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중음악은 혼합을 통해 새로운 형식미를 선보인다. 기존에 존재하던 것들을 덧대고 섞음으로써 신선한 모습을 내오는 작업은 대중음악이 줄곧 축적해 온 역사다. 거의 모든 장르에 적용되는 이 굵직한 경향은 흑인음악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대중음악의 아버지라고 할 블루스는 경쾌한 리듬과 만나며 리듬앤드블루스로 탈바꿈했다. 19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 흑인음악 시장을 지배한 뉴 잭 스윙, 이것의 뒤를 이어 대세로 자리 잡은 힙합 소울은 모두 컨템포러리 R&B와 힙합의 합작품이다. 2010년대 들어 프랭크 오션(Frank Ocean), 위켄드(The Weeknd) 같은 뮤지션이 개척한 얼터너티브 R&B도 리듬앤드블루스에 힙합, 록, 전자음악을 버무린 결실이다. 흑인음악의 형식적 발전은 퓨전으로 싹튼다.
새내기 싱어송라이터 포스트 멀론(Post Malone)은 오늘날 퓨전 동향의 한 꼭지를 차지하는 차세대 주자다. 그의 음악도 뉴 잭 스윙이나 힙합 소울처럼 R&B와 힙합을 왕래하며 각각의 인자를 거둔다. 방식은 동일하지만 외관은 다르다. 반주는 대체로 현재 유행하는 트랩의 틀을 따르며 멜로디에서는 R&B나 팝의 어법을 좇는다. 이로써 90년대에 인기를 누렸던 혼종 장르와는 사뭇 다른 외관을 보인다. 여기에 키드 커디(Kid Cudi), 드레이크(Drake), 찬스 더 래퍼(Chance the Rapper)처럼 노래를 부르듯 랩을 하고 래핑에 가깝게 노래를 하는 방식으로도 크로스오버를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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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멀론은 대학교를 중퇴하고 로스앤젤레스로 무작정 떠나면서 본격적인 음악 여정에 올랐다. 그곳에서 최근 힙합 신의 신흥 세력으로 떠오른 프로덕션 팀 FKi를 만나 전문적으로 음악을 만들게 된다. 조지아 출신의 두 프로듀서 트로콘 마커스 로버츠 주니어(Trocon Markous Roberts Jr.)와 스티븐 볼든(Steven Bolden)이 결성한 FKi는 2012년부터 트래비스 포터(Travis Porter), 이기 어제일리어(Iggy Azalea) 등과 작업하며 명성을 쌓았다. 이들과 제작한 노래 중 'White Iverson'을 2015년 2월 사운드클라우드를 통해 공개했다. 7월에는 뮤직비디오를 유튜브에 게재했고 네티즌들의 소문을 빠르게 타면서 음반 계약도 따내게 됐다. 8월 정식으로 발매된 'White Iverson'은 빌보드 싱글 차트 14위까지 올라 포스트 멀론은 일찍부터 존재감을 떨쳤다.

포스트 멀론은 기세를 몰아 2016년 5월 첫 믹스테이프 [August 26th]를 발표했다. 판매량은 높지 않았지만 마니아들로부터 호의적인 평가를 이끌어 내는 데에는 성공적이었다. 힙합 신의 주목을 받은 그는 더 많은 프로듀서와 동료 가수들을 불러들여 정규 음반 제작에 박차를 가했다. 믹스테이프의 전반적인 기조와 마찬가지로 정규 1집 [Stoney]도 현재 힙합 시장을 지배하는 미니멀한 비트가 만발한다.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몽롱한 대기가 앨범을 감돈다. 이와 함께 포트스 멀론의 장기인 래핑과 싱잉을 겸하는 보컬이 또 다른 특징을 형성해 준다.
들머리에 위치한 'Broken Whiskey Glass'부터 음악적 성향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간격을 많이 두고 울리는 드럼, 에코를 준 보컬이 스산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약간은 느슨해질 수 있는 구성이지만 중간에 랩을 입혀 각 절을 팽팽하게 잇는다. 'Big Lie'에서는 먼 뒤편에 보컬을 겹치는 믹싱 방식으로 울림을 극대화하며 'Cold'에서는 멍하게 퍼지는 보컬 샘플을 깔아 여백을 부각한다. 트랩 비트가 곳곳에 배치된 가운데 'No Option'은 간결한 신시사이저 루프와 멜로디컬한 구성으로 중독성을 띤다. 'Go Flex'는 어쿠스틱 기타 연주를 내세워 온화하고 수수하게 다가온다. 앨범은 이처럼 냉기와 온기를 적절히 오가며 순한 굴곡도 연출한다.
포스트 멀론의 보컬은 노래들의 풍미를 올린다. 레게(braids) 헤어스타일 때문에 NBA 농구선수 앨런 아이버슨(Allen Iverson)과 비교되는 사실이 모티프가 된 'White Iverson'은 자연스러운 비브라토로 야릇하고 음울한 대기를 조성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 침통해하는 'I Fall Apart'에서는 알 켈리(R. Kelly)를 떠올리게 하는 절절한 싱잉으로 주인공의 참담한 심정을 사실감 있게 나타낸다. 마약 때문에, 때로는 경찰의 과잉 대응 때문에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는 흑인 청년들을 생각하며 지은 'Too Young'은 차진 래핑과 낮은 톤의 싱잉을 겸해 역동성과 침착함을 한꺼번에 전달한다. 'Deja Vu'는 R&B와 레게의 인자를 들인 가창이 은은하게 탄력을 발휘한다. 더불어 객원 보컬로 참여한 저스틴 비버(Justin Bieber)의 여린 음색을 부각하는 기능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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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 한동윤
음반 해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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