이바이다. 모처럼 여유를 맛볼 수 있으니 별게 다 좋다.


월요일을 예고하는 공포의 알람 같았던 그 소리도 웬일로 듣기 가뿐하다. "빠밤빰~ 빰! 빠바빰~" 하는 밴드 연주와 뒤이어 나오는 개그우먼 허민의 "이 프로그램에 참여해 주신 분들께는…" 이 협찬사 안내 멘트는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노래처럼 그야말로 "일요일이 다 가는 소리"로 다가왔다. 이 특수한 사정 때문에 Stevie Wonder의 히트곡 중 가장 대중적이고 가장 경쾌한 'Part-Time Lover'는 비공식적으로 한국인이 가장 싫어하는 팝송으로 등극하게 됐다. 하지만 이번에는 괜찮다. 아직 쉴 수 있는 날이 남았으니까.

민족 대 명절이니 볼만한 프로그램이 제법 있다. MBC "듀엣 가요제", SBS "판타스틱 듀오 내 손에 가수"와 "보컬 전쟁: 신의 목소리" 등 누가 풍류를 즐기는 민족 아니랄까 봐 노래를 부르는 프로그램이 연일 이어진다. 스페셜한 편성에 음악을 좋아하는 이들의 눈과 귀에 생기가 돈다. 2010년부터 시작돼 명절 고정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은 MBC의 "아이돌스타 육상 선수권대회"는 출전하는 아이돌 가수의 팬들을 흥분케 한다.

배 채우고 웃고 즐기다가 정신 차려 보니 벌써 10일이다. "아니겠지" 했는데 정말 그렇다. 슬슬 불안해진다. "지붕 뚫고 하이킥"의 세경이도 아닌데 억울한 표정이 나도 모르게 지어지고 입에서는 생각지도 않았던 말이 방언 터지듯 튀어나온다.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어요." 귓가에는 '시간아 멈춰라', '시간아 천천히' 같은 시간을 향해 청원하는 노래가 울려 퍼진다. 그러나 시간을 멈출 수는 없는 일, 급기야는 지구가 터졌으면 좋겠다는 극단적으로 숭고한 염원도 해 본다. "비 투 더 아 투 더 뱅뱅~!"


안타깝게도 자연의 섭리를 거스를 힘은 우리에게 없다. 연휴 기간이 만료되는 대로 학생은 학교로, 직장인은 회사로, 백수는 좋겠는데? …가 아니라 아무튼 저마다의 일상으로 복귀해야 한다. 평상시처럼 마음에도 없던 워커홀릭이 돼야 하고, 며칠 쉬었다고 더 열심히, 더 분주하게 움직여야겠지만 이것은 결국 평생 수행해야 할 삶이다. 사직서 쓸 거 아니면 내일 아침에 벌떡 일어나서 일하러 가야지. 그래도 이 밤의 끝을 잡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 것은 어쩔 수 없다. 아… 아쉽다.

John Denver - Take Me Home, Country Roads
Lynyrd Skynyrd - Sweet Home Alabama
Tom Jones - Green Green Grass Of Home
조수미 - Home Sweet Home
김동욱, 이윤지 - 내 심장을 쏴라
Miss Li – I Can’t Get You Off My Mind
이지훈 - 파라다이스
노래를 찾는 사람들 - 일요일이 다 가는 소리
Stevie Wonder - Part-Time Lover
김조한 - You're My Girl
다비치 - 시간아 멈춰라
이진아 - 시간아 천천히
이승철 - 시간 참 빠르다
선미 - 24시간이 모자라
빅뱅 - 마지막 인사
신해철 - 일상으로의 초대
2 Unlimited - Workaholic
Daft Punk - Harder Better Faster Stronger
Soul Company (Jerry.K) - 사직서
비스트 - 일하러 가야 돼
솔리드 - 이 밤의 끝을 잡고

멜론-뮤직스토리-이슈포커스 http://www.melon.com/musicstory/inform.htm?mstorySeq=3255&startIndex=0&musicToday=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