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락한 포크의 극치,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 [Quiet Is The New Loud] 원고의 나열


인디 포크의 주역이 연출한 안락함의 극치!

2007년 개봉한 영화 [원스]는 무척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16만 달러, 우리 돈으로 1억 7천만 원에 못 미치는 저예산으로 만들어졌으나 2천만 달러 이상의 어마어마한 흥행 성적을 거뒀고 수많은 매체가 선정한 '2007년 최고의 영화' 리스트에서 10위 안에 어김없이 이름을 올리며 상업성과 작품성을 모두 쟁취했다. 인기는 실로 대단해 음악계에도 파급을 일으켰다. 두 주인공 글렌 핸사드(Glen Hansard)와 마케타 잉글로바(Markéta Irglova)가 부른 사운드트랙 'Falling Slowly'는 2008년 열린 아카데미 어워드에서 '최우수 오리지널 송' 부문을 수상했으며 많은 가수에 의해 리메이크되는 등 겹경사를 이뤘다. 이 노래는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아 어느덧 라디오 방송의 단골 신청곡으로 자리 잡았다.

그렇다고 [원스]가 포크 전파자로서의 모든 영예를 누리는 것은 아니다. 포크 음악은 반세기가 넘는 오랜 세월 동안 젊은 세대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얻으며 언더그라운드의 인기 장르로 굳건히 자리매김했기 때문이다. 대중음악계의 살아 있는 전설 밥 딜런(Bob Dylan)을 비롯해 1970년대에는 조니 미첼(Joni Mitchell)과 캣 스티븐스(Cat Stevens), 1980년대에는 트레이시 채프먼(Tracy Chapman), 1990년대에는 엘리엇 스미스(Elliott Smith) 등 음악팬이라면 익히 들어 봤을 유명한 뮤지션들이 포크의 역사를 화려하게 장식해 왔다. 우리나라 역시 몇 해 전 복고 열풍을 일으킨 ‘세시봉’ 멤버들을 중심으로 1970년대부터 꾸준히 확산됐다. 포크 음악은 어느 시절에나 마니아들 곁에 상주했다.


새천년에 들어와서도 수많은 포크 뮤지션이 출현했지만 그중 단연 눈에 띈 인물을 꼽는다면 다수가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Kings of Convenience)를 이야기할 것 같다. 이들이 19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반 무렵 일기 시작한 새로운 음악 조류 '인디 포크'의 주역 중 하나인 까닭이다.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 인디 록과 컨템포러리 포크가 결합된 이 장르는 록 음악이 지닌 잘 기억되는 멜로디와 포크의 수수함, 편안함을 특징으로 한다. 인디 포크는 두 가지 성분을 겸비한 덕분에 더 많은 지지 세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 또한 그와 같은 특성을 내보이며 빠르게 언더그라운드의 샛별로 등극했다.

노르웨이 베르겐(Bergen) 출신의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는 1990년대 중반에 잠깐 활동했던 록 밴드 스코그(Skog)를 전신으로 한다. 얼렌드 오여(Erlend Oye), 아이릭 글람벡 뵈(Eirik Glambek Boe) 등으로 구성된 4인조 밴드는 1996년에 EP [Tom Tids Tale] 단 한 장만을 발표하고 해체했다. 이후 얼렌드는 피치퍼즈(Peachfuzz)라는 밴드에서 기타리스트로 활동하며 뮤지션 생활을 이어 가다가 아이릭과 뜻을 모아 새로운 그룹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를 결성했다. 이들 1975년생 동갑내기는 1999년 여름 유럽의 음악 페스티벌에서 공연하며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고 곧 미국의 인디 레이블 킨더코어 레코드(Kindercore Records)와 계약해 이듬해 데뷔 앨범 [Kings of Convenience]를 출시했다. 미국, 캐나다 등 북미 지역에만 유통된 음반은 안타깝게도 이렇다 할 반응을 얻지 못했다. 얼렌드와 아이릭은 스코그 때처럼 고배를 마셔야 했다.

