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개봉한 존 카니 감독의 음악영화 "싱 스트리트"는 1980년대를 전시한다. 옛 시절을 나타내는 영화들은 대개 그때 유행했던 패션이나 상품에 초점을 맞추곤 하지만 "싱 스트리트"는 음악을 중심으로 과거를 재현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밴드 Sing Street는 80년대에 많은 사랑을 받았던 뉴웨이브, 신스팝 장르를 추구한다. 이들이 만들고 연주하는 노래가 당시의 트렌드를 얘기하면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80년대를 경험했거나 음악을 적극적으로 찾아 듣는 사람들은 이때 신스팝이 대세였음을 안다. 1982년 The Human League의 'Don't You Want Me'를 필두로 Eurythmics의 'Sweet Dreams (Are Made Of This)', Duran Duran의 'The Reflex', Culture Club의 'Karma Chameleon', Tears For Fears의 'Shout', Pet Shop Boys의 'West End Girls' 등이 자국인 영국을 넘어 빌보드 차트 정상을 밟았다. 60년대에 이어 제2의 브리티시 인베이전이 이렇게 거행됐다.

뉴웨이브와 신스팝은 차트 바깥으로도 영향력을 확대했다. 신시사이저와 드럼머신의 보급에 힘입어 추진력을 얻은 이 양식은 미국 드라마의 테마곡으로도 나타난다. 당시 아이들로 하여금 시계와 대화를 나누게 했던 "전격 Z 작전", 항공 액션의 지평을 연 "에어울프", 최첨단 오토바이를 타고 악당을 물리치는 "독수리 특공작전"이 대표적이다. 이들 드라마의 테마곡도 인상적이지만 많은 이의 기억에 깊게 자리한 주제곡은 뭐니 뭐니 해도 "맥가이버"일 것이다. 드라마가 큰 사랑을 받은 덕분에 주제곡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신스팝의 클래식이 됐다.
신스팝은 할리우드 영화의 사운드트랙으로도 빛을 내기 시작한다. 스크린 속 댄스 열풍을 선도한 1983년 영화 "플래시댄스"에 삽입된 Michael Sembello의 'Maniac'이 개시의 주역 중 하나다. 이 노래는 주인공 알렉스(제니퍼 빌스 분)가 그녀의 창고 집에서 춤 연습을 할 때 흐른다. Michael Sembello의 공격적인 음성이 레오타드 차림으로 격렬하게 몸을 움직이는 알렉스를 더욱 화끈하게 보이도록 했다. 때문에 많은 남성이 이 장면에서 넋을 잃었다. 'Maniac'은 2012년 포르투갈 출신 디제이 Moullinex와 캐나다의 19금 일렉트로닉 뮤지션 Peaches에 의해 21세기 신스팝 반주로 재탄생했다.

1984년 영화 "베벌리힐스 캅"의 주제곡 Harold Faltermeyer의 'Axel F'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크게 히트했다. 이 곡은 싸이의 '챔피언'에 샘플로 쓰여 우리나라 사람들한테도 무척 친숙하다. "베벌리힐스 캅" 사운드트랙에서 Patti LaBelle의 'New Attitude', Glenn Frey의 'The Heat Is On', The Pointer Sisters의 'Neutron Dance'도 히트했다.
이 중 Patti LaBelle의 'New Attitude'가 신스팝 반주로 트렌드를 수렴했다. Patti LaBelle은 걸 그룹 LaBelle 시절 디스코 넘버 'Lady Marmalade'로 스타 가수가 됐다. 하지만 1977년 솔로로 나선 후 7년 동안 히트곡 없이 밋밋한 커리어를 이어 갈 뿐이었다. 그러던 중 영화 사운드트랙으로 부른 'New Attitude'가 성공을 거두면서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새로운 사랑을 만난 뒤 정신적으로, 외적으로 삶이 새롭게 바뀌었다는 가사처럼 실제로도 신스팝 덕분에 새 삶을 찾았다.
얼마 전 개봉 30주년을 맞이한(놀랍게도 톰 크루즈의 외모는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탑 건"에서도 신스팝 노래가 많은 사랑을 받았다. 러브 테마로 쓰인 로스앤젤레스 출신의 밴드 Berlin의 'Take My Breath Away'가 그 주인공이다. 영화의 인기, 미다스의 손 Giorgio Moroder의 작곡과 프로듀싱으로 노래는 상업성과 작품성을 동시에 뽐냈다. 이로써 "아카데미 어워드"와 "골든 글로브 어워드"에서 "최우수 오리지널 송"을 수상했다. 댄서블하지 않은 신스팝도 히트할 수 있음을 보여 준 사례다. 이 노래 이전에 'No More Words'로 무명에서 탈피했던 Berlin은 'Take My Breath Away'로 정점을 찍은 뒤 자취를 감췄다.

