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일찍 끝난 그때의 아이돌 그룹들 원고의 나열

최근 일본의 국민 아이돌 그룹으로 통하는 SMAP의 해체설로 일본이 들썩였다. 다행히 그룹을 유지하기로 결정하면서 팬들은 안도했다.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고 올해 데뷔 25주년을 맞는 SMAP은 앞으로 더 오랜 세월을 함께할 가능성을 보여 줬다.

우리나라에서는 신화가 20년에 달하는 긴 기간 동안 쉬지 않고 견고하게 팀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아이돌 그룹이 그들처럼 강한 결속력을 내지는 않는다. 대부분 아이돌 그룹은 기획을 통해, 회사의 이익을 위해 만들어지기에 여차하면 무너지기 쉽다. 아이돌 그룹은 태생적으로 이런 위험을 안고 간다.

H.O.T., 젝스키스, 핑클, god 등이 크게 성공하자 2000년대를 전후로 아이돌 그룹 붐이 일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때 나온 그룹 대부분이 얼마 못 가 해체했다. 오디션 프로그램이 만든 1호 그룹 악동클럽, YG의 첫 번째 걸 그룹 Swi.T, SM의 아쉬운 기록으로 남은 블랙 비트, 최근 방송에 출연해 화제가 된 파파야 등이 그렇다. 지금은 볼 수 없는 그때의 아이돌 그룹을 회상해 본다.


Swi.T | YG 사단의 첫 번째 걸 그룹
지누션과 1TYM의 연이은 성공으로 흑인음악 전문 레이블로 빠르게 성장하던 YG 엔터테인먼트는 TLC, Destiny's Child 같은 팀을 착안해 R&B 걸 그룹 Swi.T를 내놓는다. 젝스키스 이재진의 동생이 있다는 사실로도 이목을 끈 이들은 서구적 색채 짙은 말쑥한 곡으로 흑인음악 마니아들로부터 인기를 얻었다.

Timbaland의 다이내믹하고 촘촘한 비트 나열을 모사한 'I'll Be There', UK 개러지 리듬을 들인 '너와 난 하난 거야', 마이애미 베이스풍의 비트를 뼈대로 하는 'Every Night Every Day' 등 다수 노래가 경쾌함을 내보이면서도 화성이 좋은 멜로디를 갖춰 역동성과 부드러움이 공존하는 것이 앨범의 매력이었다.

비록 크게 성공한 노래는 없었지만 그룹은 "SBS 가요대전"에서 "신인상 (그룹)"을 수상했다. 이후 새 앨범을 준비하던 중 성미현과 안내영이 탈퇴하면서 그룹은 해체되기에 이른다. 이은주는 2006년 1TYM의 송백경 등과 함께 무가당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한 장의 앨범만 내고 사라졌지만 2NE1 제작에 좋은 경험이 됐을 듯하다.


M.I.L.K. | 서현진이 있던 그 그룹
M.I.L.K.는 작년 드라마 "식샤를 합시다 2"에서 호연을 펼친 서현진 덕분에 오랜만에 네티즌 사이에서 활발히 회자됐다. SM 엔터테인먼트가 제작하고 순수한 이미지를 내세운 사항 때문에 "제2의 S.E.S."라는 타이틀이 붙기도 한 그룹. 이들은 문희준이 곡을 줬다는 사실로도 관심을 샀다.

중간 템포의 비트에 서정적이고도 청초한 느낌을 녹여낸 'Come To Me', 순수한 소녀의 정서를 한껏 표현한 'Sad Letter', 턴테이블 스크래칭 샘플과 관악기 연주로 그루브를 보완한 힙합 소울 '무조건적인 사랑', Max Martin 스타일의 반주에 디스토션 이펙트를 준 전기기타 연주로 로킹한 사운드를 연출한 'Good Time' 등 데뷔 앨범 [With Freshness]의 노래들은 다채로움으로 감상을 즐겁게 한다. 하지만 이 앨범을 끝으로 M.I.L.K.는 소리, 소문 없이 흩어졌다.


