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갱스터 랩 스타의 양가적 삶이 녹아든 걸작
많은 힙합 마니아가 투팍(2Pac)을 대단한 뮤지션으로 여긴다. 요철이라곤 없는 쭉 뻗은 도로를 달리는 것 같은 유연한 래핑, 갱스터 래퍼임에도 'Dear Mama'처럼 가슴을 절절하게 만드는 감수성 짙은 가사도 쓸 줄 아는 능력, 라임을 정교하게 배열하는 재능은 그의 비범함을 직접적으로 나타낸다.
1995년 출시한 세 번째 앨범 [Me Against the World]는 성폭행 혐의로 복역 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빌보드 앨범 차트 1위에 올랐다. 이 역시 놀라운 일. 이로써 투팍은 옥중에서 빌보드 앨범 차트 정상을 석권한 최초의 아티스트로 기록됐다. 여러 가지로 위대해 보이는 인물이 틀림없다.
한편으로 그는 비참한 사람이기도 했다. 아버지 없이 태어나 마약 판매상, 폭력배로 거친 청소년기를 보냈다. 가수가 되고 나서도 여러 범죄에 휘말리며 경찰서를 드나들었으며 갱단으로부터 린치를 당하기도 했다. 험난한 삶을 살던 투팍은 1996년 9월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권투 시합을 보고 나오던 중 갱단의 조직원이 쏜 총을 맞고 스물다섯이라는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래퍼로서 큰 성공을 거뒀지만 말로는 몹시 애처로웠다.
개인의 인생사를 고스란히 담아낸 앨범
투팍의 대단함과 비참함은 세상을 떠나기 반년 전에 발표한 [All Eyez on Me]에 굳게 아로새겨져 있다. 힙합 역사상 최초의 더블 앨범인 본 작품은 발매 두 달 만에 5백만 장 넘게 팔리면서 빅히트를 기록했다. 새천년이 도래하기 전 많은 음악 매체가 이 작품을 1990년대 최고의 앨범 중 하나로 꼽는 등 평단의 찬사도 잇따랐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이 기록들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하고 이승과 일찍 이별했다. 이 앨범을 끝으로 투팍은 영원히 대중의 기억에만 머물게 됐다.
그는 앨범을 통해 자신은 이런 사람이지만 알고 보면 행동으로 나타나는 모습과는 딴판인 사람이기도 하다는 것을 주장한다. 혹은, 겉으로는 위악적으로 살면서 속으로는 전혀 다른 인생을 살고자 하는 듯한 형상을 그린다. 수록곡들에서도 강함과 유약함이 교차한다.
여성 편력 강한 양아치로서 자신을 뽐내는 'All Bout U', 총에 맞았어도 멀쩡히 살아남은 것을 우쭐대며 갱스터 삶을 찬양하는 '2 of Amerikaz Most Wanted', 폭력배 생활에 매진할 것을 다짐하는 'All Eyez on Me', 불멸의 막강한 갱스터라고 자기암시를 거는 것 같은 'Ambitionz Az a Ridah' 등으로는 거리를 삶의 터전으로 삼는 자신의 무지막지함에 초점을 맞춘다. 무자비하며 강력하고 아무나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이로 자기를 선전하고 있다. 나쁜 성품을 굳이 까발림으로써 스스로를 광포한 존재로 단장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 입장을 고수하지는 않는다. 'I Ain't Mad at Cha'로는 불량한 과거에서 벗어나 새로운 인생을 찾으려는 친구를 보면서 자신도 그러고 싶은 마음을 슬쩍 내비치고, 'Life Goes On'에서는 갱스터 생활에 대한 회한을 보이기도 하며, 'Wonda Why They Call U Bitch'는 남자를 밝히는 여자에게 미래를 위해 방탕한 생활을 청산할 것을 권유하기도 한다.

사망하기 몇 주 전에 찍은 'I Ain't Mad at Cha' 뮤직비디오. 공교롭게도 이 뮤직비디오에서 투팍은 총에 맞아 죽는 인물로 나온다.
산전수전 다 겪어 본 그가 안 좋은 길에 빠져들려고 하는 청춘들에게 넌지시 띄우는 충고이자 참담한 환경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그의 자조 섞인 후회이기도 하다. 일련의 여린 면모는 투팍의 처참한 삶을 압축하는 것이었다.
상반된 인생이 중첩되는 노래들은 그를 더욱 근사한 인물로 만들어 줬다. 갱스터로 사는 게 멋있는 일이라고 믿는 젊은이들에게나, 이미 그 암담한 생활을 경험하고 양지를 찾으려는 무리에게나 투팍은 위인이었다. 더욱이 랩과 음악까지 훌륭했으니 인기와 흥행이 절정에 달하는 게 당연했다.
게다가 'How Do You Want It'을 싱글로 낼 때 같이 공개한 'Hit 'Em Up'에서 그는 노토리어스 비아이지(The Notorious B.I.G.), 퍼프 대디(Puff Daddy), 릴 킴(Lil' Kim) 등의 동부 래퍼들을 비난했다. 이 노래로 투팍은 서부 힙합의 아이콘과 같은 존재로 부상했다. 비록 'Hit 'Em Up'이 암담한 결말의 분수령이 되긴 했으나 사람들은 투팍의 강력한 표현에 열광했다.

한때 친구였던 투팍과 노토리어스 비아이지는 어느 순간 서부와 동부를 대표하는 라이벌이 됐다.
음악으로 얼마간 영속했지만 아름답지 않았다.
웨스트코스트의 영웅이 된 투팍은 죽어서도 대단함과 비참함이 엇갈리는 삶을 살았다. [R U Still Down? (Remember Me)], [Until the End of Time] 등 생전에 녹음해 두었던 미발표 노래들을 엮은 앨범이 사후에도 계속해서 발매돼 대중의 경탄을 이끌어 낸 것이 먼저였다. 그가 살아생전 창작에 정력적으로 임했음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것은 전적으로 긍정적인 결과를 내오지 못했다. 처음 몇 번은 그렇게라도 투팍을 다시 만난다는 기쁨을 제공했지만 작품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노래들과 추억 외에는 아무런 가치도 생성하지 못하는 무의미한 컴필레이션이 거듭해서 나옴으로써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마저 서서히 지쳐 떨어지게 했다.
그의 명성을 이용해 어떻게든 수익을 뽑아 보려는 소속사 데스 로 레코드(Death Row Records)의 사장 슈그 나이트(Suge Knight)의 졸렬한 상술과 아들의 존재를 팬들의 기억 속에 영속시키려는 어머니의 과한 노력으로 인해 투팍은 재차 세상의 혹독함에 치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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