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대중음악계에서 퓨전 국악의 존재감은 미미하기만 하다. 음악팬들로 하여금 국악을 쉽게 느끼게 하기 위해 대중음악과 결합을 감행했음에도 대부분이 청취자의 이목을 끌지 못하는 편이다. 주류 시장에는 달콤하고 흥겨운 노래들이 즐비하니 그에 비해 덜 감각적인 국악에 눈길이 오지 않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게다가 국악이 대중에게 노출되는 일도 무척 드물어서 애초에 흥미를 갖기가 어렵다. 우리 것을 바탕에 두고 만들었지만 우리 땅에서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는 현실이 눈물겨울 따름이다.
1993년 '태평소 능게'를 삽입한 서태지와 아이들의 '하여가'가 큰 인기를 끈 뒤로 국악과 퓨전을 행하는 사례가 늘긴 했다. 넥스트의 '코메리칸 블루스'(Komerican Blues)를 비롯해 원타임의 '쾌지나 칭칭', 지누션의 '에이요'(A-Yo), 원썬의 '어부사(魚夫詞)', 싸이의 '위 아 더 원'(We Are the One), 팝핀현준과 하주연의 '이어도사나' 등 민요를 덧대거나 전통악기를 입힌 노래들이 간간이 나왔다.
아쉽게도 이들 작품이 모두 '하여가'에 버금가는 사랑을 받은 것은 아니다. 때문에 국악 퓨전이 트렌드로 부상하는 데에는 힘을 불어넣지 못했다. 몇몇 노래는 상업적으로 성공하긴 했으나 그 배경은 국악과 조합해 이룬 참신함보다는 해당 뮤지션이 축적한 인기 덕분이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퓨전 국악을 전문으로 하는 다수의 밴드가 까다롭지 않은 음악을 들려주는 데에 몰두했다. 팝이나 가요 히트곡을 리메이크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창작곡도 왈츠, 보사노바처럼 가볍게 느껴지는 장르와 혼합하는 경우가 흔했다. 얼마 안 되는 퓨전 국악의 영토는 익숙함과 편안함으로 물들었다. 어떻게든 음악팬들의 관심을 받기 위한 몸부림의 산물이다.

순함을 우선에 두는 경향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지만 최근 몇 년 사이 그와 성격과 분위기가 조금 다른 퓨전 국악이 속속 나와 눈길을 끈다.
독창성과 탄탄한 작품성으로 2013년에 이어 지난해에도 한국대중음악상을 수상한 잠비나이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지난 6월 출시한 2집 [어 에르미따쥬 (은서;隱棲)](A Hermitage>에서 전과 다름없이 음습하고 오묘한 음악을 선사한다. 사이키델릭의 혼란스러운 정서를 기본으로 삼으면서 헤비메탈, 포스트 록, 때로는 힙합을 안으며 괄괄한 기운을 전달한다. 이런 요소로 인해 잠비나이의 작품은 이채로우면서도 후련하다.
2011년 데뷔한 타니모션은 잠비나이에 비하면 무척 밝다. 톤의 차이가 확연할 뿐 다양한 양식을 버무리는 모습은 별 차이 없다. 지난 7월 발표한 첫 번째 정규 앨범 [휘청]에서 밴드는 록, 블루스, 일렉트로니카, 소울 등 여러 장르를 표현해 호화로움을 과시한다.
7월 데뷔 앨범 [구나구나]를 선보인 혼성 트리오 누모리 또한 넓은 음악 스펙트럼을 뽐낸다. 휘모리장단에 전자음악과 재즈를 입힌 ‘왕거미’, 모티프로 삼은 무속 신앙을 펑크(funk)와 록으로 표현한 '구나구나', 재즈와 팝을 녹여내 '공무도하가'를 독자적으로 풀이한 '가시오', 자진모리장단이 지닌 경쾌함과 블루스 록의 거친 기운이 잘 조화되는 '헤이오' 등 전통음악과 서구 대중음악의 퓨전이 내내 이어진다.
세 그룹 모두 혼합에 적극적이다. 대중성을 갖는 데에 급급한 스타일이 아니다. 이들의 음악은 서구 대중음악의 형식과 골격을 갖춰 어느 정도 친숙함을 발산하면서도 한국 전통악기와 국악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독특함도 나타낸다. 국악 퓨전이 인기 장르가 되지 못하는 상황은 섭섭하지만 이렇게 멋지고 개성 강한 음악이 꾸준히 나오는 현실은 충분히 기쁘다.
(한동윤)
2016.08.09ㅣ주간경향 118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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