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의 연이은 역작 [untitled unmastered.] 원고의 나열


누가 봐도 퍽 아쉬운 결과였다. 작년에 출시된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의 세 번째 앨범 [To Pimp a Butterfly]에 많은 매체가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흑인음악의 여러 갈래를 아우른 다채로운 스타일, 진중한 가사, 생기 충만한 래핑 등 앨범을 구성하는 면면이 무척 훌륭해 일찍부터 '올해의 앨범'으로 점쳐졌다. 하지만 그래미는 테일러 스위프트(Taylor Swift)에게 '올해의 앨범' 트로피를 건넸다. 비록 켄드릭 라마가 '최우수 랩 퍼포먼스', '최우수 랩/성 컬래버레이션', '최우수 랩 노래', '최우수 랩 앨범' 등 랩 영역의 모든 부문을 휩쓸며 맹위를 떨치긴 했어도 그날 시상식의 그림은 온전히 만족스럽지 않았다. 비범한 작품의 본상 수상 불발, 지구촌 대다수 음악팬이 이를 섭섭하게 여겼다.

그래미로부터 제대로 된 대접은 받지 못했지만 켄드릭 라마는 힙합 신에 등장한 순간부터 평단과 마니아들의 지지를 얻었다. 1987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콤튼(Compton)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 투팍(2Pac)의 'California Love'를 접하면서 힙합에 매료된 그는 2003년 케이도트(K-Dot)라는 예명으로 믹스테이프 [Y.N.I.C. (Hub City Threat: Minor of the Year)]를 발표한다. 이 앨범이 지역에서 소문을 타면서 곧장 인디 레이블 톱 도그 엔터테인먼트(Top Dawg Entertainment)에 스카우트됐고 이후 [Training Day], [No Sleep 'Til NYC] 등의 믹스테이프들을 제작하며 부지런히 자신을 선전해 나갔다. 본명을 내걸고 2011년에 선보인 첫 번째 정규 음반 [Section.80]는 마약, 인종차별 등으로 힘겨워하는 빈민의 삶을 기록한 심도 있는 가사와 뛰어난 래핑으로 매체의 호평을 들었다. 켄드릭 라마는 순식간에 수면으로 부상한다.

이 무렵 켄드릭 라마는 래퍼가 되는 데에 결정적 계기가 됐던 'California Love'의 또 다른 주인공 닥터 드레(Dr. Dre)에게 발탁된다. 2012년 닥터 드레의 레이블 애프터매스 엔터테인먼트(Aftermath Entertainment)를 통해 출시된 정규 2집이자 메이저 데뷔 앨범 [good kid, m.A.A.d city]는 더 큰 도약을 이루게 했다. 1집과 마찬가지로 흑인 빈민가에서의 모진 삶을 전시한 앨범은 일관된 주제와 유기적인 흐름, 생동감 넘치는 표현으로 호평을 들었다. 수록곡 중 'Swimming Pools (Drank)', 'Poetic Justice', 'Bitch, Don't Kill My Vibe' 등 세 편이 빌보드 싱글 차트 40위 안에 들며 히트해 상업적으로도 성공했다. 대중음악계에 그의 존재는 신속하게 각인됐다.

2015년에 발표한 세 번째 앨범 [To Pimp a Butterfly]는 경이로움을 증대했다. 미니멀하고 느긋한 비트가 주를 이뤘던 전작들과 달리 이곳에서 그는 펑크(funk), 재즈, 네오 소울, 스포큰 워드 등을 택해 음악적 변신을 꾀했다. 이로써 노래들은 그윽함과 약동하는 기운을 한꺼번에 나타냈다. 더불어 폭력으로 점철된 환경에서 자애의 의지를 내비치는 'i', 배우 웨슬리 스나이프스(Wesley Snipes)가 행한 납세 거부 운동 사건을 바탕으로 흑인들을 착취하고 옥죄는 미국의 자본주의와 백인에게 이로운 시스템에 대해 일갈하는 'Wesley's Theory', 흑인들 간의 화합과 존중을 주장하는 'The Blacker the Berry' 등 사회를 반영하는 노랫말을 통해 무게감을 뽐냈다. 노래마다 톤과 플로를 바꾸는 래핑 연기도 압권이었다. 많은 이가 켄드릭 라마와 음반을 치켜세우는 이유가 명백하다.

