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의 부활을 꿈꾼다. [판 스틸러: 국악의 역습] 원고의 나열


경쟁을 골자로 하는 예능 프로그램의 생식은 휴지기 없이 계속된다. 이번에는 국악이 화려한 각축장 위에 올랐다. 지난 14일 처음 방송된 Mnet의 "판 스틸러: 국악의 역습"이 그 주인공이다. 대결 방식의 쇼가 포화를 이루고 있기에 대중은 피로감을 느낄 만하다. 프로그램 예고 영상 속 가수들도 "배틀 그만했으면 좋겠어요.", "서바이벌 난 질렸어."라며 진저리를 칠 정도다. 하지만 그동안 음악 예능에는 없던 국악을 소재로 택해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국악을 종목으로 한 방송은 "판 스틸러: 국악의 역습"이 처음은 아니다. 2013년 9월 JTBC에서 젊은 소리꾼 발굴을 목표로 "소리의 신"이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선보인 바 있다. 취지는 좋았으나 시청 접근성이 정말 별로였다. 많은 이가 단잠을 청할 일요일 오전 8시 40분에 방송이 편성돼 우리 전통음악에 각별한 애정과 주의를 갖고 있는 사람만 볼 수 있었다. "소리의 신"은 이렇다 할 반응 없이 6회를 끝으로 조용히 퇴장했다.


언제나 사랑에 목마른 우리의 전통음악
사실 황금 시간대를 잡는다고 시청률이 높게 나온다는 보장은 없다. 가슴 아픈 일이지만 누구나 다 알 듯이 국악에 대한 인기는 냉온 상태에 머문 지 오래다. 서양 고전음악에 비해서도 향유, 소비하는 인구가 현저히 적다. 국악 음반 코너를 따로 마련한 음반 매장은 극히 드물다. 국악 공연의 관객 대부분이 연주자의 지인들을 비롯한 초대 손님들이다. 국악을 다루는 지상파 프로그램은 KBS1의 "국악한마당"이 유일하다. 일련의 사실들은 국악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낮다는 것을 설명해 준다. "판 스틸러: 국악의 역습" 1회에서 방송국 PD들도 이 치명적인 단점을 언급하며 프로그램 제작을 망설인다.

그렇다고 국악이 늘 변방에만 머물렀던 것은 아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하여가', 원타임의 '쾌지나 칭칭', 지누션의 'A-Yo'처럼 국악을 접목해 히트한 사례가 있다. 하지만 이는 모두 많은 팬을 확보한 주류 가수들이기에 가능한 성공이었다. 듣기에 까다롭지 않은 퓨전 양식을 들려준다고 해도 전통음악을 줄곧 해 온 비주류 뮤지션이 도드라진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국악은 좀처럼 초라함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결론은 퓨전, 안타깝지만 결국 퓨전
퓨전 양식도 이목을 끌어당기는 힘이 부족하지만 "판 스틸러: 국악의 역습"으로서는 이것이 최선의 선택일 것이다. 서구 대중음악의 문법을 대입하고 서양악기를 들여야 많은 사람이 익숙하게 느끼기 때문이다. 이를 고려해 프로그램은 국악과의 접목을 시도한 경험이 있는 윤상을 프로듀서로 섭외했다. 팝, 일렉트로니카, 라틴 음악 등 다채로운 스타일을 선보여 온 그의 너른 표현력이 프로그램을 통해 다시 한 번 빛을 낼 것 같다.

윤상과 함께 프로그램의 구심점인 이하늬, 어머니가 한국무용을 했다는 강남, 거문고 연주자 박천경, 대금 연주자 정요한이 한 팀을 이뤄 프로그램을 이끌어 나갈 예정이다. 이하늬가 국악인으로서 어떤 새로운 모습을 보여 줄지, 팀원들이 어떤 상승효과를 나타낼지 궁금해진다.


국악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판이 되길
총 8회로 기획된 방송의 규칙은 이렇다. 다섯 명의 출연자들은 새로운 국악 공연을 최종 목표로 대중가요 음악인들과 총 네 번의 대결을 펼친다. 각 판에서 승리할 시 뮤지션 사용권을 얻게 돼 파이널 공연을 풍성하게 꾸릴 수 있다. 하지만 각 라운드에서 패해 뮤지션 사용권을 획득하지 못하게 되면 오직 다섯 명의 멤버들로만 마지막 공연을 완성해야 한다. 예능이니까 재미와 긴장을 위해 룰이 빠질 수 없다.

