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30도를 훌쩍 넘는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여름 한가운데에 들어섰을 때 맞이하는 당연한 상황이다. 머리는 자연의 섭리니까 받아들이라고 하지만 육신은 고통에 몸부림치며 곳곳의 땀구멍을 동시다발로 개방하기 바쁘다. 조금이나마 선선한 기온을 선사했던 장마는 풋사랑보다 짧게 스쳐 지나가 안타깝기만 하다. 계속되는 폭염이 몸을 지치게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가을이 올 때까지 버티는 것뿐이다.
더위는 시원한 무언가를 찾게 만든다. 시원한 음식을 먹고 계곡이나 바다로 피서를 떠나는 것이 여름날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혹은 간담이 서늘해지는 공포영화를 관람하는 것으로 더위를 달래는 사람도 많다.
몇몇 음악도 더위를 가라앉히는 데 도움을 준다. 곡에 담긴 이런저런 효과음과 치밀하게 작성한 텍스트가 냉기를 발산하는 노래들이 있다. 어떤 뮤지션은 괴기스러운 뮤직비디오나 앨범 커버로 공포감을 안기기도 한다. 사람마다 경험과 성격이 다른 탓에 누군가에게는 시시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쨌든 소개하는 작품들을 통해 조금이나마 시원한 기분이 들길 희망한다.
현대인들이 느낄 공포

에픽 하이 '행복합니다'
에픽 하이의 4집 [Remapping The Human Soul]의 '행복합니다'에는 아들이 있는 중년의 회사원과 소아과 의사가 등장한다. 둘은 각각 1절과 2절에서 그들의 평범한 일과를 얘기한다. 그런데 넬 김종완이 부른 후렴 가사는 불안감으로 가득해 회사원과 의사가 밝힌 일상생활을 회의적으로 묘사한다.
그럼에도 회사원과 의사는 각각 "오늘부터 담배를 끊어야지 새로운 것을 배워야지 이 회사에서 한 획을 그어야지", "오늘부터 긴 한숨을 쉬고 차가운 물로 목을 적시고 이 어린 아이의 손목을 손에 쥐고 설마 제가 당신을 버릴까요"라며 진취적인 태도를 드러내거나 마음을 다잡는다.
하지만 마지막 부분에 두 사람의 다짐을 표현한 가사가 오버래핑이 되면서 "숨을 끊어야지", "목을 베어야지", "손목을 그어야지"로 들린다. 행복하다는 제목과 다르게 갑자기 핵심이 자살로 변해서 섬뜩하다.
노래의 부제는 'Loman's Holiday'로, 로먼은 미국 작가 아서 밀러의 1949년 희곡 "세일즈맨의 죽음"에 등장하는 주인공 이름이다. 로먼은 성공을 꿈꾸며 세일즈맨으로 성실히 일했지만 30년 넘게 다닌 직장에서 몰인정하게 해고당한다. 하루아침에 비참한 처지가 됐지만 가장으로서 떳떳하고 자랑스럽기 위해 가족들이 보험금을 타게 할 목적으로 자살을 택한다. '행복합니다'는 로먼의 모습에 빗대 성공에 압박받는 현대의 정신적 고통을 말하고 있다.

넥스트 '1999'
1992년에 출시된 환경보호 옴니버스 앨범 [92' 내일은 늦으리]에 수록된 넥스트의 '1999'는 이상 기후로 완전히 제 모습을 잃은 지구를 스케치한다. 오후 2시인데도 하늘은 밤처럼 어둡고 남극의 빙하는 모두 녹았으며 산성비로 인해 식물은 모두 자취를 감춘 세상이다.
연속되는 비명과 어지럽고 사납게 울리는 전기기타 연주, 인류 소멸을 암시하는 마지막의 늘어지는 편집은 노래가 설정한 상황을 더욱 무섭게 꾸민다. 신해철은 노래에서 지구 최후의 순간 음성 기록을 남기는 생존자로 분한다. 그의 내레이션은 모든 것을 체념했지만 긴박감은 떨쳐 내지 못하는 화자의 심정을 잘 표현해 노래를 더욱 극적으로 만든다.
노래처럼 1999년 인류는 갑작스럽고 거대한 시련을 맞이하지 않았으며 지구도 아직은 건재하다. 하지만 끝없이 보도되는 이상 기후 소식은 분명히 걱정해야 할 일이다. 가까운 미래에 '1999'가 전달한 상황이 현실로 나타날지 모른다.

