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0월 28일 여성 R&B 그룹 Destiny's Child(데스티니스 차일드)가 인스타그램 계정을 개설했다. 팬들한테는 기쁜 소식이겠지만 굉장히 뜬금없는 일이기도 하다. Destiny's Child는 2006년 초에 공식 해체한 뒤 각자 솔로로 활동하는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그룹의 이름으로 SNS 페이지가 만들어지니 많은 이가 반가워하면서도 의아해했다.
이는 한편으로는 의미심장한 전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내년이 Destiny's Child의 데뷔 20주년이기 때문이다. 인터넷에는 그룹이 특별한 날을 기념하며 재결합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벌써 무성하다. 인스타그램에 게시된 단 넉 장의 사진이 그들을 그리워하는 팬들의 기대감을 증폭하는 중이다.

극성 아빠가 키운 10대 걸 그룹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약 10년 동안 팝 음악계를 누빈 Destiny's Child의 역사는 1990년에 시작된다. Beyonce Knowles와 LaTavia Roberson은 힙합/R&B 걸 그룹의 멤버를 뽑는 오디션을 통해 인연을 맺게 된다. 여기에 Kelly Rowland를 포함한 네 명의 멤버가 더 들어와 6인조로 팀이 구성됐다. Girl's Tyme으로 이름을 정한 이들은 1993년 인기 오디션 프로그램 "스타 서치"에 출연하며 눈도장을 찍었다. 하지만 최종 우승의 영광을 누리지는 못했다.
프로그램에서 하차한 뒤 Beyonce의 아버지 Mathew Knowles는 그룹의 매니저를 자처했다. 딸이 충분히 끼가 있는데 빛을 보지 못한 것이 그로서는 너무나도 억울했다. Mathew는 한국의 아이돌 지망생들이 데뷔 전 철저하게 노래와 춤 연습을 하는 것처럼 그룹을 독하게 관리, 감독했다. Girl's Tyme은 교회와 마당에서 연습하고 어머니가 운영하는 미장원에서 손님들을 상대로 노래를 부르며 중간 점검을 받았다. 각고의 노력을 거친 그룹은 선배 가수들의 공연에서 오프닝 무대를 장식하며 이름을 알려 나갔다.

Destiny's Child의 본격적인 출범
Girl's Tyme에서 현재의 이름으로 간판을 바꿔 달고 Beyonce Knowles, LaTavia Roberson, Kelly Rowland, LeToya Luckett의 4인조로 단장한 그룹은 1997년 영화 "맨 인 블랙" 사운드트랙에 'Killing Time'을 수록함으로써 음반 활동을 개시했다. 싱글로 출시되지는 않았지만 영화의 인기 덕에 이들도 자연스럽게 존재를 널리 선전할 수 있었다. 같은 해 발표한 정식 데뷔곡 'No, No, No'가 빌보드 싱글 차트 3위까지 올라 Destiny's Child는 단번에 큰 인기를 획득했다.
이듬해 출시한 'With Me'와 영화 "바보들의 사랑" 사운드트랙 'Get On The Bus'는 각각 히트곡 제조기인 Jermaine Dupri와 Timbaland를 프로듀서 겸 객원 보컬로 모셨음에도 빌보드 차트에 들지 못했다. 기쁨을 만끽하던 그룹은 단 몇 개월 만에 초라한 신세로 전락했다. 아마도 이들은 첫 끗발이 지속된다는 보장은 없음을 통감했을 듯하다.
하지만 얼마 후 상황은 다시 뒤바뀐다. 1999년 2집 [The Writing's On The Wall]의 리드 싱글 'Bills, Bills, Bills'가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에 오른 것이다. 적당한 활기와 그루브를 겸비한 반주, 멤버들의 훌륭한 가창력과 하모니를 앞세워 이들은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두 번째 싱글 'Bug A Boo'도 싱글 차트 33위를 기록하며 인기를 지속시켰다.

균열과 재단장, 계속된 히트 질주
그룹의 주가는 빠르게 상승하고 있었으나 내부는 삐끗거리기 시작했다. 1999년 말 LaTavia Roberson과 LeToya Luckett은 수익이 고르게 분배되지 않았다며 매니저인 Beyonce의 아버지에게 불만을 제기했다. Mathew Knowles는 이들의 의견을 탁구공 받아치듯 가볍게 무시했다. 오히려 이들에게 그 어떤 고지도 하지 않은 채 Michelle Williams와 Farrah Franklin을 새 식구로 영입했다. 반기를 들었던 두 멤버는 이듬해 2월 'Say My Name'의 뮤직비디오가 공개됐을 때 새 멤버들이 들어왔음을 알게 됐다. 자신들이 작곡에 참여하고 직접 불렀던 노래가 다른 사람의 차지가 됐으니 황당할 따름이었다.
LaTavia Roberson과 LeToya Luckett은 무기력하게 그대로 방출됐다. Mathew Knowles를 상대로 소송을 벌였지만 승소하지 못했다. 둘은 마음을 다잡으며 새로운 4인조 걸 그룹 Anjel을 조직해 앨범을 만들었다. 그러나 스물두 곡을 수록한 앨범은 레이블과의 문제로 출시되지 못했다. LaTavia Roberson은 고향으로 돌아갔고 LeToya Luckett은 매니지먼트 회사에 입사했다.
쫓겨난 원년 멤버들이 시련을 겪는 중에도 Destiny's Child는 조금의 흔들림 없이 탄탄대로를 달렸다. 'Jumpin', Jumpin', 'Independent Women Part I', 'Survivor'가 빌보드 싱글 차트 3위 안에 들며 이들은 정상급 걸 그룹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했다. 이 과정에서 Farrah Franklin이 불화를 이유로 팀을 떠났지만 이 역시 Destiny's Child의 인기에는 지장을 주지 못했다. 성적으로 매력적인 여성을 묘사("booty"와 "delicious"의 합성어)한 2001년 노래 'Bootylicious'는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등재되기까지 했다.

