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을 알아주는 대중음악 원고의 나열

노래는 창작자의 사상과 감정을 드러내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나만의 이야기가 아닌 다른 사람도 겪거나 목격한 사실을 논할 때에 노랫말은 유대감을 갖게 하며 대중을 결속하게끔 만든다. 이런 노래는 나라가 어수선하고 사회가 험난할 때 사람들을 위로하고, 힘을 주며, 때로는 분노를 이끌어 낸다. 민중가요는 아니지만 민심을 알아주는 노래들이다. 몇몇 작품은 지금 같은 때에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린다.


DJ DOC '삐걱삐걱'
DJ DOC의 '삐걱삐걱'만큼 한국사회, 정치권, 기득권의 추악한 모습을 잘 나타낸 노래가 없는 듯하다. 국정논단 사태와 관련해 보도되는 뉴스는 코미디보다 더 웃기다. 국가의 꼴은 처참한데 정치인들은 자기 밥그릇 챙기는 데에만 급급하다. 돈 없고 백 없는 사람들은 운명을 받아들이며 힘들게 살아야 한다.

'삐걱삐걱'이 나온 지 내년이면 20년이 된다. 짧지 않은 세월이 흘렀지만 노래의 가사는 지금 시국에 적용해도 여전히 유효하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그때와 비교해 하나도 바뀐 것이 없다. 간담이 서늘해질 정도로 놀랍다. 도입부의 애국가가 더욱 구슬프게 들린다.


Rage Against The Machine 'Killing In The Name'
인종차별이 의심되는 경찰의 흑인들에 대한 과잉 대응 논란은 끊임없이 나온다. 뉴스의 단골 소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얼마나 심각한 문제였는지 1988년 N.W.A가 'Fuck Tha Police'를 발표했을 때 흑인 사회는 N.W.A를 거의 영웅 떠받들듯이 지지했다. 흑인 사회를 경악케 한 백인 경찰관들의 Rodney King 폭행 사건이 일어나자 Ice-T는 경찰을 죽이겠다는 가사로 도배된 'Cop Killer'를 출시했다.

백인에게도 경찰의 인종차별적 공권력 남용은 심각한 문제로 느껴졌다. 랩 메탈 밴드 Rage Against The Machine은 1992년에 낸 데뷔 앨범 중 'Killing In The Name'으로 인종 문제와 경찰의 폭력을 비판한다. "죽음은 배지를 단 선택받은 백인들을 위해 정당화돼.", "저기 공무를 집행하는 사람들은 십자가를 태우는 사람들과 같아."라며 흑인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경찰을 백인우월집단 큐클럭스클랜에 비유해 질타한다.

이런 노래들이 나왔음에도 흑인이 백인 경찰에 의해 살해됐다는 뉴스가 잊을 만하면 또 들려온다. 이 때문에 최근 몇 년 사이 미국 흑인 사회는 흑인들의 생명도 소중하다고 주장하는 "Black Lives Matter" 운동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왜 흑인들한테 과잉 진압이 가해지는지 알 수 없지만 인종차별은 미국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반드시 없어져야 할 문제다.


신해철 'Catch Me If You Can (바퀴벌레)'
온갖 잘못을 저지르는 부류는 오히려 떵떵거리며 잘만 산다. 구속돼도 금방 나오고 복역을 마친 후에도 언제 그랬냐는 듯 높은 위치에 다시 선다. 법과 제도는 가진 자들에게 쓸데없이 관대하다. 정의가 비껴가는 현실에 서민은 애통함만 들 뿐이다.

신해철은 생전에 발표한 'Catch Me If You Can (바퀴벌레)'에서 부조리한 권력자들을 향해 날을 세운다. 빈부격차, 높은 실업률과 범죄율이 모두 이들 때문이라며 비난한다. 또한 이들은 생명력이 강한 바퀴벌레 같다면서 말살하자고 부르짖는다. 펑키한 베이스 연주, 후렴에서 밀도를 높이는 각 악기들이 바퀴벌레로 잔뜩 곤두선 신경을 대변한다.

신해철이 만약 살아 있었다면 분명히 노래로든 말로든 부패하고 무능한 이들을 향해 일갈했을 것이다. 시원한 강펀치를 날리는 모습을 아예 볼 수 없는 현실이 답답함과 슬픔을 더한다. 괜스레 억울하다.


Creedence Clearwater Revival 'Fortunate Son'
올여름 개봉한 "수어사이드 스쿼드"를 본 사람이라면 이 노래가 낯설지 않을 것이다. 악어 인간 킬러 크록이 소개되는 시퀀스에서 이 노래가 사용됐다. "수어사이드 스쿼드" 이전에도 "포레스트 검프", "다이 하드 4.0", "배틀쉽" 등의 영화와 여러 비디오게임에 삽입돼 왔다. Creedence Clearwater Revival의 'Fortunate Son'은 1969년에 나온 오래된 노래지만 이처럼 매체에서의 노출이 여러 차례 이뤄진 덕분에 젊은 사람들한테도 어느 정도 익숙하다.

이 노래의 주된 정서는 신세 한탄이다. 베트남전 때 좋은 집안에서 태어난 아이들, 소위 "금수저"들은 군대를 가지 않아도 됐지만 일반 서민은 전쟁에 징집돼 영락없는 총알받이 신세가 됐다. 때문에 "나는 상원의원의 아들이 아니야.", "나는 백만장자의 아들이 아니야.", "나는 장성 집안의 아들이 아니야."라며 현재의 처지를 자조적으로 얘기한다.

노래를 지은 밴드의 프론트맨 John Fogerty는 이와 같은 가사를 통해 전쟁터에 뛰어들지 않으면서 무조건 애국을 강요하기만 하는 고위층을 에둘러 비판한다. 또한 힘을 과시하기 위해 전쟁을 벌이는 미국 정부에 대한 반감도 표현한다.