이현도 '적의'
듀스 시절 H2O와 함께한 'Go! Go! Go!'로 록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 이현도는 첫 솔로 앨범 중 '적의'를 통해서 랩과 록이 빚는 강성 사운드를 실현한다. 묵직하고도 날카로운 전기기타 연주, 낮게 으르렁거리는 듯한 래핑이 제목이 품고 있는 미움의 감정을 효과적으로 부각해 준다.
단단한 연주도 좋지만 시작부터 25초까지 나오는 내레이션은 소름을 돋게 한다. 노래의 주인공은 평온하게 얘기하다가 어느 순간 톤이 바뀌더니 이내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돌변한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샤이닝"의 주인공 잭 토랜스가 미치는 과정을 짧게 압축해 놓은 모양새 같다.
원만한 사회생활을 위해서는 가식도 떨어야 하는 등 본심과는 다르게 행동해야 하는 순간이 반드시 있다. 그런 것들이 스트레스를 주고 심각한 경우에는 안 좋은 일을 야기하기도 한다. 요즘 "분노 범죄"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는 시점이라 내레이션은 더 무섭게 들린다.
뮤직비디오가 무서워요~

Michael Jackson 'Thriller'
Michael Jackson의 1984년 히트곡 'Thriller'의 뮤직비디오는 늑대인간과 좀비를 등장시키며 B급 공포영화의 정서를 따랐다. 그러나 제작에 들인 공과 영상이 남긴 성과는 전혀 허름하지 않았다. 엔딩 크레디트를 포함한 러닝타임은 14분에 달하고 예산은 50만 달러가 들었다. 1985년에 열린 "그래미 어워드"에서 "최우수 뮤직비디오 (장편)"을 수상한 것을 비롯해 여러 매체에서 최고의 뮤직비디오 중 하나로 꼽았을 만큼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미 외국에서 수없이 패러디된 뮤직비디오는 우리나라에도 파급을 미쳤다. 노이즈가 '상상 속의 너'에서 안무를 따라 했으며 2PM의 'Heartbeat', Charlie Kim(김준호)의 '좀비 (The Zombie)' 또한 'Thriller'에 영향을 받았다.
Michael Jackson이 늑대인간으로 변하는 모습은 영화 속 이야기이고, 현실로 돌아와 좀비로 변하는 것은 여자 주인공의 상상이었지만 끝에 있는 반전이 오싹하게 만든다.

Rockwell 'Somebody's Watching Me'
모타운 레코드의 설립자 Berry Gordy Jr.의 아들이라서 앨범을 쉽게 낸 것 같은 의심이 드는 Rockwell의 유일한 히트곡이다. 노래의 주인공은 자신을 평범한 삶을 사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그런데 그는 누군가가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것 같다면서 두려움에 떤다. 이 이유로 대인기피증을 호소하기도 한다.
가사는 미래를 내다본 듯하다. 요즘에는 각종 기술과 장비의 발달로 남의 사생활을 엿보는 게 수월해졌다. 스토킹을 당해 본 사람은 매일매일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이러한 일을 지속적으로 겪어서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도 은근히 많다.
노래의 뮤직비디오는 악령, 시체, 까마귀, 좀비 등을 등장시켜 공포감을 더욱 키운다. 때문에 'Somebody's Watching Me'는 핼러윈 시즌에 애청되곤 한다.
모타운 레코드에 있었던 추억 때문인지, 개인적으로 친분이 두터워서인지 모르겠으나 노래에 Michael Jackson이 객원 보컬로 참여했다. Michael Jackson은 이미 대스타였지만 Rockwell은 신인에 불과했기에 'Somebody's Watching Me'를 Michael Jackson의 노래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도 꽤 된다. 실제로 페이드아웃까지 치면 당사자보다 Michael Jackson의 분량이 더 많다. 이것이 더 공포다.