미국 시장 진출에 실패한 것이 뮤지션 생활의 종막은 아니었다. 그룹은 2001년 미국의 레이블 아스트랄베르크스(Astralwerks)를 통해 [Kings of Convenience]의 수록곡들을 재정비한 제2의 데뷔 앨범 [Quiet Is the New Loud]를 발표했다. 아스트랄베르크스가 전자음악을 주로 취급하는 음반사이기에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가 명부에 있는 것이 약간 어색하긴 했지만 그 점이 오히려 득이 됐다. 일렉트로닉 뮤지션들 이름 사이에서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는 유난히 튀어 보였고 이로써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눈길을 끌 수 있었다. 또한 주력 장르가 아닌 다른 종류의 음악을 하는 아티스트를 영입했다는 것은 출중한 재능을 인정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음악팬들에게 신뢰감을 안기기에도 수월했다. 두 남자의 새로운 전성기는 그렇게 시작됐다.


앨범은 처음부터 끝까지 안락감을 제공한다. 얼렌드와 아이릭의 어쿠스틱 기타 연주가 중심이 된 반주는 보드랍고 푹신하다. 여기에 간간이 첼로가 추가되며 더욱 그윽한 소리를 낸다. 절대 높이 올라가는 법 없이 속삭이듯 차분하게 뿌려지는 보컬도 편안함을 배가한다. 'I Don't Know What I Can Save You From'은 명료한 기타 리프와 간주에서의 첼로 연주로, 'Leaning Against the Wall'은 기타의 얌전한 배킹(backing)으로, 'The Weight of My Words'는 마치 하늘로 퍼져 올라가는 듯한 가벼운 보컬로 아늑한 느낌을 준다. 중간에 넣은 박수 소리와 차차차 마무리로 깨알 같은 경쾌함을 내는 'Toxic Girl', 드럼을 삽입해 체감되는 리듬감을 생성한 'Failure'가 다른 노래들에 비해 업(up)된 분위기를 내지만 평온함은 줄곧 계속된다.

매력은 그것들로 그치지 않는다.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는 은은한 하모니로도 청취자를 자신들의 음악에 끌어들인다. 단둘이 목소리를 낼 뿐이지만 무척이나 잘 어우러져 풍성하게 느껴지도록 한다. 이를 통해 안정적인 그림을 그리니 악기 구성이 단출할지라도 조금도 빈약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부분 2부 합창으로 입체적이며 화려하게 치장한 'Leaning Against the Wall'과 'Toxic Girl'이 대표적이다. 수더분하게 사랑을 이야기하는 가사도 편안한 감상을 가능하게 하는 인자다. 이들이 표현하는 사랑은 마냥 아름답지 않으며 반대로 아주 절망적이지도 않다. 'Toxic Girl'은 염원하던 사랑이 이루어지는 듯하다가 노래 속 여성이 떠나 버릴 거라고 말하며 'Singing Softly to Me'는 사랑을 늘 갈구하지만 그것이 무언가가 결여된 환상임을 인정한다. 확실한 결론이 없는 모호한 내용이 이들의 노래를 신비롭게 만든다. 여기에 콜드플레이(Coldplay)의 [Parachutes] 앨범으로 인기 프로듀서가 된 켄 넬슨(Ken Nelson)의 프로듀싱도 이들의 음악에 알찬 균형을 제공했다.

앨범은 담담하지만 인상적이다. 특별한 기교 없이 통기타 연주만 이어 가고 있으나 굉장히 선명한 멜로디를 표출하는 덕분이다. 포크와 록의 핵심을 잘 버무려 인디 포크의 모범 사례를 완성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때 미니홈피 배경음악으로 불티나게 팔려 나가고 국내 여러 편의 CF 배경음악으로 쓰인 사실은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의 음악이 지닌 무던한 흡인력을 부연한다. 이는 '불특정 다수가 부담스러워하지 않고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성질을 뜻한다고 봐도 될 것이다. 이렇게 대단한 장점을 보유했기에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의 잔잔한 음악은 세계 곳곳으로 퍼지며 포크 애호가들, 음악팬들의 마음속에 깊게 침투했다. '고요는 새로운 고성(高聲)'이라는 앨범 제목이 그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다.

201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