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들도 록을 하고 메탈을 한다. 원고의 나열


이달 24일 한 밴드를 조명한 다큐멘터리 "브레이킹 어 몬스터"가 미국에서 개봉한다. 오락적 요소가 거의 없는 다큐멘터리인 데다가 어떤 밴드의 활동을 취재하면서 그들의 음악 세계를 담은 영화들은 꾸준히 제작되고 있기에 구미가 당기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작품은 조금 다르다. 대중음악계에서 쉽게 만날 수 없는 흑인 헤비메탈 밴드가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희소성을 지닌 캐스팅에 어쩔 수 없이 눈길이 간다.

영화의 주인공은 기타리스트 겸 프런트맨 Malcolm Brickhouse, 드러머 Jarad Dawkins, 베이시스트 Alec Atkins로 구성된 브루클린 출신의 트리오 Unlocking The Truth다. 2010년 생일파티에서 만난 Malcolm Brickhouse와 Jarad Dawkins는 서로 음악 취향이 비슷함을 확인하고 밴드를 결성한다. 둘은 곧바로 거리로 나가 연주를 선보였고 즉각 사람들의 관심을 이끌어 냈다. 두 명이라는 적은 인원, 그것도 헤비메탈을 한다는 점이 이들을 특별하게 보이도록 만들었다. (브루클린의 흑인이 힙합이 아닌 메탈을 한다고?!) 더욱 놀라운 사실은 당시 이들이 고작 10살이었다는 것이다.


먼저 활동하던 두 멤버는 팀에 베이스 연주자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유치원 친구였던 Alec Atkins를 영입했다. 리듬을 보강한 뒤 타임스퀘어 등 많은 사람이 모이는 장소에서 공연을 펼치며 존재를 알려 나갔다. 유튜브에 올라온 Unlocking The Truth의 연주 영상은 SNS의 물결을 타고 빠르게 퍼졌다. 이후 텔레비전 출연이 줄을 이었고 2014년에는 "코첼라 페스티벌"의 가장 어린 출연자가 됐다. 같은 해 소니 뮤직과 180만 달러의 계약을 맺는 등 솜털이 보송보송한 10대 소년들은 단숨에 스타가 됐다. 아직 정식 앨범은 나오지 않은 상태지만 유튜브 영상으로 힘 있는 연주를 확인했기에 기대가 앞선다.

이들을 보니 헤비메탈 신에 흑인으로 이뤄진 밴드가 별로 없다는 사실이 무척 아쉽게 느껴진다. 헤비메탈은 그 활동 인구로 봤을 때 백인들의 그라운드라고 해도 결코 틀린 말이 아니다. 헤비메탈의 뿌리인 록, 로큰롤이 흑인들에게서 나왔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애석하기만 하다. 록 역시 백인들의 음악으로 인식될 만큼 흑인 뮤지션 인구가 매우 적다. 때문에 흑인 록, 헤비메탈 뮤지션의 족적은 자연스레 돋보일 수밖에 없다.


로큰롤 시대의 위인 Little Richard, Chuck Berry 이후 가장 먼저 빛났던 흑인 로커는 단연 Jimi Hendrix다. 1967년 "몬테레이 팝 페스티벌"에서 기타에 불을 지른 것이나 1969년 "우드스톡 페스티벌"에서 미국의 국가 'The Star-Spangled Banner'를 조롱하듯 사이키델릭으로 연주한 사건으로 그는 매체와 음악팬들의 이목을 한 몸에 받았다. 이것은 단순한 기행이 아니었다. 수많은 청춘이 죽어 나간 베트남전에 대한 묘사였으며 기성세대와 보수정권을 향한 반감의 표출이었다. 당시 젊은이들의 분노, 사회상을 음악으로 승화했기에 위대하게 여겨졌다.

특유의 폭발적인 기타 연주는 그의 이름을 록과 동일시되도록 했다. 앰프에서 나오는 소음까지도 연주의 일부였으며, 이를 통해 Jimi Hendrix는 때로는 포효하고 때로는 몽환적인 대기를 연출하는 그만의 특징을 완성했다. 단 세 편의 앨범을 내고 27살에 요절했지만 시대를 압축한 다부진 연주는 그를 영원불멸의 신화로 만들었다.