솔로로도 잘나갈 운명이었던 아이들
2001년 세 번째 앨범 [Survivor]를 낸 뒤 멤버들은 일제히 솔로 음반 제작에 착수한다. Michelle Williams가 2002년 4월에 솔로 데뷔 앨범 [Heart To Yours]를 선보이며 첫 주자로 나섰다. 앨범은 컨템포러리 R&B, 네오 소울, 가스펠, CCM 등 여러 장르를 아우르며 다채로움을 뽐냈다. Michelle Williams의 미성과 잔잔한 곡조는 그윽함을 증폭했다. 신앙고백을 바탕으로 한 희망적인 가사도 흡족함을 제공하는 성분이었다. 히트곡은 배출하지 못했지만 그녀는 이 앨범으로 "MOBO 어워드"에서 "최우수 가스펠 공연자" 부문을 수상했다.
같은 해 10월 Kelly Rowland가 솔로 앨범 [Simply Deep]을 발표했다. 래퍼 Nelly와 함께 부른 'Dilemma'로 가볍게 빌보드 싱글 차트 꼭대기에 올라선 뒤라 분위기가 무척 좋았다. 공식적인 리드 싱글이었던 'Stole'은 싱글 차트 27위를 기록했다. 수록곡들은 역시 R&B가 중심이었지만 업템포 R&B('Can't Nobody'), 힙합 소울('Make U Wanna Stay'), 팝 록('Train On A Track')도 다루면서 활력도 나타냈다. 매체의 평은 보통 수준이었지만 앨범은 60만 장 넘게 팔리며 상업적으로 성공했다.
멤버들 중 가장 큰 성공을 맛본 이는 Beyonce였다. 부부의 연을 맺게 되는 Jay Z가 참여한 'Crazy In Love'가 2003년 최고의 히트곡으로 등극하며 그녀는 그룹 활동 때보다 더 큰 인기를 누렸다. Sean Paul과 함께한 댄스홀 넘버 'Baby Boy' 또한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올랐고 세 번째 싱글 'Me, Myself And I'도 싱글 차트 4위를 기록해 쾌속 행진을 이어 나갔다. 앨범은 내실도 튼튼해 여러 매체가 "올해의 앨범"에 선정했다. 내로라하는 프로듀서들의 대거 참여, 발군의 가창력, 돋보이는 외모로 Beyonce는 가장 핫한 여가수로 우뚝 섰다.

마지막까지 끗발을 날리다
솔로 활동을 성황리에 마무리한 세 멤버는 2004년 다시 뭉쳐 4집 [Destiny Fulfilled]를 제작했다. 예능 프로그램 "엑스맨"에서 매주 흘러나왔던 'Loose My Breath'를 비롯해 T.I.와 Lil Wayne을 초대해 남부 힙합 느낌을 물씬 풍긴 'Soldier', 소울 그룹 The Dramatics가 1970년대에 낸 노래를 차용해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한 'Girl', 비단결처럼 부드러운 멜로디와 보컬을 탑재한 'Cater 2 U' 등 네 편의 노래가 연달아 히트했다. 개인 경력을 만들기 위한 공백도 이들에게는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여전히 열띤 사랑을 받으면서 최고의 위치를 지키고 있었지만 그룹은 2005년 해체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솔로로서도 충분히 잘될 수 있음을 확인했고 모두 연기, 뮤지컬에도 관심을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해체에 대해 멤버들은 의견이 갈리지 않았을 것이다. 세 여인은 "2006 NBA 올스타 게임"에 초대돼 국가를 부르는 것으로 Destiny's Child로서의 공식 활동을 마쳤다.

컴백 요청이 쇄도하는 걸 그룹의 걸 그룹
Destiny's Child는 빼어난 가창력과 아름다운 하모니로 "The Supremes의 재림"이라는 영광된 찬사를 받곤 했다. 이들은 대선배와의 비교를 넘어 전 세계의 수많은 가수 지망생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Girls Aloud, The Pussycat Dolls, Danity Kane, Little Mix 등 새천년 이후에 나온 다수의 걸 그룹이 Destiny's Child를 모델로 삼았다. 특히 Beyonce는 Whitney Houston 이후 제일가는 R&B 디바로 여겨진다.
가수는 기본, 여기에 배우, 음반 제작자 등으로 왕성한 활동을 펼치는 셋이 다시 모이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하다. 과거의 인기를 재현하지 못하는 재결합 사례가 적지 않았지만 이들은 솔로로서도 튼튼한 지지 기반을 보유했으니 재결합에 대한 성과를 낙관적으로 예상해 볼 만하다. 데뷔 스무 해를 맞는 2017년, 과연 Destiny's Child의 컴백이 이뤄질까? 재결성 루머는 몇 년 전부터 수도 없이 돌았다. 팬들은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이들이 돌아오길 간절히 기원하고 있다.
2016/11
멜론-멜론매거진-이슈포커스 http://www.melon.com/musicstory/inform.htm?mstorySeq=4220&startIndex=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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