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써 얻은 노랫말 자유의 가벼움 원고의 나열

1996년 6월 7일 우리 대중음악계에 복음이 찾아왔다. 강산에, 넥스트, 윤도현, 노래를 찾는 사람들 등 여러 뮤지션이 이를 축하하며 그날부터 3일 동안 기쁨의 노래를 불렀다. 물론 여기에는 가요계가 환희의 전환점을 맞이하는 데 큰 공을 세운 정태춘도 함께했다. 사흘간 치러진 콘서트 이름은 [자유]였다. 20년 전 6월 '음반사전심의제도' 폐지를 골자로 하는 음반 및 비디오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발효됐다.

음반 심의의 역사는 1933년 조선총독부가 제정한 '레코드단속규칙'으로 시작된다. 문화를 통제함으로써 우리나라를 효율적으로 식민화하기 위함이었다. 얼마 뒤 나라는 해방을 맞았으나 문화적 속박은 사라지지 않았다. 1957년 국민의 정서를 해치는 노래를 솎아 내고 건전한 가요를 보급하겠다는 목적으로 공보실 산하에 '음악방송위원회'가 만들어지면서 정부가 주도하는 대중음악 심의가 개시됐다. 이후 1966년 조직된 '예술문화윤리위원회'를 통해 사전 심의가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예술문화윤리위원회는 1968년 100편 이상의 노래를 금지곡으로 지정했다.

가장 매서운 탄압은 1975년 박정희 정권이 선포한 '긴급조치 9호'였다. 이 조치로 신중현의 '미인'(가사 저속), 김추자의 '거짓말이야'(불신 조장), 한대수의 '물 좀 주소'(물고문을 연상시킴), 이장희의 '그건 너'(남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풍조 확산 우려) 등 무려 222편의 노래에 금지곡 낙인이 찍혔다. 일련의 사건은 암울했던 시대상을 일러 준다.


1987년 예술문화윤리위원회를 전신으로 하는 '공연윤리위원회'(이하 공륜)가 186편의 금지곡을 해금했지만 전반적인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공륜에 의해 사전 심의가 계속 이뤄졌기 때문이다. 정태춘 역시 1978년 데뷔 앨범을 낼 때 공륜의 검토를 받아야 했고 수록곡 중 '시인의 마을'이 심의에 걸려 개작 판정을 받았다. 이것이 그와 공륜의 악연의 시작이다.

이후로도 정태춘은 앨범을 낼 때마다 서너 곡씩은 심의를 통과하지 못해 가사를 수정하게 된다. 1990년 [아, 대한민국…]을 출시하기 전 받은 심의에서도 다수의 수록곡에 수정 지시가 내려졌다. 결국 그는 공륜의 처사에 반대하며 [아, 대한민국…] 앨범을 불법으로 발표한다. 집회와 공연을 통해 심의제도의 부당함을 꾸준히 알려 나간 정태춘은 부인 박은옥과 부른 1993년 앨범 [92년 장마, 종로에서]도 심의를 거부한 채 배포했다.

공륜은 1995년 서태지와 아이들의 4집 수록곡 '시대유감'에 현실을 부정적으로 묘사했다는 이유로 금지곡 결정을 내렸다. 이를 불만족스럽게 여긴 서태지가 노랫말을 싹 빼고 연주곡으로 내면서 심의에 대한 대중의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서태지에 의한 공론화, 공륜을 향한 서태지와 아이들 팬들의 적극적인 호소, 정태춘의 꾸준한 항거가 맞물리면서 음반사전심의제도는 1996년 폐지되기에 이른다.

예술가의 창작을 저해하고 작품을 옭아매던 제도가 사라진 지 20년이 됐다. 그 순간은 반가웠지만 최근의 상황을 살펴보면 헛헛한 기분이 든다. 많은 노래에 욕설이 난무하며 자극적인 표현이 넘쳐 난다. 이야기의 맥을 끊는 영어 가사 혼용이 태반이다. 노랫말의 전반적인 수준은 그때보다 결코 나아지지 않았다.

정태춘을 비롯한 다수의 사람이 들인 노력이 무색해 보이기까지 하다. 치열한 투쟁의 역사 뒤에 남은 것은 좀처럼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뿐이다. 표현의 자유는 얻었지만 표현의 무게감과 주변에 대한 숙고는 갖추지 못한 현실이 아쉽기만 하다.

(한동윤)
2016.07.12ㅣ주간경향 1184호


덧글

  • 슈3花 2016/07/15 10:41 # 답글

    마지막 두 문단이 와닿습니다. 현재의 대중음악계.. 그리고 힙합씬에 대한 일침이네요. 가끔은 그런 생각없음에 동조하며 즐기고만 있지는 않았나 싶어요. 괜히 뜨끔합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 한동윤 2016/07/16 10:07 #

    네, 앞에는 그냥 역사와 사실의 전달이구요, 하고 싶은 말은 마지막 두 문단이에요.
    사실 저 두 문단도 한 문장으로 쓰고 싶었습니다.
    힙합이 특히 심하지만 주류의 가요도 대부분 가사가 너무 안 좋아요.
    잘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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