Parliament(당시에는 The Parliaments)의 백업 밴드로 출범한 Funkadelic은 사이키델릭 소울과 펑크(Funk)를 기반으로 끈적끈적한 록을 들려줬다. 때문에 Sly & The Family Stone과 Jimi Hendrix가 한자리에 모인 듯한 인상을 받기도 한다. 초창기 스타일과 달리 1970년대 후반에는 'One Nation Under A Groove', '(Not Just) Knee Deep' 같은 곡으로 리더 George Clinton의 원대한 음악 세계인 피 펑크(P-Funk)에 수렴했다. 이 노래들이 힙합에 많이 쓰이면서 Funkadelic은 록보다는 펑크(Funk) 음악을 하는 밴드로 굳게 인식됐다. 더불어 힙합 작법에 이바지한 뮤지션으로 등극했다.


많은 사람이 Bad Brains의 등장에 놀랐다. 백인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펑크 록을 했기 때문이다. 70년대 후반 Mind Power라는 이름의 재즈 퓨전 밴드로 경력을 시작한 이들은 얼마 뒤 Sex Pistols, The Dead Boys 같은 펑크 밴드에 흥미를 느껴 노선과 이름을 싹 바꾸고 다시 태어났다. 하지만 멤버들이 흑인이기에 아프리카로의 귀의를 염원하는 라스타파리 운동(Rastafari movement)에도 영향을 받았고 이로써 레게를 자신들의 음악에 녹이기 시작했다. 격정적인 전기기타 리프와 질주하는 드럼을 타고 소리를 지르다가도 어떤 곡에서는 느긋한 레게를 들려주는 양면성을 보인다.

70년대 후반 캘리포니아주에서 조직된 Fishbone도 눈에 띈다. 스카 펑크의 발원지인 캘리포니아 출신답게 이들은 경쾌한 스카 펑크를 주메뉴로 한다. 스카 펑크 역시 백인들이 점령하다시피 해서 흑인 밴드가 이 장르를 한다는 것은 매우 신기한 일이었다. 하나의 양식에 머물지 않는 잡식성은 이들을 한 번 더 색다르게 보이도록 한다. 이들은 펑크(Funk) 록, 힙합, 하드록, 헤비메탈, 약간의 뉴웨이브를 골고루 소화하며 다채로움을 뽐낸다. 신 나고, 강하고, 한편으로는 애매해서 의아하다.


80년대 중반 뉴욕에서 결성한 Living Colour로 흑인 록 밴드가 내는 소리는 한층 거세졌다. 리드 기타, 리듬 기타, 드럼, 베이스가 모두 내려찍듯 헤비함을 지속한다. 간혹 스래시 메탈의 성격을 띠며 빠른 속도로 공격성을 배가해 보인다. 리드 싱어 Corey Glover의 보컬은 흑인 특유의 그루브를 충분히 드러내면서도 큰 성량으로 고음을 소화해 밴드의 음악을 더욱 활기차게 만든다.

일련의 특징을 바탕으로 1988년에 발표한 데뷔 앨범 [Vivid]는 미국에서 200만 장 넘는 판매량을 기록했으며 매체의 호평을 받았다. 싱글로 커트한 'Cult Of Personality'는 1990년 열린 "그래미 어워드"에서 "최우수 하드록 퍼포먼스"를 수상해 Living Colour의 인지도는 급상승했다. 'Cult Of Personality'는 또한 당시 하드록 마니아들의 찬가로 간주될 만큼 어마어마한 사랑을 받았다.


젊은 사람들에게 Ice-T는 미국 드라마 수사물에 주로 출연하는 배우로 익숙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80년대 초반부터 활동해 온 베테랑 래퍼다. 1987년 발표한 데뷔 앨범 [Rhyme Pays]에 "부모의 조언 필요(Parental Advisory)" 딱지가 붙은 것이 예술가의 창작을 억압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그는 정권과 보수성향의 시민단체, 사회의 온갖 부당함에 반감을 품으며 더 거칠어지기로 작정했다. 그렇게 해서 1990년 자신이 프런트맨이 되는 헤비메탈 밴드 Body Count가 탄생했다.

이러니 가사의 수위가 높을 수밖에 없었다. 욕이 나오는 것은 당연지사. 1992년 데뷔 앨범에 수록된 'Cop Killer'는 공권력을 남용하는 경찰에게 날리는 일갈이었다. 이외에도 꾸준히 정치사회적인 노랫말과 육중한 메탈 사운드로 밴드만의 특징을 구축했다. Body Count는 랩코어 장르의 확산에도 영향을 미쳤다.


