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산] 2016 가요계 이모저모 원고의 나열

한 해의 끝자락에 당도하면 꼭 기억이 희미해진다. 생생했던 일들도 어렴풋하게 느껴지는 마법의 시즌이다. 하지만 차근히 돌아보면 잃어버린 조각이 하나둘 머릿속에 들어온다. 그러다 올해의 풍경이 어느 정도 완성될 때 전과 다름없이 다사다난했음을 새삼스레 알아차린다. 2016년 가요계 역시 좋은 일도 많고 탈도 많았다. 2017년에는 기쁜 소식이 더 많이 들리길 바라며 굵직한 조각들을 정리해 본다.


프로듀스 101과 아이오아이
1월 말부터 전파를 탄 Mnet의 "프로듀스 101"은 우리나라에 아이돌 가수를 꿈꾸는 청소년들이 정말 많다는 것을 일러 주는 바로미터다. 방송에 출연한 101명의 소녀, 혹은 성인 여성은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중소 기획사에서 가수 준비를 하거나 혼자서 실력을 연마하는 이들까지 치면 족히 만 명은 넘을 것이다. 남자까지 헤아리면 그 수는 급증한다. 대한민국의 극단적 쏠림 현상은 "프로듀스 101"으로 또 한 번 확인됐다.

프로그램에서 최종 선발된 열한 명의 소녀들은 5월 아이오아이로 데뷔했다. 경연을 통해 각자 다른 매력을 발산하며 또래 팬들을 차곡차곡 확보한 덕에 그룹은 처음부터 큰 인기를 누릴 수 있었다. 멤버들의 생기발랄함을 극대화하는 경쾌한 곡과 안무, 멤버들의 탄탄한 기량도 성공적인 활동을 이끈 인자다. 일회성 그룹이지만 앞으로 활약을 기대하게 만들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프로그램에서 참가자들의 첫 미션을 위한 노래였던 'Pick Me'도 애청되며 차트를 장기간 장악했다. 반복을 앞세운 강압적 중독성 덕분이었다. 올해 나온 일렉트로닉 댄스음악 중에 가장 많은 사람에게 알려진 노래로 남을 것이다.


노래 대결은 계속된다
노래로 경합을 벌이고 승패를 가르는 일은 예사가 됐다. KBS의 "불후의 명곡"과 MBC의 "복면가왕"이 주말 황금시간대를 지키는 가운데 MBC "듀엣가요제", SBS "판타스틱 듀오", JTBC "걸스피릿", tvN "노래의 탄생", KBS "노래싸움: 승부" 등이 더 생겨나며 음악 대결의 판을 키웠다. 음악은 예능 프로그램의 인기 아이템으로 굳건히 자리 잡았다.

포맷은 반드시 겨루기여야 한다. 싸움 구경이 제일 재미있기 때문이다. "노래싸움: 승부"는 음악으로 자웅을 다퉈야 성이 차는 작금 예능 프로그램들의 트렌드를 극명하게 나타내 주는 이름이다.

이제는 텔레비전만 켜면 음악 대전을 쉽게 볼 수 있는 수준이 됐다. 노래로 일주일 내내 다투는 나라는 아마도 대한민국밖에 없을 듯하다. 우리가 이렇게 호전적인 민족이다.


건재함을 과시한 임창정
임창정은 충무로에 성실하게 출근도장을 찍고 있지만 가수 활동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지난해 EP [또 다시 사랑]을 선보인 데 이어 올해 열세 번째 정규 앨범 [I'M]을 출시하며 음악팬들과도 꾸준히 만남을 이어 갔다. 연기와 노래 두 영역에서 이만큼 견고한 경력을 쌓은 스타는 임창정이 가장 독보적이다.

가수 임창정에 대한 대중의 사랑은 식을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번 앨범의 타이틀곡 '내가 저지른 사랑'은 멜론에서 18만 개가 넘는 "좋아요"를 받아 올해 "좋아요"를 가장 많이 받은 곡에 등극했다. 봄과 여름에 수없이 울려 퍼졌던 TWICE의 'Cheer Up'보다 2만 개 가량 많은 수치다. '내가 저지른 사랑'의 큰 성공은 가을은 발라드의 계절이라는 등식에 신빙성을 더해 줬다.