Public Enemy 'Fight The Power'
1980년대는 흑인 빈민들에게 무척 힘겨운 시기였다. 당시 Ronald Reagan 정부는 국가의 경제 성장을 최고의 목표로 삼았다. 이를 위해 정부의 지출도 줄여야 한다고 판단해 흑인들에게 지원하던 복지사업들에 대한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경제난에 허덕이는 흑인들은 먹고 사는 것 자체가 삶의 중요한 문제였다.

이러한 사정 탓에 1989년 Public Enemy가 권력에 맞서 싸우자는 'Fight The Power'를 불렀을 때 흑인 사회는 들썩였다. 영락없이 흑인들을 위한 노래였다. 여기저기서 나오는 보컬 샘플은 박진감을 형성하며 마치 집회 현장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들게 한다. 이로써 노래는 단숨에 흑인 사회의 반정부 구호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소녀시대 '다시 만난 세계'
세상에, 아이돌 가수의 노래가 집회 현장에서 울릴 것이라고 누가 상상을 했겠는가. 게다가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가 시위대의 노래가 될 줄은 모두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그런데 2016년 그 일이 벌어졌다. 기가 막히다.

원래는 평범한 남녀 간의 사랑 얘기지만 집회에 모인 사람들은 이를 지금 겪는 현실에 대입해 새롭게 해석했다. "이 세상 속에서 반복되는 슬픔 이젠 안녕.", "수많은 알 수 없는 길 속에 희미한 빛을 난 쫓아가." 같은 노랫말은 세상은 우리를 우울하게 하지만 그래도 긍정적인 마음으로 희망을 찾겠다는 다짐으로 인식된다. 꿈보다 좋은 해몽이다. 그러나 이 화사한 노래가 집회에서 불려야 하는 오늘의 현실이 너무나 비참하다.


Billie Holiday 'Strange Fruit'
미국 뉴욕에 거주하던 작가 겸 교사 Abel Meeropol은 한 장의 사진을 보고 큰 충격을 받는다. 그 사진에는 심하게 구타당한 채 나무에 목이 매달린 흑인 청년 두 명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사진 하단에는 그 흑인들을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구경하는 백인들이 보였다. 이 사진은 한 장에 50센트의 가격이 매겨져 기념품처럼 판매되고 있었다.

사진 속 두 청년은 1930년 인디애나주에서 백인 남성을 살해하고 그의 애인을 강간했다는 혐의로 수감됐다. 이 소식을 들은 백인들이 무리를 지어 감옥에 난입해 청년들을 끌어내고 마구 폭행해 죽인다. 그 뒤 백인이 우월하다는 것을 선전하고 다른 흑인들에게 공포감을 심어 줄 생각으로 청년들의 시체를 나무에 매단다.

이 사진에 영감을 얻은 Abel Meeropol은 1937년 뉴욕교사조합 잡지에 'Bitter Fruit'라는 시를 기고했다. 얼마 지나서는 자신의 시에 선율을 붙여 직접 부르고 다녔다. 그의 노래를 접한 한 클럽 관계자가 재즈 가수 Billie Holiday에게 정식으로 취입해 보자고 권유해 1939년 음반으로 나오게 된다.

잠잠한 멜로디, 다소 무거운 톤을 통해 심각한 인종차별의 양상, 긴 세월 처참히 짓밟히며 살았던 흑인들의 설움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남부의 나무에는 이상한 열매가 열려요. 이파리와 뿌리에 피가 묻어 있죠. 검은 몸뚱이들이 산들바람에 흔들려요. 여기 이상하고 씁쓸한 작물이 열려 있어요." 말투는 전혀 강하지 않지만 흑인이라면 막대한 고통을 알고 있기에 'Strange Fruit'는 곧 흑인들 사이에서 저항가로 불리게 된다.


서태지와 아이들 '시대유감(時代遺憾)'
1996년 이전에 모든 가요는 음반을 출시하기 전 공연윤리위원회에 심의를 받아야 했다. 이를 통과하지 못하면 음반을 낼 수 없었다. "문화 대통령"이라 불리던 서태지도 여느 가수와 다르지 않게 이 제도를 따라야 했다. 공연윤리위원회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4집에 수록된 '시대유감(時代遺憾)'에 대해 가사 수정 지시를 내렸다.

공연윤리위원회는 "정직한 사람들의 시대는 갔어.", "모두를 뒤집어 새로운 세상이 오기를 바라네.", "내 가슴에 맺힌 한을 풀 수 있기를, 오늘이야." 등의 가사를 문제 삼았다. 이들 노랫말이 부정적이라는 것이 이유였다. 이를 고치면 애초에 기획했던 노래의 의미가 퇴색할 것 같다고 판단한 서태지는 가사를 싹 지우고 연주곡으로 발표한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PC통신은 난리가 났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팬클럽은 공연윤리위원회에 대대적으로 불만을 표현했다. 이렇게 공론화되기 이전에 정태춘은 이미 20년 가까이 음반사전심의제도에 맞서 싸우고 있었다. 그의 꾸준한 투쟁으로 이 제도는 1996년 폐지됐고 서태지와 아이들은 같은 해 '시대유감(時代遺憾)' 원곡을 발표했다.

공연윤리위원회가 지적한 문장들은 부정적이 아니라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이며 반드시 이룩해야 할 과제다. 유감스러운 시대는 유감스럽게도 이어져 왔다. 가슴에 맺힌 한이 풀리는 날이 어서 오길 기원한다.

멜론-멜론매거진-이슈포커스 http://www.melon.com/musicstory/inform.htm?mstorySeq=4325&startIndex=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