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적으로 보자 [프로듀스 101] 원고의 나열


몇 주째 금요일 밤이 뜨겁다. 브라운관을 가득 메운 수십 명의 소녀를 향해 수많은 남성의 시선이 꽂힌다. 더불어 "당신의 소녀에게 투표하세요!"라는 프로그램의 캐치프레이즈와도 같은 진행자의 주문에 따라 수십만 명이 온라인 투표에 헌신한다. 걸 그룹 제작을 목표로 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으로 엠넷(Mnet)은 또다시 시청자들의 열띤 관심을 이끌어 냈다.

방송 최초의 걸 그룹 공개 오디션이라는 점 외에 "프로듀스 101"은 이런저런 좋지 않은 사항으로도 흥미를 유발한다. 우선 일본 걸 그룹 AKB48의 데뷔 과정과 활동 포맷을 모방했다는 점으로 뭇매를 맞았다. 이와 더불어 엠넷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고질적 병폐인 "악마의 편집"이 어김없이 이어진다는 것과 특정 참가자를 상대적으로 더 부각하는 연출로도 빈축을 사고 있다. 이런 프로그램은 욕하는 맛에 본다는 우스갯소리는 이렇게 또 보편성을 얻는다.

비난할 거리는 그 정도로 그치지 않는다. "프로듀스 101"은 출연자, 구성, 양식 등 여러 면에서 보는 이를 불편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를 통해 한국 대중음악의 안타까운 현실을 반추할 수 있으니 슬프지만 나름대로 유익한 방송이기도 하다.


아이돌로 만개한 대한민국
참가자 수가 무려 101명이나 된다. 프로그램 이름을 염두에 두고 사전 작업을 통해서 추린 인원만 101명이다. 지원하지 못하고 텔레비전으로 방송을 지켜보는 걸 그룹 지망생들은 모르긴 몰라도 그 수의 두 배 이상은 될 것이다. 현재도 수십 팀의 걸 그룹이 활동하고 있으며 2주에 한 팀꼴로 신인 걸 그룹이 출현한다. 남자 아이돌-보이 밴드의 상황도 걸 그룹과 다르지 않다. 가요계는 아이돌 포화상태를 이미 넘어섰다.

아이돌은 기본적으로 가벼운 댄스음악을 지향한다. 음반 시장 규모가 작은 나라에서 연일 아이돌 그룹이 쏟아져 나오니 주류 가요계는 여운과 감동이 덜한 댄스음악 일색이 된 지 오래다. 이런 기형적인 상황에서 "국민 걸 그룹 탄생"이라는 그럴듯한 명분을 앞세워 시청자들을 시장 획일화, 황폐화를 거드는 주체로 꼬드긴다. 참가자들이 고군분투하는 모습에 흥미를 느끼며 방송을 시청하는 이가 많겠지만 현재 가요계의 비정상적인 상황을 한 번쯤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꿈을 꾸는 아이는 많지만 인재는 드물다.
등급 심사 오디션부터 가관이었다. 기본도 안 된 참가자가 태반이었다. 음정조차 맞지 않던 아리요시 리사는 말할 것도 없고 대다수가 가수를 하기에는 실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눈에 띄기 위해 애초에 불가능한 "3단 고음"을 선택했겠지만 앤어거스트의 윤서형은 3년 경력의 뮤지컬 배우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결코 훈련이 잘된 발성이 아니다. 그녀 외에 팀을 짜서 미션을 치를 때에도 음정 불안, 성량 미달 등 가창이 빈약한 참가자가 계속해서 목격됐다.

아이돌 가수는 기본적으로 가수다. "가수"라는 단어가 "아이돌" 뒤에 붙었다고 본분을 소홀하게 봐서는 곤란하다. 프로그램을 통해서 여전히 많은 아이가 노래보다는 귀여운 표정과 야한 몸짓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음을 파악하게 된다. 눈을 사로잡는 퍼포먼스를 보여 주는 것이 경쟁력 중 하나가 되겠지만 가수의 기본은 어디까지나 노래를 잘, 또는 매력적으로 부르는 것이다. 노래 못하는 아이들이 연예인병에 걸려 시장의 허수 경쟁률만 높이고 있음을 실감한다.


트레이너는 선수를 훈련하고 지도하는 사람
프로그램에는 "국민 프로듀서 대표"라는 직함을 단 사회자 장근석 외에 애프터스쿨의 가희, 안무가 배윤정,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제아, 보컬 트레이너 김성은, 래퍼 치타가 고정으로 출연한다. 이 다섯 여성은 참가자들의 교육을 돕는 트레이너 역할을 맡았다.