제작진이 설정한 규칙 중 다소 답답하게 느껴지는 규약이 있다. "각 판마다 트렌디한 국악 미션곡을 만든다."는 조건이다. 이는 왠지 국악보다는 트렌디함에 무게를 둔 제약 같다. 대중음악을 하는 뮤지션들과 대결을 벌인 뒤 승패를 가리는 방식이니 전통음악의 성격보다는 대중음악에 초점을 맞추라는 말처럼 들린다. 국악을 젊은 사람들에게 선전하기 위한 타협이라고 이해하지만 아쉬움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오는 21일 방송되는 2회부터 공연으로 대결을 펼치는 모습이 나갈 예정이다. 현대적인 감각을 취한 퓨전에 집중되긴 하겠지만 프로그램을 통해 국악에 흥미를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그것만으로도 값진 성과가 될 것이다. 민족의 문화는 나라 안에서 사랑을 받아 마땅하기 때문이다. "판 스틸러: 국악의 역습"이 국악과 국악인들을 널리 알리는 창구가 되기를 희망한다.

추천 퓨전 국악 앨범


정가(正歌)앙상블 소울지기 [Souljigi]
여성 4인조 正歌앙상블 소울지기가 2014년에 낸 데뷔 EP [Souljigi]는 예스러움과 현대적인 손질의 균형, 우리 전통음악과 서구 대중음악의 균형을 만족한다. 그룹 이름으로 명시하듯 이들은 우리 민족의 전통 성악인 정가를 현대적인 감수성으로 부른다. 노래 제목에 쓰인 옛말로도 느껴지지만 가사는 정말 고풍스럽다. 한결같이 차분한 멜로디, 단출한 악기 편성과 아담한 연주가 이에 보조하며 분위기를 더욱 고상하게 연출한다. 노랫말이 띤 정서와 고운 선율이 잘 조화돼 정가의 매력인 우아함을 온전하게 표출해 냈다.

수록곡들은 창법은 고전적이지만 재즈와 팝('사랑 거즛말이'), 컨템포러리 포크('이 밤이 가기 전에') 등 대중음악의 반주로 풀이돼 시대의 차이를 극복한다. 생황, 해금,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등 국악기와 서양악기가 각 곡에서 고르게 몫을 차지하는 것도 전반적인 조화에 한몫한다. 게다가 '강가에서', '겨울날 다슨 빛을'에서 대대적으로 행하는 아카펠라 보컬은 클래시컬한 느낌을 증대하며 동서의 고전미를 균일하게 나타낸다. 근래에는 흑인음악에서 주로 접할 수 있는 아카펠라를 우리 전통음악으로 경험하니 이로 인해 이채로움도 상승한다.


TODA [TODA (T.O. To Dream Age)]
TODA의 중심 어법은 록이다. 하지만 수록곡들은 록이라고 해서 반드시 일렉트릭 기타가 리드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고 얘기하는 듯하다. 첫 곡 'TODA (T.O. To Dream Age)'는 피리와 해금이 거의 모든 영역을 지휘해 전기기타 리드와는 다른 분위기를 형성한다. '가락'도 현악기와 우리 악기가 조화하면서 동서(東西)의 정서를 함께 내보내고 있다. 만약 이들이 보컬리스트를 둔 그룹이었다면 이 정도로 국악기의 비중이 크지 못했을지 모른다. 연주자들로만 구성되어 있기에 록과 전통음악의 요소가 조율을 이루는 게 가능했다.

밴드로서 두 형식을 고르게 소화하는 능력은 '무상'을 통해서 확실히 경험할 수 있다. 현악기 프로그래밍과 약간의 전자음이 덧입혀진 배경에 피리가 솔로로 나서다가 5분을 넘어가면서 체구를 키운 록 사운드로 변모한다. 이때부터 록과 전통음악이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곡의 긴장감과 웅장함을 극대화한다. 바흐의 'G 선상의 아리아'를 모티브 삼아 즉흥 연주 방식으로 풀이한 '에어 (Air)'는 마치 Procol Harum의 'A Whiter Shade Of Pale'을 전통음악化, 연주곡化 해 보겠다는 의지의 발현으로 여겨진다. 8인의 연주자가 화합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곡들이다.

해금 윤해승, 피리 진형준, 국악기 연주자는 둘 뿐이지만 이들의 연주는 감춰진 것처럼 희미하지 않고 도드라진다. 이로써 토다의 음악이 국악기의 중요도는 낮고 어중간하게 끼워 넣은 듯한 곡이 절대적으로 다수였던 이전 뮤지션들의 전통음악 퓨전 작품과 대비된다. 또한, 보통 재즈나 라운지 스타일과 자주 상봉하던 퓨전 국악의 상례를 깼다는 점도 이들을 더욱 주의 깊게 보도록 한다. 차진 융합, 신선한 멋을 전한 알찬 퓨전이다.