국내에서는, 아니 외국에서도 많은 이에게 메이저리그 선수 요기 베라의 명언을 인용한 감미로운 소울 'It Ain't Over 'Til It's Over'로 잘 알려져 있지만 Lenny Kravitz의 첫 번째 음악 기조는 록이다. 1989년 데뷔 앨범 [Let Love Rule]부터 하드록과 사이키델릭을 오가며 록 키드임을 고백했다. 데뷔곡 'Let Love Rule'은 록의 전설 The Beatles의 'Hey Jude'를 향한 오마주나 다름없었다. (보컬 애드리브를 계속해서 몰아치는 기나긴 후주!)

Lenny Kravitz는 앨범 판매량은 좋았지만 'It Ain't Over 'Til It's Over' 이후 이렇다 할 히트곡이 없었다. 그럼에도 캐나다 록 밴드 The Guess Who의 원곡을 리메이크한 'American Woman', 오랜만에 빌보드 차트 톱5 안에 든 빈티지풍의 록 'Again', 하드록과 펑크를 결합한 'Lady' 등으로 로커로서의 면목을 유감없이 뽐냈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팝의 영원한 왕자님 Prince를 빼놓아서는 안 될 것이다. 펑크(Funk), R&B, 소울 등 흑인음악 장르를 구사하긴 했으나 그의 음악에는 늘 록의 성질이 포함돼 있었다. 본인이 주연을 맡은 1984년 영화 "퍼플 레인"의 사운드트랙 'Purple Rain'은 황홀경에 빠진 듯한 장중하고 몽환적인 연주로 록의 괄괄한 기운을 전달한다. 국내 음악팬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은 'The Most Beautiful Girl In The World'도 달콤한 R&B의 외양을 나타내면서 록의 인자를 조금씩 표출했다.

음악 외에도 힘 있는 자, 기존 제도에 반항하는 태도가 Prince를 영락없는 로커로 인식되게 했다. 그는 1년에 정규 앨범 서너 장에 달하는 노래를 만들 정도로 부지런했다. 하지만 그가 속해 있던 워너브라더스 레코드는 단 한 장의 앨범만 출시하고자 했다.

워너브라더스의 이런 조치가 계약을 연장하려는 속셈이라고 판단한 Prince는 항의의 뜻으로 자신의 이름을 남성을 뜻하는 기호(♂)와 여성을 뜻하는 기호(♀)를 조합한 "러브 심벌(Love Symbol)"로 변경했다. 또한 공식적인 자리에 설 때 볼에 노예(Slave)라는 글씨를 쓰고 나타났다. 아티스트가 자기 작품에 자유로운 권한을 갖고 음악을 마음껏 펼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록이 지닌 저항정신을 몸소 보여 준 이가 Prince다.

이들 외에도 Tina Turner, Betty Davis, Tom Morello, Ben Harper 등 흑인 로커는 제법 된다. 곳곳에서 활약하는 흑인 록, 헤비메탈 뮤지션들 덕분에 록은 더욱 다채로운 모습을 뽐낸다. R&B, 힙합이 아닌 록 신에서도 흑인들의 존재감은 충분히 빛난다.

멜론-뮤직스토리-이슈포커스 http://www.melon.com/musicstory/inform.htm?mstorySeq=3734&startIndex=0

덧글

  • 나인테일 2016/06/30 16:45 #

    흑인 메탈 뮤지션은 토니 매칼파인 정도 밖에 모르고 있었습니다만 의외로 거론해볼 수 있는 사람이 꽤 많았군요.
  • rumic71 2016/06/30 19:18 #

    개인 아티스트라면 꽤 많습니다만... 밴드를 꼽아보자면 확실히 드물죠.
  • 한동윤 2016/07/01 09:38 #

    나인테일 / Death처럼 단명한 밴드도 있고 활동 중인 인디 밴드도 몇 팀 있는데요 음원서비스가 안 돼 거론하지 못했습니다. :)
  • 한동윤 2016/07/01 09:39 #

    rumic71 / 그렇죠. 메탈 밴드에서 활동하는 흑인들이 좀 있는 편입니다. :)
  • 역사관심 2016/07/01 02:17 #

    흑인 정통메탈하면 리빙 컬러 밖에 기억이 안났는데 (레니는 하드록에 가깝다고 봤고), 정리해주시니 그 이전의 많은 아티스트를 더 알게 되었네요. ^^
  • 한동윤 2016/07/01 09:41 #

    잘 읽어 주셨다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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