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이들 덕분에 한국은 빛납니다. 원고의 나열



10월 5일은 "세계 한인의 날"이다. 세계 곳곳에 살고 있는 재외동포의 민족성을 강화하고 한민족으로서의 자긍심을 고취하기 위해 2007년 지정된 기념일이다. 한인들이 거주하는 지구촌 여기저기에서는 오늘을 전후해 이를 기념하는 행사가 거행됐거나 열릴 것이다. 재외동포들이 끈끈하게 유대하고 그들의 권익이 향상하길 멀리서나마 기원한다.

세계 여러 나라에 퍼진 한국인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나라의 위상을 높이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 중 음악계에서의 활약 또한 돋보인다. 멀게는 1960년대 라스베이거스를 주름잡음으로써 최초의 한류 스타로 자리매김한 김시스터즈를 떠올릴 수 있다. Koreana는 "1988년 서울올림픽" 주제가로 대박을 터뜨리기 전에 이미 유럽에서 인기를 끌었다.

팝 시장 속 한국인들의 자취는 그 뒤로 계속 증가하는 중이다. 댄스음악의 클래식 'Groove Is In The Heart'를 남긴 Deee-Lite의 Towa Tei(정동화), 뉴 메탈의 전설 Linkin Park의 Joe Hahn, 폭발성과 관능미를 겸비한 R&B 스타 Ameriie, 한국 음악 애호가들에게도 큰 사랑을 받고 있는 Sam Ock 등 주류와 인디 신에서 이름을 드날리는 한국인 뮤지션이 많다. 이들 덕분에 한국은 오늘도 빛난다.


Sam Ock | R&B와 힙합을 아우르는 감성 아티스트
부드럽고 그윽한 음악을 들려준다는 이유로 샘 옥(Sam Ock)에게는 "제2의 Jeff Bernat"이라는 수식이 늘 따라붙는다. 그러나 Jeff Bernat과 달리 Sam Ock은 R&B 외에 힙합도 주된 장르로 나타낸다. 그러면서도 포크, 팝, 재즈를 혼합하며 적극적인 퓨전을 행한다. 다양한 장르를 망라하지만 Sam Ock의 음악은 조금도 이상하거나 불편하지 않다. Jeff Bernat과 거듭 비교되는 것은 이 강한 인력(引力)의 출처가 달콤함이기 때문이다.

이러니 수많은 음악팬의 애정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 그에 대한 국내에서의 인기는 2014년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에 출연한 데 이어 2015년에는 단독 내한공연까지 치른 것으로 충분히 설명된다. 최근에는 소란('자꾸 생각나'), 몬스타엑스의 주헌('Flower Cafe'), 아프론('Unfair') 등 우리나라 가수들과 협업해 인지도를 더 키우는 중이다. 미국 주류 시장에도 진출하는 날이 어서 왔으면 한다.


Clara C | 에일리 친구 이전에 유니크한 싱어송라이터
레깅스로 존재감이 급상승했으나 많은 사람에게 미운털이 제대로 박힌 그녀의 이름과 같아서 오해를 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성인 "정(Chung)"의 이니셜 "C"가 더 붙었다. 클라라 씨(Clara C)의 음악은 논란이 된 동명의 그녀와 달리 사랑스럽다. 여성 취향의 노랫말과 유려한 멜로디는 더없이 곱고 청아하다.

인디 음악 애호가, 힙합 마니아들 사이에서 Clara C는 이미 유명하다. 2009년부터 유튜브에 팝 스타들의 히트곡을 커버한 영상을 올리면서 그녀는 빠르게 네티즌들의 소문을 탔다. 이후 Dumbfoundead, Kero One, Sam Ock 등 한국계 힙합 뮤지션들과 협업함으로써 국내에서도 친근감을 확보했다.