법적인 문제 때문에 미국에서는 Yaz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던 영국 혼성 듀오 Yazoo의 1982년 노래 'Don't Go'는 신스팝의 명곡으로 여겨짐에도 이름에 대한 제약이 영향을 미쳤는지 빌보드 싱글 차트 진입에는 실패했다. 하지만 1989년 영화 "탱고와 캐쉬"에 삽입돼 관객들에게 다시 어필했다. 동료의 음모로 쫓기는 신세가 된 캐쉬(커트 러셀 분)는 도움을 구하기 위해 탱고(실베스터 스탤론 분)의 여동생이 일하는 클럽을 찾아간다. 캐쉬가 클럽에 들어서자 무용수로 일하는 여동생이 Yazoo의 'Don't Go'에 맞춰 등장한다. 음악과 배우의 의상, 소품으로 이 장면은 섹시하고도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며 남성 관객을 홀렸다.
댄스 팝과 힙합, 하드록에 밀려 80년대 후반 쇠퇴한 신스팝은 2000년대 후반부터 다시 인기를 얻기 시작한다. 이 흐름을 타고 옛날에 그랬던 것처럼 영화에도 신스팝이 등장했다. 신스팝 리바이벌의 중핵인 영국 밴드 Chvrches는 2014년 "헝거게임: 모킹제이"에 'Dead Air'를 수록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명 "개저씨"로 불린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존 윅"에서도 신스팝을 들을 수 있다. 프랑스 일렉트로닉 밴드 M83가 연주하고 여가수 Susie Q가 목소리를 입힌 'In My Mind'는 실망스러운 영화와 달리 오묘한 분위기로 듣는 이를 매혹한다.

80년대에 대한 향수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B급 액션 코미디 단편영화 "쿵 퓨리"의 사운드트랙은 영화의 기조를 반영해 그 시절의 사운드를 충실하게 복원해 보인다. 스웨덴의 전자음악 뮤지션 Mitch Murder와 Lost Years가 제작한 다수의 곡은 80년대에 나온 미국 드라마와 아케이드 비디오게임의 테마곡을 완전히 빼다 박았다. 덕분에 80년대 영화를 보는 기분이 들 수밖에 없다. 게다가 "전격 Z 작전", "SOS 해상 구조대" 등을 통해 80년대의 아이콘으로 등극한 배우 겸 가수 David Hasselhoff가 주제가를 불러 옛 정취를 더욱 진하게 표한다. 그가 부른 'True Survivor'의 도입부에 테이프가 늘어났을 때의 효과를 줘 한 번 더 흘러간 느낌을 준다.

2015년 개봉한 "터보 키드"도 "쿵 퓨리"와 비슷한 B급 영화다. 영화의 배경은 1997년이지만 종말을 한 번 겪은 사회이기에 80년대의 문물만 남은 상태를 보여 준다. 때문에 사운드트랙도 80년대 뉴웨이브에 영향을 받은 신스웨이브로 꾸며진다. 캐나다의 일렉트로니카 밴드 Le Matos가 제작한 주제곡 'No Tomorrow'는 현대적인 스타일과 80년대 감성을 조화롭게 구현해 냈다. "터보 키드"는 B급 정서를 입은 "매드맥스"라고나 할까? 배경은 엄혹한데 이야기는 황당하다.

신스팝이 사운드트랙으로 쓰인 최근 영화 가운데 최고를 꼽으라면 단연 "드라이브"가 될 것 같다. 폭력적인 장면이 부담감을 주긴 하지만 라이언 고슬링의 담담한 연기와 주인공의 어두운 삶을 반영한 촬영 기법, 불행과 행복을 교차하는 이야기가 프레임을 시종 단단하게 꾸민다. Red Hot Chili Peppers의 드러머였던 Cliff Martinez가 작곡한 스코어는 주인공의 행동과 상황에 우울함을 주입한다. 사운드트랙에는 프랑스 일렉트로니카 뮤지션 Kavinsky, 캐나다인과 미국인으로 구성된 혼성 밴드 Desire 등도 참여했는데 프랑스 출신의 프로듀서 College가 만든 'A Real Hero'가 테마곡 격으로 나온다. 'A Real Hero'는 특정 시퀀스와 주인공들의 심리를 부연하면서 영화의 감동을 곱절로 만든다.
복고 유행은 서양에서도 거세다. 이 분위기에 부응해 80년대에 사랑을 받았던 신스팝이 다시금 차트를 누비고 있다. 이러한 상황으로 80년대에 그랬던 것처럼 당분간 신스팝을 영화에서도 자주 접하게 될 듯하다. 역시 그 말이 맞다. "유행은 돌고 돈다."
멜론-뮤직스토리-이슈포커스 http://www.melon.com/musicstory/inform.htm?mstorySeq=3658&startIndex=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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