RJD2 'The Horror'
머리에 상처를 입고 쓰러져 있던 사내가 눈을 뜨고는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지난 기억을 헤집는다. 손바닥에 적힌 의문의 숫자, 깨어난 지 얼마 안 돼 뱉은 토사물에서 나온 하나의 열쇠, 이것을 본 그는 무엇인가 생각난 듯 어디론가 달려간다. 한 허름한 건물 안으로 들어간 그는 손바닥에 쓰인 것과 같은 숫자가 적힌 화장실에서 테이프를 발견한다. 그것을 갖고 옥상으로 올라온 사내는 테이프를 들으며 누군가와 교신하기 시작한다.
얼마 후 검은 망토에 천으로 된 흰색 가면을 쓴 집단이 자신을 실험 대상으로 썼다는 것을 회상해 내더니 다시 고통에 빠진다. 그런 그를 향해 정체를 알 수 없는 그 집단의 일원이 다가와서는 가차 없이 삽으로 머리를 내려쳤고 사내는 힘없이 쓰러진다. 그리고는 정체불명의 남자가 가면과 모자를 벗는다. 그는 다름 아닌 사내였다.
힙합, 소울, 일렉트로니카, 록을 아우르는 넓은 스펙트럼의 프로듀서 RJD2의 데뷔 앨범 [Deadringer]의 'The Horror' 뮤직비디오 내용이다. 영상도 흥미롭지만 그것을 만드는 데 기초가 된 곡 또한 일품이다.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가져 온 대사는 기인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사이렌처럼 윙윙 울리는 무그 신시사이저, 침잠과 융기를 반복하는 드라마틱한 전개는 뮤직비디오에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한 스코어였다.
사랑에 실패하는 것도 공포

Biz Markie 'Just A Friend'
가수인 주인공은 투어 공연 중 한 여인을 만났다. 첫눈에 반한 그녀와 사귀고 싶어 데이트를 신청했고 만나다 보니 그녀도 자신에게 호감을 느끼는 듯했다. 연인으로 발전하고픈 마음에 "혹시 남자 친구 있어요?"라고 물었다. 질문에 여자는 "아뇨, 저는 그냥 친구만 있어요."라고 답했다.
자신감이 붙은 주인공은 매일 그녀와 통화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녀 대신 다른 남자가 전화를 받는다. 그녀가 전화를 넘겨받자 주인공이 물었다. "아까 그 사람 누구야?" 돌아오는 여자의 대답, "아, 걔는 그냥 친구야." 남자는 여자의 말을 믿고 그러려니 한다.
얼마 뒤 주인공은 여자가 다니는 대학교 기숙사에 찾아갔다. 깜짝 등장에 그녀가 놀랄 거라 생각하고 기숙사 방문을 열었다. 하지만 놀란 건 그녀가 아닌 본인이었다. 어떤 남자와 그녀가 진한 키스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 그를 반겼다. 남자는 불특정 다수에게 간곡한 부탁을 남긴다. "혹시 자기는 그냥 친구만 있다고 말하는 여자를 만난다면 말도 섞지 마세요."라고.
래퍼 Biz Markie의 처음이자 마지막 히트곡으로서 1990년 빌보드 싱글 차트 9위를 기록했다. 내용은 분명히 코믹하지만 노래를 듣고는 웃음 대신 "설마 지금 썸타는 그 사람도?" 하며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박지윤 'Steal Away (주인공)'
끝까지 들었을 때 비로소 놀란다. 곡의 색채가 밝아서 사건의 전말을 눈치채기가 쉽지 않다. 노래의 주인공은 남의 남자를 뺏은 걸 당당하게 여기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 마지막 부분의 스캣 "야야~ 야야~"는 내용상 한탄이 아닌 주인공 본인에 대한 조롱으로 들린다. 제목과 부제의 상반되는 뉘앙스가 가사를 정리해 준다. 박지윤의 'Steal Away (주인공)'은 충격과 공포의 대반전을 보여 주는 대표곡 중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몇 달 전에 음원이 풀렸으니 기다렸던 분은 당장 다운받으시길.)
늦은 밤 반드시 혼자 들으세요.