임창정의 위세는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기세는 제대로 이어져 작년에 발표한 EP의 타이틀곡 '또 다시 사랑'이 여전히 Top 100에서 활약하는 진풍경도 연출됐다. 한 해 터울을 두고 나온 두 노래가 동시에 인기를 얻는 경사를 만끽한 것. 중견 가수의 입지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지만 올해 임창정만은 예외였다.


미국에서 돌풍을 일으킨 방탄소년단
10월 중순 방탄소년단의 두 번째 정규 앨범 [Wings]가 빌보드 앨범 차트 26위를 기록했다. 제작자도, 이들의 레이블도 예상하지 못한 뜬금없는 낭보였다. 해외 시장 진출을 계획하고 앨범을 제작한 것도 아니었고 미국에서 대대적인 프로모션을 진행한 것도 아니었기에 더욱 값지게 느껴지는 성과였다. 이는 음악 스타일이 서구화돼 있다면 얼마든지 히트할 수 있다는 본보기가 되기도 한다.


소리 없이 강했던 볼빨간 사춘기
저절로 많은 팬이 모이는 아이돌 그룹이 아니다. 대형 기획사에 속한 것도 아니었다. 돋보이는 경력이라곤 2014년 Mnet "슈퍼스타K"에 출연한 것이 전부다. 최종 10인에도 들지 못했다. 그럼에도 여성 듀오 볼빨간 사춘기의 데뷔 앨범 [Red Planet]은 음악팬들의 뜨거운 지지를 이끌어 냈다.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CD를 통해서만 공개된 노래를 제외한 열 편의 수록곡 중 여덟 곡이 멜론에서 1만 개 이상의 "좋아요"를 받은 상태다. 타이틀곡 '우주를 줄게'에 붙은 "좋아요" 수는 15만 8천 개를 넘겼다. 노래가 출시된 지 넉 달이 지난 지금에도 차트 10위 언저리에 머물 만큼 인기는 좀처럼 시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들의 특별한 질주는 아이돌이 아니더라도 좋은 노래에는 대중의 화답이 뒤따른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


다시 모인 원조 아이돌들
젝스키스는 MBC "무한도전"을 통해 여섯 멤버가 모두 모이며 팬들을 뭉클하게 했다. 2000년 공식 해체한 뒤 16년 만의 재결합이었다. 이들은 방송을 발판으로 YG 엔터테인먼트와 계약하고 10월 신곡 '세 단어'를 발표하며 본격적인 활동에 나섰다. 비록 고지용은 합류하지 않았지만 팬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선물이었다. 젝스키스는 내년 데뷔 20주년을 기념하며 또 한 번 신곡을 선보일 예정이다.

S.E.S.는 11월 말에 'Love'와 'I'm Your Girl'을 혼합한 매시업 트랙 'Love [story]'를 공개하면서 무성했던 재결합 소문을 현실화했다. 12월 17일에는 KBS "유희열의 스케치북"을 통해 드디어 완전체의 모습을 드러냈다. 작년 초에 방송된 "무한도전"의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 때에는 유진이 임신 중이라 출연하지 못해 팬들의 아쉬움이 컸다. 그 섭섭함이 2년 만에 씻겼다. 이제 신곡을 내는 일만 남았다.


가수 공개의 새로운 패러다임
새내기 걸 그룹 이달의 소녀는 색다른 방식의 데뷔로 음악팬들의 눈길을 끌었다. 이들을 제작한 레이블 블록베리크리에이티브는 매달 한 명씩 멤버를 공개하는 독특한 방법을 시도했다. 그룹 이름에 어울리게 달력을 찢는 느낌이다. 지난 10월 희진을 시작으로 11월에는 현진, 이번 달에는 하슬이 베일을 벗고 나타났다.