그런데 이들의 활약이 애매하다. 이후에는 어떨지 모르겠으나 7회가 방송된 현재까지 트레이너다운 면모는 별로 내비치지 않는 상황이다. 참가자들끼리 연습하고 그 결과를 트레이너에게 보여 주면 잘했다고 말하거나 그게 아닌 경우 다그치는 것이 전부다. 문제는 짚어 내지만 어떻게 단점을 개선해야 하는지에 대한 세심한 지도는 없다. 공장 조립라인의 끝에서 완성된 상품을 검수하는 작업반장 역할에 지나지 않는다. 품평만 하고 하자에 대해 책임은 지지 않으니 일 참 편하다.


3회 배틀 평가에서 씨스타의 'Push Push'를 택한 팀들이 연습 결과를 치타 앞에서 선보일 때 블레싱의 안유미가 양이 얼마 되지 않는 가사를 틀리자 치타는 한심하다는 투로 말하며 그녀를 면박했다. 그런데 치타는 불과 1년 전에 "언프리티 랩스타"에 나가서 똑같은 실수를 행한 적이 있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는 속담이 딱 들어맞는다. 이제 겨우 노래 10곡 정도 낸 이를 엄청난 경력자인 양 캐스팅한 것도 웃기다.


배윤정 안무가도 자기 얼굴에 침을 뱉는다. 1회 중 등급 레벨 오디션 때 개인 연습생 성혜민이 지연의 '1분 1초'에 맞춰 골반을 돌리는 춤을 췄다. 공연을 마친 후 배윤정은 "고급스럽지 않고 약간 싸 보였다"고 평가했다. EXID의 '위아래'와 '아예', 걸스데이의 'Something' 등 그녀가 창작한 안무 다수가 성행위를 흉내 낸 동작을 포함하고 있다. 고급스럽지 않고 싸 보이는 안무가 난립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장본인이 그런 말을 하니 실소를 금할 수 없다.


눈물, 눈물, 그리고 또 눈물, 계속 눈물
지긋지긋하다. 본격적인 훈련에 들어간 뒤부터 참가자들의 우는 모습이 끊이질 않는다. 심하게는 5초 간격으로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이어진다. 이 아이들이 고생하는 것은 충분히 안다. 과정은 혹독하기만 하고, 탈락이라는 규정 때문에 불안감마저 들고, 미래는 불투명하니 얼마나 힘들고 무서울까. 하지만 우는 모습을 연달아서, 매회 끊임없이 내보내는 탓에 짜증이 밀려온다. 그 옛날 신파 드라마도 이렇게까지 눈물을 쥐어짜지는 않았다. 웬만한 상갓집도 이렇게까지 울음을 터뜨리지는 않는다. 좋은 것도 계속 보면 물리기 마련인데 우는 모습은 오죽할까? 편집 좀 골고루 하자.


그놈의 "싸비"
방송을 보다 보면 "싸비"라는 표현이 곧잘 나온다. 참가자들도, 노래 담당 트레이너도 이 말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내뱉는다.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탓에 누군가는 공식적인 음악용어로 생각할지도 모른다.

음악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이 은어는 후렴을 가리킨다. 클래식에서 주제선율을 "Theme"과 더불어 "Subject"로 표기하곤 하는데, 일본 대중음악에서는 후렴을 주제로 인식하고 그것의 일본식 발음 "사브제쿠토"가 줄어들어서 "사비"가 됐다는 설이 있다. 혹은 "와사비"처럼 강력한 맛을 내는 부분이라는 뜻으로 쓰게 됐다는 설도 존재한다. 결국 둘 모두 설에 불과하다.

예전부터 그저 입에 잘 감긴다는 이유로 쓰다 보니 회사에서 트레이닝을 받는 아이들은 그 표현이 입에 붙었을 것이다. 하지만 근본도 알 수 없는 속어보다는 우리말을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



꿈과 인권, 무엇이 더 중요한가?
장근석은 시청자들의 적극척인 참여를 독려하면서 "소녀들의 꿈을 지켜 달라"고 말했다. 소녀들의 꿈, 물론 소중하다. 그런데 꿈을 이룬다는 명목으로,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당연히 많은 것을 참고 견뎌야 한다는 암묵적 훈계를 앞세워 어린 아이들에게 늦은 시간까지 촬영에 임하게 하고 (때로는) 야한 춤을 추도록 하는 것이 영 불편하다. 우리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아이들의 열정 어린 모습과 함께 이들이 혹사당하는 현장을 동시에 지켜보고 있다. 꿈을 지키는 것뿐만 아니라 인권도 챙겨 줘야 하지 않나?