Pink Floyd 'Time'
Pink Floyd의 'Time'은 시작부터 각종 시계들의 종소리로 혼란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어서 시계 초침 소리와 멀리서 울리는 듯한 드럼 연주를 1분 넘게 끌어 으스스한 느낌을 배가한다. 이 부분에서 기타와 신시사이저도 등장하지만 듬성듬성 들어서는 탓에 공허하게 들린다.
긴장감 충만한 사운드 덕분에 'Time'은 드라마, 뉴스 등에 배경음악으로 자주 사용됐다. 우리나라에서는 1980년대 공익광고에 쓰인 적이 있다. 늦은 밤 인적이 없는 길, 한 여성이 지나가고 그 뒤를 남자가 따른다. 여자는 계속 따라오는 남자가 불안하게 느껴져 빨리 걷기 시작한다. 그러자 남자의 발걸음도 같이 빨라진다. 급기야 남자는 여자가 사는 아파트까지 따라왔다. 여자가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소스라치게 놀라는 순간 옆집 문이 열리며 아내로 보이는 여인이 그 남자를 반긴다. 이웃끼리 알고 지내자는 내용의 공익광고였다.
Blockhead 'Triptych Pt. 1'
미국 힙합 프로듀서 Blockhead의 'Triptych Pt. 1'은 기괴하다기보다 호젓하다. 석양이 깔리는 한적한 공원을 배경으로 한 앨범 커버 사진 때문에 쓸쓸함이 강하게 든다. 단조의 피아노 연주, 아득하게 울리는 벨소리, 높낮이를 변조한 음성 샘플 등이 희미함과 외로운 기운을 증대한다.

Electric Light Orchestra 'Fire On High'
노래는 초반에 날카로운 오케스트라와 소리를 반대로 재생하는 백마스킹(Backmasking) 기법으로 음산한 대기를 조성한다. 여기에 Handel의 [Messiah] 중 'Hallelujah' 코러스를 삽입해 엄숙함을 얹힌다. 뒤이어 공포영화 속 스코어 같은 신경질적인 관현악 연주가 흘러 곡을 더욱 음침하게 만든다.
신시사이저와 기타, 현악기의 합주로 숨을 고른 뒤 힘찬 기타 리프를 앞세워 잠시 메인 테마로 전환한다. 그리고 다시 장중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메인 테마를 이어 간다. 으스스한 감이 드는 것은 초반이 전부지만 마지막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을 만큼 곡은 엄청 타이트하다. 귀를 뗄 수 없게 하는 탄탄한 작품성이야 말로 경이로움을 넘어 경외감을 들게 하는 공포다.
앨범 커버로 겁주는 작품들 (심신과 비위가 약하신 분은 뒤로 가기 버튼을 누르거나 재빨리 스크롤을 내려 주세요.)

이른바 "지켜보고 있다!"류의 사진들이다. 아일랜드의 전자음악 뮤지션 Aphex Twin은 본인의 실명을 타이틀로 내건 [Richard D. James Album]에서 영화 "샤이닝" 속 잭 니콜슨을 흉내 낸 듯한 커버를 써서 보는 이로 하여금 움찔하게 만든다. 프로그레시브 메발 밴드 Dream Theater의 2003년 음반 [Train Of Thought]는 왠지 저 안구를 뚫고 귀신이 나올 것 같은 느낌. 영국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Porcupine Tree의 2007년 앨범 [Fear Of A Blank Planet]은 노려보는 커버도 무섭지만 푸르스름한 색과 검은색, 흰색이 곁들여져 더 서늘한 기운을 낸다.

하드고어(Hardgore)류는 그냥 무섭다. 더러워서 기억에 더 오래 남는다. 잠들기 전에 꼭 생각난다. 도살자의 모습으로 논란이 된 The Beatles의 1966년 앨범 [Yesterday And Today]의 오리지널 커버. 데스 메탈 밴드 Cannibal Corpse의 [Butchered At Birth]. 영화 "127시간"이 생각나는 미국 데스 메탈 밴드 Autopsy의 2014년 앨범 [Tourniquets, Hacksaws And Graves].
멜론-뮤직스토리-이슈포커스 http://www.melon.com/musicstory/inform.htm?mstorySeq=3881&startIndex=0
덧글
얼마전에 들어본거에서는 에픽하이 노래가 무섭더라고요. 피해망상이었나 그랬던 것 같은데...
공교롭게도 두 노래 다 마이클 잭슨을 따라 한 곡들.. 잼은 'Jam', 서태지와 아이들은 'Dangerous' ;;
네, '피해망상'도 가사가 서늘하죠. '피해망상'이랑 저 노래랑 고민하다가 결국 저걸 골랐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