블랙 비트 | 검은빛으로 물든 SM의 야심작
H.O.T., 신화에 이어 SM 엔터테인먼트의 융성을 이끌 보이 밴드로 기대를 모았으나 결과는 그렇지 못했다. '날개'에서 선보인 격한 파핑 안무 말고는 인상적인 면이 거의 없었다. 노래들이 훌륭하지 않은 것이 기본적인 문제였다. 'In The Sky'가 그나마 선전하긴 했지만 어떤 노래를 타이틀곡으로 정하든 히트하기는 쉽지 않은 수준이었다. 1집 이후 꾸준히 SMTOWN 컴필레이션에 참여하며 아직 깨지지는 않았음을 알렸지만 그마저도 2006년으로 끝났다. 황상훈과 심재원은 SM 엔터테인먼트의 안무가로서 블랙 비트 때보다 더 널리 이름을 알리고 있다.


파파야 | 2회로 마감한 열대 과일 쇼
얼마 전 JTBC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에 출연해 다시금 화제가 됐다. 보통 사람들에게 익숙한 과일은 아니지만 이름에 걸맞게 달콤하고 상큼한 노래를 들려줬다. 1집 타이틀곡 '내 얘길 들어봐'는 트로피컬 음악 반주에 바비킴 특유의 원주민 같은 래핑이 더해져 휴양지의 파티 분위기를 냈다. 이와 더불어 후렴에 등장하는 애교 소리 "아잉"은 발랄함을 배가했다. 후속곡 'Smile Smile'도 컨트리풍의 반주에 관악기를 입혀 흥겨움을 어필했다.

남성팬들에게 확실히 눈도장을 찍었으나 2집을 준비하는 중 두 멤버가 탈퇴해 존폐의 위기를 맞는다. 남은 멤버들은 새 식구를 충원하지 않고 트리오로 2001년 두 번째 앨범을 발표했다. 파파야는 깜찍한 루프가 흡인력을 낸 유로댄스 넘버 '사랑만들기', 성숙한 이미지를 모색한 'Violet'으로 활동을 이어 갔다. 1집 때만큼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인기 유지는 하고 있었다. 하지만 방송에서도 밝혔듯 소속사 대표들이 서로 등을 돌리면서 파파야 역시 뿔뿔이 헤어졌다.


악동클럽 | 1세대 오디션 그룹
생각해 보면 오디션 프로그램의 역사는 무척 오래됐다. 2AM의 조권이 "최장기 연습생"이라는 타이틀을 갖게 된 SBS "초특급 일요일 만세" 속 코너 "박진영의 영재 육성 프로젝트"가 방송된 것이 2001년이었으니 "슈퍼스타K"를 오디션의 원조라고 부를 수는 없다.

같은 시기에 MBC는 "목표달성 토요일"로 아이돌 그룹 악동클럽을 탄생시켰다. 서울에서만 1,200명 이상이 지원할 정도로 프로젝트의 인기가 상당했다. 최종 합격해 팀을 이룬 다섯 멤버는 2002년 데뷔 앨범을 발표한다. 꿈에 그리던 가수 생활을 시작했으나 마음이 후련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이들이 제작될 때 데뷔 후 3개월 안에 가요 프로그램 3위 안에 들지 못하면 해체한다는 조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 조건에 만족했고 해체 없이 다음해에 2집을 냈다.

긴장감이 풀려서였는지 운이 따르지 않았던 것인지 2집에 대한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이후 두 멤버가 탈퇴하면서 활동에 난항을 겪은 이들은 2006년 The A.D(The Another Dream의 약자)라는 이름으로 3집을 출시한다. 이때는 트렌드에 맞게 일명 "소몰이 창법"으로 불린 중간 템포의 발라드 '사랑을 밀어내고'를 타이틀로 밀었으나 안타깝게도 이들만 가요계에서 밀려났다. 이 앨범을 끝으로 그룹은 완전히 해체한다.


Luv | 어쩌다 보니 연기자의 요람
최근 유명해진 오연서와 "이사돈"이라는 별명이 붙어 다니는 전혜빈이 이 그룹 출신이다. JTL의 'A Better Day'에 객원 보컬로 참여했던 조은별은 이비로 개명하고 뮤지컬 배우로 활동 중이다. Luv는 앨범 한 장만 내고 사라졌지만 배우 셋을 배출했다.

활동에 임팩트는 없었다. 걸 그룹들이 당연히 하는 발랄, 청순함을 어필하거나 Max Martin의 작풍을 따라 한 댄스곡을 선보이는 것이 다였다. 이때 타이틀곡이 'Orange Girl'이었는데, 가사에 "열라", "캡숑" 등의 속어가 있었음에도 방송에 무리 없이 나온 것이 의아했다.