Clara C의 표현 범위는 꽤 넓다. 쉽게 팝으로 포괄할 수 있는 그녀의 음악에는 포크, 록, 체임버 팝, 일렉트로니카 등 다채로운 형식이 거주한다. 게다가 노래가 지닌 정서에 따라 가창을 달리해 다채로움을 멋스럽게 구현해 낸다. 팔색조 같은 매력이 계속 전해진다.

Clara C는 최근 본명 정재연으로 "슈퍼스타K 2016"에 참가해 주목을 받았다. 에일리와 친한 사이라는 사항이 부각됐으나 시청자들도 방송을 통해 Clara C의 빼어난 재능을 확인했을 듯하다. 그녀가 이 오디션 대회에서 빛을 발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Run River North | 정말 음악 하려고 모인 청년들
아무 정보 없이 이들의 노래를 듣는다면 누구도 한국인들로 이뤄진 밴드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서양 사람들이 결성한 외국 밴드라고 믿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2014년에 발표한 1집 [Run River North]의 'Lying Beast'를 들어 보면 판단은 달라진다. 노래가 '아리랑'의 선율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야 한국인이 만든 밴드라는 것을 알게 된다.

알렉스 황(보컬), 대니얼 채(바이올린, 기타), 제니퍼 임(바이올린), 조지프 전(베이스), 샐리 강(키보드), 존 정(드럼) 등 여섯 명의 한국계 미국인은 2011년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오디션에 참가하기 위해 그룹을 결성하게 된다. 초기의 이름은 Monsters Calling Home이었다. 이듬해 런 리버 노스(Run River North)로 이름을 바꾼 그룹은 자신들의 차를 타고 이동하며 노래를 녹음하는 모습을 담은 데뷔곡 'Fight To Keep' 영상을 유튜브에 게재했다. 이 동영상이 소문을 타면서 인기 토크쇼 "지미 키멀 라이브!"에도 출연하게 됐다. 이후 이들은 단독으로 투어 공연을 다닐 정도로 유명해졌다.

Run River North는 데뷔 앨범에서 포크 록을 기반으로 내내 쾌청한 분위기를 나타냈다. 올해 발표한 2집 [Drinking From A Salt Pond]에서도 생생한 기운은 유지하고 있지만 이번에는 거친 얼터너티브 록으로 음악 방향을 완전히 새롭게 틀었다. 음악을 향한 갈망과 도전정신이 느껴지는 행보다. 눈앞의 성과에 안주하지 않고 진취적으로 변화를 만들어 가는 모습이 멋있게 느껴진다. Run River North의 당찬 활동을 오래 보고 싶다.


Towa Tei | 원조 국제 뮤지션
한국계 뮤지션으로서는 아마도 처음으로 글로벌 히트곡을 낸 인물일 테다. 재일교포 3세인 그는 10대 중반부터 댄스음악, 전자음악에 매료돼 홀로 곡을 만들기 시작했다. 1980년대 후반 그래픽디자인을 공부하기 위해 미국 유학길에 오른 그는 1989년 마음이 맞는 뮤지션들과 댄스음악 그룹 Deee-Lite를 결성한다. 이듬해 낸 데뷔 앨범의 리드 싱글 'Groove Is In The Heart'가 빌보드 싱글 차트 4위에 오르는 등 전 세계적으로 히트하게 된다. 싸이의 기록보다는 못하지만 영광은 훨씬 전에 누렸다.

값진 기록은 그것이 마지막이어서 Deee-Lite는 원 히트 원더 그룹으로 남게 됐다. 그룹으로 세 장의 음반을 낸 뒤 토와 테이(Towa Tei)는 1995년부터 솔로로 활동했다. 혼자 음악을 만들면서도 일렉트로니카를 놓지 않았다. 또한 지속적으로 시부야-케이를 소화해 일본인 뮤지션으로서의 특징을 드러내기도 했다.