이달의 소녀 멤버는 총 열두 명이다. 멤버들이 다 소개되는 데에는 꼬박 1년이 걸린다. 내년 9월이 돼야 이 기초적인 여정이 비로소 끝난다. 멤버들이 달마다 들고 나오는 노래들이 각양각색이라서 흥미롭긴 하지만 장기 프로젝트이기에 음악팬들의 기대감이 갈수록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든다. 이들이 중국 걸 그룹 56송이 꽃처럼 56인조가 아닌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올해도 이어진 차트 역주행
느닷없이 차트에 다시 등장했다. 많은 사람이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MBC "위대한 탄생" 세 번째 시즌 우승자 한동근의 역주행은 그동안의 활동과 홍보가 잘 맞아떨어진 결과라 할 수 있다. 4월 "복면가왕"에 출연해 가수로서 오랜만에 존재감을 떨친 그는 몇 달 뒤 "듀엣가요제"를 통해 가창력을 유감없이 뽐냈다. 노래 실력을 검증함으로써 많은 이의 관심을 끌 수 있었다.

그 결과 2014년에 발표한 데뷔곡 '이 소설의 끝을 다시 써 보려 해'는 8월 멜론 차트 1위를 기록했다. "위대한 탄생" 출신 가수 중 한동근이 처음으로 멜론 차트 정상에 올랐다. 노래 제목처럼 그는 이미 집필을 마친 소설의 마지막 부분을 새롭게 쓰게 됐다. 그것도 아주 화려하게. 음악 경연 프로그램을 통해 가수 데뷔의 기회를 얻은 그는 음악 경연 프로그램을 통해 기사회생까지 했다.

한동근 외에도 돋보이는 역주행 주자들이 있다. 발라드의 황제 박효신은 2014년에 낸 '야생화'를 다시 차트에 올렸다. 6년 만에 발표한 정규 앨범 [I Am A Dreamer]의 거대한 파급 효과다. 3번 항목에서 상기한 '또 다시 사랑'이 '내가 저지른 사랑'과 동반 히트를 임창정도 엄밀히 역주행이라고 할 순 없지만, 흘러간 곡이 여전히 사랑 받고 있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거미의 2003년 곡 '친구라도 될 걸 그랬어'는 주간 차트에 22주간 머무르는 진귀한 광경을 연출했다. 13년 전에 출시된 노래가 다시 차트에 든 것은 이 노래가 내는 여운이 진하다는 뜻이 아닐까? 혹은 나날이 주가를 올리는 남자친구 덕에 다시 큰 사랑을 받았는지도 모른다. Sam Smith의 'I'm Not The Only One'은 출시된 지 2년이 흘렀음에도 많은 음악팬의 선택을 받으며 차트를 활보하고 있다. 근사한 멜로디의 저력을 보여 주는 사례다.


뮤지션들 분노를 표출하다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는 2016년 최고의 이슈다. 수백만 명의 국민이 거리로 나와 정부와 관련 인물들을 규탄하는 집회를 매일 벌이고 있다. 조사가 진행될수록 새로운 비리들이 거듭 나와 국민들은 연일 분개하는 중이다.

음악인들도 분노를 표출했다. 11월 초 뮤지션과 음악 관계자 2,300명 이상이 박근혜 대통령 퇴진 등을 요구하며 시국선언에 나섰다. 김디지, 제리케이, Owen Ovadoz, DJ DOC 등 몇몇 래퍼는 정부를 비판하는 비공식 음원을 냈다. 전인권, 양희은, 이은미 등은 촛불집회 무대에 올라 국민들에게 위로하고 힘을 주는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집회는 평화적으로 이뤄지고 시위대는 저마다 개성 넘치는 구호와 퍼포먼스로 재미를 찾는다. 아이돌 가수의 노래가 투쟁가가 되는 진풍경도 벌어진다. 하지만 마냥 즐거울 수 없는 현실이다. 많은 사람이 아무쪼록 지금의 문제들이 조속히, 바르게 해결되길 바라고 있을 것이다.

멜론-멜론매거진-이슈포커스 http://www.melon.com/musicstory/inform.htm?mstorySeq=4361&startIndex=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