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계 말레이시아 싱어송라이터, 이행예(Gin Lee) [beGin] 원고의 나열


언어가 익숙하지 않을지 몰라도 음악은 친근하다. 가요와 마찬가지로 차이니즈 팝(C-pop) 역시 서구 대중음악에 영향을 받았기에 전혀 낯설지 않다. 힙합, 록, 일렉트로니카, R&B풍의 발라드 등 우리가 흔히 듣는 양식들이 중국 대중음악에서도 보편적으로 나타난다. 영어보다 가깝게 접하는 말이 아니기에 다소 생소하게 느껴질 뿐이다. 한편으로 중국 특유의 서정성으로 이채로움을 갖는다. 이러한 성격에 연유해 차이니즈 팝은 편안하면서도 오묘하다.

최근 출시된 중국계 말레이시아 싱어송라이터 이행예(Gin Lee)의 3집 [beGin]은 차이니즈 팝의 양면적 특성을 엿보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작품이다. 그녀의 음악은 무척 대중적이지만 중국, 홍콩 대중음악의 전통적 정서를 겸해 이국의 정취도 내보낸다. 음악팬들에게 이행예의 노래들은 차이니즈 팝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높이는 기회가 될 듯하다. 더불어 매력적인 아티스트의 새로운 발견이 될 것이다.


시작부터 음악계의 눈길을 사로잡은 기대주

1987년 말레이시아에서 태어난 이행예(李幸倪, Li Hsing Ni)는 드럼 연주자였던 아버지 덕에 어려서부터 음악과 가까이 지냈다. 유년 시절까지만 해도 음악은 그녀에게 일상의 친구였지만 16살 때 취미 이상으로 좋아한다는 것을 깨닫고는 보컬 훈련에 돌입했다. 얼마 뒤 이행예는 대규모 자선 음악회에 참가해 그동안 연마해 온 기량을 과시했다. 이날 음반 제작자로부터 음반 취입 제안을 받을 정도로 실력은 남달랐다. 하지만 아직은 배우고 다듬어야 할 단계라고 생각한 그녀는 솔깃한 제안을 숙련의 길을 걷는다.

말레이시아의 국제음악대학에서 보컬, 편곡을 전공한 이행예는 2009년 말 데뷔 음반 [One & Only]를 발표하며 음악계에 첫발을 내디딘다. 이때부터 영어 이름인 "Jeannie Lee"에 착안해 "Gin Lee"라는 예명을 사용했다. 그녀는 앨범의 모든 수록곡을 작사해 작사가로서의 소질도 뽐냈다. [One & Only]는 2010년 열린 "말레이시아 뮤직 인더스트리 어워드"에서 "최우수 로컬 중국어 앨범"으로 선정됐으며, 앨범의 성공에 힘입어 이행예는 "엔터테인먼트 어소시에이션 어워드"에서 "최우수 신인" 부문 동상을 수상했다.

2011년에 발표한 첫 EP [Here I Come]으로 홍콩 시장에 진출한 그녀는 이듬해 낸 2집 [Gin Lee]에서 음악적 변화를 모색했다. 'Falling'과 'GT'는 영미 차트에서 마주할 법한 트렌디한 팝 록이었다. 현악기를 입힌 팝 사운드와 미니멀한 반주의 R&B를 섞은 자작곡 'Killer', 중간 템포의 컨템포러리 R&B '1st Date'도 1집과 다른 방향을 나타낸 예다. 활동 반경이 넓어졌으니 그에 맞게 다양한 취향을 맞추려고 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부드러운 팝 어조를 지속해 많은 이의 호응을 받았다.


특유의 안락함이 빛나는 앨범 [beGin]
3집 [beGin]은 진리의 음악계에서의 지위를 확고히 해 줄 작품이다. 올해 1월에 먼저 선보인 '쌍쌍(雙雙)'은 피아노와 현악기가 리드하는 반주에 은은한 클라이맥스를 설치해 얌전하게 서정미를 발산한다. 시들해진 관계로 인해 결국 이별을 선택하지만 그래도 사랑의 추억을 간직하겠다는 노랫말로 애잔함을 표한다. 소박한 멋을 보유한 '쌍쌍(雙雙)'은 홍콩라디오텔레비전 차트 정상에 올랐다.

멜로디에서 중국, 홍콩 대중음악의 느낌이 확연히 드러나는 '월구하적인(月球下的人)'도 맑고 고운 톤으로 정감 있게 다가온다. 밤, 하늘, 달 등으로 외로움과 그리운 마음을 시각화하는 가사가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하면서도 강한 인상을 남긴다. '월구하적인(月球下的人)'과 같은 반주를 사용한 만다린어 버전 '군자란(君子蘭)'은 군자란에 빗대 지난 연인을 묘사하는 가사가 낭만적으로 느껴진다.

사운드가 강하거나 업비트를 띠는 노래들도 곳곳에 포진해 앨범을 다채롭게 만든다. 사랑의 상처가 있을지라도 밝은 인생을 살고 싶다고 말하는 '광환(光環)'은 마이너풍의 일렉트로팝 문법을 차용해 스산한 기운을 분출한다. 깜찍한 분위기를 내면서 중간, 중간 덥스텝 비트를 입혀 활기도 갖춘 '미래(未來)', 자신의 원칙대로 살겠다는 당당한 노랫말이 날카로운 전자음과 어우러진 트렌디한 댄스곡 '혼상요파(很想要吧)'는 젊은 음악팬들이 좋아할 스타일이다.

팝과 록이 접목된 노래들도 귀를 사로잡는다. 어쿠스틱 기타와 일렉트릭 기타가 온순하게 화합하는 '함축(含蓄)', 어쿠스틱 기타가 느린 속도로 곡을 이끄는 가운데 봉고, 윈드차임, 카바사 같은 리듬악기와 이행예의 미려한 배킹 보컬이 아늑한 그루브를 생성하는 '지마견문(芝麻開門)'은 앨범의 베스트 트랙이다.

포근함과 편안함으로 듣는 이를 매혹하는 싱어송라이터
이행예의 으뜸가는 매력은 안온함이다. 고음이나 화려한 기교보다 듣기 수월함에 중점을 둔다. 안정적인 가창과 미성은 차분하게 청취자를 끌어들인다. 데뷔하고 나서도 "슈퍼 자이언트 보이스", "슈퍼 아이돌", "보이스 오브 차이나" 등의 여러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전하면서 축적한 그녀만의 내공이 노래에서 고스란히 나타난다.

주력 장르로 삼는 발라드는 워낙 순해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사랑받을 만하다. 여기에 팝과 모던 록, R&B, 일렉트로닉 댄스음악 등 현시대에 인기를 얻는 장르들을 고루 선택해 친밀도를 높인다. 3집 [beGin]을 통해 이행예의 장점은 물론 꾸준히 변화와 성장을 거듭하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다. 또한 우리가 잘 몰랐던 차이니즈 팝의 매력도 제대로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멜론-뮤직스토리-아티스트 갤러리 http://www.melon.com/musicstory/inform.htm?mstorySeq=3649&expose=tr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