Towa Tei는 20년 넘는 긴 세월 동안 이렇다 할 휴지기 없이 성실히 음반을 내고 있다. 그의 음악은 예나 지금이나 명랑하고 아기자기해서 듣기가 좋다. 이 모습이 반복되고 있지만 이상하게 질리지 않는다.


Joe Hahn | 디제이에서 할리우드 영화감독으로
지금은 종이호랑이 취급을 받는 처지지만 Linkin Park의 전성기는 정말 화려했다. 그룹은 2000년대 초반 Limp Bizkit과 함께 뉴 메탈 장르를 개척하고 전파한 핵심 뮤지션으로서 뚜렷한 업적을 세웠다. 헤비메탈, 그런지, 힙합 등을 결합한 뉴 메탈은 거칠고 날카로운 기운을 발산하며 전 세계 젊은이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다. 조 한(Joe Hahn)은 Linkin Park의 디제이로서 그룹이 힙합의 그루브를 충실히 표출하는 데 공헌했다.

Joe Hahn은 그룹 활동 외에도 The X-Ecutioners의 'It's Goin' Down', Fort Minor 'Slip Out The Back' 등에 세션으로 참여하며 디제이로서 경력을 단단하게 다졌다. 또한 그는 뮤직비디오 감독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Linkin Park의 뮤직비디오 대부분을 비롯해 Static-X의 'Cold', Xzibit의 'Symphony In X Major' 등을 그가 연출했다. 2014년에는 장편영화 "몰: 데이 투 킬"로 영화감독으로 입봉했다. 이제 영화감독으로 명성을 떨칠 날을 기다려야겠다.


Ameriie | 업템포 R&B의 여신
2002년 데뷔곡 'Why Don't We Fall In Love'가 빌보드 싱글 차트 23위를 기록하며 히트한 덕에 에이머리(Amerie)는 활동 초기부터 큰 관심을 받았다. 음색도 좋고 가창력도 탄탄해서 매체는 그녀를 차세대 R&B 스타로 점찍곤 했다. 2005년에 발표한 2집의 리드 싱글 '1 Thing'이 빌보드 싱글 차트 8위까지 올라 Amerie는 성공적인 커리어를 이어 나갈 수 있었다. 이 노래는 국내 CF 배경음악으로 쓰이면서 한국에서 그녀의 인지도를 한층 높였다.

안타깝게도 이것이 순항의 끝이었다. 이후에 발표한 'Take Control', 'Gotta Work'는 탄탄함과 경쾌함을 보유했음에도 '1 Thing'의 스타일을 답습한다는 쓴소리만 들었을 뿐 차트에 진입하지 못했다. 세 번째 앨범은 그동안 작업해 오던 프로듀서 Rich Harrison을 배제하고 다른 프로듀서들을 섭외하면서 변신을 꾀했으나 히트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2014년 Amerie는 신곡 'What I Want'를 선보이며 "i"를 하나 추가한 Ameriie로 이름을 바꿨다. "i"가 발산하는 바이브레이션이 본인한테 어울리는 것 같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런데 활동을 안 하던 5년 사이에 인지도가 완전히 소멸해 버렸는지 개명 선언에도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했다. 심지어 위키피디아도 기존 이름을 문서 이름으로 해 두고 있다. 올해 5월에 EP [Drive]를 냈지만 이에 대한 소식은 대기 중으로 사라졌다. 계속해서 대중의 이목에서 멀어지는 듯해 그녀의 잘나가던 과거가 더욱 그리워진다.


David Choi | BGM의 왕자님이 된 유튜브 스타
1세대 유튜브 스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데이비드 최(David Choi)는 2007년 유튜브를 찬양하는 자작곡 'YouTube A Love Song'으로 네티즌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유튜브에 대한 팬심과 익살스러운 가사만 내세웠다면 그는 얼마 안 가 잊히고 말았을 것이다. David Choi는 많은 히트곡을 커버한 영상을 매일같이 올리며 자신만의 감성과 음악성을 어필했다.