다수가 뽑으면 좋은 그룹일까?
프로그램은 국민이 만드는 걸 그룹을 모토로 내건다. 그 방식은 현장에서 쇼를 보는 관중과 시청자들의 투표다. 최종적으로 많은 인기를 얻은 11명이 팀이 되는 것이다.

매회 참가자들에게 주어지는 과제와 방송을 통해서 참가자들의 실력이나 매력은 어느 정도 검증되겠으나 그렇게 만들어진 그룹이 과연 하나의 팀으로서도 좋은 하모니를 나타낼지는 의문이다. 총괄 제작자로서의 프로듀서는 팀을 구성할 때 멤버 개개인의 특징과 장단점, 그들 간의 밸런스를 고려한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참가자를 지지할 뿐 전체적인 그림을 보지 않는다.

베테랑 뮤지션들이 의기투합한 슈퍼그룹도 잘되지 않는 경우가 더러 있고, 오랜 기간 친구로 지낸 덕에 유대감은 좋은 밴드가 음악적으로는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하는 경우도 상당수 존재한다. "프로듀서 101"을 통해 만들어진 그룹이 어벤저스가 될지, 오합지졸이 될지 이것도 퍽 궁금하다.


감명을 주는 부분도 있긴 하다.
열거한 면들 외에도 "프로듀스 101"에는 고민해 보거나 마뜩잖은 부분이 많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감동을 주기도 한다. 춤에 대한 경험이나 감각이 거의 바닥이었던 강주나와 김소혜의 일취월장, 음도 제대로 못 잡던 아리요시 리사의 발전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 인간 승리의 드라마라 할 만하다. 이를 통해 꿈과 열정이 성장의 동력임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치열한 노력은 반드시 성과를 안긴다는 것을 프로그램의 참가자들이 보여 준다. 꿈을 향해 나아가는 소녀들의 열정만큼은 응원한다.

멜론-뮤직스토리-이슈포커스 http://www.melon.com/musicstory/inform.htm?mstorySeq=3349&expose=true


덧글

  • 섹사 2016/03/15 14:47 #

    항상 잘 읽고 있습니다. <Pick Me> M/V의 압도적 스펙터클에 어안이 벙벙했던 기억이 나네요.
  • 한동윤 2016/03/16 08:44 #

    전 뮤비는 못 봤는데 프로그램에서 엠카운트다운이었나요, 음악 방송 출연 장면 보고 저 인원이 무대에 설 수가 있다는 걸 보고 놀랐네요.
  • 퀘천쿼틀 2016/03/15 16:44 #

    아쉬운 점이 많은 프로그램이긴 합니다.
    그래도 잊지않고 찾아보고 있지요.
  • 한동윤 2016/03/16 08:44 #

    애청자시군요~ 이런 프로그램이 싫은 부분이 있어도 끌어들이는 힘이 있죠.
  • 우물쭈물하지않으리 2016/03/15 16:58 #

    마지막 문단 강주나 아닌 김주나에용 ㅋㅋㅋ 저는 가희 배윤정 제아 등등이 젤 어이 무무 그외에는 성장 프로그램으로 보고 매주 봅니닷!! 아이들 이름 다 외울 정도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응원하는 맘으로 보는 시청자들도 많다는 것을 알아주세용 ㅎㅎㅎㅎㅎㅎ
  • 한동윤 2016/03/16 08:45 #

    앗. 그렇군요.
    정말 아이들 이름을 웬만큼 외우고 계시군요~ :)
  • 열음 2016/03/16 02:38 # 삭제

    막연히 아이돌을 꿈꾸는 청소년들에게 교훈을 주는 효과도 있답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데뷔가 얼마나 빡세고 힘든 일인지 예쁘고 실력 있어도 요행과 빽없으면 성공하기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간접경험 시켜주는 미덕이 있다고나 할까요ㅎㅎㅎㅎㅎㅎㅎ
  • 2016/05/07 22:36 # 삭제

    30가까이 와서도 인생에 확신이안서는대 그 정말 꿈꿀수있는 나이에 꿈을 꾸고있는 친구들이니 그냥 앞으로 잘되길 바래주세요~
  • 근데요 2016/07/17 18:41 # 삭제

    트레이너분들 직접일어나셔서 열심히 가르쳤는데 다 편집된겁니다 마지막화인가에서 나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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