잠비나이 [A Hermitage (은서;隱棲)]
잠비나이는 기존 음악 문법을 탈피하고 해체하는 비정형의 모습으로 독특함의 선봉에 선다. 팀은 국악 전공자로 구성되어 있지만 순수 전통음악을 고수하지 않으며, 그렇다고 클래식과 재즈를 재해석하는 국악 퓨전의 뻔한 방식을 답습하지도 않는다. 전통악기와 서양의 악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만든 결과물은 상당히 꼬여 있는 동시에 장중하며, 기괴함과 을씨년스러움을 풍긴다.

올해 6월 출시한 2집 [A Hermitage (은서;隱棲)]에서도 특유의 음습함과 오묘함이 이어진다. 펑크(Punk), 프로그레시브 록, 아방가르드, 국악기가 버무려진 앨범은 흥미로운 혼란스러움을 제시한다. 'Abyss (무저갱)'에서는 래퍼 이그니토를 초대해 앱스트랙트 힙합도 시도한다. 한국에서도 신선한 실험이 행해지고 있음에 감격스럽다.


비단 [만월의 기적]
이들의 이름 옆에는 "한국의 보물을 노래하다"라는 캐치프레이즈가 함께한다. 2014년에 발표한 데뷔 EP에 이어 2015년에 낸 두 번째 EP도 조선백자('만월의 기적'), 한옥('하늘 소리'), 심청전('달'), 한식('한식도락') 등 우리나라의 문화유산을 음악으로 알린다. 가사가 있는 노래라고 해도 소재로 삼은 유물을 직접 언급하지 않으며, 연주곡은 해설을 확인해야 어떤 구상을 했는지 비로소 가늠할 수 있지만 우리 문화를 선전하겠다는 지향은 그 자체로 값지다.

수록곡들은 난해하지 않아서 듣기에 좋다. 중간 템포의 가요 발라드 형식을 따르는 '만월의 기적', 가야금, 해금, 대금이 화사하게 어우러지며 눈앞에 잔칫날의 즐거운 분위기를 펼쳐 보이는 '한식도락', 정서는 애틋하지만 멜로디는 청아한 '달' 등 남녀노소 누구나 다 편한게 감상할 수 있는 음악을 들려준다.

비단은 유튜브 페이지를 통해 노래들을 영어, 중국어, 러시아어 등으로 소개하고 있다. 이 모습은 친절함을 넘어 뜻깊기까지 하다. 동영상들은 자기들의 노래 홍보가 주목적이 아니라 곡의 감이 된 문물을 설명하는 것이 우선이다. 실로 거룩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프로젝트 락 [Beautiful Days]
이들의 이름은 몰라도 노래를 들어 본 사람은 많을 것 같다. 데뷔 앨범 수록곡 '난감하네'가 예능 프로그램 BGM으로 심심치 않게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노래는 판소리 '수궁가'를 토대로  용왕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토끼 간을 구하러 육지로 가는 별주부의 심정을 코믹하게 재구성했다.

그저 웃기기만 한 것이 아니다. 작품성도 훌륭하다. 둔탁하면서도 차진 베이스 연주가 흑인음악의 향을 강하게 내는 중에 갖가지 전통악기를 첨가해 리듬과 멜로디를 튼실하게 완성한다. 또한 소리꾼의 아니리는 톤의 높낮이를 확실히 하고 유연한 흐름을 갖춤으로써 마치 랩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야말로 서양 음악을 기본으로 형성한 한국적 바운스다.

다른 노래들도 준수하다. 각각의 악기가 솔로로 버스(Verse)를 채우다 주주제부에 가서 아름다운 앙상블을 펼치는 '하나되어', 아주 먼 옛날, 서방님을 기다리는 아내의 모습을 그린 것처럼 한국적 서정미를 물씬 풍기는 'Beautiful Days', 재즈의 즉흥연주처럼 자유로운 멋이 느껴지는 'La-flanneo (라플람)' 등은 이들의 데뷔 앨범을 보드랍고 예쁘게 치장한다.

프로젝트 락은 [Beautiful Days]에서 창작과 국악의 현대적 해석 및 팝과의 교첩을 든든하게 실현했다. 젊은 음악팬들이 들어도 생경하지 않을 전통음악을 했다. 눈이 부실 만큼 멋진 등장이었다.

멜론-멜론매거진-이슈포커스 http://www.melon.com/musicstory/inform.htm?mstorySeq=4143&startIndex=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