부모님이 악기점을 운영해 어려서부터 음악을 가깝게 접한 David Choi는 고등학교 시절 처음 작곡을 시작했다. 이후 음악경연대회에 몇 차례 출전하면서 재능을 검증한 뒤 유튜브를 무대 삼아 자신을 더 널리 선전한다. 그리고 2008년 데뷔 음반 [Only You]를 발표하며 가수로서 공식적인 첫발을 내디딘다.

그의 노래들을 빌보드 차트에서는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커피('Something To Believe'), 자동차, 보험사('Only You') 광고를 통해 우리나라 대중에게는 어느 정도 이름을 알릴 수 있었다. 이후 "몽땅 내 사랑"('Happily Ever After'), "선녀가 필요해"('She's A Star'), "아내의 자격"('I Choose Happiness'), "청춘시대"('Enjoy The View') 등의 드라마를 발판으로 국내 음악팬들에게 존재감을 각인했다.

현재는 활동 초기에 비해 노래들의 반주가 무척 풍성해졌다. 그래도 어쿠스틱 기타를 리드 악기로 삼아 형성하는 수수함은 예전과 다름없다. 특유의 소탈함과 부드러움 덕에 David Choi는 앞으로도 꾸준한 사랑을 받을 듯하다.


이진주 | 실력으로 팝 시장에 진출한 토종 한국인
최근 팝 음악에서는 모음을 빼고 이름을 짓는 방식이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이 경향 때문에 혼성 그룹 DNCE를 얘기할 때 "댄스"라고 불러야 할 것 같지만 본인들이 설정한 이름은 철자 그대로 "디엔시이"다. 원래 이름은 "Dance"였으나 밴드의 기타리스트가 문자 메시지를 "DNCE"로 잘못 보냈다가 이 철자가 마음에 들어 현재의 이름을 쓰게 됐다고 한다.

DNCE는 형제 팝 록 밴드 Jonas Brothers의 둘째 Joe Jonas가 결성해 대중의 이목을 끌었다. 여기에 미국 록 밴드 Ocean Grove 출신의 드러머 Jack Lawless와 록 밴드 Semi Precious Weapons에서 활동한 베이시스트 Cole Whittle이 힘을 모았다. 나름대로 슈퍼그룹인 셈이지만 Joe Jonas의 인기 덕분에 홍보가 수월했은 부정할 수 없다.

사실 이미 스타인 Joe Jonas도 눈이 가지 않는다. 한국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룹의 홍일점인 기타리스트를 주목할 수밖에 없다. 외국인 청년들 사이에서 동양인이라니. 더욱이 그녀는 한국인이다.

소향의 시누이로 알려진 이진주는 열두 살 때 독학으로 기타를 습득했다. 2007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실용음악학교를 다닌 그녀는 Jordin Sparks의 세션을 뽑는 오디션에 합격해 프로페셔널 뮤지션으로 본격적인 경력을 시작했다. 이후 Charli XCX, CeeLo Green의 백 밴드로 활동하면서 커리어를 쌓았고 Jonas Brothers의 투어 밴드로도 참가하면서 Joe Jonas와 인연을 맺었다.

이진주를 보면 대견스럽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보통 재미교포, 아니면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이 미국에서 음악인으로 활동하는데 그녀는 한국 토박이이기 때문이다. 실력이 뒷받침되고 기회를 잡으면 한국 사람도 팝 음악계에 진출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확실한 얘가 됐다. 그녀를 응원할 수밖에 없다.

멜론-멜론매거진-이슈포커스 http://www.melon.com/musicstory/inform.htm?mstorySeq=4086&startIndex=0

덧글

  • 로꼬 2016/10/14 16:52 #

    덕분에 좋은 뮤지션들 새로 알고 갑니다~
  • 한동윤 2016/10/16 11:03 #

    오랜만에 오셨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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