K-Pop | 케이팝 열풍의 주역이 되지 못한 K-Pop
지금은 흔히 "케이팝"이라는 명칭이 흔히 쓰이지만 2000년대 초반에는 "한류"가 훨씬 더 보편적인 표현이었다. 이런 사실을 감안하면 이들의 이름은 나름대로 선구적이며 미래를 내다보는 작명이었음이 분명하다. 5인조 보이 밴드 K-Pop이 데뷔한 지 15년이 지난 지금 케이팝은 고유명사처럼 자리매김했지만 이들의 이름은 자취를 감췄다. 민족애와 애국심에 호소하려는 듯 데뷔 앨범에 일본의 역사 왜곡을 비판하는 '0.5'를 수록하기도 했으나 이렇다 할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그래도 이들은 2004년까지 두 장의 앨범을 더 냈다. K-Pop은 3집까지 당시 남자 아이돌 그룹에게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록의 성분을 들인 날카로운 랩 댄스곡, 코요태가 연상되는 밝은 팝을 두루 선보였다. 몇몇 노래가 꽤 괜찮았음에도 쟁쟁한 선배 보이 밴드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다.


티티마 | 다 가고 소이만 남았네
이들의 데뷔는 1999년으로, 이 리스트에서 소개하는 가수들 중 가장 선배다. 티티마는 엔알지를 제작한 소방차의 김태형이 프로듀스해 "여자 NRG"라는 수식으로 홍보됐다. 1집 수록곡 'Prism'이 엔알지의 '할 수 있어', '사랑만들기'처럼 정신없이 빠른 일렉트로닉 댄스음악을 골격으로 했기에 음악적으로 엔알지와 공통점을 만들었다. 멤버들의 무대 대형도 엔알지와 유사했다.

티티마는 VJ 출신 소이와 잡지 모델로 이름을 어느 정도 알린 멤버가 있어서 데뷔 초기부터 대중의 관심을 쉽게 이끌어 낼 수 있었다. 하지만 멤버 교체를 거친 후 2000년에 낸 2집은 성공적이지 못했다. 결국 티티마는 "최고를 경험해 보라(Taste The Maximum)"는 이름이 무색하게 최고에 도달하지 못한 채 활동을 접었다. 2007년 성탄절 기념 EP [ComeBack With Christmas]를 발표하며 재결합했으나 단발에 그쳤다. 멤버 중 소이만 밴드 라즈베리필드를 결성해 음악 활동을 이어 가고 있다.

멜론-뮤직스토리-이슈포커스 http://www.melon.com/musicstory/inform.htm?mstorySeq=3243&startIndex=0


덧글

  • 홍차도둑 2016/02/16 18:46 #

    밀크는 일본에서 2집 준비중이라는 기사가 마지막 기사였죠. 나중에 징니라가 밀크 데뷔멤버로 예정되어 있었다가 솔로로 나갔다는 기사가 밀크가 언급된 마지막 기사일겁니다
  • 한동윤 2016/02/17 10:09 #

    아, 장나라 씨 그 얘긴 들어 본 것 같네요~ 그룹이 일본 활동도 계획하고 있었군요 :)
  • 홍차도둑 2016/02/17 11:22 #

    일본 활동이 아니라 2집 녹음중이라고 기사가 한번 올라왔었죠. 그러나 2집은 발매 안되었고...CD안에 컴퓨터 파일로 멤버들의 사진과 스크린세이버(음악도 나오는...물론 밀크 노래들입니다만)도 있었지요 ^^
  • 한동윤 2016/02/18 15:31 #

    준비하는 장소만 일본이었군요 :)
    2000년대 전후해서는 그렇게 CD에 스크린세이버 들어가 있는 가수들이 좀 있었는데...
    IT 시대로 접어드는 순간의 추억이네요~
  • 케이즈 2016/02/18 10:14 #

    파파야는 그래도 꽤 인지도가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순식간에 사라져서 좀 놀라긴 했었어요.
  • 한동윤 2016/02/18 15:33 #

    아이돌 그룹이 그래서 더 부질없다고나 할까요? 잘 되다가 갑자기 흩어지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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