3집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컴필레이션 앨범 [untitled unmastered.]가 출시돼 감격을 연장한다. 켄드릭 라마는 스티븐 콜버트(Stephen Colbert)의 [콜버트 리포트(The Colbert Report)], 지미 팰런(Jimmy Fallon)의 [투나이트 쇼(The Tonight Show)], 올해 열린 그래미 어워드 등에서 기존에 발표한 앨범에는 수록되지 않은 노래들을 불러 왔다. (그래서 노래들에는 번호와 작업 날짜만 적혀 있다.) 격정적인 퍼포먼스와 신선함에 흥분한 힙합 애호가들은 정식으로 음원을 공개해 주길 오매불망 염원했다. NBA 선수 르브론 제임스(LeBron James)는 트위터에서 톱 도그의 대표에게 노래를 빨리 내달라고 조르기까지 했다. 샘플링 허가 등 이런저런 이유로 음반에 싣지 못했던 노래들이 드디어 세상 빛을 보게 됐다.

음악적인 면은 [To Pimp a Butterfly]와 어느 정도 연속성을 갖는다. 트렌디한 힙합 비트 대신 소울, 펑크, 프리 재즈 등 실제 연주로 완성한 예스러운 문법이 전반을 차지한다. 위협적으로 연주되는 피아노와 불규칙적으로 등장하는 색소폰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하는 'untitled 02', 거친 톤의 심벌과 비교적 나긋나긋하게 흐르는 키보드, 색소폰이 대비되는 'untitled 05'는 다소 까다로운 재즈 형식을 나타낸다. 질문을 던지는 애나 와이즈(Anna Wise)의 보컬이 강조점으로 자리하는 'untitled 03'는 네오 소울과 사이키델릭 소울의 성격을 지녔고, 플루트가 차분하게 곡을 리드하는 'untitled 06'는 보사노바, 재즈, 소울을 끌어안는다. 'untitled 08'는 신시사이저를 전면에 내세워 일렉트로 펑크, 지 펑크의 정서를 표출한다.

노랫말 역시 이전 작품들과 다름없이 정치사회적인 내용으로 충전돼 있다. 'untitled 01'은 묵시록적인 상황을 내보이면서 쾌락과 돈, 폭력을 좇지 말고 변화해야 함을 넌지시 말하며, 'untitled 05'는 소수집단의 힘겹고 절망적인 삶을 전달함으로써 미국 자본주의를 힐난하고, 'untitled 08'에서는 돈을 쉽게 벌기 위해 범죄나 나쁜 일을 선택하는 사람들을 향해 우려를 표하기도 한다. 켄드릭 라마의 빠른 속삭임이 염세적인 기운을 부풀리는 'untitled 04'와 얼리샤 키스(Alicia Keys)와 스위즈 비츠(Swizz Beatz)의 다섯 살 난 아들이 프로듀스에 참여했다는 'untitled 07'에서는 교육이 중요함을 공통적으로 주장한다. 미국에 거주하는 동양인, 인디언, 흑인들의 장단점을 열거하는 가운데 자신을 을(乙)로 이용해 먹는 백인 음반 관계자를 거론하며 시스템의 불합리함을 비판하는 'untitled 03'도 흐름을 같이한다. 여느 래퍼와 다른 메시지를 던지는 점이 켄드릭 라마를 특별하게 보이도록 만든다.

칭송이 자동으로 터져 나온다. 곡들은 과거의 장르들을 끌어옴으로써 순수성과 원초적인 기질을 획득했고, 가사는 사회 현황과 다수의 삶을 이야기해 숙고의 창구를 개설한다. 요즘 힙합에서는 결코 쉽게 발견할 수 없는 모습이다. 때로는 표독하게, 때로는 능청스럽게 캐릭터에 따라 성격을 바꾸듯 목소리와 플로를 변형하는 영특한 래핑 또한 여전히 감탄을 자아낸다. 시로 그린(Cee-Lo Green), 빌랄(Bilal), 시자(SZA) 등 동료 아티스트들의 원조도 면면을 풍성하게 한다. 컴필레이션이라고는 하지만 공개되지 않았거나 라이브를 기록한 동영상을 통해서만 접할 수 있었던 노래들을 담고 있어 정규 음반과 동급의 반가움을 안긴다. 그래미에 묘한 외면을 당했던 불세출의 힙합 아티스트는 음악팬들의 환호를 이끌 명작을 한 번 더 선보였다.

201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